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역사 - 표현하고 연결하고 매혹하다
샬럿 멀린스 지음, 김정연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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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했던 역사책에 의하면 과거 인류가 처음으로 창조한 무형의 예술은 '음악' 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유랑하며 채집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뼈로 만들어낸 플루트와 같은 유물들이 출토된 사실 등을 비추어볼때 이에 인류의 조상들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때 과연 어떠한 음율이 흘렀을지 그 궁금증이 커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음율을 알 수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악기의 존재를 증명하고 이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무형의 음율을 어느 체계로 정립하고 기록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 현대인들이 오랜 구석기인의 '가락??' 을 알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미술의 영역은 위의 음악과 비교해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최초의 미술이 탄생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먼저 인류의 창의적 활동이라 한다면, 사냥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벽화가 이를증명할 것이고, 또한 인위적으로 색채를 내고, 이를 덧바르며 표현한 기술과 기법 또한 인류 스스로가 오롯이 자연의 것을 수용하며 만족하는 존재가 아닌 필요에 따라 자원을 활용하고 변형할 수 있는 존재였음을 일찍이 증명한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오랜 시간동안 인류가 남긴 그림 등이 증명하는 인류가 어떻게 색을 이해하고 또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기술과 기법 등을 축척하여 왔는가에 대한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 나아간다.

실제로 미술사는 당시 어떠한 특징과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시대적 굴레에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시도 등을 통한 변화를 이끌어낸 '인간' 과 '현상'에 주목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을 포함한 당시 예술적 영역의 확대와 변화는 단순히 서양 한 지역에서 발현된 역사적 현상(또는 사건)이 아닌, 서양 전체의 계몽적 가치와 선진성, 또는 오늘날 미술에 필수적인 인본주의, 개인의 창의적 발상의 표현, 원근법, 미지의 탐구와 같은 여러 가치의 토대를 만들어낸 시대로서 그 마땅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이 책이 향하는 발전의 역사는 오래도록 변화를 갈구한 결과이자, 앞으로 인류가 무엇에 더 긍정적인 가치를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물론 그 해당 미술 지식이 얄팍한 내가 보기에, 요즘의 최첨단의 패션과 현대 미술 등의 '표현'에 익숙해지고 또 그것을 이해할 날이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이 책의 주장에 힘입어 보다 과거와는 더 다르고, 나은 것을 향한 방황?을 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 보기로 노력해보자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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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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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의 스페인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에 책을 읽기전 위의 이미지와 제목 등을 통해 유추해 본다면, 역시나 이베리아 반도의 '열정적이고도 활기찬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게 되면, 단순히 해당 나라의 상식을 벗어나 저자 스스로의 자아와 감성을 통해 마주한 비슷하지만 새로운 모습의 스페인이 표현되어 있기에, 이에 나는 그 무엇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보다 풍요로운 인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먼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곳의 음식을 먹도 술을 마셔야 한다. 가려는 나라가 멀수록 신의 가호 아래 더 배부르게 먹고 마셔야 한다. (...) 세상의 모든 민족이 다양한 방법과 수단은 물론 다양한 향신료와 과정을 동해 지상의 천국을 이루고자 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

43쪽

실제로 아무리 시대가 다르다 해도 여행자로서 스페인을 접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굵직한 장소들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온전히 작가가 느낀 표현이 아니라면 그가 방문한 안달루시아와 세비아와 같은 도시와 거리, 건축물들과 미술 작품 등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느 여행기를 통해 마주할 수 있는 정보와 비교해 그리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저자의 문학적 소양으로 표현한 스페인과 그 속의 사람들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 패션과 문화와 같은 감성을 투영하여 표현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그 문화가 누그러진 투우와 같은 '오락'의 경우에는 이 책과 같은 과거의 인물들의 기록이 아니라면 쉽사리 그 열기와 특징 또는 리얼한 묘사 등을 접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저자 역시도 프로들이 펼치는 드문 경기들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투우에서 보여지는 '일방적이고 불합리한(또는 불공평한)' 경기에 새삼 잔인함을 곱씹는 경험을 한다.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후 새로워진 스페인에서 이전처럼 경기장에 투우 소의 피가 흐르지 않게 된 것도 이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인식이 더 넓게 퍼져 상식선에 올라섰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내가 스페인어를 충분히 알았더라면 그에게 다가가 말했을 것이다. '이봐요 때때로 우리에게도 잘못된 일이 생길 때가 있어요. 하지만 대중의 호의에 의존하는 사람의 빵은 쓴 법이지요'

