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페이지에 죽음 하나
다니엘 포르 지음, 박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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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인 은 죽음 을 새로운 삶을 위한 출발점으로 보았고, 그리스인은 "종료" 로 보았고, 중세시대 에는 공포의 존재 그 자체였다.

죽음이란, 공포인가, 환의 인가?  뭐...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든 죽음이란,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확실한 존재임에는

의논의 여지도 없다. 

 

죽음과 같은 우울한 장르를 모두가 웃는 "코미디"로 승화시키려는 노력, 블랙 코미디는 그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두려움을 넘고, 고난을 웃어넘기는 인간의 낙관적인 생각과 이념이 만들어낸 웃음의 미학, 이 소설 또 한 그 이념의

가르침을 충실하게 따른다.

 

책의 주인공은 여느 소설에 등장 할 법한 평범하고, 가여운 존재이다. 약혼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불쌍한 남자.

소설가라고는 하지만, 뭐 하나 히트 낸 책도 없고, 가진 것 이라고는 낡아 빠진 아파트와 무책임하고, 불결한 생할 덕분에 입주한

룸메이트 "바퀴벌레군"(아니면 양??) 뿐 인 처량한 인생..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을 버린 여자에 대한 그리움과, 하룻밤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 줄 존재를

찿아야 한다는 수컷으로서의 본능에 충실한 훌륭한?? 인격체다.

그러한 주인공의 주위에는 (*본문의 2~3 페이지 마다)  항상 죽음이 함께한다. 길을 가면서 목격한 교통사고로 사람이 죽고 

자신이 다니는 휘트니스 센터의 트레이너가 죽고, 이웃집 채소가게 아줌마가 죽고, 오랜만에 통화한 첫사랑이 죽었다,

심지어는 점심으로 질겅거리며 씹어댄 6개의 "생굴"도 마찬가지...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그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친했던 사람, 아는 사람이 죽었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의 삶과 상관없는

타인이 일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헤어진 여자와 재결합 하는 것이고, 자신을 "몸짱"으로 개조하는 것이며, 자신과 정열적인

하룻밤을 보낸, 끝내주는 몸매의 아가씨가 "트랜스잰더" 였다는 것을 뇌리에서 완전히 삭제 하는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제 3자와 같은 위치를 차지한다. 주인공에게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다. 즐거움도, 두려움도, 신경쓰이는 귀찮음도..

그 무엇도 아니다.   우리들에게도 죽음이란 그런것이 아닌가? 살면서 "난 죽을거야" 라며 공포에 떨고 사는 사람이 몇 이나 되나?

"죽음이란 멋진거야" 라며 들뜨며 살아가는 사람이 몇 이나 있나?  그렇다. 죽음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오면 오는거고 아니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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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더 메이드 살인 클럽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북스토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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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이란 예측하기가 어렵다. 획일화 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가치를 찿으려는 사람도 있고, 사회보다는 자신만의 개성을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밖에도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든 "일"을 벌이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죽음에 대한 동경" 일본인들의 문학 작품이나, 정서를 담은 작품들을 보다 보면, 그들은 죽음에 대해서 상당히 호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사람들 처럼, 생활고에 지치고, 각박한 사회나, 공부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거두는 것도 있지만,

자신만의 "만족감" "철학적인 이유"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 떄문이다.

 

 

이 책의 주인공도 이와 마찬가지의로 "죽음"을 동경한다.  그녀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주변의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가정의 행복을 최고로 여기는 가정적인 어머니와 아버지를 둔 평범한 여고생이다. 그리고 어느 것 하나 불편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지만,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고,무언가 부족한 듯 불만을 한 가득 지닌,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여고생 이기도 하다.

삼삼오오 모여서 의미도 없는 수다를 떠는 또래의 여자들, 애니메이션의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벌리는 "곤충 클래스"의 남자들,

잘 나가는 우등생이 존재하면, 찌질한 열등생 또한 존재하는 이 세상의 이치. 그리고  "반복되는 시시한 일상"

모든것에 흥미를 잃어버린 그녀가, 같은 반의 무뚝뚝남 도쿠가와를 만나면서, 이야기는 상당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앤" 은 "도쿠가와"에게 죽음을 주문했다. 그것도 단순한 죽음이 아닌, 세상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한 충격을 주는 그러한 죽음.

엽기적이고, 고어적인 죽음, 그러면서도 아프지 않으면서도 깨끗하고 안전한 죽음.. 이치에 맞지 않는 엉망진창인 주문이지만,

2명의 청소년들은 살인노트를 만들고, 예행 연습까지 해 가며 그날을 위한 준비를 착착 해 나간다. 

