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5대 소설 수호전·금병매·홍루몽 편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이나미 리쓰코 지음, 장원철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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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떠한 책을 읽는가?' '어떠한 이야기를 접해왔는가?

실제로 이러한 질문을 던지게 되었을때, 아마 많은 사람들은 소위 '세계화 시대'에 걸맞는 다양한 국가, 다양한 장르의 서적들을 드러낼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와 같은 (국내의) 현실에 대하여, 비판의 의견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 나름 시대착오적인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나,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과거 전통적인 (한반도의) 문학과 현대 문학등에 비교하여, '얼마만큼 그 고유성(또는 특징)을 계승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있어서는 안타깝게도 나는 비관적인 대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다.

이처럼 과거 학생시절 배워온 '중세와 근대 한반도의 문학'은 결국 현대의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있어서, '살아있는 문학'으로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역시나 '학교 선생님들의 강요로 읽었던 좋지 못한' 기억들 때문일까? 아니면 굳이 고루한 고전을 읽기에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아깝다 느끼는 것일까? 이처럼 결국 오늘날의 한국인은 적어도 '문학의 힘을 빌려 한국 고유의 혼?'을 지키는데 있어서, 그 나름의 노력을 게을리 한다고 여겨진다.

각설하고 서론이 길었지만, 결국 '고전'과 '문학'은 당시 그 독특한 문화권의 성격을 보여주는 가장 밀접한 증거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당시 여러 사람들의 '감정'을 두들긴 이야기이자, 기록으로서, 과거 그 많은 이야기들은 구전과 필사 그리고 출판기술의 힘을 빌려 퍼져 나아갔지만? 역시나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그 문명사회의 요람에서, 앞으로 소개될 많은 작품들이 '상상력의 산물로서' 인간의 손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것이다.


금병매와 홍루몽... 어째서 이와 같은 작품은 '중국문학의 정수' 로서 사랑받는 것일까? 어째서 1700년대에 지어졌다는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지금도 읽히고, 열광케 하고, 또 독자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일까? 이처럼 나 또한 현대의 '황제의 딸'을 시작으로 여느 많은 중국의 소설과 드라마등을 접했지만? 분명 그 속에는 '중국의 문학'이 가지는 독특한 개성이 드러났던것 같다. 예들 들어 흔히 '사업가'에게 있어서 '꽌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 혹 중국의 문학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그 특유의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나의 생각에 따르면, 의리, 협, 사랑, 쾌락...등 이 모든 인간의 사고와 감각에 대한 부분에 있어서, 위의 고전들은 분명 '가장 중국적인' 가치를 녹여낸 것이라 여겨진다. 그야말로 당시 중국의 문화권에 있어서, 중국인으로서! 아름답다 생각하는 정의와 감히 실행하지 못했던 욕망을 드러낸 상상의 창조물! 창작의 기록! 이에 아마도 오늘날의 중국인들은 그 고유의 코드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분명 현대 한국인들과는 다른 보다 낮은 통과과정을 겪은 것이 분명해보인다.

물론! 이에 더 나아가 '가장 중국적인 것에 열광하는 중국인'이 과연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품는 사람도 분명 존재하리라. 그러나 극히 최근에 등장하기 시작한 '콘텐츠'의 성격을 보아 할 때, 역시나 민족혼 은 그 나름의 순기능을 발휘하는 큰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맞다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신과 함께'라는 작품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본래 이는 한국문화의 가장 고루하고, 토속적이고, 허무맹랑한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이에 현대적 감성과 창의성이 '어떻게 녹아들어갔는가'에 따라, 그것은 곧 한국의 멋을 가장 잘 살린, 인기작품 으로서 탈바꿈되어진다.

