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는 사람
텐도 아라타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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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애도하는 사람이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는 그저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지레 짐작했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연인을 잊지 못하는 이가 가슴절절이 그 아픔을 표출해내는 그런 작품이겠거니 하면서 책을 펼쳤는데 실제내용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니, 전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전국을 떠돌아다니는 청년의 이야기. 그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시즈토, 애도하는 사람이었다.

 

엊그제 집 근처를 산책하다가 자동차가 많이 다니는 사거리 앞에서 무심히 신호등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눈을 들어 정면을 바라보니 커다란 표지판에 하얀 숫자가 눈에 띄었다.

 

오늘의 교통사고 사망자 7명,

부상자 35명...

 

갑자기 차디찬 바람이 가슴팍을 휙 뚫고 지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눈을 찔끔 감아버렸다. 오늘도 누군가는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생을 달리했구나. 그 가족들은 지금쯤 허망하게 떠나보낸 망자(亡者)를 부여잡고 굵은 눈물을 흘리고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니 전혀 생면부지의 사람임에도 경건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서 떠오른 인물이 시즈토였다. 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던걸까?

 

처음에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이 책의 저자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를.

밑도 끝도 없이 누군가가 죽은 장소를 찾아가 그를 애도하며 전국을 떠돌아 다닌다는 남자는 자신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의 주위에서 죽어간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자책감을 떨치려고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인지 그리하여 그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졌는지 정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죽은 이들의 수만큼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사연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이 세상에 살다 어찌어찌 죽어갔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그 사연들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어느 새 그들은 전혀 낯선 이들이 아니었다. 어떤 이는 손재주가 있어서 마을 사람들이 좋아했다거나 마음의 병이 깊게 있었던 여린 소년이 있었다거나 혹은 책을 좋아해 도서위원으로 활동했다던가 하는 파릇파릇한 청춘의 소녀 등...점점 그들이 만들어 갔을 삶의 조각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랬다. 그들은 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기쁨이었고 하늘의 축복이었다. 설혹 남에게 해를 끼치며 망나니처럼 살아갔던 망가진 인생이었다 하더라도그들을 사랑하고 고마워한 누군가가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시즈토는 그런 연유로 그들의 사연을 듣고자 했고 죽은 이들을 사랑했던 혹은 그들이 사랑했을 인물들이 되어 애도를 하려 애썼던 건 아니었을까? 그 애도 속에는 더 이상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은 없다. 오로지 당신과 그 사이에 있었을 인연(因緣)에 대한 순결한 감사의 마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생의 시간은 다 했을지 모르나 인연의 시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라는 그 숭고한 애도의 마음을 시즈토는 표현하려 했을 것이다.

삶의 의미마저도 쉽게 퇴색해버리고 가볍게 취급되는 지금.

지금 우리에게 이 애도하는 이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정말로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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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의 별 1 - 나로 5907841 푸른숲 어린이 문학 18
이현 지음, 오승민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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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나도 공상과학책을 꽤나 많이 읽었던 아이였다. 어느 날 문득 무슨 만화책을 봤는데 못생긴 남자아이가 학교도 가기 싫고 숙제도 하기 싫으니까 과학자인 아버지에게 로봇을 만들어 달라고 조른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숙제로봇, 청소로봇..이었는데 그 뒤로 결말이 어땠는지는 지금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그 책을 읽으면서 이런 로봇이 진짜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나도 무척이나 부러워했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최근에 조카가 좋아하는 만화를 보니 일본의 애니메이션인 ‘도라에몽’인데 이것도 로봇같이 생겨서 정말 많은 마법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듯하다. 아마 요즘 아이들도 그때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도라에몽을 좋아하는 건 아닌지^^

 

이번에 읽은 로봇의 별은 총 3권으로 쓰여진 SF 창작동화로서 평소에 내가 즐겨읽었던 아동도서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그동안은 어린이들을 교화시키는 내용이 창작동화를 읽었는데 이렇게 지구와 로봇, 인간관계 더 나아가 우리의 미래를 포괄하는 거대한 이야기는 오랜만이라서 무척 흥분되었다. 물론 이런 인간과 로봇의 치열한 대결이 그려진 영화는 심심치 않게 보아오고 있지만 그 폭력성이나 잔혹함 때문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볼거리가 많았다는 것 말고는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읽는 동안 아이들도 어른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탐욕과 욕심을 은근히 꾸짖는 것 같기도 하고, 언젠가는 정말 이런 로봇과 인간의 대결이 실제로 벌어지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도 생기고 말이다. 그리고 로봇을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벌어질 혼란은 또 어떠할까?

