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케 -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의 비밀
마이크 비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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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세상을 사는 많은 사람들은 모두 행복하게 살고 싶어한다.  다만 조금 다른것이 있다면, 그 각각의 행복을 위해서 추구하는 조건이 저마다 다르다는 정도일까?   예를들어 부유하게 살고싶고, 인정받으며 살고 싶고, 또 스스로 추구하는 목표를 누리며 살고싶다는 그 목적은 분명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세상이라는 존재는 바로 그러한 조건을 충분히 만족시켜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때때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지만, 정작 그 행복이라는 (조건의) 무게에 짓눌려 점점 더 불행의 감정을 품고, 또 무너지는 기묘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렇기에 예전부터 많은 책들과 사람들은 정작 진정한 행복이란, 그 스스로의 내면을 갈고닦음으로서 생겨난다 주장해왔다.  실제로 지구촌 여기저기서, 제일 행복한 삶을 살고있다고 여겨지는 여러 민족의 모습을 바라보아도, 첨단의 기술 또는 풍요로움을 자랑하는 지역이 아닌, 매우 부족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만족 할 줄 아는 나름 가난한 지역의 민족들이 대다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내려놓는 삶을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 나는 종교인이 아니다.  게다가 이 세상에 내가 속한 이 나라에 그 얼마나 즐길거리가 풍족한지!  이에 그것을 외면하며 산다한다면?  아마도 나는 그것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무녀질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이 책은 그 나름대로 비움의 행복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가지만,  그보다는 내일보다는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라는 나름의 현실적인 충고를 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흔히 인간은 먼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있는 힘껏 달려나아간다.  그렇기에, 분명 일부는 그 목표에 멋지게 도달하여, 그 과실을 음미하지만, 분명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 과정 속에서 언제나 행복하지 않다 라는 마이너스적인 감상에 빠지기 쉽다.   바로 그렇기에! 오늘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   오늘을 건강하게 살고, 오늘 만난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오늘 먹은 음식에 집중하고 또 감탄하는 것이야말로 아마 가장 현실성있는 행복찾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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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커크 월리스 존슨 지음, 박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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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즐겨 시청하는 프로그램중에 '전당포 사나이들' 이라는 것이 있다.    물론 이는 제목 그대로 (이야기의) 주 무대가 전당포이기 때문에, 방송 여기저기 그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을 것 같은' 물건들이 등장하고, 또 때때로 소위 대박?에 가까운 명품들도 등장하고는 하는데, 이때 아마 많은 사람들은 그 물건들의 진가를 미리 예측하고 가격을 후려치는 주인공의 장사속을 보면서 재미의 요소를 발견 할 수도 있겠지만? 정작 나름대로 수집가? 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나 스스로에게 있어서, 결국 이 방송은 나름대로 더욱 더 욕구를 불태우게 하는... 소위 홈쇼핑을 볼때와 비슷한 영향력을 나에게 발휘 할때가 종종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것들은 그리 쉽사리 구할 수 있는 물건들이 아니다.   이미 앞서 세상에 둘도 없다 라는 표현을 썼지만, 말 그대로 그 물건들의 대다수는 과거의 역사와 인물, 그리고 소위 시대의 흐름을 거치며, 살아남아 그 본래의 가치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은 것이 많다. 그렇기에 때때로 전문가들은 그 어떤 물건들을 바라보면서, 인류의 보물, 그리고 가장 소장가치가 높은 명품중의 명품이라 치켜세우며, 높은 가격을 부르지만,   이에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어느 사건과 그 의의를 바라보게 되면 그 세상 속 '소장가치' 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것인지... 아니면 허무한 것인지에 대한 그 나름대로의 생각거리를 제공하게 된다.


실제로 이 책속에서 일어난 '절도사건'을 바라본다면, 처음부터 그 대상과 의의라는 부분에 있어서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쉽게 설명하자면 범인은 어느 박물관에서 새의 깃털을 훔쳤다.  그것도 전통적인 낚시 미끼를 만들기 위해서! 그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깃털에 강한 소유욕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오늘날 단순한 독자의 입장에 서서 '깃털'이라는 그 단어만으로 생각한다면, 결국 그의 절도는 나름 가벼운 해프닝에 가까운 것으로 느껴 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앞에 '세상에 둘도 없는' 이라는 단어가 붙어버린다면?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양상은 크게 변화하게 된다.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책의 이야기 또한 '세상에 일어난 크나 큰 손실' 로서 좁혀질 수 있다.     멸종된 새들의 깃털을 훔친 어리석은 도둑! 그러나 저자는 이에 더 나아가 더욱더 어리석은 존재인 인간 모두의 잘못 또한 함께 드러내면서, 이미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일종의 반성과 경고의 메시지를 함께 드러내고 있다.    실제로 정말로 냉정한 시선으로 이 사건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 소잃고 외양간 고친 어리석음을 드러내고 만다.   