이처럼 중국 또한 '미래의 홍루몽'을 꿈꾸며, 홍루몽의 또 다른 모습을 계속해서 창조하고, 읽고, 또 소화하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 (전통)문학의 계승은 단순한 위기감과 의무감에 짖눌려 선택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중국의 언론등에서 '홍루몽'을 연구하는 일반인을 취재한 것과 같이... 그들에게 있어서, 계승은 일종의 자랑거리이자, 긍지요, 생활의 일부를 담당한다. 이른바 꽌시의 의리, 대형(大兄)으로 불리우는 배포, 깨끗하고 청순한 사랑, 그리움 속에서 피어난 애(愛)시, 긴 고난 끝에 다다른 행복의 본질, 권선징악과 충정의 마음... 이처럼 그 많은 것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고전 문학의 존재와 그 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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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파이돈·향연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 플라톤의 대화편 현대지성 클래식 28
플라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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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철학자가, 고결한 철학자를 기억하기 위하여 기록한 것, 이처럼 소크라테스의 재판 속에서 드러난 변명을 통하여 과연 오늘날의 독자가 엿볼 수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물론 이에 오롯이 책 속에 드러난 내용만을 전제로 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을 수도 있을것이나, 반대로 나는 그보다 더 먼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고대 그리스의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고 또 탐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고대 그리스의 역사! 소크라테스를 죽음으로 몰고 간 재판에 대한 과정에 있어서 그 핵심 또한 '소크라테스가 (당시)사회에 있어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라는 질문(고발)에서 시작한다. 때문에 변명의 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 또한 오롯이 소크라테스의 철학에 대한 그 본질을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 스스로가 자신의 철학을 바탕으로 당시 '그리스'의 모습을 진단하고 또 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서슴치 않았다? 라는 것을 엿보는 것이라 본다.


물론 그 신랄함에 대한 대가는 '죽음'이였다.


그렇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역사'로서 이해하는 것과 같이,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신다. 다만 그 과정에 있어서, 이 글을 기록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이해자로서' 결국 그가 남기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것을 기록했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에 결국 '나의 감상'이기는 하지만, 이 책 속에서 '죽음을 앞둔 상황' 은 보다 더 심층적인 철학의 개념을 등장시킨다. 그야말로 (저자) 플라톤의 이데아 와 같은 개념이기도 한데, 결국 소크라테스는 더 깊은 철학... 이른바 인간의 본질과 그 계승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기 앞서, 그 논리의 근본에는 단순한 '교육받는 두뇌' 가 아닌 보다 더 고차원적이고 초월적인 것이 필수적이라는 나름의 결론에 (이미)도달했다는 느낌을 준다.

쉽게 말해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에게 살라고 말한다. 그야말로 소크라테스가 축척한 철학, 향후 더 탐구하고 정리할 기회... 이른바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이 있기에, (그의) 철학이 존재한다는 논리로 그의 연명을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정작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가진 '진리?'는 오롯이 몸안에 담겨지지 않으며, 그 계승과 전달의 과정에 있어서도 육체는 단지 방해물에 불과하다는 초월론?을 드러냈다. 그야말로 소크라테스는 보다 더 진리의 근본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육체라는 닺을 잘라내야 한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에 대하여 어느 독자는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 서둘러 만들어낸 '상황이 만든 변명'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자연철학의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점에 있어서, 소크라테스는 스스로가 낳은 철학을 독점하지 않으며, 도리어 그 진리를 담아낼 그릇의 역활을 헬라스 고대국가 그리스(아테네)가 수행해야 한다 생각한 모양이다.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비록 '제국'으로 변질되어가는 아테네에게... 향후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망가질 아테네 '제국'에게 그 한순간이나마 '제정신으로 돌아가라' 강하게 주장했던 것은 아닐까?

당시 소피스트가 주장한 그대로 소크라테스는 당시 아테네에게 '악 영향'을 미치는 사람으로서 고발당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당시 정치세력을 규합한 것도 아니고, 쿠테타를 모의 한 것도 아니고, 반 국가적 사상을 주장한 '사상가'가 아닌, 나름 정신주의자 또는 토론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날에는 그 무엇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는지? 그 이유가 곧 장 이해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이 책 속의 내용, 소크라테스의 변명 속에 있어서 그 이유는 매우 명확해진다. 한때 그리스(아테네)를 수호하는 군인이자, 관료로서, 그는 반대로 그리스 속의 '지도자'라는 자들의 명령을 곧 잘 거부한 문제아였던 것이다. 세상에 그가 '악법도 법이다' 말했다는 루머가 있는데... 아마 소크라테스가 그 말을 들었다면 당장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진리에 벗어난 법(또는 율법)은 결국 법으로서 존중 받을 수 없다" 라고 말이다.

