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자작 감행 - 밥도 술도 혼자가 최고!
쇼지 사다오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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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긋하게 혼자서 즐기는 식사행위! 흔히 혼밥이라고 불리우는 행위에 대하여, 이제 한국사회나 일본의 사회나 모두 그것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때문에 이에 대한 행위 뿐 만이 아니라, 그것을 주제로한 또 다른 창작물까지도 소비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 예를 들어 만화나 드라마등으로 이름높은 고독한 미식가도 그 나름 혼밥의 가치를 표현한 유명한 창작물일 것이다.

그런데! 그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봐도 이른바 혼밥문화가 정착하게 된 시간을 생각해보면 대략 10~15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고 생각이 되는데, 그렇다면 결국 혼밥이란, 비교적 사회 젊은 층이 선택하는 신 문화의 한 종류로서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이에 적어도 이 책의 내용에 따르자면, 굳이 그렇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미친다. 그도 그럴것이 저자 스스로 드러낸 나이는 63세! 이에 조금 잔인한? 말로 들리겠지만 결론적으로 이미 미래의 비전보다는 과거 인생의 많은 삶을 산 나름의 노련함 등이 더 돋보일수 있는 나이다. 그러나 바로 그 노련함이 이 책의 주제를 살려냈다. 과거 일본의 식 문화, 식사, 일상에 대한 잔잔한 만화를 그려왔던 저자이기에! 결국 만화가 아닌 이 에세이에 있어서도 그 고유의 색은 전혀 바래지 않는것 같은 느낌을 준다.

세상에 넘쳐나는 맛있는 음식, 장사 없는 세월에 흘러 사라져가는 음식, 반 평생 먹어왔어도 질리지 않고 다시 찾게되는 음식, 생각치 못하게 그 스스로 황금조합을 찾아낸 개성넘치는 음식, 일본인이기에 사랑하고 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음식... 그야말로 저자의 기억속에서 끄집어낸 그 수많은 음식들의 이야기를 접하면, 정말로 그는 풍요로운 식사의 삶을 살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소위 외식에서 집밥에 이르기까지, 비록 화려하거나 고급진것 과는 그 거리가 먼 선택지라 하더라도, 적어도 언제나 '쳇바퀴 도는 듯한' 식사에 만족하는 나에 비하면, 그는 단어 그대로의 미식가의 자질을 충분히 만족시키며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라 생각한다.


이처럼 그 내용만 보면 '그 누구라도 도전 할 수 있는' 매우 서민적인 내용이 가득하지만... 어째서 나는 그 속에서 '부러움' 과 '로망'이라는 가치관을 발견하게 될까?

이에 어쩌면 위의 그 많은 경험(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저자 스스로가 만화가로서, 비교적 불규칙한 생활을 이어 왔기 때문일 수도 있을것이다. 흔히 식사란 무엇일까?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먹을까?'에서 고민하고 또 결국 그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었던 실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더욱이 그 2~30분 정도의(점심시간) 짧은 시간에 있어서도 혼자서 먹는 밥을 원하게 된 진짜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적어도 그 이유에 있어서, 저자는 나름의 (인생)스토리가 있다. 물론 그가 세상의 맛집에 정통한 '혼밥의 달인'은 아닐지는 몰라도, 적어도 세상 속 에서 쌓아올린 '인생의 맛'을 잘 알고있기에, 이에 저자는 그 인생의 맛이라는 녀석을 그저 독자에게 설명하고, 또 은근하게 권할 뿐이다. 그래서일까? 결국 이 많은 이야기를 접하면서, 독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먹는것이다. 물론 그 식사의 형태에 있어서, 저자가 권하는 맛을 한번쯤 맛보는 시도를 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보다는 지금껏 내가 잊고 있었던 맛, 기억하는 맛, 지금 당장 먹고싶은 맛을 향해서 전진하는 그 과감함을 보여주는 것이 그 나름의 '책 속의 메시지'를 보다 잘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싶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먹는 것을 잘 참는다'

물론 결과적으로보면 지금의 음식이 더 맛있고 또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맞을 것이나, 결국 그 맛을 보는 시도와 의미를 생각해보면, 결국 많은 사람들은 식사가 아닌 특식을 위해서 노력하고 분발하고 참아오는 것이 아닌가? 이에 적어도 저자가 말한 식사는 일상의 맛이다. 평일내내 참아가며 기다리는 금요일 저녁 딱 한순간의 자유! 또는 원하는 것을 손에넣기 위하여 희생하기 쉬운 밥 한끼의 값에 대하여, 혹 저자는 그에 대하여 어떠한 주장을 할까?

