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역사 다이제스트 100 New 다이제스트 100 시리즈 11
이강혁 지음 / 가람기획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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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과연 어떠한 것을 떠올릴까? 물론 대표적으로 김치,비빔밥과 같은 먹거리부터 시작해 경복궁,불국사,고려청자 등 오래전부터 한반도 문화의 정수로 알려진 전통적인 장소나 건축물 또는 유물의 존재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최근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는 문화 또한 빼놓을 수 없으니 소위 대한민국을 어느 단어 등에 녹여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든다.

이처럼 다이제스트라는 단어와 같이 이 책의 내용 또한 어느 단어를 통해 스페인이라는 국가를 가장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있다.

그야말로 정열과 태양의 나라, 축복받은 기후와 자연을 지녔으며, 과거 대양을 누비며 세계의 제국을 목표로 여러 역사적 사건을 일으킨 국가... 이처럼 책을 접하기 이전부터 나름 스페인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그 깊이를 알아가는 와중 스페인은 보다 복잡하고도 비극적이지만 그만큼 감내하고 극복한 과거를 지닌 국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의 이야기를 두고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또 이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강대국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생기기 이전, 그 땅에서 부흥하고 몰락했던 많은 국가들과, 영웅들의 이야기, 그리고 오늘날의 스페인 곳곳에 자리잡은 건축물과, 전설, 특별한 관습들이 무엇때문에 만들어졌는가? 하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분명 역사를 넘어서, 스페인에 대한 이해를 돕는 재미있는 글로서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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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공영방송 - 국민과 함께 공영방송 새롭게 정립하기
박종원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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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소위 '텔레비전'이라 불리우던 기기는 나름 당시 사람들의 하루에 있어서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월드컵 경기 방송 뿐만이 아니라, 큰 인기를 끄는 드라마 등이 방영될때면 같은 시간대 온 가족이 거실 앞에 모여 방송을 시청했다. 그리고 모두가 보았던 뉴스 방송 등을 주제로 다음날 사람들의 가십거리가 결정되었으며, 때때로 그것은 커다란 중론이 되어 사회 전반에 다양한 현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보다 다양하고 풍요로운 매체들 덕분에 개인은 스스로의 취향과 선택의 자유를 누리며 자신만의 정보와 지식을 쌓아간다. 더욱이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원하는 만큼 정보를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은 사회적으로도 개인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때문에 이전 공용방송 수신료 분리징수라는 논란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들은 소위 개인의 자유를 먼저 우선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어 "나는 TV를 보지 않는다." "강제성을 지닌 무조건적인 징수는 불합리하다" 라는 주장이 받아들여져 결국 지금 현재 법률.행정상 분리징수가 가능해졌으며, 이에 인터넷에는 해지방법, 납부 논란과 같은 현실적인 방법론 뿐만이 아니라, '왜 공용방송이 필요한가?'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다양한 주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방송의 자유는 언론 출판의 자유에서 도출되며, 주관적 특성뿐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객관적 제도이며, 수신자의 이익을 고려하는 공적 기능이 포함되는 복합적 성격을 가진다. (...)

방송의 자유 주체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 편성의 자유가 침해될 경우 공영방송 노조와 경영진의 갈등이 계속해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

93쪽

그렇기에 KBS는 이전보다 더 공적 재원이 부족해진 현실을 겪으며, 사실상 방송시설을 유지하는 것에도 무리가 따른다고 주장하고 있다. 더욱이 '정부와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된 방송'이라는 공영방송 특유의 형태를 지키지 못할수도 있다는 걱정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드러나는 사장과 이사진의 선임과정에서 보여지는 잦은 충돌에서 보여지는 것과 같이 이미 서서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때문에 오늘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또한 가까운 미래에 있어 공영방송이 '왜 필요한가?' 라는 주장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 책은 보다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법률로서 구체화되어야 하며, 보다 현실적인 수신료와 그 징수제도를 정비하고, 더욱이 방송 자유의 주체가 강한 정부나 기업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경영과 방송 기획에 있어서 완전한 독립체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KBS를 비난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공영방송이 정치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친 정부적 형태의 방송 구성을 펴는 것에 있다. 안타깝게도 대중의 인식과는 다른 단어와 주장 또는 생각하지 못했던 방송 등이 드러나는 현실을 보면서, 과거 국민에게 봉사하는 방송, 취약자들에게 최소한의 공정한 방송과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본래의 의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에 자주 떠오른다.

