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로 읽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일러스트로 읽는 시리즈
스기마타 미호코 지음, 김보라 옮김 / 어젠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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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인으로서 다빈치의 이름은 그야말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그야말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의 이름은 전세계의 국보라는 가치를 지닌 모나리자의 창조자이자, 혁신의 아이콘, 심지어 서양

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거대한 명성으로 포장이 되어 있는데, 그 덕분에 사람들은

방송과 서적등의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부분적인 토막 상식이나마) 그에 대한 정보를 하나 둘

습득하고 있을 정도이다.

 

물론 이 같이 위인전과 같은 서적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방송을 통해서, 얻은 지식등도 정보라

는 면에서는 뭐하나 트집 잡을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기왕 배우고 알아갈거, 보다

확실하게 알아가는 것도 어떻게 생각하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아무리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다' 라고 해도, 어디까지나 반토막 지식(트리비아)만을 품은체 인생을 간다

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 책은 분명히 일반적인 위인전기를 뛰

어넘는 정보를 가진 책으로서, 그 분명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보여진다.

 

책의 제목 그대로 이 책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그림으로 표현된 정보'이며, 그만큼

순하지만 확실한
달력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 표현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야말로 그의 인생 모든것이 녹아 있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다빈치의 업적만을 논하는 것도 재

미없지 않겠는가? 다빈치의 태생, 어린시절, 청년시절, 전성기, 황혼에 이르는 광범위한 이야기

와 더불어, 그가 그 손으로 창조한 수 많은 미술품과 발명품들, 그리고 그의 생예에 큰 역활을 담

당하거나 스쳐간 수 많은 인물들에 대한 정보와, 마지막 그의 유언에 이르는 개인적인 정보까지..

. 그야말로 독자들은 분명히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모든 정보를 얻고 누릴 수 있을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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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이 걸어간다 달걀이 걸어 간다 : 베델과 후세 1
이영현 지음 / 하우넥스트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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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4년 오늘날의 한.일 관계는 그야말로 과거의 냉전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일면이 있다.    혐한

과 혐일이 공존하는 오늘날... 아무리 시국은 시시각각 변한다고 하지만, 진정 오늘날을 보면, "

이 두 국가가 정말로 아무리 사이가 나빠도 악의없는 경쟁을 하던 2002년 월드컵을 공동으로 치

루던 그 국가가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냉각된대로 냉각된 두나라의 갈등, 그것은 분명 과거와 현재의 여러가지의 이유들이 복합적으

로 엮여있기 때문이겠지만, 그래도 보다 (현실적으로)근본적인 원인을 꼽자면 '계속되는 요구에

대한 대상자들의 혐호감'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분명 일본은 세계사에 유례없는 전쟁을 일으

키고 반 인륜적인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을 이끄는 세대들은 과거 전

쟁을 수행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의 아들뻘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    괜히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겠는가?   이제 그들에게 있어서 "개과천선 하라" 는 이웃들의 외침은 가슴에

와 닿는 충고의 말이 아니라, 굳이 낡은 기억을 꺼내어 사람을 괴롭히는 '잔소리'에 불과하게 되

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피해국인 한국인들과 그 주변국가들이 이러한 잔소리(요구)를 그만두어

야 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오히려 '용서과 관용이라는 것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그에 합당한 자질을 가진 자에게 주어져야 한다'라는 믿음하에 일본에 대한 더욱 강력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요구를 위해서는 분명히 감정이 앞선 '힐책'보다 자신과 상

대방이 납득 할 만한 '내용'과 '증거' 그리고 '이야기' 와 '분위기'등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많은 한국인들은 그저 다수의 입방아와 분위기에 동조하는 '곡학아세''키보드 워리어'의 레벨에

서 벗어나, 보다 역사와 학문적인 접근을 통해서 과거 우리들이 무엇때문에 '나라를 잃어버리게

되었는가?' 라는 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다.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이 책(소설)의 이야기는 역사의 이야기를 담은 대하소설이 아니다.   그러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내용에 있어서 주된 접합점이 되어주는 인물 (독립운동가& 저널리