"아깝다" 혹 저자는 이러한 말을 하지 않을까? 그 가난뱅이의 상징이라는 '버터밥'을 만드는데도 저자는 그 만의 비법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 버터밥의 진화?를 위해서 저자는 단순히 정형화된 수단 또는 대중매체의 힘을 빌리지 않고, 그 스스로의 경험의 축적을 쌓아 올렸다는 것이다. 맛집 검색, 리뷰, 요리책, 맛팁! 어느덧 세상에는 정보가 흘러넘치며, 그 수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듯 보이지만, 이에 적어도 나는 그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맛'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아니! 적어도 그것들은 나 스스로를 위한 맛은 아닐 것이다. 그야말로 대중이 아닌 나의 맛, 이 풍요로운 세상 속에서, 자신만이 만들어낸 개성넘치는 샌드위치를 해 먹는것! 바로 그것이 저자가 표현한 혼밥의 한 형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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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방 이야기 - 그녀의 일기
나나로 지음 / 처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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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속 내용의 주 무대인 '키스방'의 사전적 의미는 유해업소이다. 물론 불법 성매매와 비교해 그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발생하는가?에 대한 가벼운 궁금증이 일기는 하지만, 적어도 앞으로 쓰려는 글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생각하기에 이에 오롯이 책 속의 감상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성적인 욕구를 발산하는 장소,상대,그리고 방법... 이처럼 적어도 인간이 아무리 사회적 동물을 칭한다 할 지라도 결국 그 동물(짐승)이라는 본질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하는 이상! 적어도 성性은 살아가는 인간 그 모두에게 있어서, 반드시 해소(또는 배출)해야 하는 하나의 큰 욕구로서 그 큰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분명하다. 물론 이에 '그림자'라고 표현한 그대로 성욕이란? 때때로 이 키스방에서 벌어지는 많은 이야기가 증명하듯 가장 은밀하고, 또 사회인으로서 당당히 드러낼 수 없는 나름의 수치심을 주는 것으로도 인식이 될 수 있는 것이라, 이에 적어도 여느 독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이 내용들이 때때로 대담하거나, 혹은 이해하기 껄끄러운 것으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겠다.

실제로 세계의 많은 나라들과 비교해 대한민국은 아직 성행위 대하여 대단히 엄격한 잣대(법률 또는 사회통념적 인식)를 들이민다. 특히 이 키스방의 경우 또한 분명 국가와 사회가 인정하지 않는 부류의 것! 이라고 정의 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여느 환경에 대한 한계 등을 이유로 사실상 그 존재를 '묵인'하는 것에서 그 아슬아슬한 존속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거의 분명하리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분명 '나' 또한 과거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을때 '성인에게만 허락되는' 그 많은 것에 있어서 대단한 흥미를 보여왔고, 또 그것에 대한 나름의 글을 쓰기도 했다. 허나 오늘날 성인물 또는 에로배우 등에 대한 매우 관대한 인식이나 포용에 대한 것과는 달리! 나는 개인적으로 이 키스방의 여자들 또는 손님들에 대한 그 많은 내용에 있어서, 독자가 스스로 이에 '같은 포용력'을 발휘해줄 필요는 없다고 감히 주장하려 한다.