 

그러나 결국에는 비정한 살인마도, 불쌍한 비사체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계획을 실행 할 용기도 부족했고, 애초부터 의지도 없었다.  

그들은 한 때의 엽기적인 소꿉놀이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비정한 어른도 되지 못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도 되지 못한 자아들의 엽기적인 소꿉놀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그러나 그들이 계획했던 잔재들 ("살인노트" "예행연습을 했던 사진들")은 계속 남아, 무책임하고, 충동적이였던

그들의 괴거를 계속 회상하게 할 것이다.

 

먼 훗날, 어른이 된 그들은 과거 그들이 만들었던 "살인노트" 를 보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당시에는 그렇게 비장하고 진지 했었는데... "옛날의 나는 이렇게 유치 했구나.. 하면서 말이다."

 

확실히 죽음은 모든것 을 끝낼 수 있는 수단이다.   죽으면, 혼란스러운 마음도, 우울한 마음도, 격렬한 마음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한 때의 무모함으로 끝내기에는 우리들의 인생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자신의 인생을 괴롭히는 일들이 영원히 이어지는

일은 없다.  나중에는 그들의 주인공처럼 한 때의 "부끄러웠던 추억" 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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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캔들의 여인들 - 역사를 바꿔버린
엘리자베스 케리 마혼 지음, 김혜연 옮김 / 청조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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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역사는 속박과, 불평등의 역사라고 한다.

속된말로 인류가 땅에 "알박기" 시작 하면서, 여인들의 역사는 어두운 그늘속에 지배되어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인들은 남성들에게 복종해야 했고, 남성들의 정치도구가 되어 휘둘리며, 심지어는 심심풀이용(노예) 으로 팔리기도 했다.

힘이 모든것을 지배했던 과거의 시대부터, 모든 인간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21세기가 되기까지, 여인들은 남성들과 동등한 지위와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물론, 세계사를 보면, 남성들을 위해서 "현모양처" 가 된 여성들이 더 많았지만, 남성을 능가하는 능력과 정치적 감각으로,

남보다 위에 섯던 "당찬 여성" 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그러나 역사의 평가는 그녀들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현모양처로 이름을 높인 신사임당 (신인선), 치요 와 같은 위인들은 "이상적인 여성들의 귀감" 이 되어 사람들의 좋은 평가를 받지만,

남자를 뛰어넘어 자신의 가치를 높었던, 당찬 여인들은 그 기세 때문에 뜻밖의 악평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을 기준으로 그들을 평가 하는가? 

 

"여인천하" 처럼 권모술수로 신분을 상승시킨 장희빈, 남편 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기틀을 잡고, 그를 대신해 권력을 차지한 여인

여치(여태후), 모두가 자신의 영달과 가치관의 상승을 위해서 모든것을 이용해 "승리한" 여인들 아닌가?

제한 된 세상 안에서, 자신이 이용 할 수 있는 모든것을 이용해 자신의 가치를 높이는것, 그것이 "지혜"라면 옳은 것이고,

"미모"라면 천박한 것인가?  분명, 장희빈은 마지막에 사약을 받아 죽음으로서, 악녀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오로지 그들이 맞이했던, 결과만을 보고 그들의 가치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잔인하다고 본다.

 

 

남자들도 정치적인 연줄이나, 남을 밟고 올라서는 "권모술수" 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반대로, 평생 쾌락과, 놀음을 쫓는 사람도 있었고, 이완용 처럼 나라에 막대한 피해를 준 자도 있으며, 여성을 방패삼아 권력을 누리는

자도 많았다. 같은 행동, 같은 가치관을 향해 달렸지만, 어째서 "남자" 와 "여자 라는 것 만으로 180도 다른 평가를 받아야 하는가?  

어째서, 카사노바는 희대의 "로멘티스트" 이고, 마타하리는 희대의 "요녀" 로 불리워야 하는가?

 

이 책 "스캔들의 여인들" 도 그러한 의문점을 드러내는 책 중 하나다.

책 속에는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잔 다르크" 부터, 그저 자신이 좋아했던 일을 밀고 나갔던 여성 비행사 "아멜리아" 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미모를 이용해 부자들과 지도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던 여인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꽃피워 보지도 못하고,

사회의 룰, 남자들의 그늘, 아래 짖눌리다 생을 마감한 여인도 있다.  

 

이 책이 말하는 "스캔들"은 문란하고 음란했던 여성들의 문화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전면에 나설 수 없었던 남성들의 세상에서, 결코 대중적이지 못했고, 다소곳하지 못했던  "기센 여성"들의 이야기 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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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 - 단 하나의 사건이 역사를 바꿨다
김종성 지음 / 지식의숲(넥서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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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지도자 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선택"이 아닐까 한다.

