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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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재학 시 교양과목으로 <서양음악 감상>이라는 수업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그 과목을 선택한 건 내가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관련 지식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 당시 누군가가 그 수업이 제일 널럴하다는 악마의 속삭임을 전해주었고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이나 들으면서 잠(?)이나 자겠다는 고약한 심보 때문에 선택한 과목이었다. 개강 후 첫 날 강의실을 확인한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보통 신청인이 별로 없는 소강의였다면 작은 강의실이 배정되었을텐데 이 수업에 배정된 곳은 그 당시 가장 큰 학생회관 강의실이었으니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나와 같은 얍삽함으로 이 강의를 선택했을지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게다가 그렇게 큰 강의실에서 자거나 딴짓을 해도 들킬 일 거의 없으니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안 그래도 학업이 아닌 다른 일로 공사다망했던지라 그런 자유시간(?)이 더없이 소중했으니 탁월한 선택이었다면서 속으로 자화자찬을 하며 첫 수업에 들어갔다.

 

강의실에는 호빵맨처럼 둥근 얼굴에 부처님과 맞짱을 뜰만한 인자함으로 무장하신 교수님이 계셨고 그 분은 첫 시간에 음악이 아닌 영상을 보여주셨다. 칠판 앞으로 길게 뻗은 스크린에는 어떤 공연실황을 중계하는 장면이 상영되었는데 한 여자가 나와 아리따운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는 모습이 보였던 것 같다. 그때 그녀가 부른 음악이 헨델이 작곡한 <리날도> 2막에 나오는 <울게하소서>라는 곡이라는 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영화 파리넬리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기억된 바로 그 아리아였다.

나는 거의 반쯤 누운 자세로 실눈을 뜨고 있다고 첫 장면부터 눈과 귀가 스크린에 빨려 들어가는 묘한 경험을 했다. 이 아리아가 어떤 음악적 해석과 가사를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음에도 듣는 순간 아름다움과 안타까움, 혹은 짜릿한 전율로 온 신경을 자극해주어 수업시간 내내 황홀한 공연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단지 스크린 상으로 감상하는 나도 이렇게 감동을 받았는데 실제 그 공연장에서 감상한 사람들이 얼마나 격정적이고 황홀한 무대를 선물 받았을지는 가히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그렇게 공연실황이 지나고 교수님은 그 음악을 작곡한 헨델과 리날도에 대한 소개는 물론 가사에 대한 해석까지 해주시면서 재미있고 살아있는 음악감상 수업을 진행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서양음악이 지루한 게 아니고 이렇게 사람의 오감을 황홀하게 자극하는 짜릿함이 있다는 걸 알았다. 이 강력한 첫 만남 후 나는 다른 어떤 강의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이 수업에 참여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몇 년전에 조윤범의 <파워클래식>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때의 기억이 다시 되돌아옴을 느꼈더랬다. 이 책 역시 클래식은 딱딱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을 과감히 뛰어넘도록 해준 유익한 책이었는데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유명 음악인들의 숨겨진 에피소드를 들려줌으로써 클래식과 음악천재들을 맛깔나게 소개해주어 아직도 책장에서 한번씩 꺼내 읽고는 한다. 그렇다면 이번에 읽은 서경석 교수의 <나의 서양음악 순례>는 어떤 책일까? 앞서 말한 <파워클래식>이 클래식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거리를 제공한다면 <나의 서양음악 순례>는 음악자체를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 살아오는 동안 접하게 된 음악을 배경삼아 저자 자신의 깊은 성찰과 고뇌, 삶에 대한 물음들이 한 목소리로 전달되는 그런 내용으로 읽혀졌다. 그러니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서양음악에 대한 지식이나 관심이 생긴 것이 아니라 서경석이라는 저자를 알게 되고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들여다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미 여러 편의 전작이 있을 만큼 저술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기에 편안하면서도 속 깊은 문체로 독자를 이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책을 읽은 것인지, 읽다 만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냥 글자 그대로 그의 심경이나 느낌이 담긴 문장들을 쭈욱 읽어 내려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가 말하는 오페라의 작품, 연주가, 성악가등은 나 같은 클래식 초보자에게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전문가의 경지를 뽐낸다. 그래서 책 속에서 그와 그의 부인 ‘f'가 하는 대화속의 음악이야기(연주자의 실력이 예전보다 나아졌다느니 못해졌다느니와 같은 연주평부터 비장함이 느껴지는 운율이라든지 힘이 들어갔지만 완만한 패시지를 주어 효과적이었다는 등..)를 글자로만 느낄 뿐이었다.

