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문득 시리즈 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해생 옮김 / 스피리투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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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문장은 암울하다.   특히 그는 인간이 최선을 다하여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주제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인간이란 불안감에 떠밀려 살아간다'는 이미지를 드러내, 결국 독자로 하여금 사회공동체가 지닌 냉엄함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과거 접했던 변신과 같이 이 단편들의 대부분 또한 인간의 삶이 가지는 많은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주제들이 드러난다.    실제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일하고, 재산을 축척하고, 또한 사회의 문화와 질서에 민감해지는 것은 정말로 당연한 상식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허나 카브카의 시선 속에서 그 많은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원숭이와 쥐 그리고 땅속을 기어다니는 벌레들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살기 위하여 '인간의 행세를 하고' '땅속에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며, 결국 그들 스스로가 이룩한 것에 대한 감동보다는 그럴수 밖에 없었던 환경과 운명에 대한 연민과 허무를 느끼게 된다.   때문에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인간역시도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과거 카프카가 살아가던 세상과 같이, 오늘날 또한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무를 강제하며, 물질적인 척도를 통하여, 개인 스스로의 삶의 질을 평가한다.  바로 그렇기에 인간이란 대부분 삶을 불행하다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또한 그렇게 불행하고, 불안하기에... 결국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떠밀려 살아간다는 선택지를 '유일한 선택지'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이를 벗어나기 위한 각오나,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각오 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 같다는 감상을 받는다.    저자는 분명 인간의 법칙을 고발했고, 그 본질을 폭로한 자다.  그렇기에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굴복이 아닌, 선택(또는 저항)을 하기 바란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결국 '나' (개인) 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그 '자유'와 '순종'이라는 가치관의 굴레 속에서 언제나 불만족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결국 현대인이란  완벽한 속물도 자연인도 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야말로 '각오없는 삶'에 익숙해진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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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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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이 추구하는 최상의 욕구를 가리켜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한다.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간이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는이 상위의 욕구를 만족시키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볼때 어디 그것이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인가?  실제로 '나'스스의 삶에 있어서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은 대단히 큰 상처와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리 남보다 잘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더 가지고 싶은 욕심도 없지만, 결국 나는 나 스스로의 잣대로 인하여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독자로서, 저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이 만화로 인하여,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사랑(응원)을 받게 되었지만, 결국 이것이 저자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보상이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책 속의 이미지에서도 저자는 청소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사회인으로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하여! 결국 어른은 꿈만을 먹고 산다는 '사치'스러움과는 다른 현실에 굴복한 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결국 저자는 어떠한 길을 걷게 될까?


그는 분명 젊은 날의 방황과 갈등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허나 반대로 '프리랜서'의 길과 '청소일'이 가지는 사회적 시선에 대하여, 큰 부담감을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 속 사회인 이기도 하다.   아무리 이념적으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결국 그가 마주한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역시 이념은 이념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그렇기에 진정 그가 이룰 꿈을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가 만들어낼 속박을 벗어던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책 속에 드러난 '활기찬 주인공'과 같이 비록 지금이 힘들고, 또 어렵다 하더라도, 그에 굴복해 꿈을 내려놓는 선택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복잡하고, 또 숨막히는 사회에 나 스스로를 구겨넣는 순간...' 결국 나는 저자와 같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성과란 것을  절대로 만들어 낼수 없게 될 것이다.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이루고 싶다' 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하여, 스스로 정한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결심도 했다.   이에 과연 미래는 나에게 어떠한 것을 보여줄까? 그리고 나는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남기게 될까?   이에 이 책은 (비록 타인이 걸어간 길이지만, ) 꿈을 향한 하나의 과정이자, 그 증거물이라는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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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인 - 푸른 눈의 영국 기자 마이클 브린이 바라본 한국의 모습
마이클 브린 지음, 장영재 옮김 / 실레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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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정보, 방송,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첨차 전문성보다는 객관적인 정보를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크게 정치에 대하여는 생각보다 객관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정치란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대의를 조정해 보다 공동체의 발전과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이에 매우 정확한 정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을 뿐 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권력이라는 큰 장애물이 객관성을 회손시키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  결국 정치는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도를 호소하기 위하여, 각각의 정치인이 드러내는 이념과 진형논리 또한 결국 그 어느쪽으로 편향된 주장과, 진단(또한 정책)을 내놓게 하는 원인이 되기 일쑤이며, 물론 그 밖의 언론과 학계 또한 그 영향력에 완전히 자유로워 지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가장 객관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서는 보다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유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 또한 자칫하면 탁상공론에 머무르는 듣기 좋은 말만 들을 위험성이 크다.   실제로 (과거)남.북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었을때, 외국의 한 기자가 부득부득 한국행을 선택한 사실이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한국에 대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 였지만, 훗날 '전쟁에 대하여 너무도 무감각한 한국인'에 대해서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반도의 '오늘'과 함께 은근히 드리워진 '냄새?'를 접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곳의 국가와 사회에 녹아드는 것이 제일이다.   그렇기에 결국 30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에서 살아간 이 외국인의 시선은 쉽게 생각하면, 보다 한국의 본질을 엿볼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 줄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기 충분하다 하겠다.