물론 그 속에서 저자가 주장하려는 메시지는 알겠다. 사회적으로 '성인'이 됨으로 인해서 겪는 수난과 한계! 이에 사회가 수 많은 젊은이들에게 절대로 평등하지 않고, 혹독하고, 때론 잔인하다는 것을 분명 나 또한 알고는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리저리 흘러들어와 이른바 '한계'와'막장'에 이르러 그들이 '어쩔 수 없이' 키스방에서의 삶을 선택했는가?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는 적어도 저자 또한 "그것은 아마 각각 다를거다" 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린 상태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가 키스방에서 '버텨나아갔던' 이유는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키스, 터치, 그리고 진상등을 겪어 나아가는 '대가'로서 단 시간에 상당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그를 제외한 많은 사람들 또한 이른바 '은퇴' 할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모을때까지! 드럽지만 참고 또 참는다고... 적어도 이 책은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 현실과는 상관없이 (안타깝게도) 이곳은 일본이 아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곳은 적어도 어덜트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나라, 그나마 양지로 드러나 그 나름의 네트워크와 안전망을 구축한 나라가 아니다.

이에 그가 그토록 질색했던 '진상'들의 공통점은 어떠했는가?

결국 이들 대부분은 저자를 비롯한 많은 키스방의 사람들을 '샀다' 인식한 것이 아닌가? 실제로 그가 겪은 많은 사실들 가운데서, 결국 그녀를 지켜준 방어망은 '키스방의 룰(약속)' 뿐이다. 사실상 상대를 물건이나 노예로 취급하는 부류 앞에서 그가 겪었던 그 많은 이야기! 심지어는 강간미수에 그쳤던 그 일화까지 합치자면, 결국 저자는 이에 적어도 '키스방의 문을 두드리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가장 강력한 경고'를 이 책의 주제로 삼았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허나 내가 몽상가에 불과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저자의 입장에 있어서는 키스방 또한 삶의 선택지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나름의 '무심함'이 엿보이는 것 같아 씁쓸한 생각이 미친다. 단순히 '죄'라는 생각을 떠나, 스스로 몸을 팔아가며 살아가는 선택을 하는 것에서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 또는 이를 감내 할 수 있는 '보상'이나 '목적'이 있다면? 이에 저자는 그 선택이 오롯이 잘못되었다 정의 할 수 없다는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결국 이 책은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는!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아는 작은 사회의 한 구석, 한 축의 '리얼한' 세계를 다루는 하나의 체험기에 불과 할지도 모른다. '한 시간에 4만원' '주.야 타임 자유선택' '키스 가벼운 터치가능' '참으로 다양한 성욕 덩어리들만의 만남'... 이에 그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이 책 속에서 구해달라거나, 개선을 요구하거나, 스스로의 처지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또는 측은지심)을 요구하지 않는다. 단! 저자는 이와는 달리 그 스스로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여기봐봐! 한국에도 이런 곳 (이런 놈?) 이 있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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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마이너리티 오케스트라 1~2 세트 - 전2권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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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접하면서, 나는 그 내용을 떠나, 본질에 해당하는 그 배경의 '생소함'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이처럼 그 아무리 세계화가 진행되었다 해도, 실질적으로 이렇게 번역이 된 비유럽 세계의 문학을 접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실제로 주인공을 포함하여, 그 세계속의 삶을 비추면서, 표현되는 그 많은 부분에 있어서, 적어도 '한국인의 가치관'으로 이해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여담이지만 오늘날에 있어서도 '동양 사상'이 한국인의 본질에 있어 큰 의미를 가지는 것과 같이 저자 역시도 나이지리아의 독특한 사상과 종교 또는 믿음에 의하여 그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구축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물론! 민족과 국가 라는 울타리에 있어서, 철학과 사상 종교가 없다는 것이 가능할까? 이는 그저 나 스스로가 나이지리아에 대한 문외한에 불과 할 뿐, 분명 저자는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스스로의 가치를 녹여 냈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리는 것은 사회통념상 '비극'이라 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 많다. 처음 그 순수한 사랑도, 또 주인공을 둘러싼 그 신비한 신화적 존재조차도 결국 현실의 한계라는 장벽 앞에서, 그저 힘없이 무너져내리는 보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가난과 차별... 이것은 그야말로 아프리카의 부족과 민족 그 모두에게 있어 큰 그림자를 드리운 가장 큰 문제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때문에 결국 현실에서도 극복하지 못한 문제를 어쩌면 그 나름의 '당사자'로서 그 가상의 이야기나마 '행복하게' 끝내지 못함은 저자 그 스스로가 일부러 써내려간 어떤 메시지(또는 각오)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일까? 이에 빼앗기도 강점당한 사실에 있어서, 그 경험의 기억을 공유하는 한국인 (나) 는 어쩌면 이 저자의 가장 큰 제3의 이해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그 생소함에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었다고 해도! 그래도 가슴 먹먹한 짖눌린 삶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나 또한 삶의 본질을 모르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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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입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사이구사 미쓰요시 지음, 이동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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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받아들었을때... 나는 우선 책 속의 내용을 떠나, 출판사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생소함'을 맛보았다. 그도 그럴것이 지금껏 접해온 AK출판사는 비록 역사에 대한 다양한 책을 쏟아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이에 '군사'와 '판타지'라는 부제가 어울릴만큼 그 분위기만큼은 오락적인 것이 많았다. 그러나 이처럼 본격적으로 '진지함'을 마주하게 되었으니! 결국 이에 "너 갑자기 왜그래" 라는 생각을 품게 된 것은 비단 나만의 이야기일까?