그 많은 새들을 멸종시킨 장본인!  그리고 남은 잔재를 그러모아 콘크리트 상자(박물관)속에 처박아둔 장본인! 그리고 그 잔재에 눈이 멀어, 훔치고, 회손하고, 팔아먹은 장본인!... 이 모든 주체가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다.    정말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적어도 이 많은 것들을생각해보면, 절도를 마주하며, 분노하고, 분투하고, 정의라는 것을 부르짖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그저 우습기만, 하다.  


각설하고, 이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늦은 이후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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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웅불
다카하시 히로키 지음, 손정임 옮김 / 해냄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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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사람이 타인을 판단 할 때에 있어서, 가장 먼저 (장점으로) 고려하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물론 이는 예나 지금이나, 정착 된 사회속의 개념이나 이상... 그리고 그 무엇보다 능력과 도덕성과 같은 나름의 정해진 틀 속에서 측정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인간이란 그리 이상적인 존재가 아니다.  실제로 이 위와 같은 가치관들은 그 개인 스스로가 끝임없이 갈고닦아 만들어낸 후천적인 마인드이기에, 속된말로 표현하자면 그 평가의 일부에는 반드시 가식의 영역이 속해있음을 부정 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어쩌면? 본래 인간과 인간사이에서 보여지는 '진짜'는 서로간의 불화 속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를일이다.   본래 개인 스스로의 모든 것에 있어서 '자기 합리화'를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기에, 분명 타인을 미워하는 것에 있어서도 그 무엇보다 객관성이 아닌 자신의 마음속 주관적인 평가에 크게 의지하고 만다.   이에 예를 들자면, 오늘날 많은 폭력이 일어나는 이유 또한 그런것이 아닌가?  훗날 많은 사람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받았을때, 그들이 보여주었던 그 많은 모습과 대답을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각설하고 물론 위와 같은 긴 서론을 풀어간 이유도 이 책이 가진 나름의 '주제'에서 같은 가치관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이른바 '동정'과 같은 감상을 품게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는 명백한 피해자와 다름이 없다.   그도 그럴것이 주인공이 행한 것이라고는 부모의 사정으로 낮선환경에서 터전을 잡고, 또 우연히 그 동네의 무리들과 어울리면서,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집단 괴롭힘의 모습을 마주하고 방관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사건이 벌어졌을때! 그 곪아가던 분노의 찌꺼기는 도리어 주인공을 덮쳐버린다.  


심지어 주인공은 공격을 당하며, "니가 제일 나쁜놈이야!" 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그러나 소설을 통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그 분노가 상당히 비겁하고, 또 외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자면, 그는 이미 분노에 잠식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히 강자(괴롭힌 당사자)에게 덤비지 못했고, 그저 최근에 합류한 주인공을 향해 그동안의 증오를 쏟아부은 셈이다.   이에 다른 이유는 없다.  그리고 그 흔해빠진 정의론이나, 대의명분과 같은 이성의 영역은 더욱더 없다. ! 이에 달리 말하자면 그는 그저 내면에서 부패해가고 있는 마이너스의 감정을 드러내고 표출하는데 있어서, 주인공(신참)이 마침 '적당하다' 여겼을 뿐 그 밖의 다른 이유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결국 이 소설이 묘사하는 대부분의 이야기는 이를 받아들이는 '독자'의 마인드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분명 이 모든 사건의 발단은 '집단 따돌림과 폭력'이라는 고질적인 사회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의 일부 또한 생각 여하에 따라, '범죄'가 아닌 '저항'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  (나는 반대하지만) 실제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 또한 바로 이러한 문제점을 환기시키고 또 생각하게 하는데 있다.    어째서 그는 이 엉뚱한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을까?   이때 이 현실에는 비단 솔로몬의 시선만이 자리잡고 있지는 않다.   그가 못난 자기 합리화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그 범죄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그 만이 아닌 우리들이 잘못한 것은 없었는지 생각해보는 (수준높은?) 의식을 쌓아가는것...  이처럼 이 책은 저자가 올려놓은 하나의 저울과 같다.   과연 나의 마음은 어느쪽으로 좀더 기울어져 있는가?   법과 마음!  과연 나는 그 어느 안경을 가지고 이 책 속의 참혹함을 바라보아야 할까?