나라를 위해서, 왕실을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저마다 추구하는 목표는 다르지만,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선, 언제나 선택 이라는 중간지점을

지나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불가항력의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면서, 어찌 옳은 결정만을 할 수 있을까?   어제와 오늘의 "정답" 이라도, 

다음날 엔 "오답" 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인간의 사회의 정의 이다.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하지 않기위해서 역사를 배운다고 하지만,

아무리 많이 배워도, 크게는 국제분쟁 부터, 작게는 자기 자신의 고뇌와 문제점까지,

무엇 하나 확신이 드는 일이 없다.

 

언제나 우리들은 예측 할수 없는 미래의 불 확실성에, 불안한 생활을 이어가야만 하고, 그 속에서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역사가들에게 "만약"이라는 단어는 일종의 금기와 같다.

만약에, 그때, 이렇게 했다면, 매사 좀 더 신중했다면, 더욱 나은 미래가 우리들

앞에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상상..

역사적 사실 위에 쌓아올린 "허상"의 금자탑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중독적이다.

 

올바른 역사관 없이 품는 "만약에"는 대단히 위험하다.

그러나 올바른 역사관이 바탕이 된다면, "만약에" 는 새로운 역사적 진실을 발견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 책 "조선을 바꾼 반전의 역사"는 조선왕조 500년을 무대로, 독자들을 "만약"의 세계로 인도한다.

책이 다루는 주제는 크게 (순간) (죽음) (여인) (남자) (세계사) 로 나눌 수 있다.

태조(이성계)의 위화도 회군부터, 마지막 황제(고종)의 한.일 합병에 이르는 장대한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나라를 지탱해 갔는가?  권세과 부귀를 위해서 살다 간 자부터, 

평생, 나라만을 바라보며 살다 간 사람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 턔어나고 죽었는가? 그리고 그들이 "선택"한 결정들이

조선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쳤는가?

과연 그 때 그 사람들이 조금만 더, 현명했다거나, 멍청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러 갔을까?

    

비록 상상과 예측을 해 볼 뿐이지만,  그 상상 만큼 재미있는 일이 있을까?.

게다가. 책의 저자가 "자신이  지금껏 연구한 "자료" 그리고 역사적 "사실"을 믹스해 내놓은

새로운 역사서 이니 만큼, 의외로 내용들 대부분이 신뢰성이 있다. 

가벼운 가십같은 황당 무계함 없이, 오히려 오늘날 왜곡되어 전해오는 역사들의 "진실"을 

바로잡는데, 큰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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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도서관에 끌리다 선생님들의 이유 있는 도서관 여행
전국학교도서관담당교사 서울모임 엮음 / 우리교육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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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8월, 이명박 대통령은 광복절 행사에서 " 오늘 대한민국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음을 확인합니다." 라는 선언을 했다.

한국은 더 이상 계발 도상국이 아닌, "선진국" 이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선언 한 것이다.

물론, 대통령이 선언한다고, 당장에 선진국이니, 위기니, 호경기니 하면서 법썩떠는 것은 좀 그렇지만, "선진국" 이라는 명칭을 얻기

위해 국민들이 그동안 감수해온 고생을 생각하면, 의외로 감회가 새롭기도 하다.

 

본인이 학생 일때만 해도, "선진국을 향한 질주"는 그야말로 광적인 것이였다.(지금도 그렇지만)

선진국이 되고 싶다는 국가의 바램은 곧바로 "당시의 문화"가 되었다. 

 

그 문화의 등장으로 인해서 외국을 다룬..  예를 들어  "내가 외국에 나가 봤는데.. 역시 선진국은 달라!!  역시 한국은 아직도 멀었어!! 

한국인들은 의식을 바꿔야되!!" 와  같은 유럽, 북미 예찬 서적이 등장했고 그것이 우리들의 의식을 점령했었다.    

 

나는 종종 뭐든지 세계최고!!  세계최초!! 최고!! 만을 외치며 달려온 국가와, 국민들에게, 우리들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 서적 "북미 도서관에 끌리다" 는 그러한 "자기 반성의 의식"이 만들어낸 에세이형 서적이다.

다른 사람의 떡이 더 커보이고, 다른 사람것이 더 좋아 보이듯, 우리들은 자신의 환경, 직업에 따라 한국에 대해서 불만사항을

지니고 있다.