그렇기에 저자 또한 '한국인'을 설득하기 위하여 철저한 준비를 했다.


이때 이 책의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이에 첫번째는 저자가 묘사한 대한민국의 과거의 모습이며, 그 이후 점차 미래의 전망을 예측하는 내용을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결국 독자는 그가 얼마나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을 토대로, 그 이후의 주장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게 되며,  이에 나 스스로 또한 담백하지만, 객관적인 여러 주장에대하여 큰 공감을 지니게 되기도 했다.


이처럼 저자는 진형논리와 감정을 떠난, 담백함을 고수하려 노력한다.   물론 그 스스로도 믿는 바가 있기 때문에, 현대의 정책에 대한 많은 주문과 비평이 드러나지만, 결국 이를 엿보고 또 설득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좌파와 우파, 복지, 일자리, 통일에 대한 많은 가치에 대하여!  문득 점점 격렬해지고, 또 좁은 시야를 가지게 될 때... 바로 그럴때 한번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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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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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특히 젊은 날 '죽을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스스로가 비참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과거와는 비교해 화려함과 즐거움이 넘쳐흐르기에, 따로 분명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주제'인 죽음을 생각하고, 또 그 본질을 추구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허나 조금만 주위들 둘러본다면, 결국 나의 주위에는 '죽음의 가치'가 떠돌아다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종교는 죽음 이후의 것을 말하고, 보험은 죽음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며, 철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있어 큰 전환점을 마련하여 준다.   그렇기에 책 속의 죽음이란 쉽게 철학에 가까운 가치가 녹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의외로 저자 스스로가 몸담은 '특별한 직업'이 그 학문에 대한 보다 새로운 시선을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양념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법의학자다.


물론 과거에는 이러한 직업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비교적)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직업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이때 방송 속에서 등장하는 법의학자들은 그야말로 '괴짜'가 많다.   특히 그들은 타인보다 자기중심적이고, 활발하며,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암울함을 극복한 인물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에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직업에 요구되는 하나의 천성이라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죽음을 가까이 해야 할 학자일 뿐이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저자 또한 매주 시체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행위를 통하여, 흔한 의학이 아닌 사회와 죽음 사이에 만들어진 '특성'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를 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법의학은 죽음에 대한 원인을 발견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자연사, 사고사, 더욱이 범죄로 인하여 생명이 빠져나간 몸뚱아리를 두고서, 오늘날의 사회는 분명히 그 원인을 빠지고, 또 의문점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주문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개인의 죽음이 사회 전반에 있어서 크나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의문의 죽음과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   그것에 대하여 사회가 진실을 밝혀내는 것과, 책임을 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국민은 '정의'와 '혁명'이라는 가치아래 그 책임을 엄중하게 추구한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은 '죽음'을 말하지만, 이보다 더 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인문과 사회를 아우르는 광범위함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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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 유엔인권자문위원이 손녀에게 들려주는 자본주의 이야기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시공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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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유 시장 경제 체제가 가져다주는 '영향력' 아래서 살아 갈 수 밖에 없다.   물론 이에 대한 현실앞에서, 개인이 선택 할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특히 대한민국은 그러한 가치에 대한 '이념'과 '믿음'에 대하여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맹신하는 사람들이 곧 잘 드러나고는 한다.    그러나 결국 '나'를 포함한 절대 다수의 사람들 또한 기꺼이 자유시장경제의 '룰'을 따른다.   어째서?  이에 아마도 개인 스스로들이 체제에 대하여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어려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소비하고, 축적하여 온 '소비자' 로서 그리고 '재산권을 지닌 시민' 으로서!  분명 사람들은 나의 것을 온전히 누리게 해준 체제의 혜택에 흠뻑 취해있다.


