프랑켄슈타인 클래식 호러 4
메리 셸리 원작, 세이비어 피로타 지음, 프랑코 리볼리 그림, 김선희 옮김 / 조선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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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날 프랑켄슈타인은 나름 유명한 공포소설이자, 고전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좀더

깊이 생각하면 이 소설은 당시 과거의 사회분위기 뿐 만이 아니라, 초기 생명윤리 또는 생물 모

두가 느끼는 '감정'의 존재에 대하여 보다 철학적으로접근 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하는것을 알

수 있을것이다.


19세기, 과거 과학만능주의를 증명하듯이 인간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한 생명을 창조하

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사는 자신의 창조물을 실패작이라 인식하며, 결사코 외

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흔히독자들은 그 창조물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이해하

지만, 실제 작품속에서의 그는 그저 끔찍한 '괴물'일 뿐 세상에서 그 무엇하나 부여받지 못한다.


그렇다.  이른바 신의 섭리에서 벗어난 생명은 마땅히 부여받아야 할 많은것을 얻지 못한

다.     때문에 괴물에게는 그저 분노만이 싹트며, 결국 그 책임을 박사에게 돌리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이때 독자들은 그 분노속에 숨겨져 있는 생명의 가장 원초적인 것이 무엇인가? 에 대

한 나름의 해답을 발견 할 수 있다.


분명히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분노했다.    때문에 그에게 해를 끼치기 보다는 그의 주

변의 소중한 것을 상실시킴으로서, 자신과 같은 철저한 고독함을 맛보게 하려고 한다.   허나

그럼에도 괴물은 나름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비록 자신을 버렸지만, 그는 부모와 같고, 또

그 스스로가 느끼는 괴로운 감정을 해소시켜줄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박사의 존재이니까..

. 그렇기에 그가 내민 화해의 조건은 바로 '사랑의 충족'이다.    


괴물은 반려자를 원한다.   그는 그저 자신과 함께 살아갈 다른 괴물을 박사에게 주문한다.   

그러나 박사는 이 제안을 거절한 뿐더러 그저 그에게 사라지라 주문했다.     마치 어린아이 같

지 않은가?  그는 애써 때를 써 얻어낸 장난감에 쉽게 질려버린 아이와 같다.     먼저 오만이든

호기심이든 결국 그는 괴물을 창조했다.   때문에 그는 괴물을 맞이하며, 나름의 해결책을 내놔

야 마땅하다.    예를들어 그를 받아들이거나, 또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괴물을 제거하려는 노

력을 해야했지만,  박사는 그저 눈앞의 끔찍한 존재가 그저 사라져주기를 원한다.    이에 나는

괴물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그야말로 조물주에게도 버림받은 생명이 아닌가?   나름 서양세

계에서의 최고의 가치인 '구원'이 이 괴물에게는 전혀 적용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그는

분노했고, 박사를 끝임없이 몰아 붙인다.


그런데 그런 그들 사이에 눈물이 흘려졌다.    박사의 최후를 바라보면서, 괴물은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만다.    거의 반평생을 원수처럼 여기며 쫒고 쫒기던 나날... 그런데 어째서 이 두 생명

체 사이에 감정이 형성될 수 있을까?    허나 그것이바로 '인간'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아무

리 그 모습이 흉측하고 이상해도, 결국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그토록 염원하고, 창조하

려 했던 인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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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클래식 호러 3
세이비어 피로타 지음, 제이슨 주타 그림, 김선희 옮김, 워싱턴 어빙 / 조선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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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이때 누군가는 옛 문화와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이라고 주장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반대로 '도대체 이건 무엇을 표

현하고 싶은건가?' 하는 의문만이 쌓이는 고전 또한 상당히 많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이를 지

루하다, 어렵다 라고 말하며 꺼리게 되는데,   이에 나에게있어 바로 이 책이 내가 꺼리는 책

이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책은 하나의 동화이다.   그리고 출판사 역시,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나 청소년의 자아

발달을 위하여 이 시리즈를 계획하고 출판했다 당당히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

게 있어서, 이것은 무서운 이야기도 아니요,교육적인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라는 감상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이 작품을 접하며 들었던 가장 첫 감상은 그 마을사람들이 보여준 무지함에 대

한 허탈감과, CSI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냉정한 보안관이라도 있었으면 한다.  라는 나름의 정

의실현 욕구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이야기의 주제인 '머리없는 기사' 는 전설을 넘

어, 이야기속 주인공의 목숨을 앗아가는 존재로 그려진다.그러나 그 결과와는 상관없이 이미

독자들은 어째서 '듀라한'이 등장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째서 '선생'을 습격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너무나도 잘 알게 된다.