불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설명하자니 막막하다.

나의 감상

각설하고 결국 이 책은 불교라는 종교에 대한 역사와 탐구 그리고 오늘날에 대한 매우 폭 넓은 내용을 담고 있다. 때문에 오랜 한반도의 역사에 있어서, 한 때 국교이기도 했고, 또 오늘날에도 삶의 철학에 있어, 매우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그 위치를 따지고 보면? 적어도 나의 입장에서,(종교를 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 내용을 그다지 기피해야 할 이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좀 더 세세하게 표현하자면? 나 스스로 종교에 의지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 정서, 사고방식에 따른 사회성(질서)에 따르는 그 많은 무형의 가치관에 있어서, 이미 불교 속의 가치관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실제로 각 나라의 정서와 가치관이라는 것에 있어서 그 본래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리고 삶의 철학을 따르는 와중에 있어서, 과연 '개인'은 그 학문적 의미를 얼마만큼 인식하고 있을까?

여담이지만, 이에 개인인 '나'는 그야말로 세계적 차원의 '자기 철학'을 내면에 녹여내었다 생각한다. 아니! 여느 종교를 떠나, 선과 악의 가치관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역사 속에서 학습된 어느 교훈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때문에 이에 나는 불교의 기원에 대한 오래된 역사에는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 각국의 조상님들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고 또 성장시켰는가?에 대한 이야기 또한 그저 한 번 읽어 넘기는 수준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불교가 가지는 가르침 나름 '현대 동양철학'의 가치를 담은 내용에 있어서는 분명 현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 있어서도 배우고 또 학습할 가치가 있음을 세삼 느끼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수행을 통해서 우리 모두는 '부처'가 될 수 있다. 이때 과연 이 가르침이 말하는 부처란 무엇인가? 그저 단순한 불로불사의 신인가? 강력한 힘을 가진 초월적인 존재인가? 그 누구보다 현명한 현자의 반열에 오르는 것일까? 아니! 결국 현대 철학 속에서의 부처란 '인간' 이다. 단지 보다 더 고결하고, 인격적으로 훌륭히 성장한 존경받아 마땅한 한 인격이 되기 위하여 '끝임없이 배워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 말로 현 불교가 개인에게 던져주는 가장 큰 길라잡이가 아닐지? 이에 한번 그 가르침?이란 영역에 대하여 발을 디뎌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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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의 문화사 - 매너라는 형식 뒤에 숨겨진 짧고 유쾌한 역사
아리 투루넨.마르쿠스 파르타넨 지음, 이지윤 옮김 / 지식너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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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적인 정의에서 접근한다면, 이른바 '매너'란 동양의 예절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이 책속에 드러난 매너의 본질을 알아가면서, 결과적으로 나는 오롯이 서양 본연의 가치관에서 파생된 경계의 모습을 바라보고, 또 그것이 인간으로서 요구되는 하나의 소양이 되기까지의 그 과정을 이해하면서, 상당히 그 역사를 넘어 문화에 이르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다 여긴다.