스트) 어니스트 베델과 (변호사) 후세 다츠지 들의 그 역활이 매우 크다. (그들의 업적에 대해서

는 한번 스스로 알아보도록 하라) 소설속의 가상의 세계에서 수단인 '빌' 한국인 '영현'영국인 '

수전' 이 3명의 등장 인물들은, 과거 베델과 후세가 남긴 정신적 유산을 다딤돌 삼아, 그 인연과

우정을 이어나가는 관계로 발전한다.    베델과 후세가 남긴 정신적 유산, 그것은 강자의 횡포

에 저항하는 '용기' 그리고 정의(바른일)를 위해서 흔들림 없는 '믿음'과 실천을 행하

게 하는 '희생'과 '헌신'의 가치관이다.     

 

만약 약자를 동정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정의를 위해서 저항할 용기가 없었다면, 그리고 모두

가 아니라고 박해할때 약해진 자신을 지켜줄 믿음이 없었다면, 그야말로 세상은 강자에 의해서

움직이고, 그들에 의해서 역사가 마음대로 정의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아니...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되었었다.'

 

인간은 의외로 현명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   세계1~2차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일으키고 나

서야, 정의와 박애 라는 정신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재확인 하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인간

은 그 무언가의 희생과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그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존재

이다.     한국인이 가증스러운가?  일본인이 증오스러운가?  이에 스스로의 감정을 떠나, (이미

과거의 사건이 되어버렸지만)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故'이수현'의 이야기를 한번 더 들여다 보

아라.    이는 분명히 무조건적인 적의는 결국 아무것도 해결하여 주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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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온 여인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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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960년대 대한민국은 그 나름대로의 배고픈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

았고, 신체제에 의해서 억지로 주입된 민주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는, 지극히 불균형적인 빈익빈

부익부를 불러왔다.     정치적으로도 박정희 군부에 의한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점점 정국은

혼란스러워졌고, 그 덕분에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그 독재가 가져다 준 통제에 대하여 저항한 동

시에, 그들끼리 자유에 대한 동경과 이데올로기를 토론하면서 그 담답한 속을 달래기에 급급

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한번'잘 살아 보겠다' 라는 이념하에

하나로 뭉쳐, 과거 전례가 없던 '에너지'를 발산 하기도 하였으니, 그야말로 그 당시의 시대는 '

흙탕물이 휘몰아치는 정의하기 어려운 시대'였다고 보다도 될성 싶은 일면이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그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이 소설도, 그 내용에 있어서 딱히 이거다! 라고 정의

하기 힘든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어떠한 인물의 눈

으로 내용을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한번쯤 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독자가

그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책의 내용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될 수도 있고,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이 될 수도 있으며, 안나 카레니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책 속에 드러난 주인공은 가난한 청년 '신성표'이다.    그는 잘생긴 얼굴과 성

악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가진 대학생이지만, 가난한 고아 출신에다가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밤

무대를 다니는 여동생을 두었다.   그렇기에 처음 드러난 그의 삶은 너무나도 고달픈 것이며, 또

그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분명한 자기한계는 신성표 그에게 대하여 분노와 허탈한 감정을 품게 만

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표에게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푸른저택'의 가정교사

자리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불같은 열정을 품게 하였음은 물론, 세상에 대한 강력

한 의문을 품게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준다.

 

그러나 그는 고뇌하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에 있어서 제3자에 해당하는 방관자에 불

과하다.   그는 세상의 풍요와, 부조리를 모두 뭉쳐놓은 듯한 그 저택에서 그 속의 여인들을 사랑

한다.    처음에 사랑했던 여인은 사실상 성노예와 다름이 없는 '하녀' 그후에는 어딘가 어둡지

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오 부인'이였다.     이렇게 여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신 선생'

은 점차 그 저택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알아가고, 그 비밀은 결국 그 저택에 관련된 인물을 비참

한 죽음으로 몰고가게 하고야 만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책의 내용을 보면서,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 부인'이 아닐까?" 하