결국 그는 그리스를 사랑했지만, 그 배경 속에서 사랑스러운 그리스를 변질시킨 사람이라는 존재를 용서하지 않은 셈이다. 말도 안되는 이유로, 법 같이도 않은 법을 내세워, 과거 그리스가 자랑하던 정신을 내려놓고 물질에 매달리던 사람들... 이에 소크라테스는 그 삶 속의 인연을 '더럽다'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 결과 최소한의 조언과 함께, 근본의 그리스를 탐구하기 위한 (새로운 형태의) 여행을 떠난 것이 아니였을까? 이처럼 나는 이 기나긴 글을 읽어내려가면서, 나 나름대로의 역사의 답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진다. 물론 그 대부분의 답은 제자 플라톤이 녹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조금더 현대적인 감성을 더한다면, 위의 긴 글처럼 나 나름의 새로운 답 또한 등장하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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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영국 언론은 조선을 어떻게 봤을까 - 『이코노미스트』가 본 근대 조선
최성락 지음 / 페이퍼로드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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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서양의 근대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서, 이에 필연적으로 거론하는 단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제국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제국주의의 성장과 그 과정의 역사에 있어서, 흔히 서양사회는 오늘날까지 계승되는 전통과 테크놀로지, 그리고 행정(금융) 시스템을 통하여,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격동적인?) 문화권을 형성한 사실 등을 인식하고 또 자랑하기도 한다. (물론 부끄러워 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그러나 그 와는 반대로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에 이르는 많은 문화권과 민족(국가)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제국주의는 학살과 수탈, 지배라는 부정적인 인식으로 남아 배척되기도 한다. 실제로 각 많은 민족들이 '통상요구'를 거부했고, 또 무력행사에 저항했으며, 또 소위 군대에 맞서 저항하고 점령당하고, 약탈당한 비극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있기에, 결국 그것에 대하여 증오하는 것을 계승(또는 학습)하는 것 역시! 어쩌면 당연한 것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허나 적어도 이 책 속의 가치관에 따르자면 그 수많은 '저항'에 대한 사실에 있어서, 분명 '지금껏 교육받은 것과는 다른' 어느 생소한 가치관이 드러나는 것 같은 감상을 받게 된다.

물론 여느 국가의 입장에 있어서, 가장 최우선적으로 요구되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은 잠시 접어두기로 하자, 허나! 결국 그 질문에서 떠나, 공동체 속의 국민으로서 '너무나도 획일적인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조금이나마 한 독자가 있다면? 분명 이 책은 그 의심에 대한 가장 만족스러운? 답을 내놓은 내용이 녹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예를 들어 지금껏 배워온 '상식'에 따르자면? 결국 서양의 '개국요구'는 그 나름 침략의 A.B.C 그 과정의 첫 단추에 해당하는 것이다. 물론! 적어도 한반도 '조선' 과 '일본'사이의 역사로 따지면 그 플랜?이 완벽히 작동했기 때문에 이에 반론의 여지가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저자가 참고한 '이코노미스트'의 논리에 따르면, 그 도입과 과정에 있어서 큰 차이점이 발견된다. 때문에 단순하게 '자유시장 경제의 논리로 바라 본 세계정세에 대한 예측'에 따르자면? 결국 '체제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엄격한 신분제와 (문화 사상적)규제를 강제한 '조선'이라는 그 나라는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인식이 되어질까?