 

1권의 주인공인 나로는 소녀와 같은 감성을 지닌 로봇이다. 인간 엄마와 깊은 교감을 맺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던 중 로봇이라는 이유로 엄마와 차별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 또 다른 로봇들의 비참한 최후를 바라보면서 진정한 자유를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철저하게 감시당하고 필요가 없어지면 지체없이 폐기처분되는 로봇의 운명을 나로는 피할 수 있을까? 쫒고 쫒기는 스릴 넘치는 구성이 아이들의 마음을 한껏 들뜨게 할 이 책은 과학적인 상상력을 즐길 수 있는 즐거움도 주는 한편, 우리의 미래, 자유와 차별등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기회도 주고 있었다.

재산에 따라 철저하게 신분이 나누어지고 세상으로부터 차별받는 모습등은 앞으로의 미래가 더욱 어두울지도 모르겠다는 안타까움마저 들지만, 그런 세상이 결코 행복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내주는 메시지들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놓치지 않는다면 로봇과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미래는 반드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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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 1 - 개정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황보석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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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오 보거라. 사십팔 시간의 여유를 줄 테니 그 여자에게 이 나라를 떠나라고 해라. 만일 내 말에 따르지 않는다면 나는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여자에게 자신의 철면피한 행위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너에 대해서는, 내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네가 나를 웃음거리로 만들도록 놔두지 않겠다는 것을 알려두겠다. 만일 네가 내 말에 철저히 따르지 않거나 앞서 말한 시간 내에 그 여자가 출국하지 않는다면, 나는 길거리 한복판에서라도 너에게 다섯 발의 총탄을 쏘아 개처럼 죽일 것이다.’ 2부 P.306 중

 

위의 문장은 책에 나오는 구절이다. 언뜻 보면 불륜을 저질렀거나 삼각관계하에서 벌어지는 애정싸움에 대한 찐한 결투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답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내는 협박문이다.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지 않으면 길거리 한복판에서 총으로 개처럼 쏴죽이겠다는 아버지의 편지란 말이다.

 

여기까지 보면 이 무슨 막장드라마인가 싶을지 모르겠지만 18살 꽃다운 나이의 아들이(소설에서는 아직 미성년자임) 32살이나 된 연상의 여자, 그것도 먼 친척뻘 되는 이혼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고 난리니..이 정도면 뒷목 잡고 쓰러질 부모가 어디 한 둘이랴 싶다.

 

이 책 [나는 훌리아 아주머니와 결혼했다]는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돼 우리나라에서도 앞 다투어 작품이 번역, 출간되고 있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이다.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기는 하지만 책의 중심내용은 주인공 마리오(자전적 소설이라서 그런지 주인공 이름이 마리오다^^)와 그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리오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한편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뉴스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꿈은 변호사도 뉴스 앵커나 기자도 아닌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고 그는 그 꿈을 위해 열심히 글을 써댄다.

그러던 중 볼리비아에서 잘 살다가 이혼해 돌아온 먼 친척 훌리아 아주머니를 만나게 되고 처음에는 별 감정없이 대하다가 어느 순간 여인으로 바뀐 감정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가 일하는 방송국에는 또 다른 인물이 볼리비아에서 스카웃되어 오는데 그는 그 유명한 라디오 극작가 ‘페드로 카마초’라는 인물로 1회 방송분량의 드라마를 한 시간만에 말로 내뱉듯 술술 써내고 기계처럼 드라마를 찍어내는 엄청난 능력의 소유자다.

