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 -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 대한민국까지, 재판으로 보는 세계사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콜라보 3
권재원 지음 / 서유재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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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나라의 법'은 공동체의 안정과, 그 속 개인의 권리를 지키기위하여 존재한다. (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간간히 법을 다루는 사람들에 의하여 생겨난 '사건'으로 인하여, 어쩌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 또한 점차 법이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그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순간을 마주 했을수도 있겠다.    때문에 결국 '법'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매우 엄격하고도 낮선 것으로 다가온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동정과 이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결국 법의 저울 위에서 드러난 것은 잔인하리만치 엄격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힘과 이해관계속에서 중심을 잃은 민심과 동떨어진 판결이 드러나기 일쑤인 것이다.


때문에 결국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인간들에 의하여 태어난 법' 또한 완벽과는 거리가 먼 하나의 합의에 불과 하다는 것이며, 특히 이 책이 드러내는 많은 기록들 또한 이러한 결론을 보다 확고히 하는데 큰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허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바로 이러한 사건들을 겪으면서, 결국 인류는 '법'이라는 원석을 갈고 닦아 오늘날의 형태를 만들어냈다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역사의 흐름과 '인류가 이룬 성숙함' 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보았을때, 이 많은 사건들은 그야말로 과정속에서 드러난 오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을 한 개인의 영역에 둔다면 어떠할까?


물론 소크라테스와 같이 '당시의 법이 지닌 정당성과 상징성' 아래 선고(처벌)을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분명 법이 가지는 권력 아래서, 개인의 명예와 생명이 짖밟이며 더욱이 그 회복조차도 모호한 경우도 결코 적지않다.    때문에 결국 이 책을 통하여 얻어낼 수 있는것은 언제나 '법'을 경계하고, 또한 법이 본래의 존재가치를 온전히 지니도록 끝임없이 다듬어야 한다는 것인데, 허나 아쉽게도 (대한민국의) 대중사회에 있어서, 여전히 법은 가깝지 않은 것이며, 심지어는 법을 이해하고 배워나아가는 '전문가'들이 때로 법이 가지는 권력을 '사익'을 위해 쓰는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법은 과연 '방패'인가 아니면 '창'인가?*


이처럼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분명 과거 유례없는 '자유'와 '권리'의 가치를 성장시켰지만, 반대로 '권력욕'과 '부패'의 가치 또한 완벽하게 몰아내지 못했다.  때문에 오늘날의 세상에서도 또 다른 소크라테스나 드레퓌스 대위가 등장하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기에, 결국 이를 위하여 국민은 스스로 에밀 졸라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와 믿음을 축척해야 한다.   그러니 (독자들은) 법에 대한 의견과 지적 등을 오롯이 '전문가'만이 향유하는 권리로 이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본래 법이란 불변의 가치관이 될 수 없기에, 결국 이를 변화시키는 주체가 어떠한가에 의하여, 그 본질과 본질속 국민의 미래 또한 큰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언제나 경계해야 마땅하다. 이에 생각해보면,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 세상을 살아가는 사회인'으로서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조건과 같은것이 아닐까?  분명 이 세상에는 무늬만 자유의 가치를 내세운 중우정치와 독재가 판을 치는 나라, 그리고 그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그러한 영향 아래 살기를 거부하고자 하기에 이처럼 위의 가치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이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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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족속 -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문득 시리즈 2
프란츠 카프카 지음, 김해생 옮김 / 스피리투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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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의 문장은 암울하다.   특히 그는 인간이 최선을 다하여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주제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인간이란 불안감에 떠밀려 살아간다'는 이미지를 드러내, 결국 독자로 하여금 사회공동체가 지닌 냉엄함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과거 접했던 변신과 같이 이 단편들의 대부분 또한 인간의 삶이 가지는 많은 부분에 대한 비판적인 주제들이 드러난다.    실제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하여, 일하고, 재산을 축척하고, 또한 사회의 문화와 질서에 민감해지는 것은 정말로 당연한 상식의 영역에 있을 것이다.    허나 카브카의 시선 속에서 그 많은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원숭이와 쥐 그리고 땅속을 기어다니는 벌레들이다.