이에 대하여 당시의 '권위있는 중도언론' 이코노미스트는 그 조선을 두고 많은 문제점을 지적했다. 물론! 이에 비관적인 자원매장량에 대한 기사나 여느 시사성 있는 사건에 대한 기사를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진단하고 주장한 기사중엔 분명 조선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진단도 있으며, 특히 그 가능성의 성장을 위해서는 조정(조선의 정부)가 가진 낙후되고 부패된 행정력을 쇄신해야 한다는 그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도 많았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격동의 변화를 가장 우선시 하는 서양과는 그 너무나도 모습이 다른 동양의 나라'

이것이 그 나름 서양사회의 척도와 가치관으로 판단한 당시 '조선의 현실'이였다. 그래서일까? 이에 역사적으로 한일 병합이라는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이코노미스트는 이에 호의적인 내용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다 큰 효율성, 개선의 여지, 향후 개척될 시장의 규모, 그리고 극동아시아의 정세의 변화... 이에 당사자에 해당하는 '나'는 분명 그 당시의 해석에 대하여 감정적으로 불편하고 또 불쾌한 마음이 들때가 있다. 때문에 위의 서양의 논리, 이코노미미스트의 사상과 가치관이 오롯이 세계사의 입장에 있어서 '정의'였나? 질문하는 것은 분명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역사 속에서, 바로 그러한 가치관에 의해 '아편전쟁'이 일어났음을 떠올려보자, 단순히 경제의 논리에 따르자면? 결국 아편이라는 상품이 가져올 '리스크'는 그리 큰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야만'을 겪은 오늘날은 분명 그 리스크에 대한 반성과 개선의 가치가 서로에게 반영된 시대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미 좌충우돌의 충돌을 겪고, 난항을 극복하고, 그 후유증을 감내하면서 '세계화'를 이루었기에, 결국족주의와 자유시장론은 비록 그 성질은 다르지만?로의 균형을 맞추어야 만 '오늘의 세계를 유지 할 수 있는' 균형의 잣대'가 되어버린 만큼!에 한번쯤 국민의 상식을 떠나, 시장의 상식에도 접근하는 것도 (지식을 쌓는 의미에서) 그리 나쁠 것은 없다고 생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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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도 전설 한정판 세트 (설정 자료집 + 엽서북) - 전6권
미즈노 료 지음, 채우도 외 옮김 / 들녘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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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정의의 용사' 라는 단어를 마주했을때! 아마 이에 많은 사람들은 옛 기억 속의 만화영화 등을 떠올리며, 그 나름 추억의 영역에 발을 내딛을 것이라 생각이 된다. (이것으로 나이 인증) 물론! 나 또한 여느 변신로봇물과 용사물을 통하여, 이른바 '사랑과 정의의 용사' 라는 단어에 세뇌되었던 세대였던 만큼 분명 그 조상격?에 해당하는 이 작품에서도 그와 비슷한 감성의 메시지를 기대하면서 책을 읽어 나아갔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말해서 이 '로도스도 전설'은 적어도 밀레니엄 이전의 현대적 감성'과는 거리가 먼 보다 생소한 분위기를 간직한 책이였다. 아니... 그보다는 그 어렸던 만화속의 주인공들과는 다른, 역사 속 '전설'에 더 어울리는 용사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실제로 절대악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로도스도 섬의 총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이 모든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사의 자질을 갖춘 어느 위대한 인물을 드러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는 지금껏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할 '아름다운 결말'을 내팽개치고, 비정하기 짝이 없는 결말속 이야기들을 드러낸다.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여느 꿈 많은 아이들이 접하기보다는, 적어도 롤랑의 노래, 에다, 아서왕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청소년과 성인들이 보다 더 읽었으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러한 가치를 이해 할 수 없다면? 과연 이 책을 통해서 독자들은 과연 어떠한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결국 그 마지막의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적과 용기로 극복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과실의 주인공으로서 '군림'하는 자는 (적어도 이 작품에서는) 아무도 없다. 도리어, 저자 스스로가 고백한대로 그는 어느 절대적인 자가 등장하는 내용에서 벗어나,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가 가진 어리석음과 함께, 그 닥친 어리석음과 고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희생 할 수 있는 인간 그 고귀한 정신들의 집합을 그려냄으로서, 소위 영웅들의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었다는 메시지가 가득하기는 하지만... 이에 나의 개인적인 의견을 드러내자면? 역시나 그 모든 것을 소화 하기에는 이 작품 자체의 '스케일이 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운 점이 크게 눈에 들어오는 것 같다.