말 그대로 서양음악을 ‘글자로만 느꼈습니다’ 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이야기에는 전문 음악평론가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삶의 슬픔이 있고 기쁨이 있고, 때늦은 깨달음과 안타까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음악을 통해 자신과 주변의 세계를 바라보는 통찰력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그와 함께한 서양음악순례는 언젠가 한번쯤은 다시 되돌아보고픈 음악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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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생태가 답이다 - 환경을 생각하는 생활문화 공동체 박원순의 희망 찾기 4
박원순 지음 / 검둥소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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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동네, 마을이라는 말이 사라지고 동네 형, 동네 언니같은 친근한 이웃을 칭하는 말도 어색하다. 나 어릴 땐 이런 동네 친구, 언니, 오빠들과 하루종일 놀이터나 집 앞 골목에서 함께 놀고는 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내가 시골태생이겠거니 생각하겠지만 난 서울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서울토박이다.

물론 그 당시에도 학교를 다녀오고 잠시 학원에서 피아노나 컴퓨터, 영어를 배우고는 했지만 우리는 저녁 식사 전까지 다시 모여 열심히 놀았고 심지어는 저녁을 먹고 난 후에 다시 만나자는 비장한 약속을 했지만 엄마의 노기띤 목소리에 눌려 놀고 싶은 욕망을 꾹꾹 참아내야 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에겐 형제, 자매도 많지 않은데 이런 동네 형, 언니들도 없다. 부모나 학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그 어린 시절의 설익은 우정과 사랑을 주고받을 대상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이다. 나에게는 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생 최초의 멘토들이였는데...

내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무엇을 함께 하고 나눈다는 것, 그런 과정을 몸소 실천하고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 우리시대에 가장 기초적인 삶의 공존방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조금씩 해오던 찰나, 이 책을 만났다.

 

얼마 전 혜성처럼 등장해 지금은 서울시장이 된 박원순 희망제작소 전 상임이사가 2006년부터 약 5년간 발로 뛰어 찾아간 생태마을들이 고스란히 소개되고 있는 책이다. 자연 속에서 함께 공동체를 만들어 농작물을 경작하고 그것을 토대로 도시와 연계시켜 경제적 자립은 물론 마을의 발전까지 도모할 수 있는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이 빼곡히 담겨져 있다. 모든 소비자가 생산자가 되기를 꿈꾼다는 연두농장은 전통 농업을 통해 토종종자를 길러내고 부안시민발전소는 재생 가능한 친환경 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고, 또 도심 속 생태보전시민모임은 동네습지, 하천 살리기 운동을 통해 진정한 생태교육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았던 ‘홀로세생태학교’는 한 사람의 집념과 노력이 얼마나 큰 일을 해낼 수 있는지 눈물겹기 까지했다.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온 식구가 시골로 내려가 그곳에서 곤충을 살리고 보존하는 일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없던 그곳이 지금은 멸종위기의 곤충표본까지 합해 약 2500여종의 표본을 가진 작은 박물관이 되어있었다. 생태학교를 짓고 보존하기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그 성과가 조금씩 보이지만 현재는 그 주위에 개발이 되어 이 생태학교에 환경적 위협을 가하고 있다하니 안타깝다. 게다가 이곳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 또한 시급한 처지라하니 정부에서 발 벗고 나서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마저 들게 한다.

 

이 책에 소개된 여러 공동체와 마을들이 지금의 모습을 하기까지 숱한 고생과 시행착오를 거쳤음이 분명 할테니 섣불리 이렇게 해야하고 저렇게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꺼내지는 못하겠다. 다만 그들의 모습, 그들이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면서 저자가 항상 고민했던 문제 - 다함께 잘 사는 방법이 있을까?-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시골이 아닌 도시에서는 우선 인간적인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킬 마을개념의 공동체를 부활시키면 어떨까싶은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들지만, 공존의 답은 분명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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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참치여자 NFF (New Face of Fiction)
사비나 베르만 지음, 엄지영 옮김 / 시공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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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감각의 문제다. 즉 보고, 듣고 만져보고, 혀로 맛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다.”

