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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내리는 산장의 살인
구라치 준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다시 일본 미스터리물이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는 한 겨울이 되면 달짝지근한 로맨스물을 읽어주어야 할 것 같지만 뭐 어떤가! 뜨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엎드려 막 쪄낸 군고구마를 까먹으며 읽는 추리소설의 맛이 훨씬 짜릿할 수도 있으니까.
이 책의 저자 구라치 준은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란다. 그런 만큼 아직 마니아는 많지 않을 것 같지만 처음 만난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다음 책도 읽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일본에서는 1996년에 발표되어 일본추리작가협회상 후보에 올라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에 들었다는데 이 점만 보자면 일본에서는 이미 검증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다.
암튼, 재미는 둘째 치더라도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이 상당히 논리적이고 설득력이 있다. 설렁설렁 읽었다가는 그가 왜 범인인지를 추론하는 작가의 생각을 읽는 것 조차도 버거울 정도로 작가는 살인 용의자들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를 조목조목 따져 용의선상에서 제외하거나 포함시키는 치밀함을 보인다.
게다가 이 책이 좀 특별해 보였던 부분은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는 장마다 독자들에게 힌트 같지 않은(?) 힌트를 건넨다는 거다. 보통 이런 식이다.
“주요 등장인물이 모두 모인다.
나중에 나올 피해자와 범인 역시 이 가운데 있다.
관리동의 구조는 종반의 추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니 주의가 필요하다.“<p.75>
"만찬이 시작되자 화제가 UFO까지 뻗어나가면서 이야기꽃이 핀다.
사건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고 지루해하지 말 것.
중요한 복선 몇 가지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p.93>
오호~ 이 저자 대단한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독자들이 어느 부분에서 좀 지루해 할 것인가도 치밀하게 염두해 두고 썼다는 말인데... 사실 앞부분(등장인물들이 한명씩 차례대로 나오고, 산장에 모이기까지의 과정)이 필요이상으로 길다 싶어 좀 지루하기는 했었다. 그런데 저자가 바로 이 점을 지적하니 갑자기 잠이 확~ 깨는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또 친절하게 이 부분에서 중요한 단서나 복선이 깔려있으니 한 번 찾아보라는 짧은 문구로 읽는 내내 책에 집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니 이 저자 굉장히 영악하다고나 할까?^^. 허나 나처럼 맹한 독자라면 그가 아무리 힌트를 찾아보라고 해도 쉽사리 보이지를 않는다. (나...뭐가 문제인 거야?;;)
“간소한 저녁 식사 후
가즈오는 호시조노와 수사 회의를 한다.
그 가운데 중요한 복선이 하나 깔려 있다.
놓치지 말도록“<p.265>
부동산 개발회사 사장은 자신이 구입한 산장에 프로모션을 열어 손님을 끌려하고 이 프로모션을 기획하기 위한 회의에 세간에 화제가 되는 인물들을 초대한다. 대리석 조각 같은 얼굴로 밤하늘의 별을 설명하며 뭇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유명 남자 연예인과 그의 매니저, <해피 발렌타인 두근두근 ♡작전><바람이 불면 소녀의 마음은 연분홍빛>과 같은 좀 거시기한 소설을 써서 여학생과 여성독자들의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여류작가와 그의 비서, 일본의 유명한 UFO연구가, 철없이 발랄하기만 한 2명의 여대생, 부동산 회사 사장과 그의 수행비서 이렇게 9명은 산장에 모여 특별한 날을 보내게 된다.
다만, 다음 날 발견될 시체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서로가 산장에서의 하룻밤에 들떠있다는 점이 좀 오싹할 뿐이다. 게다가 산사태가 나서 오도 가도 못하고 갇혀 있는 신세가 된 이들. 그제서야 이들은 서로를 의심하면서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뭐, 많은 사람들이 반전이라고들 하지만 난 중반 이후부터 범인을 대충 예상했기에 범인이 드러났을 때 그다지 놀랍거나 하지는 않았다. 이런 책도 많이 읽다보면 감이 오는 건지 결국 내가 생각했던 그가 범인이었긴 한데 나는 저자처럼 상황과 논리에 딱딱 들어맞는 추론을 한 것도 아니고 하나하나 용의선상에서 소거해 나가는 과정 없이 그냥 감으로 때려 맞추었다는 게 좀 엉터리이긴 하다. 사실 이 책의 묘미는 왜 그가 범인이고 어떻게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범행동기는 책을 다 읽은 후에도 쉽게 납득이 되지는 않는다. 작가의 상상력을 탓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는 뭔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좀 강하게 남아서다. 그렇지만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이야기임에도 시종일관 유머러스한 분위기는 책장을 덮을 때 쯤 추리소설을 읽었을 때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을 묘한 청량감을 안겨주었고 나도 모르게 재미있었다는 말을 중얼거리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