그렇기에 이 책의 이야기는 분명 '나'와 같은 시장주의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상당히 강력한 주장을 펴는 책으로서, 이해 될 것이 분명하다.  아니?  어떠한 사람들은 저자를 공산주의자라고 정의 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서방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편에 속한 나라인 스위스의 국적을 가지고 있고, 또 무엇보다 유엔에서 국제적인 문제를 다룬 전문가라는 커리어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저자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재산권에 대한 비판적인 주장' 또한 보다 먼 미래를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 기꺼이 받아들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미친다.


실제로 이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대의는 '지구 속 많은 국가들은 (느리지만) 균형있는 성장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비록 현대인들이 (고대의)'왕후장상' 못지않은 생활을 누리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바로 그것을 위하여 지나치게 자원을 소비하고, 또 이웃의 권리를 침해해왔다는 진실에 대해서는 분명 많은 사람들이 잘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애초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표현해야 올바르다고 할 것이다.    현대에 괜히 '공정무역'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을까?   이른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하여, 보다 싼 노동력과, 토지, 그리고 자원을 추구한 결과, 만들어진 이 문명의 모습을 보라!  이에 시장경제주의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이를 토대로 낙수효과와 동반성장이라는 가치를 구현 할 수 있다는 말을 하지만, 결국 저자 스스로가 마주한 '현실'은 마치 '분노의 포도'와 같이 온갖 불공정하고 또 비대칭적인 경제의 격차와 그에 따른 '불행'이 계속해서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독자인 입장에 있어서도, 결국 경제체제가 가지는 어두운 면을 바라보면서, 자유 시장 경제가 '온 인류의 미래를 보장하는 유일무이한 체제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   그야말로 최고가 아닌 최선을 선택한 결과, 이에 그것에 선진적이거나, 필사적이였던 국가들은 번영의 기틀을 잡게 되었지만, 그 밖의 제3의 세력은 결국 선신국의 (성장)밑거름이 되어, 스스로의 미래를 그들에게 빼앗긴다.

그러나 분명 시장경제의 가치에 의하면, 선점함으로서, 얻어내는 이익을 '사악한 이익' 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보다 인간적인 시선 또는 세계의 레벨에서 볼때만큼은 나름 '능력만큼 무한정? 얻어낼 수 있다는 이 본연의 가치는 정말로 위험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한다.


이때 '나'는 자본주의의 본질을 따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배후의 초월적 존재'에 대해서도 언급할 생각이 없다.

(따지면 따질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 든다)


다만! 단 한가지의 생각만은 많은 독자들이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누리는 혜택은 분명 무無에서 이끌어낸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오늘날의 '나'는 먼 미래의 '인류'의 미래를 담보로 지나친 사치를 만끽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만큼은 한번쯤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플레이스테이션2가 (빠르게)단종 되었을때, 순수한 소비자였던 '나'는 스스로가 소비할 수 없는 현실이 그저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국 이 책을 통하여 그 '원인'을 알고보니 그 단순한 사건이 결국 시장경제의 맨 얼굴을 마주보게 하는 (나름)충격적인 것으로 다가오게 되었다.   인류가 이만큼 소비하고, 생산하고, 발전시킨 역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결국 이러한 혜택을 과연 인류는 또 얼마나 누릴수 있을까?   이처럼 이 책을 보는 독자라면 보다 '미래'에 대한 것을 생각하고 또 두려워할 필요가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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