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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ㅣ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지금으로부터 약 7년전이던가? 이렇게 '한자와 나오키'는 이 활자(번역본)가 나오기 이전부터, 드라마라는 영상을 통해 접해 본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결국 오늘날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존에 접했던 나오키에 비해서, 그 얼마만큼 이야기의 흐름이 차이가 있는지? 또는 편집되고, 변화한 영상에 비해서 그 원본은 얼마나 더 치밀하고 또 정교한 것인지에 대하여 비교하는 것에 머물러버리고 만다.
때문에 결국 그에 따른 감상을 드러내자면, 역시나 이 책은 (거의)내가 알던 나오키의 모습을 오롯이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흔히 세상 속 엘리트와 비엘리트로 나뉘어 생각되는 세계에 있어서! 주인공 한자와 나오키는 스스로의 실력으로 짖누르고, 또 말문을 닫아버리는 소위 사이다와 같은 청량감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당한만큼 갚아준다" 어쩌면 이처럼 단순하지만 또 어려운 것이 있을까? 오늘날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의 현실을 바라보았을때, 이 가차없는? 주인공의 모습은 분명 예전부터 한번쯤 내질러버리고 싶었던 내면의 욕망을 강하게 충돌질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반대로 이 한자와라는 인물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그 끝없는 증오와 눈노 그리고 '한'이 서려지는 모습을 통해, 저자는 흔히 보여지는 것과는 달리, 이 인간미를 내려놓은 주인공을 통해서, 그가 내달리는 길이 단순한 '정답'이 아님을 한번쯤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소설 속 주인공은 (개인적으로)그토록 혐오하는 직장군에 들어갔다. 이에 옛말로 그가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간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점차 드러나는 그의 많은 모습을 지켜본다면? 그가 단순히 누군가의 '파멸'이나, 공동체의 '붕괴'를 목적으로 적진에 들어간 (이른바) 암세포라는 생각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단지 소설 속 한자와 나오키는 그야말로 누군가에게 좀처럼 의지하지 않는 고독한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어쩌면! 주인공은 여느 직장사회라는 것에 있어서, 반란자와 같은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 한자와 개인이 겪은 사건은 분명 조직사회의 극단적인 단점이 드러남으로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다. 때문에 한자와는 멋지게 그 난관을 극복했고, 또 성장과 출세의 가도를 달리지만, 문제는 그밖에 다른 '현상'에 대해서도 한자와는 한결같이 이'고질적인 적폐'에 대하여 냉혹하리만치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조직 내) 학연과 라인에 대한 것 뿐만이 아니라, 세상 속 헛점과 특권을 이용하는 많은 관례를 무시한다. 게다가 때때로 그 과정 속에서, 주인공과 그 주변의 수중한 무엇이 위협받게 되었을때! 그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의 각오로 상대에게 덤벼드는 모습 또한 자주 보여준다. 물론! 주인공은 정의의 사도가 아니고, 더욱이 배트맨과 같은 가상의 히어로도 아니다. 그러나 조금 생각해보면, 한자와 나오키라는 인물은 선과 악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관에서 떠난, 가장 현대인이 닮고 싶어하는 인물상이 아닌가? 한다.
그 누구보다 실력이있고, 그 실력위에 그 누구의 압박과 부조리에도 굴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소신과 우정을 드러내는 여유있는 자...
이처럼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주인공은 멋진 인물이다. 그리고 이미 누누이 언급했지만, 그 무엇보다 나의 (숨겨진)욕망을 자극한 가장 닮고 싶은 모습의 주인공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