그야말로 듀라한의 존재로 큰 이익을 본 사람... 즉 누군가의 계획으로 인하여, 선생은 살해를

당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때문에 현대인의 상식에서 보면 이는 이미 '오컬트' 의 영역을 벗어

났으나,  이어서 등장하는 다른 주변인물들은 이 사건을 마주하며, 비극적이지만 어쩔수 없는

초자연적 사건이라 정의하며, 결국 마지막까지 아무것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때문에 나는 답답했다.   범인이 뻔히 보이는데... 그리고 그 범인이 점점 원하는 그대로 모든것

을 얻어가고 있는데, 독자는 그것을 그저 바라만보고 있어야 한다.    아!  그야말로 고구마 한상

자를 씹어먹는 듯한 답답함이다.   허나 그것은 '어른'이 된 나의 시선일 뿐!    '혹시 어린 아이

들은 다른 감상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문득  이렇게 생각하니 정말로 궁금해진다. 


아쉽게도 나는 휼륭한 솔로부대의 일원으로서, 이를 읽어줄 아이가 없다.    그러나 정말로 듣

고 싶다.   듀라한의 존재 그리고 그에게 피해를 입은 선량한 선생님,  그리고 그를 추억하지만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마을사람들, 그리고 범인!이렇게 책을 덮은후 한번 그에게 물어보고 싶다.


"이거 재미있었니?" 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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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선 - 인간의 역사 아우또노미아총서 60
마커스 레디커 지음, 박지순 옮김 / 갈무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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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 있어, 소위 대항해시대는 모험과 낭만, 그리고 무한한 호기심과 용기 등과 같이 상당

히 긍정적인 이미지로 통한다.     그러나 점차 유럽사회가 항로개척의 길을 선택하면서부터 가

장 활발하고, 또 큰 이익을 낸 장사는 의외로 후추나 향신료가 아닌 면화, 설탕, 노예 등이 대표

적이였으며, 특히 결과적으로 이것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종과 민족을 아우르는 가장 심각

한 '차별'과 '상식'을 만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범 인류적 '범죄'

로 생각해도 그리 큰 무리가 없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허나 후세의 인식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이미 노예무역은 '역사'의 사실로서 불변의 위치를 점

한다.   때문에 저자 역시도 중.근대의 자본주의를 설명하기 위하여 노예를 소위 상품으로 표현

할 수밖에 없을 뿐 만이 아니라, 이 책의 제목과 같이 노예선을 주제로 한 많은 역사적 사건과

의의를 설명하면서, 상당히 하드코어한 묘사를 통해 그 심각성을 드러내려 했다.


그렇기에 노예선은 이른바 '노예무역'이라는 소프트웨어와 함께 성장한 '하드웨어' 라고 이해

하면 좋을것이다.   그 증거로 노예무역이 '인기'를 얻음으로서, 당연히 국가와 개인등은 '전문

화' '거대화' 등을 통해 보다 큰 규모의 시장을 형성함과 동시에, '노예를 가장 많이 실을 수 있

는' 선박을 개발하고 건조하는데도 큰 발전을 이룬다. 


이에 쉽게 생각하면 '보통 화물선'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아?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

지만,  이는 어쩌면 가장중요한 것을 간과 한 것이다.   


실제로 노예선 선장이 가장 가지고 싶어한 '선박'은 그저 보통 화물선이 아니다.   먼저 포획한

노예를 많이 실어야 하고,또 보다 빠른 속도를 지녀야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사로잡

은 노예들의 저항의지를 꺾는 난공불락의 보안시설과, 유능한 선원들, 그리고 보다 높은 안

정성과 내구성이 보장되어야만 진정 좋은 노예선이라 할 만하다.    그렇기에 노예선은 아마 해

적 다음으로 잔인한 분위기를 지닌 선박이였을 것이다.  이에 기록을 보면, 유럽인들은 '아프리

카 노예'를 거래하면서, 먼저 그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한다.


바로 이때 나는 이 책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었다. 

