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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온 여인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1960년대 대한민국은 그 나름대로의 배고픈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전쟁의 상처는 아물지 않
았고, 신체제에 의해서 억지로 주입된 민주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는, 지극히 불균형적인 빈익빈
부익부를 불러왔다. 정치적으로도 박정희 군부에 의한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점점 정국은
혼란스러워졌고, 그 덕분에 지식인들과 학생들은 그 독재가 가져다 준 통제에 대하여 저항한 동
시에, 그들끼리 자유에 대한 동경과 이데올로기를 토론하면서 그 담답한 속을 달래기에 급급
했다. 그러나 그러한 어둠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한번'잘 살아 보겠다' 라는 이념하에
하나로 뭉쳐, 과거 전례가 없던 '에너지'를 발산 하기도 하였으니, 그야말로 그 당시의 시대는 '
흙탕물이 휘몰아치는 정의하기 어려운 시대'였다고 보다도 될성 싶은 일면이 있는 것 같다.
그 때문에 그 당시의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이 소설도, 그 내용에 있어서 딱히 이거다! 라고 정의
하기 힘든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과연 어떠한 인물의 눈
으로 내용을 판단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을 한번쯤 품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실제로 독자가
그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이 책의 내용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될 수도 있고,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이 될 수도 있으며, 안나 카레니나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으로 책 속에 드러난 주인공은 가난한 청년 '신성표'이다. 그는 잘생긴 얼굴과 성
악에 대한 남다른 재능을 가진 대학생이지만, 가난한 고아 출신에다가 남들이 손가락질하는 밤
무대를 다니는 여동생을 두었다. 그렇기에 처음 드러난 그의 삶은 너무나도 고달픈 것이며, 또
그 사회적 위치에 대한 분명한 자기한계는 신성표 그에게 대하여 분노와 허탈한 감정을 품게 만
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성표에게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푸른저택'의 가정교사
자리는 그의 인생에 있어서, 사랑이라는 불같은 열정을 품게 하였음은 물론, 세상에 대한 강력
한 의문을 품게하는 계기를 마련하여 준다.
그러나 그는 고뇌하고, 생각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야기에 있어서 제3자에 해당하는 방관자에 불
과하다. 그는 세상의 풍요와, 부조리를 모두 뭉쳐놓은 듯한 그 저택에서 그 속의 여인들을 사랑
한다. 처음에 사랑했던 여인은 사실상 성노예와 다름이 없는 '하녀' 그후에는 어딘가 어둡지
만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오 부인'이였다. 이렇게 여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은 '신 선생'
은 점차 그 저택이 가지고 있는 비밀을 알아가고, 그 비밀은 결국 그 저택에 관련된 인물을 비참
한 죽음으로 몰고가게 하고야 만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책의 내용을 보면서, "이 책의 진정한 주인공은 '오 부인'이 아닐까?" 하
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오 부인은 신 선생을 사랑했다. 그러나 그녀는 변태적이고 비상식적
인 복수를 품은 저택의 주인 '강 사장'의 증오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겉으
로 드러난 오 부인은 차갑고 무서운 인물이다. 그러나 그 차가움의 이면에는 과거 사랑하는
이를 빼앗긴 과거와 슬픔이 묻어있으며, 그렇기에 더욱 사랑에 목마른 인물로 그려지기도 한다.
도도하고 위험하지만, 그에 걸맞는 욕망을 지닌 인물, 그렇기에 스스로 자살을 택할 수 밖
에 없었던 인물, 그렇게 오 부인은 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마음을 무겁게 한
비중있는 진정한 비극의 주인공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