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오 부인은 신 선생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변태적이고 비상식적

인 복수를 품은 저택의 주인 '강 사장'의 증오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겉으

로 드러난 오 부인은 차갑고 무서운 인물이다.   그러나 그 차가움의 이면에는  과거 사랑하는

이를 빼앗긴 과거와 슬픔이 묻어있으며, 그렇기에 더욱 사랑에 목마른 인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도도하고 위험하지만, 그에 걸맞는 욕망을 지닌 인물,  그렇기에 스스로 자살을 택할 수 밖

에 없었던 인물, 그렇게 오 부인은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

비중있는 진정한 비극의 주인공 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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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남자들의 이야기 댄디즘 - 최초의 멋쟁이 조지 브러멀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
쥘 바르베 도르비이 지음, 고봉만 옮김, 이주은 그림 해설 / 이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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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분명히 평범함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학생시절 교복을 극도로 줄여입고, 심지

어 평준화의 대명사인 군대에서조차, 군모를 살짝 접어 나름대로의 멋을 부리려고 했던 그들...

그리고 더 나아가, 한국과 세계의 패션을 주도하는 수많은 디자이너들과, 유명배우들이 소화하는

여러가지 '멋'은 분명히 오늘날의 대중들에게 있어서는 쉽게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역

사적인 인식으로 바라보면, 그들의 '본능'과 '능력' 이야 말로 미래의 의상문화를 바꿀 가장 강력

한 원동력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과거 세상에 '의류'는 그들의 신분과 직책을 나타내는 표시의 개념이 강했다.    과거 패션의 상

징이기도 했던 17세기 프랑스의 패션조차도 극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권력형 트랜드(유행)를 형

성했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에서 전체적으로 순수한 멋쟁이 즉 '댄디' 가 태어나게

되었는데, 그 발생지는 의외로 신사와 엄격함이 떠오르는 18세기 '영국' 이다.      영국은 스스

로를 대영제국이라고 칭할만큼 거대한 세력을 구축했고, 그 이름에 걸맞는 공업 생산력과 소비

생활을 유지했다.    사람들은 증기기관의 힘과 화약의 파괴력 속에서, 점점 풍요로움을 갈망했

고, 그렇게 얻어낸 풍요는 곧 귀족을 넘어 브루주아에 이르기 까지 확산었다.

 

이에 결국 그들은 스스로를 꾸미는 맛을 알게 되었음은 물론, 거기에 더 나아가 오로지 '댄디'를

위해서 삶을 살아가는 사상 댄디즘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댄디즘에 이르는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

나 정작 댄디즘이란 무엇인가?하는 정의에는 그 이야기가 미치지 않는다.   책을 쓴 저자들은 하

나같이 '댄디에는 정의가 없다.' 라고 주장한다.      나로서도 "댄디란 형태가 없다."  "댄디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존재이다." "무언가가 유행하여 그것이 대중화가 되었다면 그것은 더이상

댄디가 아니다."  "댄디란 상대에게 참신하고 아름답다는 인상을 주어야 한다" "댄디를 위해서라

면 물질적 가치는 그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같은 여러가지 주장들을 읽어보면서, 그 정보가 가져

다 주는 의미에 대한 해답을 얻어 보려고 했지만, 역시나 머리가 어질어질 해질 뿐, 그 문제에 대

한 해답을 찿을 수가 없었다. 

 

댄디는 애매하다.  덕분에 그 시대, 그 당시의 댄디들은 사람들에게 "사회에 있어서 무익하다."

라는 비판을 받았고, 또 "겉면만 번지르르한 기생오라비" 라는 비아량을 들었다.   그러나 그들

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댄디'를 위한 삶을 살았고, 겉으로 내면으로 완벽한 댄디즘을 소

화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심지어 댄디를 위해서 전 재산을 말아먹고도 빚을 내어서 까지 댄디

를 추구하는 미치광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덕분에 역사적으로 '멋쟁이'들은 그다지 존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과거 한국만 해도 '멋쟁이' 는 곧 '제비' 라는 것이 사회적 상식이였지 않

은가?  그러나 그러한 멸시와 편견에도 불구하고, 디는 분명히 매력적이다.  

