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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표의 형태 - 1967년부터 역사의 종언까지
월터 벤 마이클스 지음, 차동호 옮김 / 앨피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정체성 정치의 시대고, 정체성 문학의 시대다. 소수자, 인권,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 요컨대 타자성에 정향된 정치이고 그러한 문학이 또한 대세다. 저자의 의도보다 그것을 읽는 독자의 반응이 더 중요하고 가치있는 시대가 되었다. 작품은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것이 독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면 작가와 함께 비난받거나 폐기될 수도 있는 '경험'으로 간주된다. 옳고 그르냐보다는 취향의 차이를 이야기하는, 한마디로 나쁜 취향만 생산되는 시대이기에. 이론의 여지가 없는 현상처럼, 전혀 낯설고 새로운 현상처럼, 적극적으로 환영할 만한 현상처럼 보이기도 한다(누가 소수자, 페미니즘, 인권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당신이 혐오주의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어떤 경우에는 이에 대해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자마자 즉시 타자의 정체성을 사랑하지 않거나 심지어는 반동적인 백래쉬의 물결에 동참하는 것으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그렇지만 당장 시시비비를 따져 묻기보다는 왜 이러한 일들이 벌어졌는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할 수 있는 문제틀을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매우 중요한 책이다. 물론 미국의 경험이 한국의 그것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저자의 질문처럼 불평등보다 정체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 시대가 되었는지도 곰곰이 더 따져봐야 하겠다. 그렇지만 이 책이 지금 읽혀져야 하는 것은 맞다. 다소 난해한 구석이 많고 사례로 분석하는 작품들도 생소하긴 하지만 여러번 저자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곱씹을 필요가 있다. 그의 다른 책도 소개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