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한 계획
신세연 지음 / 바른북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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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못먹고, 못입고... 그리고 아이를 키울여력이 없어 남의집 대문앞에 버릴수 밖에 없었던 사연

까지.   이처럼 한때 가난했던 대한민국 속의 시대를 바라보면, 상당히 불명예스러운 일이 많

이 일어났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나의 어린시절에는 이러한 사연들을 그리고,

또 표현한 대중작품들이 많았고, 또 이를 받아들이는데 있어서도 나름 획일적인 교육을 받

기도 했다.   '노력하자' '아끼자' 그리고 '잘살자'   이처럼 단순하고도 명확한 구호를 외치며

어른들은 달려왔고, 또 결국 오늘날의 풍요로운 사회모습을 만들어 냈지만, 이와는 반대로,  저

자는 시대가 이 소설속에서 그려지는 그림자 또한 드리웠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주문

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속의 부모는 불운하다.   고아로서 자라나 지칭 공순이와 결혼한 매우 서민적인 인

생이 드러나지만, 결국 이들은 하나의 어린자식을 남긴체 시대속 '무관심'과 '안전불감증'에 희

생된다.    그렇기에 독자로서의 '나'는 가장 인간으로서마땅히 누려야 하는 '행복추구' 와 '

권리'가 상실된  당시의 시대가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왔다.   그 뿐인가?  비록 이 전체적인내용

이 나름 '사회파'가 아니라 해도, 그 살아남은 아이가 마주해야 했던 개인사조차도 '남 일이 아

니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나름의 메시지 또한 발견한다.


결과적으로 아이는 '복수'를 다짐한다.   그러나 그의 대상은 불분명한 사회나 운명같은 것이

아닌, 매우 명확한 목표가 있다. 때문에 그는 성장하면서도 대상을 바라 볼 수 있었고, 또 접근

할 수 있었으며, 사랑과 연민과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이용하는 비정한 방법을 서슴없이 사용

한다.    그러나 그 목표를 향한 비정한 삶을 만들어낸 원인을 따지면, 결국 돌고돌아 '시대'

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개인적인 어려움과, 한계를 뛰어넘어 남부럽지 않은 '성공'

을 이루어 낸 '아이'의 반전신화를 바라보면서도, 결국 그 반대에 해당하는 평생 치료받을 수

없는 '한' 또한 바라 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아빠, 다음에는 내 아들로 태어나. 그래서 아빠가 못 누리고 산 거 내가 다 해줄게"


이처럼 위의 이미지가 상징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주인공이 죽은 아버지를 추억하며 입에

올린 이 말은 그야말로 과거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과거 그들은 젊

음을 의무와 노동으로 소비하고, 흔히 목표를 향해 전진하는 소모품으로 취급되었다.   그렇기

에 이들이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고, 또 한계에 부딛쳐 절망을 맛보았을때  결국 그들에게 손

을 내민 것은 안쓰러움과 자애의 존재가 아니라, 그들의 '처절한 상황'을 이용해 필요한 욕구

를 채우려는 잔인한 하이에나 였다.


때문에 주인공의 '복수의 대상'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를 무력하게 하고, 또 이용한 힘있는 자

이다.


그렇기에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제목과 같이 처절한 선택을 한 복수의 이야기를 표현한다.  허

나 독자로서 나는 이를 단순히 사람과 사람사이의 원한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분명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또 그러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준, 과거 대한민국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기에 이를 바라보며 오늘날의 후손들은 가치를 둘로 나뉘어 격렬하

게 반목한다.  


물론 그에 대한 절대적인 해답은 없다.  때문에 독자들 스스로가 이를 시대의 성장통이였다 변

호한다면? 그리고 반성을 통한 성숙함을 이끌어 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이였다. 생각한

다면?  이에 나로서는 그다지 반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단 한가지, 그렇다면 이를 위하여 생

겨난 '한'이 만들어낸 비극도 어쩔수 없다 말할 수 있을지?   한번 이 정도 쯤은 되물어보고 싶

은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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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코패스: 정상의 가면을 쓴 사람들 - 뇌과학이 밝혀낸 당신 주위의 사이코패스
나카노 노부코 지음, 박진희 옮김 / 호메로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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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흔히 뉴스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강력범죄'들을 보면, 과연 '사람으로서 이러한 행위를 저지

를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러나 그 와중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등