그리고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책을 접한 이후) 나의 천징은 그 어느쪽에 더 기울어지게 되었는가... 혹 조금의 변화라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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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과 인물로 본 임시정부 100년
문영숙.김월배 지음 / 서울셀렉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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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국가 '대한민국'은 분명 옛 조선과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임시정부로 이어지는 역사와 민족적 의지를 계승하였다고 명시한다.   때문에 나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이는 지금껏 배워온 교육과 사회통념속 상식의 영역을 통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아쉽게도 오늘날 '정치'와 '이념'의 시선으로 이를 다시 바라본다면?   의외로 과거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많은 주장들이 그야말로 혼돈과 배척 사이에서 이러저리 표류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조선의용군' '한국 광복군' '대한독립군'으로 각각 나누어진 책을 접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쉽게 생각해보면 이들은 각각 소속된 단체명이 다를 뿐 모두 다 잃어버린 한반도 국가의 주권을 회복하고, 또 적대적인 외세를 몰아내려는 공통된(숭고한) 목적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 또한 이러한 활동을 '애국적인 활동'으로 인정한다.    이른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꺼이 힘들고 고된길을 선택한 사람들에게! 이때 나라가 조금이나마 그 명예를 보장하고 또 (정신을)계승시키고 보전시키는 것은 어쩌면 정말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했지만, 오늘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이하며, 국민인 '나'는 온전히 그 날의 의의를 만끽 할 수 없었다.  물론 적어도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매우 명확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계승한 대한민국의 정통정부?로서' 이에 몸담은 사람들의 업적을 인정하고, 또 이들이 실행한 독립운동의 의의를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그러나... 정녕 오늘날의 국민, 사회, 정치 등에 있어서 임시정부는 과연 어떠한 위치에 서 있는가?     그리고 점차 변화하는 인식의 틈바구니에서, 이 (의의)또한 점차 변화하고 또 변질되고 있지는 않을까?


이처럼 나는 임시정부의 활약상을 담은 이 책을 접하면서, 묘한? 현실적 위기감을 느낀다.


예를 들자면 과거 임시정부가 주도한 '폭력행사'를 두고, 국제범죄중 하나인 테러라는 용어를 쓴 지식인이 있지 않았는가?   물론 평화와 애민정신이 확고히 자리잡은 현대의 가치관에 따르면 그리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생각여하에 따라, 현대적 인식을 과거의 현상(사실)에 대입하여 정의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적어도 일본제국에 대하여 적대를 표방한 약자로서, 책 속의 임시정부를 비롯한 많은 독립단체들은 저마다의 투쟁과 저항의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러나 당시의 세상이 강자중심의 횡포와 지배, 그리고 이해관계로 국제질서가 확립된 제국주의적 풍조를 드러냄으로서, 이에 대항하는 입장에 있어서도 자연스레 강경하고 또 대담해 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책 속에 표현된 폭력! 습격, 투척, 암살 등과 같은 당당하지 못한? 수단들이 동원되어야 했던 시대를 한번 읽어보려 노력하자.   이에 나의 개인적인 의견 또한 덧붙이자면, 나는 이와 같은 모든 수단들에 대하여, 비인간적인 범죄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적어도 투쟁을 계승한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이를 받아들임에 있어 혐오를 드러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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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서커스 - 2,000년을 견뎌낸 로마 유산의 증언
나카가와 요시타카 지음, 임해성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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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세계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인의 인식에 있어서! 과연 고대 로마가 가지는 영향력이란 얼마나 거대할까?  실제로 (적어도) 나의 인식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위대한 제국에 걸맞는 조건과 그 흔적을 남긴 역사에 몇 안되는 문명국으로서 이해되는 측면이 강하다.   그야말로 독보적이였던 정치력과 군사력 그리고 행정과 법률 같은 보다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처럼 과거 로마가 이루어낸 수많은 가치들에 대하여 나는 한번쯤 이 책을 읽기 전 기억(예전 지식)을 다시 더듬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미 고대 로마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이미 축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도 그럴것이 한때 학생시절 '로마인 이야기' (나는 싫어하지만) 가 필수도서로 권장되었고, 또한 교과서,타 서적, 타큐멘터리 등의 다른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그야말로 세뇌수준에 맞먹는 지식을 주입? 받았으니, 조금 농담삼아 이야기하자면, 그야말로 역사는 이미 나의 나이와 함께 무르익은 하나의 '지식열매'와 같은 것이라고도 표현 할 수 있겠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접하는데 있어서, 역사의 이야기보다는 조금 색다른 주제를 즐기려고 노력했다. 