그런 그가 지어낸 이야기가 마리오의 사랑이야기와 한 회씩 엇갈려가면서 구성되어 독자들은 책을 읽는 동안 여러권의 책을 동시에 읽은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렇게 책은 마리오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위험한 사랑놀이, 그리고 그 주변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색다른 재미와 웃음을 던져주고 있었다.

 

우리나라 정서상 남미문학은 아직까지 거리감이 있어서 누군가에게 쉽게 책을 권하는 것조차 어려운데 이 책은 참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작가가 페드로 카마초를 통해 만들어내는 허무맹랑한 단막극들도 인상적이고 신선하지만 18살 청년이 느끼는 금지된 사랑과 결혼,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거리들이 저자 특유의 익살로 재미있게 그려져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았다. 참 공감이 가면서도 어딘지 어설퍼 보이는, 그러다가도 주인공들로부터 한방 맞는 기묘한 패배감에 이르기까지 이렇게나 복잡한 느낌이 드는 책은 처음이지 싶을 정도이다.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리오와 훌리아 아주머니의 결혼 과정은 엉뚱한 사건사고로 좌절될 때마다 왜 그렇게 웃음이 나던지..이런 건 남미 특유의 문화와 관습에서나 가능하겠지 싶다. 그래도 그 과정에서 여린 마음을 부여잡고 돌진하는 마리오는 더 이상 18살 미성년자라기 보다는 어느덧 멋진 청년으로 성장한 듯 보였다.

 

어렵게 결혼에 성공한 그들. 그러나 결말에 이르러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그들의 결혼생활이 어이없기는 했지만 마리오가 재혼한 또 다른 여인이 등장하는 곳에서 나는 또 한번 낄낄대고 웃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 막장 사랑놀음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고 반문하는 찰나 이건 소설이기도 하지만, 저자의 실제 이야기라는 생각에 이르자 이번에는 책이 아닌 저자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삶을 더 알고 싶어 미치겠다.

남미 특유의 정서와 저자의 독특한 문체가 제대로 어우러져 근사한 작품이 된 이 책, 몇 년 뒤에 다시 읽어봐도 꽤나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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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독서 - 책을 읽기 위해 떠나는 여행도 있다 여행자의 독서 1
이희인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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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머리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몸으로 하는 독서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이 문장이 바로 이 책의 요지를 한 줄로 요약해주는 말이 아닐까 싶다.

 

참 이상한 책이다. 동화책에나 나올 것 같은 예쁜 마을의 모습, 당장이라도 달려가고픈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찍은 사진을 보면 여행계획을 세워야 할 것 같은데, 그곳에서 저자가 읽었다는 책 소개를 보면 여행은 무슨, 이 책이나 빨리 읽어보고 싶군. 하는 이율배반적인 행동에 어쩔줄 모르게 되니 말이다.

 

나는 이내 책을 읽다가 잠깐 덮어놓고 곰곰이 생각해보기 시작한다. 나도 어떤 소설을 읽다가 그곳에 꼭 한 번 가보자!라고 생각한 곳이 있었던가?

그러자 제일 먼저 떠오른 곳이 칠레의 ‘이슬라 네그라’였다. 이 책의 저자는 칠레를 여행하면서 [영혼의 집]을 떠올렸지만 나는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으면서 칠레를 떠올렸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이 멋진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나는 왜 그렇게 이슬라 네그라의 파도 소리를 내 귀로 직접 듣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마리오가 네루다를 위해 그곳의 파도와 바람소리를 녹음해서 보낸 것처럼 나도 그렇게 누군가를 위해 그 자연의 소리를 녹음해 보고 싶었다. 허나 현실은...아직 이런 상상들이 여전히 동경이요 꿈이라고 느껴지기에 그럴 때면 마트에서 급히 사온 칠레산 와인을 한 잔씩 홀짝이면서 떠나지 못하는 슬픔을 스스로 위로하고는 했었다.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바닷가에 앉아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고 그 편지를 또 마을 어딘가의 우체국에서 부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로망을 가슴속에 고이고이 간직해온 나는 언젠가 그곳에 간다면 마리오의 열렬한 구애를 받았던 여인 베아트리스가 일했을 것 같은 주점에서 와인을 맛보고 싶다는 상상도 함께 해본다. 이렇게 칠레의 작은 섬은 이 책 한권 속에서도 나에게 낯설지 않을 여행의 로망을 한 아름 안겨주고 있었다.