 

지식층인 "교사" "사서" 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도서관, 교육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점점 적어지고, 교권은 추락하며, 상급클래스의 교육이란, "수능을 위한 주입식 교육"

이라는 고정관념이 성립되어 버린 한국의 교육환경에 대해서, 일종의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북미로 갔다. 그리고 그곳의 환경을 보고 듣고 느끼며, 한국이 앞으로 추구해야 할 교육의 비젼을

제시하는 책을 내놓았다 

 

그러한 교육자들의 열의와, 취지을 담은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어릴적 지겹도록 세뇌당했던 "외국은 훌륭한데 한국은 아직도 멀었다." 와 같은 류의 책에 불과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이성적으론 그들의 생각에 동조하지만, 한국이 외국에게 꿀리는 것이 탐탁지 않는 (감성적인 애국심) 마음이 드는 것이, 이 책이

불편해지는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배울 것은 배워야 하지 않겠는가? 

비록 교육자는 아니지만, 이 나라의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진 사람중 하나로서, 나는 이 책을 읽어 보기로 했다.

 

 

교육자들은, 북미 사람들의 "교육 의식" 에 대해서 놀라움과 부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캐나다 에선 도시를 계획할때 도서관, 학교, 공원등 시민들이 이용하는 "편의시설" 의 배치를 제일 먼저 정한다.

특히 도서관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은 "계몽적"이다. 그들 도서관에선 책 뿐만이 아니라, 만화, 비디오, 악보, 음반까지 빌릴 수 있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전용실, 컴퓨터실, 놀이방, 이 따로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교육 유도 프로그램, 학생들을 위한 교육 클럽지원,

활동이 활발하다. 도서관의 문턱도 낮아, 전문.국보급 자료들도 16세 이상자라면 (예약자에 한해)  누구라도 열람 할 수 있다.

 

게다가 정보의 양도 광범위하다.  미국의 "미 의회 도서관" 같은 경우  "만약에 한순간에 문화가 소멸해도 미의회 도서관이 건재

하다면 복구는 시간문제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정보의 양은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정보에는 적. 아군 좋은것 나쁜것이 없다. 심지어 도서관에는 북한에 대한 정보도 있다. 노동신문, 북한에서 출판되는 소설에

역사, 문화 음악, 정치에 대한 것 모두가 그곳에 수집되어 있고 열람에 제한도 없다.      

어른들의 도서관 이용률도 상당하다.  기본적으로 개인당 대출수가 20~30권에 이르며, 그들에게 도서관이란 일종의 "공원" 과 같은

인식을 지니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도서관이란, (도서를 관장하는 관공서) 라는 인식이 강하다.  시설도 결코 적지않고. 이용률 또한 상당하지만,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도서관이란, "공부를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건물" "책을 빌리는 장소" 그 이상의 의미가 없다.

그야말로 "도서관이란 정보를 열람하고, 습득하는 장소" 인 것이다.

 

교육자들은 북미의 도서관에서 무엇을 보고 부러움을 느꼇는가?

단순히 대리석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은 건물도, 정부의 아깜없는 지원도,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교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도...  분명!! 부러웠겠지만.... 교육에 대한 북미 사람들의 "인식" 그것이 제일 부러웠을 것이다.   

 

그들은 교육을 "데이터. 정보" 라고 생각하는 한국의 교욱환경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교육이란 한순간에 몰아서 습득하고 잊어버리는 정보를 필사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교육은 개인의 행복과 사회의 건강함을

지키는 원동력이자, 평생동안 함께 해야할 동반자이다. 교육은 공부가 아니다.  

도서관의 건립을 위해서 재산의 절반을 내놓은 전설의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도" 미의회 도서관의 건립을 위해 모든것을

걸었던 "토머스 제퍼슨"도 공부가 우대받는 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신념과 재산을 쏟아부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원래, 국가를 위해서 "정보를 모으는 장소" 를 만들었다.

 

암울하게도.  세계의 수도, 공화국의 위상은 높은 건물이 아닌 "정보가 정한다" 라는 인식이 도서관 문화를 만들었다.

편식없는 정보의 다양함, 광범위함은 장점이였지만, 엘리트를 위한 정보의 독점은 분명히 단점이였다..

민주주의 의 발전으로 정보의 문턱이 낮아짐으로 인해 사람들은 정보를 이용히고 누리는 방법을 깨우쳤다.

그 깨우침이 오늘날의 "선진국"을 만들었다.

 

그 점에서 한국은 아직 미숙하다.

한국은 정보의 신속함, 특히 인터넷 네트워크 구축망 에 대해선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러한 네트워크를 한국인들은 무엇을 위해서 쓰는가?  단순히 검색 엔진을 이용한 웹서핑, 커뮤니케이션이라고는 하지만,

공허한 문자질에.. 게임에..쇼핑에 쓰고 있지 않은가?  

인터넷.. 정보의 신속함과는 다르게, 정보의 빈약함에 실망해 본 적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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