장하면 왠지 모르게 그 의문은 이해로 급선회하며, 또한 그 특정한 사람을 기피하고 싶다는 자

기방어적인 마음가짐을 품게된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마음을 품는다고 해도 사전에 사이코패스를 알아보고 피할 수는 없는 일

이다.   옛말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라는 말이 괜히 있는것이 아니

다!   게다가 과연 '나'는 사이코패스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에 흔히 생각되는 사이

코패스의 이미지는 짤막한 정보를 흘리는 언론이나, 여느 가상의 오락.영화에서 접하게 되

는 것... 그야말로 자신의 자아를 가면속에 숨길줄 아는 한니발같은 인물이다.     그러나 과연

이러한 특징이 현실의 사이코패스를 특정하는 대표적인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이처럼

책은 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동시에, 그 해답을 '뇌과학' 이라는 특정 전문지식을 통하여 바라보

려는 시도를 한다.


그렇기에 독자는 제일먼저 사이코패스란 단순한 '미친사람'이 아니라는 (책의)메시지를 받아들

여야만 한다.  사이코패스는 일종의 공감능력이 결여된 독선적인 인물이며, 물론 그 독선이 '

범죄'로 발전하기도 하지만,  순기능, 즉 개인의 능력향상과 더불어 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

는 큰 장점으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사이코패스들의 직업들을 보면, 의외로 인

정받는 '전문직'이나 '고위직'이 상당하다.    그야말로 개인의 영역에 있어서 사이코패스

의특징은 나름 축복일수도?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과거 어떤 작품에서 '사이코패스가 현대사회에서 겪는 어느 가치충돌'에 대한 이야

기를 다루었다. 과거 노부나가, 알렉산더와 같이 오만하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실질적인 이익

보다는 감각적인 몽상가의 길을 걸었던 많은 이들은 어쩌면 사이코패스가 아니였을까?   그렇

다면 어지러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지배하고, 죽이며 문명을 이끌었던 사이코패스

들의 존재는 절대악이 아니라, 필요악이 될 수도 있다고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이처럼 이 책

은 읽으면 읽을수록 수많은 질문이 생겨난다.    사이코패스는 단순한 뇌구조의 차이로 보여지

는 하나의 성격의 것이 아닐까?   오늘날 강력한 질서와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가 그 다를 뿐인

사이코패스가 살 수 없는 세상을 강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에 대한 정답은 그 어디에도 나와있지는 않다.   그리고 이 책 또한 많은 가능성을 이야

기할 뿐... 딱부러진 정의와 예방 그리고 근절의 메시지를 전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독자

인 '나'는 이를 통하여 딱하나의 진실을 마주한다. 그리고 사이코패스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

닌, 본래 타고난 기질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니 이는 본래 근절할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저 세상에서 두가지 모습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 세상의 법칙속에서 살거나, 아니면 이를 무시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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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엄마의 태교법 - '기질 바른' 아이를 낳기 위한 500년의 역사
정해은 지음 / 서해문집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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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축복으로 여기며 축하하는 것. 

이처럼 위와 같은 가치는 대부분의 가족에게 있어서 당연하게 여겨져야 할 가치라 여겨진

다.    그렇기에 먼 옛날의 조선시대에 있어서도 임신(회임)은 단순한 생명을 품었다라는 것에

서 더 나아가, 집안의 핏줄을 이어준다는 기대를 현실화 한다는 면에 있어서 분명 반가운일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생명이 태어나며 마주하는 여느 '조건'들은 분명 현대인이 볼때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을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첫번째로 이 태교를 함에 있어서 보여지는 극단적인 남아선호

사상이 그 대표적이라 할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단순히 회임을 한 여인이 생명을 품으며 피

해야 할 것, 그리고 좋은것만을 접할 것을 권하는 것은 지금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허나 그러

한 조건이 순전히 아들을 얻기 위하여 행하여지고, 또 더 나아가 성별을 뒤바꿀 수도 있을것이

라는 기대속에서 행하여 진 것이라면? 역시 이것은 당시 조선사회가 가진 한계를 분명하게 보

여주는 것이라도 정의 할 수 있다.