 

 

그럼, 또 다른 곳은 어디일까? 음...이번에는 이탈리아다. [냉정과 열정사이]라는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일본이 아닌 이탈리아에 바로 필이 꽂혔다. 동명의 영화를 보고 나니 이탈리아의 멋진 배경들이 아른아른 거려서 더욱 그런 유혹이 강해지기까지 한다. 책 속 주인공 아오이와 준세이처럼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대성당의 꼭대기에서 누군가와 멋지게 재회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또 혼자만의 쓸데없는 망상을 시작하게 하는 이 책.

아..오늘 저녁엔 이 책을 다시 꺼내 읽으면서 이탈리아를 또 여행해보자 생각한다.

 

“끝이 안 보이는 긴 여행길에 절대로 끝나지 않을 책 한 권을 갖는 것. 그것은 여행자가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일 것이다. 역설적으로 [파이 이야기]처럼 너무 단숨에 읽히는 책은 긴 여행에 적합하지 않다. 출장 같은 여행에나 그럭저럭 어울릴 뿐.” P.186

 

내가 지금껏 떠나본 여행길의 동행은 책보다는 음악이었다. 나에게 있어 여행지는 쉬고 느끼고 되돌아보는 여정이 아닌, 보고 먹고 새로운 경험을 하느라 정신이 없을(?) 그런 빠듯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면 잠시 숨고르기에 제격인 것이 음악이었다.

눈을 감고 감미로운 음악 속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아픈 다리를 끌어안고 찡그렸던 내 이마의 주름살이 펴질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여행의 동반자를 책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찾아가려는 목적지와 어딘가 코드가 딱 맞아 떨어지는 책! 그런 책을 가져간다면 그곳에서는 눈으로 읽는 게 아닌 몸으로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마저 든다.



그렇다면 다음 번 나의 여행기에 동행할 최초의 책은 무엇이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여행지가 아닌 여행지에 동행할 책 때문에 설렌다니...책 한 권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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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12-01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레산 와인을 홀짝이면서 떠나지 못하는 슬픔을 스스로 위로하셨군요!
저는 몽골에 가고 싶은데 말이죠.
한국에서는 마유주를 파는 곳도 없고, 마두금을 들을 곳도 없네요.

영원한 청춘 2010-12-08 00:29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은 몽골에 가고 싶어하시는군요.
마유주라..왠지 걸쭉하고 고소할 것 같다는...사실 잘 몰라요^^
언젠가 떄가 되면 저는 칠레를, 감은빛님은 몽골을 갈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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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래미야~ 저녁 먹었으니 하천가에 운동가자~”

 

배불리 저녁 먹고 편안히 쇼파에 누워 책 한 권 오지게 읽으려 했던 나는 ‘내일 가면 안되요?’라는 표정으로 엄마를 바라보지만 그녀는 이미 신발끈을 단단히 동여매고 준비완료를 외치신다.

하는 수 없이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집 앞 하천가를 향해 함께 터벅터벅 걸어 나가게 되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금방 날이 저버려 아무 것도 안보이지만 한 여름 해질녁의 하천가에는 참으로 다양한 꽃이나 풀들이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진짜 마음먹고 눈길을 주지 않는 이상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이름 모를 풀들이 저마다의 모양을 뽐내는 것이 신기할 때가 참 많았는데...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똥그랗게 떠야만 볼 수 있는 녀석부터 큰 키를 자랑하며 우뚝 솟아있는 꽃들에 이르기까지 어찌나 그 모습들이 다양하던지.