 

오늘날의 풍요로운 세상에서, (과거와는 달리) 욕망은 곧 실현이 가능한 것이다.   때문에 지금

의 패션문화는 빠르게 그리고 분명하게 발전하고 있으며, 거기에 IT기기의 발전과 광범위한 통신

망은 불과 3~4년의 가치관조차도 구닥다리로 만들어버리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때

문에 오늘날의 '댄디즘'은 분명히 과거와는 조금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화에도 불구

하고 댄디의 존재이유는 그 불멸의 가치를 더한다.    "남과 차별되는 자신의 멋"   그 가치관

은 분명 지금이나, 머나먼 앞으로의 미래에도 불멸의 댄디즘으로 남을 절재적인 가치관이 되어

줄 것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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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 퍼레이드
리처드 예이츠 지음, 이진호 옮김 / 오퍼스프레스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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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드라마를 접할까?   그 이유는 사람들이 드라마를 통해서,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하지만, 쉽게 접할 수 없는 '어떠한 이야기' 들을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

문이다.      악한자는 벌을 받고, 착한사람이 복을 받는 권선징악 부터, 끝없는 타락이 가져다주

는 인생의 몰락, 그리고 복수를 위해서 살아가는 고독한 인생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드라마는

그야말로 인생의 다양한 이야기들이 총 망라된 끝없는 이야기의 장이다.    

 

이렇듯 텔레비젼과, 소설에 이르는 수 많은 장르들이 표현하는 드라마적인 요소는 분명 우리의

이웃에서는 쉽게 볼 수 없지만 이 세상 어딘가 이러한 인생을 살고 있을 것 같은, 분명한 리얼리

티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독자들은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갈등과 욕망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자기 자신이 사회에 살면서 묻어둔 다양한 욕망에 대한 차치관을 떠올리고,

또 이를 이용하여 자신의 쾌락을 얻는다.    때문에 오늘날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막장' 이라

는 단어에 어울리게끔 극과 극을 달리며, 사람의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이면을 드러내는데 주력

한다.     사람들은 이제 그러한 자극적이고, 쾌락주의 적인 이야기에 열광한다.     그러나 사

람의 인생이 그렇게 추악하고 자극적일까?  아니다... 사람의 인생은 그보다 훨씬 단조롭고 반복

되는 재미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단조로움 속에서 사람들은 사랑과 질투를 표현하고, 우

정과 배신을 통해서 그  단조로움에 작은 물결(파장)을 일으킨다.     

 

때문에 이 소설의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이러한 작은 파장을 이용한 이야기, 즉 '리얼

리즘'을 통한 인생의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한다.    그 증거로 이 소설의 등장인물들을 보라,

그들은 분명히 정상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내력을 지니고 있는 인물

들이다.      자유로운 세상에 태어났으나, 곧 분명한 사회의 한계에 부딪쳐 꿈보다 현실에 굴복

한 '부모님'  폭력적인 남편에게 온몸이 멍드는 삶을 살지만, 자식을 향한 사랑과 순종만이 '여자

의 길' 이라며, 자기 자신을 낮추고 살았던 '언니'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속박되지 않으며, 오로

지 자신의 능력과 행복만을 추구했던 '여동생'에 이르기 까지, 그들은 어린 소녀시절부터, 자신

의 죽음에 이르는 그날까지 자기 자신이 믿었던 삶을 살았다. 

 

그들은 분명히 전체적으로 보기에, 주변인물들(독자들) 이 납득할 만한 '행복한 삶'을 살지는 않

았다.  아니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보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삶 속에서

분명히 그들만의 행복을 꿈꾸고, 목표를 세우고, 행복을 맛보았다.   불행하다, 행복하다 같은 정

의는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그 누구가 측정하겠는가? 자기 자신이 아닌가?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인생이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듯 이 소설은 그러한 단조로움 속에서,

인생의 참다운 의미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과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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