허나 그러한 것을 떠나서 순수하게 '태교'를 바라본다면 이 행위에 대한 가치가 대단히 기묘하

게 보이기도 한다.  물론 지금의 한국사회속에서 바라본다면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겠지만, 보

다 세계적인 가치로 이를 바라보면, 분명 태교는 극동아시아 세계에서 보여지는 매우 특이한

행위로 비추어 질수도 있는 것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가르친다'


이처럼 어떻게 보면 태교란 '비상식적이다' '기대심리가 아닐까?' '상당히 한국적?이다' 라는

다양한 정의가 가능한 행위로 비추어진다.  허나 현대의 태교는 그 많은 인식을 떠나, 오롯이

영재교육의 시작점이라는 목적의식을 지닌다.  그러나 본래 진실된 태교의 의미는 어떠한 것이

였을까?    이에 이 조선시대의 기록들을 살펴보면 때때로 감탄스러울 정도의 '의식'들이 드러

나  '나' (독자)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의미에 대하여 조금 더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부여한

다.


비록 조선시대의 태교라는 것이 산모에게 적지않은 부담을 안겨준 것이 사실이였다 할 지라

도!

결과적으로 그것을 감내하게 했던 '근본'만은 상당히 본받을만 하다.    과거 근대의 유전학적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던 세상에서,  더욱이 의학의 개념조차 완전치 않았던 세상속에서, 태교

는 조선시대의 완벽하지 않은 의학의 한 개념을 차지하여 왔다.   때문에 이들은 산모의

영양상태나, 스트레스와 같은 부분적인 의학적 접근과 더불어, 성리학적인 개념... 즉 수행에

따른 인간성의 형성과 같은 후천적인 변화에 대한 개념까지도 태교에 필요한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는 분명 근대 서구사회에 등장한 '우생학'보다도 더욱더 성숙하다.    단순하게 유

전적 기질이 결합함으로 인하여 우성,열성이 등장한다면?   이에 후천적인 교육등은 어떠한 방

향으로 흘러 갈 수 밖에 없는것인가?    이때 책 속의 해석은 다르다.  조선시대에서는 생명을

부여하는 본체의 영향력을 (단점 등을) 태아가 외부의 영향 (교육)을 통해 극복 할 수 있다 

믿는다.  그렇기에 인간은 단순한 생명의 잉태를 뛰어넘어, 보다 더 앞선 개념을 새 생명

에게 부여하려 한다.   바로 그것이 태교의 본질이 아닐까?


부모는 아이를 위하여 바른 품행을 갈고닦는다.   그리고 사람이 근간이라 생각했던 당시의'

가치'를 끝임없이 학습하며, 아이가 태어나고 성장하면서 흡수할 그 바탕을 만들어주려 했

다.    그렇기에 태교의 진짜 교육은 '효' 와 '예'였다.    비록 그것이 얼마만큼 (실질적인) 효과

가 있었는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조선의 태교는, 조선시대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그 시작점 전부터 '사람이 되는 준비

를 해야 하는 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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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이름, 조선의용군
류종훈 지음 / 가나출판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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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로서의 몰락.  

이처럼 옛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의 (자칭)보호를 받는 이류국가로 전락했다.   때문에 대한민국

의 역사에서는 자주독립을 주장하며 저항하고, 또 핍박받아 온 무수한 사건들이 드러나, 이를

배우는 후손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바로 이때 역사는 두가지의 이야기를 드러내

왔다.    평화를 앞세운 저항과 폭력을 앞세운 저항!  이에 '나'는 이 두가지 가치중 어느것이 더

바람직하였는가?  하는 결과론을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또 과거를 기억하고 배우려하는 한 역사쟁이로서, 의외로 외면받아온 조선독립군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다.


조선독립군을 접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


이때 책의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의 땅이 아닌, 낮선 중국으로 향한다.     물론 대한민국임시정

부를 비롯하여, 대한독립군의 흔적 또한 중국에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르겠지

만, 안타깝게도 조선의용군은 위의 두개의 존재에 비교해 분명 주목받아오지 못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공적은 인정하지만, 굳이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이유... 이처럼 나는 이 여행기를 마

주하며 이같은 의문을 품었다.    어째서 '대한민국'은 이들을 잘 기억하려 하지 않는것일까? 


이에 분명 조선독립군은 잘못이 없다.