이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서양)매너란 그 나름 이기적인 욕망에 기대어 탄생된 '매우 세속적인 가치관'에 가깝다. 그도 그럴것이 예법을 강조하고 또 그것을 도덕적 가치로 끌어올린 동양과는 다르게, 매너는 그 처음부터 신분의 경계를 나누고 또 이른바 '신들의 종족'으로서 요구되는 어떠한 행동가짐이나 사고방식을 형성하고 축척한 것이 매너로서 살아남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책 속에는 이른바 '기사도' 또는 '매너(허세)'의 광분기로 이해되는 중세에서 근대, 현대로 이어오기 까지 그 매너가 그 사회에 있어서 어떠한 방향으로 변하고 또 받아들여지게 되었는가? 에 대하여 보다 세세히 독자들에게 드러내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여담이지만 만약 여러분들이 매우 고급스러운 서양요리를 마주할 기회를 얻게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보라. 그야말로 매우 엄격한 드레스 코트가 적용되고, 수십가지의 식기가 나열되어 있으며, 웨이터들이 생전 접해보지도 못했던 식재료를 들먹이며 요리를 내오고, 심지어는 합석한 모든 사람들이 '플라톤에서 프로이트'까지 저마다의 소양(또는 지식)을 뽑내기에 바쁜 대화만을 오간다면? 이에 적어나 '나'라면 그 식사에 얼마가 들었든 일 초라도 그 장소를 벗어나고픈 생각을 품었을 것이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오늘날의 세상은 신권주의의 중세도 아니고, 또 신사 숙녀로서의 명예와 신분이 우선되었던 빅토리아 시대도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너의 본질은 지금도 살아있다. 비록 그 엄격한 '행위'는 시대에 발맞추어 사라졌지만, 지금도 소위 식사 뿐만이 아닌, 공동체 속에서의 매너, 개인 스스로의 매너 등 그 모든것의 핵심에는 분명'어울림'이 아닌 '자기과신'의 가치가 녹아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인간의 기나긴 역사에 있어서도 '매너'는 분명 수많은 왜곡된 정신을 낳았다. 아니... 서양의 역사와 함께, 매너 또한 쉽사리 그 편한대로 휘둘어져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과거 서양인들은 자신을 제외한 '민족'에게는 '영혼'이 없다 주장했다. 자신들의 사고방식, 자신들이 믿는 신, 자신들이 형성한 '매너'를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고귀한 문명에 속해있다 여길 수 있는가? 때문에 이와 같은 의식을 등에 업고 그들이 써내려간 피의 역사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현대의 매너는 이제 '끼리끼리'의 때를 벗어던지려는 과정을 겪고있다. 심지어 선진국의 문화 그 자체가 정의인 양 무조건 따라하기에 바빴던 과거 아버지들의 시대도 지나갔고, 이제 이 땅의 매너 또한 동.서양이 뒤섞인 전혀 다른 가치의 매너가 만들어졌다 믿고있다. 때문에 앞으로의 매너 또한 '왜 이렇게 행동해야 하는가?' 에 대한 보다 더 현대적인 가치를 녹여내야 마땅하다.

"나는 너희들과 달라" "신분 자체가 틀려" "이렇게 하라 교육받았으니까"

이제 더 이상 위의 가치관을 통해 매너를 표현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자. 예절, 도덕, 윤리, 매너... 이에 이 모든 것에 대한 핵심은 보다 조화로운 사회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방법이자 수단이라는 것에 있다. 때문에 방법에 짖눌리지말지어다! 이제 이 세상의 야만이란 단순히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 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굴레 얽매어 자기 말과 행동만 하는 '민폐' 에서 더욱 더 드러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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