 

“장맛비를 맞고 수북수북 자라나는 저 흔한 잡초들도 한 포기, 한 포기가 수만 개 씨앗 가운데 살아남은 하나다. 쉽게 자라나는 것 같지만 수만 가지 시행착오를 피하고 살아남은 것들이다. 쥐꼬리망초는 한 포기 싹이 터서 자라게 하기 위해 수만 개 씨앗을 준비한다. 그런 쥐꼬리망초 삶에 요행이란 없어 보인다. 쥐꼬리망초가 생명을 이어가는 모습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쥐꼬리망초에게는 그게 최선의 방식이지 않을까.” P. 49

 

귀화식물을 또 다른 이주노동자라고 칭하거나 풀에서 사람이 보인다고 말하는 저자는 이런 온갖 종류의 들꽃들에서 우리네 삶을 발견한다. 언땅에 뿌리내리고 겨울을 나는 점나도 나물에서조차 비정규직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그렇지만 따뜻한 봄은 당신들 것이라고 응원하는 저자의 한없이 따뜻한 마음에서 나는 훈훈한 사람의 냄새를 느꼈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사람내음이라고나 할까?

풀 한포기, 꽃 한송이를 바라보면서도 저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으려면 세상을 얼마나 따뜻한 눈으로 수용해야만 가능한 걸까? 갑자기 저자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 책에는 이름도 낯설고 한 번도 보지 못했을 것 같은 수많은 들꽃들이 등장한다. 들꽃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구나 싶은 생각이 드는 반면, 왜 난 이런 작은 생명에게 눈길 한 번 주지 못했는지 삶의 여유가 참 없긴 하구나 싶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

 

잡초마저도 그 존재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고 나 역시 그렇다. 요즘은 도시들도 온통 친환경에 아름다운 미관을 가꾸기에 열을 올린다. 구청 앞이나 횡단보도 옆에 일렬로 늘어선 꽃들을 보면 와~ 예쁘다. 라는 생각이 처음엔 들지만 자꾸 지나가다 보면 뭔가 획일화되고 자연스럽지 못한 모습에 결국 인공적인 감상만 남는다. 때로는 아직 철도 지나지 않아 싹 바뀌어버린 꽃들을 보며 ‘이런 식으로 내 세금을 낭비하다니...’하고 살짝 분노하기도 한다.

그럴땐 차라리 풀 숲, 공터, 계단 밑에 아무렇게나 자리 잡은 풀들이 더 생명력 있고 귀해 보여서 이 녀석들에게 더 마음이 가기도 한다.

 

“자연은 스스로 치유하고 스스로 살아간다. 그래서 자연이다. 잡초가 많다는 것은 자연이 망가졌다는 것이고, 망가진 자연이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는 표시다. 몸에 상처가 나면 생기는 상처딱지 같은 게 잡초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되면 상처딱지가 떨어지듯 잡초는 더 이상 그곳에서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무작정 잡초를 뽑는 것은 아물지도 않는 상처딱지를 떼는 것과 마찬가지다. 자꾸 이벤트를 벌이고 돈을 들여 그럴듯하게 뭔가를 만들고는 있지만 그건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다. 또 그건 바꿔 끼워진 생명 없는 고무 보조물에 지나지 않는다.” P. 185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하고 그 자리에서 온전히 자신의 뿌리를 내리는 수많은 들꽃들을 우리는 얼마나 더 짓밟고 괴롭혀야 그 존재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은 오늘은... 화려하고 강한 향을 뿜는 꽃보다는 소박한 모습으로 자리 잡은 저 이름 모를 들꽃들에게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눈인사라도 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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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10-12-01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다란 콘크리트 화단에 알록달록 꽃들을 심어놓고 길가에 죽 늘어놓은 꼴을 보면 참 뭐하는 짓인가 싶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오죽 돈 쓸 데가 없어서 이런 쓸데없는 짓을 할까 싶구요. 얼마지나지 않아 싹 갈아엎고 다른 꽃들로 바꿔놓은 꼴을 보면 참 할말이 없어지죠. 반면 콘크리트가 깨진 귀퉁이, 공터에 나있는 이름모를 풀꽃들을 보면 새삼 생명의 신비에 감탄하게 됩니다.

이 책 참 맘에 드는 책입니다!

영원한 청춘 2010-12-01 05:15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도 이 책을 즐겁게 읽으셨군요. 저 역시도 그랬답니다.
책을 읽기전에는 그저 식물도감(?)같은 책이려니 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고마움과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그런 책이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