*그것은 바로 노예들이 순종적으로 팔려나가는 상품이 아닌 인간임을 다시끔 재확인

하는 것이다.*


책속의 흑인들은 정말 격렬하게 저항한다.   가장 쉽게 생각 할 수 있는 탈출부터 시작해, 선박

의 탈취, 심지어는 무게중심을 바꾸어 선박을 뒤집거나, 화악을 폭파시켜 동반자살을 꾀한 사

건에 이르기까지 그 '저항사'는 무궁무진하다.  그렇기에 선주들은 정말로 할 수 있는것을 다

한다.   구속, 감금, 성폭행, 고문, 협상, 살해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인간의 의지를

꺾게 할 수만 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책표지에 드러난 '설계도' 의 진정한 의의는 가장 효과적인 '적재효율'을 상징하

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인간성을 가장 철저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 방법을 상징하는 것이라 이

해해야 한다. 


그래서일까?  이 많은 희생을 발판삼아 유럽사회는 점차 노예매매에 대한 반대의 의견을 쏟아

낸다.   학자, 정치인 일반인, 그리고 일부 상인들에 이르기까지 퍼져나간 '인도주의'   비록

너무 늦었고, 또 뻔뻔하다 생각되는 일면도 있지만, 그나마 그 인식이 떠오름으로 해서, 오늘날

의 상식이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혹시 유럽사회가 그 의의를 통하여 '면죄부'를 얻으려 한

다면 독자들은 이에 강력이 비난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이미 내 스스로가 느낀 것이지만, 많

은 사람들은 지금껏 노예들의 불행을 너무 작게 생각하지 않았나 한다. 


거대한 힘앞에 '어쩔 수없이' 굴복하고 유린당한 흑인들


바로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노예매매의 상식이다.   그러나 '같이 유린당하고

강점당한' 민족의 후예로서 이러한 단편적인 상식은 그야말로 독과 같은 것이다.   어째서 '나'

는 이러한 상식과는 반대되는 개념을 떠올리지 못했는가?  그리고 이세상의 많은 지식인들 포

함한 일반사람들에게 있어서, '흑인노예 저항사' 는 그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이해되고 있

는가?   이렇게 이 책을 접한 독자들은 그에 대한 정말 깊은 질문과 함께 해답을 발견하는 노력

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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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하는 법 - 넘치는 책들로 골머리 앓는 당신을 위하여
조경국 지음 / 유유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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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남자의 로망'


실제로 누군가 버린 장식장을 들고와 내 방에 딱 밀어넣었을때... 그야말로 10년전 어린?나이였

지만,   그때의 '나'는 순수하게 내 서재를 만들었다는 기쁨을 오롯이 만끽했었다.   그러나 오

늘날에 이르러 '서재'는 나 뿐만이 아니라, 함께사는 가족 모두에게 있어 큰 부담거리로 다가오

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도 공감하리라.    점점 쌓여가는 책,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책

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이미 내 서재는 벽면 곳곳의 책장 뿐만이 아니라, 천장, 바닥, 베란다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물건을 둘 수 있는 모든 장소에 책이 어지럽게 쌓여있다.     허나 그렇다

고 나 스스로가 정리를 하지않는 사람은 절대 아니다.     다만 직장일을 끝낸 '나만의 시간'

속에서, 독서, 휴식을 제외한 '정리의 시간'이 너무나도 적은 탓이다! 라고 나름 주장하고 싶다.


때문에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책을 접했다.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의

노하우, 그리고 전문가?가 알려주는 마법의 책 정리법!    이렇게 나는 무언가 획기적이고,실용

적인 비법을 원했지만, 역시나 돌아오는 것은 같은 주제로 골머리를 썩는 동병상련의 감상을

가지는 것이 전부였다.


허나 그렇다고 저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모두 실용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아니.. 생각해보

면 이미 나 자신이 저자의 노하우를 비슷하게 또는 거의 그대로 활용하고있기에, 그 밖의 방법

을 접하지 못한 아쉬움이 그만큼 큰 것이라 본다.    그렇기에 결과는 그 만국공통의 '정리법'에

서 실제 나에게 있어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까?  하는 것을 스스로 정하는것에 있다.


실제로 나의 서재는 하나의 '서점'이다.   두개의 방에 A에서 G까지의 책장이 있고, 비교적 같

은 크기의 책들을 넣었다. 이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터넷 서평을 통하여 감상을 기록하고, 또

대부분의 책들을 나름 '전산화' 했다는 것에 있다.   비록 그 시스템은 원시적이지만,   나는 내

나름의 검색시스템을 통하여, 내가 소유한 책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관공서가

아닌 가정에서 그 역활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직 모른다.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감하

는 문제들... 공간, 이사와 같은 한정되고, 급박한 이벤트를 앞두고, 과연 나 스스로가 이룩한

것이 한낮 물거품처럼 사라질때,  과연 그때도 내가 독서가로서 변하지 않는 열정을 지니고 있

을지,  나는 바로 이러한 걱정을 주변 모두와 공유하고 싶다.