만약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과거 존재했던 '이념의 충돌'이 격렬했던 탓이다.    실제로 조선독

립군의 활약은 중국 공산군 (팔로군)의 역사와 함께하며, 또 그 거대함 속에 묻혀있다.    그 뿐인가?  갑작스러운 광복과 함께, 대부분의 독립군 중요인물들이 이른바 북한행을 선택했

기에, 남한의 입장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또 기억하기가 껄끄러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 또

한 이러한 현실을 마주하면서, 상당히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중국 이곳저곳을 탐

사하며 마주한 진실, 그곳에는 분명 독립을 위해 싸운 흔적이 뚜렷했지만,  이를 추모하고 기

억하려는 '대한민국'의 흔적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책은 계속해서 주장한다.  한글로 된 '비석 하나' '안내문 하나' 변변하게 세워주지 못

한 현실이 안타깝다고, 그러나 항일운동을 자랑스럽게 주장하고, 또 함께 한 조선독립군을 기

억하고 인정해주는 많은 중국인들이 참으로 고맙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이 탐사는 나에게 많

은 여운을 남겼다.   과거 일본제국의 영향력을 벗어나, 저항하고, 싸우며 조국을 꿈꾼 이 많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은 분명 '나'가 아니였다.      그러나 결국 이 책을 통하여 '나'는 이를 기

억하려는 마음을 품고, 또 이렇게 기록을 남기에 했다.    그렇다.  과거 무지했다면, 이제 깨어

나 행동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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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트랜스휴머니즘
엘로이즈 쇼슈아 지음, 이명은 옮김 / 그림씨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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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의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만화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이러한 이미지를 바라보면

서, 인류 그리고 문명이 꾸준하게 축척하고 발전시킨 것들이 오늘날 어떠한 형태로 남아있는

가? 하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인지 할 수 있을것이다.  실제로 의학은 '문명의 발전사'를 증

명 할 수 있는 대표적인 가치중 하나가 분명하다.   과거 질병에 대처하기 위하여 기댄 샤머니

즘적인 요소와 더불어, 중세시대의 그 우악스러웠던 돌팔이들의 치료법을 돌아보면, 분명 지금

의 의학적 가치는 그야말로 눈부신 업적이라 칭할 만 하다.


그렇기에 이 만화에서는 그러한 의학적 가치중 '외과'에 집중하며, 그 발전사의 이야기를 들려

주려고 노력한다. 과거 흔히 손과 발이 상하여 장애를 지니게 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이는 단순한 사고, 그리고 건축현장과 전장을 아우르며, 사람이 가장 흔하게 접한 하나의 불행

이였다.    그렇기에 책속에 등장하는 주인공 또한 교통사고라는 불행을 통하여, 한쪽 팔을 잃

어버리는 아픔을 겪게 되지만, 그러나 오늘날의 의학은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 목숨까지 앗아가

지는 않으며,  더욱이 장애를 극복하기위한 또다른 선택지를 제시하면서 그의 새로운 인생의

도약을 돕기까지 한다.   그렇다. 이 또한 생각하기에 따라, 지독한 고통과 출혈 그리고 죽음과

의 끝없는 싸움을 벌여 얻어낸 달콤한 열매인 것이다.  


실제로 과거와 현대... 그 오랜역사의 흐름에 있어서, 의학은 꾸준히 그 한계를 극복해

왔다.    몽둥이에서 마취제로! 더욱이 단순한 절단에서, 신경세포를 이어주는 기적적인 외과

수술법의 등장에 대하여! 이는 분명 의학에 대해 문외한인 '나'조차도 이에 무한한 신뢰를 보낼

수 있을것만 같다.     


무한한 가능성과 신뢰


이처럼 이 책이 지어진 것은 현대의학의 발전사 뿐만이 아니라, 더 나은 의료기술과 서비스가

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이 된다.    그야말로 현대인들은 내일

뿐만이 아니라, 보다 더 먼 미래의 삶까지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아프면 병원에 가고, 진단을

받아 치료를 받는다는 이 당연한 행위로 인하여, 분명 우리들은 비교적 질병과 사고에 대하여

대비가 가능해졌다.    그렇기에 저자는 오늘날의 의료를 말하면서, 한계를 극복하여 나아가는

미래또한 그려낸다.     비록 주인공이 그 한 팔을 잃어버렸다 해도 오늘날의 사회와 의료는 그

를 무력한 개인으로 버려두지 않는다.   그의 잃어버린 것을 되찿아주기 위하여 오늘날 어떠한

의학들이 등장하고 또 발전하고 있을까?  그리고 의학을 떠나, 또 어떤 다른 '기술'들이 지금의

의학과 함께 불편한 이들의 미래를 보조하고 있을까?   


그렇듯 그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마도 끝이 없을 것이다.   신경외과, 외과, 약

학, 그리고 신소재와 로봇공학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무궁무진한 가능성의 세계가 이 책에

은연중 흘러나오는 것 같아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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