실제로 이 책을 쓴 저자는 '건축가의 눈으로 본 역사' 라는 보다 독특한 주제를 드러낸다.  물론 나 또한 저자의 다른 책을 접하고, 또 이해함으로서, 그리고 그 독특한 정보와 지식전달에 큰 재미를 느낀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이 책에 대한 신뢰와 기대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은 과거 그의 다른 책과 비교하여, 그다지 (내용이) 치밀하게 짜여져 있다는 감상이 덜하다.   그도 그럴것이 분명 저자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또 무엇보다 타 문화의 (옛) 건축에 대하여 그리 큰 조예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단 하나!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분명한 주제를 전달하려고 한다. 어째서 로마의 가치는 변질되었을까?   목욕탕, 포룸, 경기장과 극장... 이처럼 '문명의 대리석' 들은 한때 지도자가 민중에게 헌정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이였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 이것은 결국 끝없는 쾌락과 우민화를 이끌어낸 '빵과 서커스'의 상징물로 변질되고 만다.   국가 그리고 지배자의 탐욕과 열정이 불러온 끝없는 쾌락의 장!   이에 어느이는 이것을 전형적인 (타락한) 포퓰리즘이라고 정의 할 수도 있을것이다.  허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 타락한 정신이 불러온 '건축'의 모습은 분명 (보기에는) 웅장하고 또 눈부신 것이라 정의 할 수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비록 역사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콜로세움 속에서 일어난 '오락외의 죽음'과 그 비극은 분명 (현대의 가치에 있어) 비참함을 넘어 야만의 극치가 분명하지만,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러한 대규모이벤트를 소수의 지배계층이 아닌, 민중에게까지 전파한 (대중성)은 감히 그 어떠한 문명국에서도 보이지 못했던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적어도 저자는 그의 눈으로 바라본 많은 건축 유산을 바라보며, 솔직히 큰 전율과 흥분이 일었다고 고백한다.   말 그대로 로마의 건축은 위대하다!  그들은 오래전 도시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필수적인 공공시설을 구축했고, 또 그위에 안정과 부흥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가치를 정착시키고 또 확장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 로마가 몰락한 이후 그 상당수의 유산들이 '다른 가치관'에 의하여 그 존중의 의의를 상실했다는 것에 있다.   비록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고대)로마의 수준을 인정하지만, 반대로 망한 이후의 '신 문명'은 아쉽게도 로마의 정신과 가치 그리고 유산에 대하여 상당히 무감각하거나, 반하는 인식을 키워왔다.


아마 이때부터, 서양의 건축 또한 인식과 함께 변했을 것이다.


물론 저자는 이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역사의 연장선에 있어서, 그 의미는 실로 크다.   오늘날 포로 로마노나, 폼페이와 같은 로마의 유산이 남겨진 곳을 찿아가보면, 분명 그 웅장함과 치밀함은 감탄을 자아내지만, 역시 그 뿐이다.  물론 로마를 제외한 모든 문명의 모습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어느 순간! 건축물이 장엄하고 또 웅장해지는 순간에 일어났던 다른 많은 역사를 한번 되돌아보자,  과연 그 마지막은 어떠했는가? 혹 그 웅장함을 영원히 그리고 오늘날까지 오롯이 계승하며 상징하는 것들이 과연 몇개나 존재하는가?    예로서 이미 언급한 콜로세움은 중세시대 채석장으로서 몰락했고, 이집트의 스핑크스는 프랑스군의 대포에 코가 깨졌다.   이에 어쩌면 이와같이 실존하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은 옛 사람들의 현명함이 아닌,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볼 수 있겠다.    분명 인류는 끝없는 도전과 탐구심으로 그에 걸맞는 과실을 얻어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형태를 보존하고, 또 영원히 이어가는 연속성에 대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매우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 오늘날의 문명 또한 몰락의 길을 걸을것이다.   그리고 그 머나먼 미래의 후손들 또한 오늘날 이룩한 결과를 엿보며, (아마)나와 같은 마음을 품으리라.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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