그래서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저자는 정말로 인생의 큰 결심을 한것이라 여겨진다.     나 또

한 작은 독서실을 열어, 내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싶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현실을 생

각하면 그것은 너무다고 위험한 다리이다.   오늘날 사양산업으로 전락해가는 출판.도서사업

에 뛰어드는 것이 무섭다.   그리고 온 방에 쌓여있는 책들이 손바닥만한 '전차책'안에 모조리

들어간다는 사실 또한 내 나름의 업적이 산산히 부서지는 느낌이다.    그렇기에 아직은 나에

게 있어 독서란 취미에 머문다.   그것도 굉장히 핍박받는 괴로운 취미로서...


그러니 혹 이 내용에 공감하시는 분이 있으신가?    만약 있다면 선배이자, 후배로서 말하고 싶

은것이 있다.


"너 내 동료가 되라."  "함께 타락?하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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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역 폭발사건
김은미 지음 / 제8요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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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할만한 일은 아니지만, 혹시 누군가를 증오해 본적은 있는가?      그리고 혹시 있다면 당신

은 그에 합당한 이유로 상대를 증오하고 있는가?    이처럼 사회는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라

해도, 그것을 표출하는에 있어서 나름의 정당성과 책임을 앞세운다.   그러나 그 정당성이 만

인 모두에게 납득이 되는 '정의'일 필요는 없다.      그 증거로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극우세

력'의 존재는 분명 그릇된 사상과 명분을 앞세우지만, 일본사회에 나름 강력한 힘과 영향력을

지니는 것으로 묘사가 되고 있다.


물론 실제 일본사회에서도 극우세력의 존재는 제법 큰 규모를 가진 존재가 많고, 또 그들 스스

로가 주장하는 '혐한'에 동조하는 일본인 또한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들을 소

재로 '일본내 가장 강력한 세력'을 창조하고, 또 그들로 인하여 여느 등장인물들이 사망하거

나, 납치되는 등의 '범죄'를 표현하기에, 이에 읽는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개인적으로 그 (내용

)해석이 천차만별이 될 것이라는 감상을 크게 받는다.


때문에 이 소설은 크게 '오늘날의 일본' 그리고 그들이 드러내는 '뻔뻔함'을 꼬집는 저자의 시

선을 마주하는 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저자는 일본이 아직도 과거의 망령에 사로

잡혀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로서 등장하는 주인공은 재일한국인의

자손으로서, 나름 일본사회에 쉽게 녹아들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래도 그는 스스로

자신을 일본인이라 생각하고, 또 그러한 인생을 살아간다.    허나 저자는 그러한 주인공에게

가장 큰 시련을 부여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진실된 뿌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선택하게 했다.


주인공이 마주한 일본


그것은 비록 단면적인 것이지만, 주인공에게 있어서 혐오감을 주게 하기 충분하다.    그들은

자신을 찾아온 손님을 납치 했을 뿐만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주인공을 조종하려 했다.     이

에 그는 '일미회'의 존재를 알게되고, 또 동시에 일본에 깊게 뿌리 내린 혐한의 존재를 접하게

된다.    '그들의 분노' 그것은 너무나도 일방적이고 터무니 없다.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그들

이 이와 같은 혐오를 공공연히 드러내기보다는 마치 독버섯처럼 음지에서 점점 세력을 키워나

가는 지하조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인공은 소위 '신주쿠 폭발사건'을 일으킨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목된 언론과 사람

들에게 대대적으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일미회가 한국인을 납치했습니다"   

"일미회가 저에게 어떤것을 요구했습니다."

"여러분 이 일본사회에 만연한 혐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때 소설속 일미회는 그리고 일본인은 그 질문에 무엇이라 대답할 수 있을까?   이에 그들은

세상의 '상식'과 '정의'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지금껏 행한 목적과

행동의 정당성이 이로 인하여 모래성처럼 무너진다.     일본인의 위대함, 나라의 자존심, 진정

건강한 일본을 위하여! 라는 구호가 그렇게 간단히 무너지다니...   이에 비록 소설이지만, 나는

이를 접하며 소위 '극우'가 '국제적 왕따'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왕따는 모두의 경계와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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