그렇기에 독자는 살기 위하여 '인간의 행세를 하고' '땅속에서 자신의 것을 만들어가는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며, 결국 그들 스스로가 이룩한 것에 대한 감동보다는 그럴수 밖에 없었던 환경과 운명에 대한 연민과 허무를 느끼게 된다.   때문에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인간역시도 연민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과거 카프카가 살아가던 세상과 같이, 오늘날 또한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의무를 강제하며, 물질적인 척도를 통하여, 개인 스스로의 삶의 질을 평가한다.  바로 그렇기에 인간이란 대부분 삶을 불행하다 느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고, 또한 그렇게 불행하고, 불안하기에... 결국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떠밀려 살아간다는 선택지를 '유일한 선택지'라 믿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은 그러한 '현실'을 바라보게 하는 동시에, 이를 벗어나기 위한 각오나,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각오 이 둘중 하나를 선택하게 하는 것 같다는 감상을 받는다.    저자는 분명 인간의 법칙을 고발했고, 그 본질을 폭로한 자다.  그렇기에 저자 스스로도 '자신의 소설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굴복이 아닌, 선택(또는 저항)을 하기 바란다는 뜻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결국 '나' (개인) 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은 그 '자유'와 '순종'이라는 가치관의 굴레 속에서 언제나 불만족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처럼 결국 현대인이란  완벽한 속물도 자연인도 될 수 없는 연약한 존재가 되어버린지 오래다.   그야말로 '각오없는 삶'에 익숙해진 인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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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청소일 하는데요? - 조금 다르게 살아보니, 생각보다 행복합니다
김예지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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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인간이 추구하는 최상의 욕구를 가리켜 '자아실현의 욕구'라고 한다.    때문에 단순하게 생각하면 인간이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는이 상위의 욕구를 만족시키만 하면 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바라볼때 어디 그것이 쉽사리 이루어지는 것인가?  실제로 '나'스스의 삶에 있어서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감정은 대단히 큰 상처와 상실감으로 다가온다.   그리 남보다 잘나고 싶은 것도 아니고, 더 가지고 싶은 욕심도 없지만, 결국 나는 나 스스로의 잣대로 인하여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독자로서, 저자의 이야기는 단순히 남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물론 저자는 이 만화로 인하여,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사랑(응원)을 받게 되었지만, 결국 이것이 저자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보상이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책 속의 이미지에서도 저자는 청소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사회인으로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하여! 결국 어른은 꿈만을 먹고 산다는 '사치'스러움과는 다른 현실에 굴복한 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결국 저자는 어떠한 길을 걷게 될까?


그는 분명 젊은 날의 방황과 갈등 속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허나 반대로 '프리랜서'의 길과 '청소일'이 가지는 사회적 시선에 대하여, 큰 부담감을 지니고 있는 대한민국 속 사회인 이기도 하다.   아무리 이념적으로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하지만, 결국 그가 마주한 에피소드를 들여다보면, 역시 이념은 이념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다.   그렇기에 진정 그가 이룰 꿈을 위해서는 먼저 스스로가 만들어낼 속박을 벗어던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책 속에 드러난 '활기찬 주인공'과 같이 비록 지금이 힘들고, 또 어렵다 하더라도, 그에 굴복해 꿈을 내려놓는 선택만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 복잡하고, 또 숨막히는 사회에 나 스스로를 구겨넣는 순간...' 결국 나는 저자와 같은 스스로가 만들어낸 성과란 것을  절대로 만들어 낼수 없게 될 것이다.  때문에 나는 지금도 '이루고 싶다' 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순간을 위하여, 스스로 정한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결심도 했다.   이에 과연 미래는 나에게 어떠한 것을 보여줄까? 그리고 나는 그 과정 속에서 무엇을 남기게 될까?   이에 이 책은 (비록 타인이 걸어간 길이지만, ) 꿈을 향한 하나의 과정이자, 그 증거물이라는 의미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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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인 - 푸른 눈의 영국 기자 마이클 브린이 바라본 한국의 모습
마이클 브린 지음, 장영재 옮김 / 실레북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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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쳐나는 정보, 방송,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첨차 전문성보다는 객관적인 정보를 원하게 되었다.   그러나 크게 정치에 대하여는 생각보다 객관성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도 그럴것이 정치란 수많은 사람들의 요구와 대의를 조정해 보다 공동체의 발전과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기에 이에 매우 정확한 정답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논리적이지 않을 뿐 만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 권력이라는 큰 장애물이 객관성을 회손시키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


그렇다.  결국 정치는 권력을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때문에 국민들의 지지도를 호소하기 위하여, 각각의 정치인이 드러내는 이념과 진형논리 또한 결국 그 어느쪽으로 편향된 주장과, 진단(또한 정책)을 내놓게 하는 원인이 되기 일쑤이며, 물론 그 밖의 언론과 학계 또한 그 영향력에 완전히 자유로워 지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가장 객관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서는 보다 인과관계에서 자유로유운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것이 좋겠지만, 이 또한 자칫하면 탁상공론에 머무르는 듣기 좋은 말만 들을 위험성이 크다.   실제로 (과거)남.북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었을때, 외국의 한 기자가 부득부득 한국행을 선택한 사실이 있었다.     그는 나름대로 한국에 대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 였지만, 훗날 '전쟁에 대하여 너무도 무감각한 한국인'에 대해서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고백하기도 했다. 