그의 말이 옳다. 가장 소박하면서도 진정한 행복은 우리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 다시 말해 눈으로 보고, 피부와 혀, 그리고 코와 귀로 느끼면서 생각하는 것이다. [본문 중]

 

우선, 이 책. 독특한 느낌의 멕시코 소설이라서 반갑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라틴아메리카 문학들은 환상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사실 그런 주류에 조금은 지쳐있던 차였다. 그런데 이 소설. 과감히 그런 느낌을 탈피하면서도 철학적 사유로 든든하게 무장한, 게다가 환경과 생물의 존엄성까지 따끔하게 건드리고 있는 반성의 장도 마련해준다. 아무튼 여러 가지의 강렬한 재료가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내는 멕시코식 살사(salsa,소스)의 느낌이다.

 

       

 

      <원제는 La mujer que buceó dentro del corazón del mundo>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카렌이라는 여성이다. 어린 시절 지하에 감금되어 마치 동물처럼 학대되어 살아온 그녀는 친엄마가 죽은 뒤 그녀의 이모에 의해 발견되고 그녀가 살았던 곳은 다름 아닌 멕시코의 거대한 참치공장이었다. 그녀의 이모 이사벨은 카렌이 자신의 조카임을 한 눈에 알아보고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그것은 진짜 세상으로 그녀를 걸어 나오게 하는 첫 번째 단계였다. 이사벨은 카렌에게 열심히 말을 가르치고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고 카렌 또한 그녀 나름대로 세상에 적응해가지만 여전히 세상은 그녀에게 조금은 낯설고 이해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물론 카렌은 자폐가 있는 ‘특수한 존재’라는 낙인이 따라다니고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언어를 배우고 사람들과 소통이라는 걸 하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속한 세계로부터 점점 확연하게 분리되어 버린다. 생각하기에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존재증명을 거침없이 씹어버리며 날 것 그대로의, 이건 이것이고 저건 저것이라고 정의되기 이전의 자연상태로서의 존재성을 주장하기에 이른다. 즉, 카렌에게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는 학문적 이해 따위로 지구상의 다른 종으로부터 우월할 수밖에 없고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오만한 정의, 그리하여 인간이 우선시되기에 다른 종들은 대량학살되고 마음대로 이용당할 수 있다는 그럴싸한 우월감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독특함 때문에 소설을 읽는 내내 카렌은 우리에게 신비한 존재로까지 기억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폐성 뒤에는 천재적인 기억력을 감추고 있고, 전혀 거짓말을 할 줄 모르며 존재하지도 않는 것 때문에 쓸데없는 걱정을 하거나 속을 끓이는 ‘상상’이라는 것을 하지 않는 여자. 가끔씩 아주 필요할 때만 느릿느릿 생각하여 항상 인간들과 그녀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고 팽팽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바로 이 여자, 카렌.

 

작가는 그녀의 존재를 통해 우리에게 자아를 인식하는 법, 타인으로부터 날 것 상태의 나를 분리해내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한 것처럼 보인다. 수 백 년 전부터 누군가의 입과 사상, 교육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라는 것이 기계처럼 아무런 반론 없이 주입된 것이지, 우리 스스로가 존재증명을 해 볼 기회를 박탈당한 것에 대한 저항감이 이 책의 저자가 우리에게 제시한 첫 번째 과제가 아니었는가를 생각해 본다.

참치라는 매개체를 통해 인간과 자연, 환경의 세계를 엿보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진짜 자아를 찾아가게 하는 독특한 방법을 알려준 이 책 참 신비롭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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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지대 지만지 고전선집 429
호세 도노소 지음, 이상원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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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지대의 작가는 칠레의 호세 도노소.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다. 이 소설은 그의 세 번째 작품이면서 국내초역이다. 그래서 이렇게 희귀한(?)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데 먼저 고마운 마음이 들 뿐이다. 흔치 않은 남미소설, 게다가 국내에 잘 알려진 작가가 아닐 때는 책의 내용을 떠나 득템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책을 읽기 전에 책에 잠깐 소개된 작가이력을 살펴보았더니 이 호세 도노소는 칠레의 부유한 명문가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음에도 어릴 적부터 정신적인 방황을 많이 한 탓에 제대로 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없었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 부두 노동자로 지내거나 목자 생활을 하는등의 생활로 떠돌아 다니다가 나중에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가 청소년기에 영국인 학교에서 잠깐 공부할 당시 함께 공부한 사람이 바로 멕시코의 유명작가 카를로스 푸엔테스라고 하니 세상 좁다고 해야 하나?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고 친분을 유지했다고 하니 참으로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De izq. a der. Mario Vargas Llosa, Carlos Fuentes, García Márquez y José Donoso, años 70.