세상의 많은 기업이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면' 최소한 공영방송을 표방하는 방송국은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정의의 나침반' (중심) 으로서 다른 기준 위에 서야 마땅하다. 어째서 공영방송은 수신료의 가치를 지켜 나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왜? 국민은 수신료를 내와야 했는가? 그것은 오롯이 내가 낸 돈이 아깝지 않은 방송을 즐기기 위한 것 만이 아니다. 공영방송은 여느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아닌, 국민의 방송으로서 잘못된 것에 맞서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존재이유다.

결국 대들보가 기울면 집이 갈라지고 무너지듯이 최소한 사회적 정의의 대들보로서, 공영방송은 그 본래의 가치관을 지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국민 또한 나름의 후원을 이어 나아가야 마땅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러한 필요성을 계속해서 주장한다. 만약 이 세상에 정의와 진실, 사회의 올바른 방향성이 있다 하고 한다면... 이에 국민 또한 이를 위한 수단이자 지표로서 공영방송을 마주하고 또 신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느 방송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와 후원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정의하자면 공영방송에 재원을 마련해주는 것은 대한민국의 국민이 최소한의 정보를 취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필요한 '봉자사'들을 지원하는 소비... 즉 대의의 가치관을 위한 소비의 한 종류라 생각하는 것이 올바르다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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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 이성 개념의 변천사
헤르베르트 슈네델바흐 지음, 나종석 옮김 / 북캠퍼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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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처럼 오래도록 지구상 어떠한 종과 비교하여, 특별하고 우월한 종임을 주장하기 위하여 활용된 가치관은 물론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에 있어서 당연하게 공유되는 하나의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학술적 깊이에 따른 또 다른 질문인 '무엇이 인간다움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정의는 과거와 현재에 이른 긴 시간 동안 보다 명확한 해답에 도달하기는 커녕, 보다 다양해진 가치관에 따라 저마다의 다른 질문과 증명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세상에는 '이성과 지성의 영역을 확장한다는 개념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생각보면 인류는 온전히 지성의 가치를 만들어낸 존재로서,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인간의 신체조건과 발달 능력... 정리하자면 뛰어난 두뇌와 학습능력을 바탕삼아 개인과 집단의 활동을 통해 여느 지식적 성과를 축척하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세계를 구성하는 어느 절대적인 본질이 존재하고, 인간은 그러한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서 '사고하는 능력'을 발달 시켜온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인간을 절대적인 지성체가 아닌 우등생에 불과하다는 주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인식에 있어서 일상 이성의 한계를 뒤로하고 순수한 사유를 통해 세계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하는 능력인 사변 이성은 그리스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에서는 이성 일반의 최고 형상이였다. 따라서 이렇게 이해된 이론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활동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53쪽

실제로 인간만이 선과 악을 정의하고, 타인과의 감정을 공유하며, 보다 집단의 가치 아래 공유 할 수 있는 '진리'와 '도리'의 가치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접했던 서적 침팬치 폴리틱스는 다른 뛰어난 영장류의 공동체에서 보여지는 권력의 활용과 충돌 등 이른바 권력과 권위의 획득과 분배와 같은 정치적인 행동들이 (비교적)자연 그대로의 삶을 사는 유인원 (동물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며, 쉽게 말해 동물들 또한 오롯이 약육강식에 지배당하는 존재가 아닌 나름의 공동체와 그 구성을 통해 권력을 생성하고 또한 그 권력을 탐닉하는 욕망의 행동을 통해 정치적인 행동을 할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는 정치의 정의가 사회구조의 발전과 진보적 가치의 증명인 '문명에 이르러 형성된 가치'가 아닌 단순히 공동체 구성이 가능한 종들의 삶의 환경 가운데에서도 언제든 도출되는 것임을 뜻하기에, 비록 정치적 행위라는 한정된 영역이지만 인류와 그 다른 유인원의 사이에서 서로 비교하여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삶의 형태'는 앞서 언급한 지금껏 주장해온 '인류의 이성'의 오랜 정의가 보다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하게 한다.