이렇게 한반도의 '오늘'과 함께 은근히 드리워진 '냄새?'를 접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곳의 국가와 사회에 녹아드는 것이 제일이다.   그렇기에 결국 30년이 넘는 세월을 한국에서 살아간 이 외국인의 시선은 쉽게 생각하면, 보다 한국의 본질을 엿볼수 있는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 줄것이라는 기대감을 품기 충분하다 하겠다.


그렇기에 저자 또한 '한국인'을 설득하기 위하여 철저한 준비를 했다.


이때 이 책의 크게 두가지로 나뉘어지는데, 이에 첫번째는 저자가 묘사한 대한민국의 과거의 모습이며, 그 이후 점차 미래의 전망을 예측하는 내용을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기에 결국 독자는 그가 얼마나 '대한민국과 한반도를 이해하고 있는가에 대한 확신을 토대로, 그 이후의 주장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게 되며,  이에 나 스스로 또한 담백하지만, 객관적인 여러 주장에대하여 큰 공감을 지니게 되기도 했다.


이처럼 저자는 진형논리와 감정을 떠난, 담백함을 고수하려 노력한다.   물론 그 스스로도 믿는 바가 있기 때문에, 현대의 정책에 대한 많은 주문과 비평이 드러나지만, 결국 이를 엿보고 또 설득되는 것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좌파와 우파, 복지, 일자리, 통일에 대한 많은 가치에 대하여!  문득 점점 격렬해지고, 또 좁은 시야를 가지게 될 때... 바로 그럴때 한번 이 책의 내용을 들여다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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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 서울대학교 최고의 ‘죽음’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1
유성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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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생각하면 우울해진다.    특히 젊은 날 '죽을것을 생각하면' 더욱 더 스스로가 비참한 마음이 들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세상은 과거와는 비교해 화려함과 즐거움이 넘쳐흐르기에, 따로 분명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이 '주제'인 죽음을 생각하고, 또 그 본질을 추구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허나 조금만 주위들 둘러본다면, 결국 나의 주위에는 '죽음의 가치'가 떠돌아다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종교는 죽음 이후의 것을 말하고, 보험은 죽음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것이며, 철학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거나, 받아들이는데 있어 큰 전환점을 마련하여 준다.   그렇기에 책 속의 죽음이란 쉽게 철학에 가까운 가치가 녹아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의외로 저자 스스로가 몸담은 '특별한 직업'이 그 학문에 대한 보다 새로운 시선을 독자들에게 던져주는 양념 역활을 톡톡히 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법의학자다.


물론 과거에는 이러한 직업에 대한 지식이 없었지만, (비교적)최근 등장하기 시작한 드라마 등의 영향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이 직업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이때 방송 속에서 등장하는 법의학자들은 그야말로 '괴짜'가 많다.   특히 그들은 타인보다 자기중심적이고, 활발하며, 무엇보다 죽음에 대한 암울함을 극복한 인물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에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직업에 요구되는 하나의 천성이라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죽음을 가까이 해야 할 학자일 뿐이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과 같이, 저자 또한 매주 시체를 관찰하고, 탐구하는 행위를 통하여, 흔한 의학이 아닌 사회와 죽음 사이에 만들어진 '특성'에 대한 스스로의 정의를 내리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법의학은 죽음에 대한 원인을 발견하는 것에서 부터 시작한다.


자연사, 사고사, 더욱이 범죄로 인하여 생명이 빠져나간 몸뚱아리를 두고서, 오늘날의 사회는 분명히 그 원인을 빠지고, 또 의문점에 대한 철저한 탐구를 주문한다.   그렇기에 때로는 개인의 죽음이 사회 전반에 있어서 크나 큰 영향력을 미치기도 한다.   의문의 죽음과 억울하고 비참한 죽음!   그것에 대하여 사회가 진실을 밝혀내는 것과, 책임을 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결국 국민은 '정의'와 '혁명'이라는 가치아래 그 책임을 엄중하게 추구한다.     그렇기에 결국 이 책은 '죽음'을 말하지만, 이보다 더 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인문과 사회를 아우르는 광범위함이 눈에 들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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