각설하고 결국 이 모든 위기와 극복 이후의 로도스도의 미래에 대해서, 그 어느 하나 쉬운 것은 없다. 강력함은 분열되고, 선지자는 꺾였으며, 군웅 속의 영웅들 또한 자신들만의 각오 속에서, 사명을 다하고 스러져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로도스도의 구원을 말하고, 또 그 속의 성웅과 영웅을 기록한다.

때문에 이에 적어도 '판타지 작품'의 세계관에 있어서, 이 모든 것에 대하여 (나름의) '충격'을 받을 독자도 분명히 존재하리라 생각이 된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오늘날 등장하는 판타지의 이야기 또한 보다 더 비정하고, 폭력적이며, 심지어 '영원한 정의'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을 비추어볼때, 결국 역사 뿐만이 아니라, 이 세계관 또한 돌고 돌아 다시 이 시점에 돌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게 하는 점 또한 나름 이 '로도스도 전설'이 오늘날 던져주는 하나의 메시지로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라고 나는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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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리얼 스칸디나비아 - 북유럽 사람이 쓴 진짜 북유럽 이야기
브론테 아우렐 지음, 안나 야콥센 그림, 김경영 옮김 / 니들북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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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이처럼 오늘날의 상식선에서 생각해보면? 이른바 스칸디나비아 속에는 북유럽 감성이라는 흔한 수식어와 함께,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 하는 선진 복지국가라는 높은 위상을 지닌 것으로 이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조금 그 생각을 달리하면 어째서 스칸디나비아 속 국가들이 그 높은 수준의 행정력을 자랑 할 수 있는지? 아마 그 본질적인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다른 이들보다는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쩌면 그 정답을 찾을 수 있는 가장 빠른 길 일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추위와 얼음의 땅! 그 유명한 야만전사 바이킹을 키워낸 땅이라는 사실에 걸맞게, 그 땅은 적어도 인간들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환경을 지니고 있지 않다. 심지어 농작물을 통한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구조때문에 어쩔수 없이 '바다의 민족'이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존재하기 때문에, 이에 그들이 축복받은 환경과 자원에 힘입어 '선진국'이 외었다 생각하는 것은 정말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저자는 '덴마크 사람'으로서 행복하다 말한다.

비록 살인적인 추위?와 그 추위 못지않게 무뚝뚝한 사람들이 살아가지만! 그래도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모두를 위한 공동체 속에서 행복하게 산다. 그도 그럴것이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도 바비큐를 하고자 하는 정신머리?를 가졌다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자신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을것이란 생각 또한 들지 않는가? 그들은 국가와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억지로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을 달가워 하지 않는다. 만약 능력있다 하여, 끝없는 기회와 만족을 누릴 시간을 독점하고, 또 능력이 없다 하여 그 최소한의 보호 속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껴야 하는 것이 체제요 현실이라 주장한다면... 아마 적어도 저자의 상식에 있어선 그것을 두고 최대의 비극이라고 감히 주장했을 것이 분명하리라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 책 속의) 저자 스스로가 살아간 삶은 그 비극과는 동떨어진 것이였다는 것이 엿보인다. 그는 사회가 보장하는 혜택을 누리고, 스스로가 선택한 직업을 가지며, 북유럽 특유의 문화를 통하여 친구를 사귀고, 또 휴일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이에 그가 이야기하는 북유럽의 모습은? 분명 지금의 나 스스로가 보아도, 정말 부러운 것이 많았다.

이에 반대로 내가 한국인의 삶, 한국의 모습, 한국이란? 주제를 드러내는 책을 낸다면 과연 어떠한 책이 나오게 될까? 혹 그 내용에는 즐거움과 만족과는 달리, 현 사회와 국가 자체가 지닌 한계, 문제점, 개선점에 대한 지적이 난무하는 내용이 되지 않을까? 각설하고 분명 나는 북유럽의 모습을 동경한다. 그리고 또 가능하면 그 모델이 자국에 있어서 크게 적용되기를 바라지만? 과연 그 실행에는 어떠한 한계가 있을지? 또는 한국인이 그 얼마만큼 그 독특함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이처럼 이 책은 단순히 북유럽의 삶을 나열한 그 내용에서 벗어나, 나에게 있어 진정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나름의 척도로서 받아들여진 일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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