 <FOTO: carlos-fuentes.net>

 

사실 내가 지금까지 읽어온 중남미 소설은 대체적으로 비슷한 아우라(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를 풍기는데 그래서인지 책을 읽은 후에는 몽롱한 구름 위를 잠시 산책한 기분이 들고는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 추상적인 개념이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소설과는 비교될 수 있을 만큼 현실세계를 명확하게 구분 지으며 등장인물들이 끊임없이 자아를 찾아가는 혹은 다분히 물질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조그마한 마을을 둘러싸고 확연히 구분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소설의 배경은 온통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한 시골 마을이다. 올리브역이라 불리는 이곳의 마을사람들은 광활한 포도밭의 주인이자 이 마을에 기차역을 만든 창조자라 할 만한 사나이 돈 알레호의 보호아래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한마디로 모든 부와 권력을 가지고 이 마을을 통솔하는 지배자의 형태를 띤다. 반면, 이 마을에 조그마한 매음굴을 운영하는 마누엘라와 하포네시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서,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점점 더 파괴되고 피폐해지는 이곳에서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처절한 하층민의 전형이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면 가게를 멋지게 꾸미고 많은 손님들을 불러오리라 기대한 적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흘러간다는 것을 이미 짐작했음에도 그들은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날 수가 없다. 그곳이 바로 그들의 현실이었고, 삶이었기 때문에.

 

이 소설에서 특이한 인물은 마누엘라라는 인물이다. 자신이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자처럼 꾸미고 화장하고 춤을 추는, 그래서 여성이기를 바라는 댄서이다. 하지만 항상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그래서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자문해야 하는 불완전한 자아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여성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매음굴에 남기위해 하포네시타의 엄마인 하포네사 그란데와 거짓 성행위를 해야 했을 정도로 이곳에 대한 집착이 크다. 실로 소설 속 이 부분에서 그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가히 짐작이 될 정도였다.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하포네시타에게서 끔찍함을 느끼지만 그런 그녀 곁을 떠나지도 않는다.

이 외에 돈 알레호의 도움으로 학교를 다니고 성장했음에도 그를 배신하고 다른 곳에서 돈을 벌어 그의 부와 권력에 정면 대응하는 것처럼 보이는 판초는 가장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인물로 비친다. 거칠고 폭력적인데다 마초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부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하며 새로운 삶과 미래를 지속적으로 꿈꾸고 나아가려 하기 때문이다.

               <1978년에 이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

                아마도 저 붉은의상의 여인네(?)가 마누엘라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이 소설은 웃고 즐길 수 있는 순간은 하나도 없다. 진짜 이것이 현실인지, 이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어둡고 음울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호세 도노소는 이들의 삶이 비참하다느니 불쌍하다느니 하는 동정어린 목소리로 대변하기 보다는 그저 창문 밖의 풍경을 묘사하듯 담담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더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건지 모른다. 이 책의 제목처럼 이들이 겪는 지옥 같은 현실에는 한계가 없다. 다만 살아가는 동안 되풀이 되는 것일 뿐. 절망마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Fausto: Primero te interrogaré acerca del infierno. Dime, ¿dónde queda el lugar que

los hombres llaman infierno?

Mefistófeles: Debajo del cielo.

Fausto: Sí, pero ¿en qué lugar?

Mefistófeles: En las entrañas de estos elementos donde somos torturados y permanecemos siempre, el infierno no tiene límites ni queda circunscrito a un solo lugar, porque el infierno es aquí donde estamos y aquí donde es el infierno tenemos que permanecer.

 

파우스트: 먼저 네게 지옥이 어디 있는지 물어봐야겠어. 말해봐. 사람들이 지옥이라고 부르는 곳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데?

메피스토펠레스: 하늘 아래.

파우스트: 그래, 좋아. 하지만 하늘 아래 어디?