이처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 또한 인간이 스스로의 사고를 통해 증명하려고 노력한 '인간의 본질적 특징'과 그 (시대적) 변화에 대한 것이다. 물론 그것들은 사회 전반에 알려진 상식과 더불어 철학과 같은 학문적 가치 또한 품고 있는 것이기에, 본격적으로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마주하지 않는다면 매우 어려운 독서가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어려운 독서 이후, 본질적으로 독자 스스로가 어떠한 지식과 사고를 얻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나 또한 그리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의 인문학의 토대가 인간과 사회 전반에 드러나는 현상 등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행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생각할때, 본래 처음으로 돌아가 어떠한 것이 가장 인간다움을 드러내는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질문과 궁금증을 이 책을 마주하며 (스스로) 풀어보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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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역사 - 표현하고 연결하고 매혹하다
샬럿 멀린스 지음, 김정연 옮김 / 소소의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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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접했던 역사책에 의하면 과거 인류가 처음으로 창조한 무형의 예술은 '음악' 이라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유랑하며 채집생활을 하던 구석기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동물의 뼈로 만들어낸 플루트와 같은 유물들이 출토된 사실 등을 비추어볼때 이에 인류의 조상들이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표현할때 과연 어떠한 음율이 흘렀을지 그 궁금증이 커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음율을 알 수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악기의 존재를 증명하고 이를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무형의 음율을 어느 체계로 정립하고 기록한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우리 현대인들이 오랜 구석기인의 '가락??' 을 알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일 것이다.

허나 다행스럽게도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미술의 영역은 위의 음악과 비교해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에 있어서 매우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최초의 미술이 탄생하는데 필요한 요소가 먼저 인류의 창의적 활동이라 한다면, 사냥과 풍요로움을 상징하는 다양한 동물들의 벽화가 이를증명할 것이고, 또한 인위적으로 색채를 내고, 이를 덧바르며 표현한 기술과 기법 또한 인류 스스로가 오롯이 자연의 것을 수용하며 만족하는 존재가 아닌 필요에 따라 자원을 활용하고 변형할 수 있는 존재였음을 일찍이 증명한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은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오랜 시간동안 인류가 남긴 그림 등이 증명하는 인류가 어떻게 색을 이해하고 또 표현하기 위하여, 여러 기술과 기법 등을 축척하여 왔는가에 대한 '역사의 이야기를 풀어 나아간다.