150쪽

결국 그가 표현한 '기사도 정신에 따라 명예에 목숨을 거는 싸움'은 이제 스페인의 땅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걷던 거리를 함께하던 소수민족들의 개성과 저마다의 문화를 철저히 간직한 모습은 또한 '세계화'의 흐름에 보다 옅어졌을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나는 처음 이 책을 언급하면서 먼저 저자가 표현한 스페인의 모습 그 자체에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물론 이에 저자의 소양이 제일의 조건이라 했지만, 어쩌면 그 당시의 스페인이 지니고 있었던 풍경과 생동감 또는 다양한 색체의 삶의 모습이 보여졌기에, 이에 저자 또한 이와 같은 기록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후대의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스페인이 이 다채로운 길을 계속해서 걸을 수 없었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묘사된 기록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나름의 '후대의 사람으로서 마주 할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역시 여행과 역사, 그리고 인류의 가치를 살피는 인문학적 요소에 있어서도 이 책은 그 나름의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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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로 보고 그림으로 듣는 음악인류학 - 불교와 세계종교
윤소희 지음 / 민족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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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장품 중에는 조금 특별한 음반이 있다. 그것은 바로 [고고학 연구로 만들어낸 고대 이집트 음악] 이에 짧게 설명하자면 피라미드 부조에 기록되어진 자료를 바탕으로 음색을 연구하고 복원한 것이라던데... 결국 그 음악을 들어본 입장에서 제일 먼저 들었던 감상은? '내가 지금껏 알고 있었던 고대 이집트 음악과는 전혀 다르다." 라는 것이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새로운 지식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나'에게는 어떠한 이익이 있을까? 물론 내가 다른 여러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것도 불가능할 뿐만이 아니라, 애초부터 고대의 음악의 진실여부 따위는 일부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관심밖의 지식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이 책의 주제인 불교 음악 또한 현대에 이르러선 위와 같은 지위에 놓인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깊이 생각해보면, 오래도록 한반도의 역사속에서 뿌리 내려온 한민족의 음악이니 '귀중하다' 라고 정의할 수 있겠으나, 이미 사람들의 귀와 입을 통해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와 비교한다면 그 영향력은 매우 빈약하기만 한 것도 사실이겠다.

불교음악에 대해서 무엇을 써야 하나... 단순히 불교의 음악이 지금껏 한국문화에 어떠한 존재로 남아있게 되었는가 에 대한 내용? 아니면 불교음악이 예식, 미술과 접목하여 그 특유의 종교관 형성에 얼마만큼 공헌하였는가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정의를 써내려가야 할까?

이처럼 오래도록 역사에 흥미를 둔 나 역시도 생소하고 낮선 한국의 불교에 대한 내용을 써내려가기위해서 그 나름대로의 공부와 준비가 필요했다.

그러나 굳이 음악을 들어도 생소하기만 하고, 도리어 외국의 클래식이 더 친숙하게 느껴지는 '나' 허나 그 옛날의 불교 음악인들은 적어도 스스로의 음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손가락을 이용한 기교의 현란함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만족시키는 수단이자 평생을 추구하는 목표였던 성불, 즉 부처님에 다가서기 위한 과정 속에서 그 인간 스스로가 번뇌 등을 벗어나는 무아지경에 이르기 위한 방법중 하나로서 소리를 창조해낸 것이였다.

때문에 불교의 음악은 단순히 세속을 벗어난 종교의 음악이 아닌, 당시 모든 인간이 목표로하는 깨달음 또는 때때로 괴로운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 일부를 치유하는 역활을 했다는 것에서 나름 오늘날 인문학적 가치를 지닌 것이라 이해가 가능하다. 그야말로 인간의 삶과 일상 그리고 의식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은 어떠한 상태에 도달한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에 도달한 과정 중 하나...

그야말로 오늘날 사람들이 스스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신적 휴식과 안정) 음악을 듣는다고 한다면 역시나 옛 사람들 또한 오롯이 스스로가 지닌 목적을 가지고 음악을 창조하고 또 접근하였음을 이 책을 통해 다시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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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세 시대 - 물과 인류의 위기
피터 글릭 지음, (재)물경제연구원 옮김 / 세종연구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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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일방적인 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인간이 지금까지 이룩한 '역사를 만들어낸 방법론'에 있어서는 그다지 변한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책의 주제가 된 수원을 다루는 방식과 그 역활에 대한 내용에 이르게 되면 예로부터 인류가 물을 사용하기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방법... 예를 들어 식수와 농업, 교통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에 유용하게 활용해 왔는데, 이에 그 방법이 활용된 까닭 중 하나는 본래 물이란 인류에 있어 필수적인 자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비교적 풍부하고도 무한한 자원이라는 인식이 은근히 깔려 있지 않은가 한다.