메피스토펠레스: 이런 곳이 바로 지옥이야. 우리가 고통을 받으면서 영원히 살아야 하는 곳. 지옥은 그 고통의 끝도 없고 경계도 없어서 어느 한 곳이라고 구분해서 말할 수가 없어. 왜냐하면 우리가 있는 바로 이곳이, 우리가 머물러야만 하는 여기가 지옥이니까... [본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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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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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시 일본 미스터리물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한 겨울이 되면 달짝지근한 로맨스물을 읽어주어야 할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뜨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막 쪄낸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읽는 추리소설의 맛이 훨씬 짜릿할 수도 있으니까.

이 책의 저자 구라치 준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란다. 그런 만큼 아직 마니아는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 만난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다음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1996년에 발표되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올라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 들었다는데 이 점만 보자면 일본에서는 이미 검증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암튼, 재미는 둘째 치더라도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설렁설렁 읽었다가는 그가 왜 범인인지를 추론하는 작가의 생각을 읽는 것 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작가는 살인 용의자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따져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거나 포함시키는 치밀함을 보인다.

게다가 이 책이 좀 특별해 보였던 부분은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장마다 독자들에게 힌트 같지 않은(?) 힌트를 건넨다는 거다. 보통 이런 식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모인다.
나중에 나올 피해자와 범인 역시 이 가운데 있다.
관리동의 구조는 종반의 추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 주의가 필요하다.“<p.75>

  "만찬이 시작되자 화제가 UFO까지 뻗어나가면서 이야기꽃이 핀다.
사건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루해하지 말 것.
중요한 복선 몇 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p.93>

 
오호~ 이 저자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독자들이 어느 부분에서 좀 지루해 할 것인가도 치밀하게 염두해 두고 썼다는 말인데... 사실 앞부분(등장인물들이 한명씩 차례대로 나오고, 산장에 모이기까지의 과정)이 필요이상으로 길다 싶어 좀 지루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저자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니 갑자기 잠이 확~ 깨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또 친절하게 이 부분에서 중요한 단서나 복선이 깔려있으니 한 번 찾아보라는 짧은 문구로 읽는 내내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니 이 저자 굉장히 영악하다고나 할까?^^. 허나 나처럼 맹한 독자라면 그가 아무리 힌트를 찾아보라고 해도 쉽사리 보이지를 않는다. (나...뭐가 문제인 거야?;;)

 

“간소한 저녁 식사 후
가즈오는 호시조노와 수사 회의를 한다.
그 가운데 중요한 복선이 하나 깔려 있다.
놓치지 말도록“<p.265>

 
부동산 개발회사 사장은 자신이 구입한 산장에 프로모션을 열어 손님을 끌려하고 이 프로모션을 기획하기 위한 회의에 세간에 화제가 되는 인물들을 초대한다. 대리석 조각 같은 얼굴로 밤하늘의 별을 설명하며 뭇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명 남자 연예인과 그의 매니저, <해피 발렌타인 두근두근 ♡작전><바람이 불면 소녀의 마음은 연분홍빛>과 같은 좀 거시기한 소설을 써서 여학생과 여성독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여류작가와 그의 비서, 일본의 유명한 UFO연구가, 철없이 발랄하기만 한 2명의 여대생, 부동산 회사 사장과 그의 수행비서 이렇게 9명은 산장에 모여 특별한 날을 보내게 된다.

다만, 다음 날 발견될 시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서로가 산장에서의 하룻밤에 들떠있다는 점이 좀 오싹할 뿐이다. 게다가 산사태가 나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있는 신세가 된 이들. 그제서야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뭐, 많은 사람들이 반전이라고들 하지만 난 중반 이후부터 범인을 대충 예상했기에 범인이 드러났을 때 그다지 놀랍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책도 많이 읽다보면 감이 오는 건지 결국 내가 생각했던 그가 범인이었긴 한데 나는 저자처럼 상황과 논리에 딱딱 들어맞는 추론을 한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용의선상에서 소거해 나가는 과정 없이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추었다는 게 좀 엉터리이긴 하다. 사실 이 책의 묘미는 왜 그가 범인이고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범행동기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작가의 상상력을 탓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뭔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좀 강하게 남아서다. 그렇지만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이야기임에도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책장을 덮을 때 쯤 추리소설을 읽었을 때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을 묘한 청량감을 안겨주었고 나도 모르게 재미있었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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