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말은 영리하기도 하지만 까다롭고 또 겁이 많은 동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소설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레클리스의 모습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훈련된 군마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천재...아니면 괴짜?가 아닌가 하는 감상이 든다. 레클리스는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 등에 적응해가며, 본래 부여된 임무를 인식하고 또 묵묵히 수행했다.
특히 레클리스가 활약한 환경은 전장의 최선전이였으며, 무엇보다 무거운 포탄과 무기를 날라야 하는 역활 뿐만이 아니라, 본래 소리에 민감한 동물임에도 불구하고 적과 아군이 쏟아내는 파괴적인 위력(또는 소음)에도 불구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급박한 때 가장 갈망하는 물자를 건내주는 레클리스의 존재는 그 상황을 겪은 군인들로서는 든든한 동료로 느껴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이후 전쟁이 끝나고 미 해병대는 레클리스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 '미국'과 다시 격렬한 전투를 치룬다. 이미 그들에게 있어서 레클리스는 동물이 아니라 전우이기에... 운송, 규제, 수의학적 겸역, 겸열, 관세라고 불리우는 미국의 여러 행정절차와 비협력적인 공무원들을 물리쳐야 했다. 과연 그러한 복잡하고 비효율적인 절차를 극복할 가치가 있었을까? 물론 위의 상황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소위 '레클리스의 미국행'은 그다지 헌신적인 노력을 이끌어낼 매력 (또는 이익)이 없다. 그러나 미해병대는 그러한 타산적인 이유와 조건따위는 상관없이 하사 레클리스의 귀국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적어도 그들에게 있어서 레클리스는 그 무엇도 아닌 해병이였기 때문이다.
혹 위의 노력이... 이야기가 호들갑이라 생각하는가? 단순한 짐말이 인간의 호의를 사고, 인간의 변덕이 말에게 계급을 부여하고 또 영웅의 칭호와 미국행의 결과를 이끌어낸 것이 그저 '신기한 이야기' 이라 치부하는 것은 전쟁과 군인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레클리스가 인정을 받은 부분은 그가 군인들의 애완동물로서 아닌 군인의 역활에 걸맞는 역활과 헌신에 있다. 비록 미국의 입장에서는 머나먼 타지에서의 전쟁이였지만 곧 그것이 조국의 깃발(이념과 신념) 을 건 전쟁이였던 만큼 이에 충실했던 군인은 그만큼 나라에 있어 가치를 인정받아 마땅하다.
때문에 레클리스는 그 가치를 온전히 인정받은 것에 가깝다. 그리고 이 소설 뿐만이 아니라, 실제 레클리스를 용사로서 인정하고 기념하고 있는 나라과 그 현실을 이해하고,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도 보다 '국방'에 대한 가치가 적어도 오늘날보다는 성숙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