실제로 미술사는 당시 어떠한 특징과 무엇을 표현하고자 한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 시대적 굴레에 벗어나 무언가 새로운 시도 등을 통한 변화를 이끌어낸 '인간' 과 '현상'에 주목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세계적으로 이름높은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가들을 포함한 당시 예술적 영역의 확대와 변화는 단순히 서양 한 지역에서 발현된 역사적 현상(또는 사건)이 아닌, 서양 전체의 계몽적 가치와 선진성, 또는 오늘날 미술에 필수적인 인본주의, 개인의 창의적 발상의 표현, 원근법, 미지의 탐구와 같은 여러 가치의 토대를 만들어낸 시대로서 그 마땅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때문에 이 책이 향하는 발전의 역사는 오래도록 변화를 갈구한 결과이자, 앞으로 인류가 무엇에 더 긍정적인 가치를 두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길잡이가 되어준다. 물론 그 해당 미술 지식이 얄팍한 내가 보기에, 요즘의 최첨단의 패션과 현대 미술 등의 '표현'에 익숙해지고 또 그것을 이해할 날이 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적어도 이 책의 주장에 힘입어 보다 과거와는 더 다르고, 나은 것을 향한 방황?을 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해 보기로 노력해보자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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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미친 사람들 - 카렐 차페크의 무시무시하게 멋진 스페인 여행기 흄세 에세이 6
카렐 차페크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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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의 스페인은 어떠한 모습일까? 이에 책을 읽기전 위의 이미지와 제목 등을 통해 유추해 본다면, 역시나 이베리아 반도의 '열정적이고도 활기찬 사람들이 살아가는 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들여다보게 되면, 단순히 해당 나라의 상식을 벗어나 저자 스스로의 자아와 감성을 통해 마주한 비슷하지만 새로운 모습의 스페인이 표현되어 있기에, 이에 나는 그 무엇보다 '같은 것을 보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 보다 풍요로운 인식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먼 나라를 제대로 알기 위해 그곳의 음식을 먹도 술을 마셔야 한다. 가려는 나라가 멀수록 신의 가호 아래 더 배부르게 먹고 마셔야 한다. (...) 세상의 모든 민족이 다양한 방법과 수단은 물론 다양한 향신료와 과정을 동해 지상의 천국을 이루고자 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

43쪽

실제로 아무리 시대가 다르다 해도 여행자로서 스페인을 접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는 굵직한 장소들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온전히 작가가 느낀 표현이 아니라면 그가 방문한 안달루시아와 세비아와 같은 도시와 거리, 건축물들과 미술 작품 등의 모습은 그야말로 여느 여행기를 통해 마주할 수 있는 정보와 비교해 그리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때문에 저자의 문학적 소양으로 표현한 스페인과 그 속의 사람들의 삶... 그리고 무엇보다 패션과 문화와 같은 감성을 투영하여 표현되어야 하는 것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이 책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독특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특히 현대에 이르러 그 문화가 누그러진 투우와 같은 '오락'의 경우에는 이 책과 같은 과거의 인물들의 기록이 아니라면 쉽사리 그 열기와 특징 또는 리얼한 묘사 등을 접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저자 역시도 프로들이 펼치는 드문 경기들과는 다르게, 대부분의 투우에서 보여지는 '일방적이고 불합리한(또는 불공평한)' 경기에 새삼 잔인함을 곱씹는 경험을 한다.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후 새로워진 스페인에서 이전처럼 경기장에 투우 소의 피가 흐르지 않게 된 것도 이 저자와 같은 사람들의 인식이 더 넓게 퍼져 상식선에 올라섰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내가 스페인어를 충분히 알았더라면 그에게 다가가 말했을 것이다. '이봐요 때때로 우리에게도 잘못된 일이 생길 때가 있어요. 하지만 대중의 호의에 의존하는 사람의 빵은 쓴 법이지요'

150쪽

결국 그가 표현한 '기사도 정신에 따라 명예에 목숨을 거는 싸움'은 이제 스페인의 땅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걷던 거리를 함께하던 소수민족들의 개성과 저마다의 문화를 철저히 간직한 모습은 또한 '세계화'의 흐름에 보다 옅어졌을 것이 확실하다. 이처럼 나는 처음 이 책을 언급하면서 먼저 저자가 표현한 스페인의 모습 그 자체에 커다란 매력을 느꼈다고 했다. 물론 이에 저자의 소양이 제일의 조건이라 했지만, 어쩌면 그 당시의 스페인이 지니고 있었던 풍경과 생동감 또는 다양한 색체의 삶의 모습이 보여졌기에, 이에 저자 또한 이와 같은 기록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후대의 사람으로서 앞으로의 스페인이 이 다채로운 길을 계속해서 걸을 수 없었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찰나?의 아름다움이 묘사된 기록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나름의 '후대의 사람으로서 마주 할 수 있는 즐거움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역시 여행과 역사, 그리고 인류의 가치를 살피는 인문학적 요소에 있어서도 이 책은 그 나름의 역활을 하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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