실제로 수자원은 오랜 역사 동안 비교적 험하게 다루어졌다. 물을 댐에 가두고, 산업 폐기물을 바다의 회복력을 믿고 무분별하게 방사했다. 물론 과거에는 바다를 포함한 수자원이 심각하고 회복불가능한 파격을 입을 것이라는 경고는 적은 수의 환경단체들이 주장하는 바른 소리에 불과했지만, 오늘날 뒤돌아 생각해보면 이제 일반인들도 기후변화와 녹아내리는 빙하, 플라스틱 등이 떠다니는 쓰레기섬의 존재의 심각성을 알기에, 미리 조심하고 대비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럼에도 물은 여전히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자원이기에, 이에 머지 않은 미래에 닥쳐올수 있는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의 수자원을 관리하는 기술과 정책 등 다양한 방법론 또한 보다 경제적이고도 환경친화적인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 또한 물을 사용하는 인류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내용을 알아가는 것과 함께, 앞으로 수자원의 중요성이 얼마만큼 높아질 것인가에 대한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있다.

물론 이러한 주제는 각각의 사람이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흥미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있을 것이고, 또 그 부분을 더욱 중요하게 읽어내거나 아니면 그저 단순하게 넘기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여유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 재앙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환경오염으로 인한 물의 부족 뿐만이 아니라, 싱크홀사고 등으로 볼 수 있는 무분별한 지하수의 소비와 같은 '먹을 수 있는 물의 부족'과 초원의 감소이다. 이제 사람만이 아닌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영토가 좁아질 것이다. 과거의 잘못으로 오늘의 빈곤을 불러온 만큼 다시끔 언급하지만 미래 인류 스스로가 깨끗한 물을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면, 이후 어떠한 소비를 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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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나의 이단자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 지음, 이관우 옮김 / 작가와비평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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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마주하면서 나는 문득 이러한 상상을 해보았다. 만약 내가 영화감독이라면... 특히 주인공인 남학생이 오래도록 집과 학교 밖에 오르는 모범생 같은 삶을 살아가다가, 어느 한 순간 우연히 눈에 들어온 상대에게 이성적 끌림을 느끼게 되었을때! 과연 나는 그 주인공의 내적 감정을 시작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혹여 그것은 번개를 맞은 것 같은 짧은 격렬함일까? 아니면 하늘에서 눈꽃이 내리는 것과 같이 느리지만 영원할 것 같은 황홀함일까? 더욱이 경험없는 그가 나름의 사랑의 감정을 완성시킬때, 과연 상대를 마주하며 어떠한 모습을 보이게 될까... 이처럼 위의 다양한 상상을 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 스스로가 어느 사랑의 형태를 표현하고자 할 때, (흔히) 그들이 처한 환경과 경험 등에 기댄 사실적인 묘사가 아닌, 대상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의 이미지 등에 빗대어 비유하거나 또는 은유적으로 둘러 표현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어느 순간부터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하려고 할 때' 나는 보다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알게 모르게 '낭만주의의 문학사조'를 따르려 했다. 그러나 현실의 삶을 살다보면 의외로 위의 '아름다운 문장의 포장'은 사랑의 시작과 완성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상대에게 나의 진실됨을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볼 때, 나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사조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이 소설의 이야기야말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사랑의 본질'에 보다 현실적으로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소설에 표현되는 여러 문장들을 마주하면서, 나는 해당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문장들의 난해함에 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소설의 줄거리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내가 생각하기에 짧지만 분명한 소설의 흐름과는 달리, 그 와중 주인공이 느낀 감정에 대한 저자의 표현... 그야말로 주인공이 오늘날까지 쌓아온 지성과 상식,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또 다른 감정이 개입되고 또 지배 당할때.,' 이른바 주인공의 내면에 피어나는 감정의 모습은 흔히 '첫사랑의 순수성'을 이야기하는 다른 소설들과 달랐으며, 특히 지금껏 종교인(사제)로서의 정체성과 점차 거부할 수 없는 감정 사이에서의 혼란에 대한 묘사 등이 보다 '솔직하기에' 이를 쉽사리 받아들이기 껄끄러웠다.

다만 이미 21세기의 '막장 스토리에' 면역이 된 나에게 있어선 이전 '원초적 본능'에 해당하는 위의 이야기 따위는그다지 파격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해당 글이 지어진 1918년에는 아직 카톨릭이 지니는 종교적 가치와 함께, 낭만주의적 가치에 입각한 이성과 합리성이 사회의 미덕으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에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딸을 사랑한 사제의 이야기와 당시 사회 전반에 뿌리깊은 도시노동자의 (저임금과 착취 등의) 가혹한 현실을 과감하게 드러낸 저자의 '사실적인' 문학적 색채는 흔히 파격을 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잡은 단점.... 이 책의 표현법을 빌리자면 '이교도적 결함'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우는 마치 '거울과 같은 역활'을 해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감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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