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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세트 - 전3권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나는 이미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 앙드레 지드
내가 책을 좋아하는 이유, 그리고 책을 읽는 이유를 정확하게 표현해 준 이가 바로 앙드레 지드가 아닐까 싶다. 방금 전 읽은 책이 동서고금을 울리는 명작소설이든, 화장실에서 아무 생각 없이 읽었던 만화책이든 혹은 19금의 빨간 표딱지가 붙여진 전판 살색의 성인잡지일지라도....이미 그 책을 읽은 나는 조금 전의 내가 아니다.
책 표지의 한 쪽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 단 한 줄의 문장이 나의 뇌리를 강하게 내려칠 때, 나는 온 몸의 전율을 느끼는 인간이고, 누군가 자기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한 마디라는 말로 낙서처럼 써 내려간 유명작가의 인용문구가 내 잔잔한 삶에도 회오리를 만든다.
이렇게 책은 내 삶에 윤활유처럼 살아가는 원동력을 제공해주기도 하고, 박하향기처럼 강력한 자극을 던져주기도 하는 평생 모셔야 할 스승님이자 친구였다.
그렇지만 나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약한, 나와 남에 대한 열등감과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인간이다. 하루에도 열 두 번, 아니 스물 네 번까지도 마음이 변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기에 책 속 스승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하며 기울이다가도 어느 순간 활자 나부랭이가 무슨 소용이냐, 책이 밥 먹여주냐며 애꿎은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시켜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는....조금씩 자라고 있는 나를 발견할 때의 기쁨을 이미 누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분명 어제와는 다른 나의 모습을 눈치챘기 때문이리라.
작년 봄, 유난히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며, 심드렁한 하루하루를 보낼 즈음, 나는 ‘지로’라는 아이를 만났다. ‘20여년에 걸쳐 영혼을 담아 쓴 성장소설의 고전’이라는 문구가 너무도 인상 깊어 주저 없이 책을 집어 들었는데, 맙소사!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데 이것이 끝이 아니란다. 앞으로 이런 분량의 책을 2권은 더 읽어야 3편까지의 시리즈가 완결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웠던 건 실제로 작가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집필 중 숨지는 바람에 미완성으로 남겨졌다는 어마어마한 이야기였고 그 말에 나는 아주 잠깐, 읽을까 말까를 망설였다.
그렇지만 왠지 모르게 책 소개를 접하는 순간부터 이 아이를 꼭 만나서 그 인생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3권의 미완성된 이야기를 끝낸 지금....
지로와 함께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유모의 집으로 보내져 자란 지로는 처음부터 여긴 내 집, 내 가족, 내 자리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덕분에 아이는 유년시절부터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해야했고, 어쩌면 그것이 반항적인 기질로 표출되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녀석이 맡은 삼형제의 둘째 위치는 치열한 내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발버둥쳤던 내 형제 서열과 일맥상통하는 그런 애틋함을 불러 일으켰다. 덜렁대며 천방지축인 나와 달리 장녀인 언니는 성실함과 우수한 성적으로 집안 어른들의 기대와 축복을 한 몸에 받았고, 딸 둘 뿐인 집에 사내로 태어난 남동생은 집안에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의 위치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온 몸으로 깨우치게 해 준 존재였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 나는 내 자리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고 나만의 독특한 애교와 억척스러움으로 애교 많은 둘째 딸이라는 어줍잡은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그리 즐겁지는 않았다.
어쩌면 다른 가족들은 의식조차 하지 않은 자리싸움을 나 홀로 지켜내기에 애썼던 꼴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것에 초월해지기 시작했을 즈음 나의 세계도 가족과 친구, 학교로부터 조금씩 다른 외부세계로 확장되고 있었기에.
유년시절 친엄마, 유모, 새엄마라는 세 명의 각기 다른 어머니로부터 독특한 훈육법과 모성애를 느끼며 자란 지로가 드디어 소년이 되어가듯이 나도 그렇게 한 명의 독립적인 인간으로 자라고 있었다. 지로의 학창시절 가장 큰 영향을 준 유일한 스승인 ‘아사쿠라 선생’은 내가 마음속에 그토록 그려오던 이상적인 스승의 모습이었다.
책이나 ‘죽은 시인의 사회’ 같은 영화를 보면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치는 멋진 스승들이 많이도 등장했지만 나의 현실에서는 절대로 만나지 못했기에 더욱 그립고 부럽기만 했다. 아이들이 각자의 삶에서 승리하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듯이 선생들은 또 그들만의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안쓰럽게만 느껴졌을 뿐이었다.
학교라는 곳은 오로지 책 속의 지식을 익히는 것이라는 걸 온 몸으로 말해주듯이 말이다.
군국주의 시대 속에서도 올바른 자유와 인간의 의지를 가르치려 했던 아사쿠라 선생의 유임운동에 앞장서고 퇴학까지 당한 지로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결과는 현실에서 보면 그리 아름답지 못하다. 그렇지만 그 역시 100% 확신에 찬 마음으로 행동을 해 나간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은 유약하기만한 청년, 세상의 쓴 맛을 이제야 조금씩 맛 본 청년이 감당할 세계는 그리 만만하지 않았음을 그는 알았고, 매 순간 옳고 그름 사이에서 선택하고 좌절하는 것을 반복하면서도 제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과연 나는 지로처럼 세상을 나가기 위해 끝없이 고민했었던 적이 있었을까?
사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기까지 인간적으로 내 자신을 위해 고민했던 적은 많지 않았다고 부끄러이 고백한다. 남들이 혹은 부모가 그려준 그 길을 따라 힘겹게 쫒아왔으되 마침내 도착한 여기가 내 길이 아니었노라고 고개를 저을 용기마저 없이 나는 또 다시 길을 떠나야 했을 뿐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여전히 방황을 하며 정처 없이 외딴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기에 어린 지로가, 아니 조금 더 자란 청년 지로가 나는 부럽고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책 속 지로는 진실된 모습으로 어떤 지향점을 아스라이 보여주었다.
자신의 신념을 꿋꿋이 지켜낸다면 한 인간으로서 정당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는 진리를 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직도 정당하게 꿋꿋하게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어렵기만 하다. 지로보다 훨씬 더 많은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도 여전히 삶은 어렵고 모순덩어리인 것만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다만 나는 책 이라는 스승이 있어 그나마 다행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됨은 부정하지는 않겠다. 어리석은 나에게 쓴소리하는 스승을 현실에서는 더 이상 만나지 못할지언정 책 속 스승은 언제나 그 모습과 성별, 주제를 바꿔가며 나를 온전한 한 인간으로 성장시켜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난 책을 손에서 놓지 않는 한 영원히 성장해 나갈 것이다. 지로가 그 자신 스스로 깨달음을 찾고 성장하는 방법을 알아낸 것처럼 나는 책을 인생의 스승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거창하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이는 내가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 되었음을 느끼는 즐거움을 스스로 놓지 않는 한 계속 될 것이고, 그것이 곧 내가 여전히 살아가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는 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