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스케치를 시작했을 뿐이야! ㅣ 십대를 위한 자존감 수업 10
정정혜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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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제목만으로도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만나기도 한다. 바로 이 귀여운 책 <이제 막 스케치를 시작했을 뿐이야!>처럼. 저자가 기억하는 첫 번째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매일 천사 같은 아이들과 함께할 날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었다. 그러다 "정혜는 커서 화가 하면 되겠다"는 말을 종종 듣고부터는 어깨가 으쓱해지고 심장이 두근두근 콩콩 뛰었다. 화가를 꿈꾸던 일곱 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초등학교 일 학년 되고, 예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공주님같은 언니의 모습에 반해 언니와 같은 피아노 학원에 다니게 된다. 하지만 저자의 세 번째 꿈은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자신의 수업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운명적으로 만난 어린이 만화 잡지 <보물섬>. 저자는 단순한 호기심에 그 책을 꺼내 펼치자마자 단숨에 만화 속 세상으로 빨려들어갔다. 이후 부지런히 피아노 학원을 다녔지만 그녀의 피아노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다. 대신 빛바랜 노란 장판이 깔린 학원 바닥에서 색칠 공부 놀이를 하고, 만화책을 보며 그녀의 세 번째 꿈을 키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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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꿈 찾기는 만화가에서 멈추지 않았다. 열 살 차이가 나는 막내 동생이 태어난 후, 만화 영화 속 성우들을 따라 하며 동생에게 책을 읽어주는 동안 아마 성우가 될 재능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동생에게 읽어줄 책을 찾느라 도서관에 갈 때면 책에 빠져 밥 시간이 지나도 배고픈 줄도 몰랐다. 좋아하는 책들 사이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서 선생님은 얼마나 행복할까?

네 번째 꿈 성우, 다섯 번째 꿈 사서를 지나 중학생이 된 저자는 손재주가 좋았다. 학교 앞 문방구를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들르며 새로 나온 편지지를 구경하며 사 모으는 재미에 빠져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직접 편지지와 봉투를 디자인하고, 친구들이 부탁한 편지지를 만들어 주며 즐거운 취미 생활을 이어갔다. 그녀의 사 모은 편지지 한 귀퉁이에 적힌 '바른손,' 날고 싶은 자작나무', '모닝 글로리' 같은 문구 회사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여섯 번째 꿈의 직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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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정혜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정말 깜짝 놀라겠지?

이제 막 스케치를 시작했을 뿐이야!, 16쪽

세월을 따라 흐르고 흘러 어른이 된 저자는 그 중 몇 가지 꿈을 이루었다. 먼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그토록 좋아하던 책을 위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이 만든 캐릭터로 만화를 그리며 디자인 문구도 만들고 있다. 성우나 사서가 되지는 못했지만 도서관에서 동화 구연 자원 봉사를 하고 있고, 유치원생이 아닌 학생과 성인을 대상으로 강의도 하고 있다.

저자는 알고 있다.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막 스케치를 시작했을 뿐이라는 것을. 종이 위에 그린 평범한 선 하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도. 이를 위해서는 최신형 아이 패드나 최고급 붓, 정규 수업보다 중요한 준비물이 있다. 바로 '즐거운 마음'. 선이 조금 삐져 나와도 괜찮다는 배짱.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패기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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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은 자신이 원하는 인생은 실수와 후회가 남지 않는, 최고로 완벽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평범한 하루를 평범하게 '잘' 보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거야.

이제 막 스케치를 시작했을 뿐이야!, 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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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진실을 빨리 깨닫는 사람이 남은 인생을 보다 여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오늘 아침, 아이들과 부둥켜안고 인사를 나누며 우리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남은 것은 각자의 몫이다. 이 기적에 무엇을 채워가면 좋을까. 일단 아이들이 좋아하는 소금빵과 따뜻한 두유, 신선한 샐러드로 푸짐한 점심을 차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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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급으로 가는 공부의 추월차선 - 최상위권이 되는 실전 학습 로드맵
설공아빠(김성수) 지음 / 빌리버튼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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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가르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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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임신했을 때 아빠의 저음이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아이들이 태어나고 점점 자라면서는 이런 경험담도 들었다. 아이들이 잘 되는 집은 두 가지 특징이 있는데, 아빠가 가정사에 적극 참여하거나 아빠가 집에 없거나 라는 거다.

<1등급으로 가는 공부의 추월차선>의 저자는 전자이다. 일명 설공 아빠라 불리는 저자는 중학교에서 1,2등을 다투다 외고에 입학했으나 전교생 650여명 중 무려 500등을 하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내신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아 일반고로 진학하는 친구들을 보며 진지하게 고민을 한다. 그리고 결심한다. 포기하지 않고 도전해서 공부를 열심히 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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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권 학생들에 비해 기본적인 공부 실력과 학습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저자는 가장 먼저 '공부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발견한 2권 짜리 공부법 책에는 생활 습관, 건강, 예복습, 암기, 노트 정리 등 공부를 잘하기 위한 전반적인 방법이 나와 있었다. 그는 책에 나온 여러 가지 방법을 실천으로 옮겼고, 자신에 맞게 다듬어 나갔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만난 그 공부법 책을 '망망대해에서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등대'라 회고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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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이들의 공부가 헛되지 않게 해 주겠다."

1등급으로 가는 공부의 추월차선,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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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아빠가 공부를 잘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뽑은 것은 '올바른 이해'이다. 역사를 무조건 암기하는 것과 전후 상황을 파악해서 인과 관계를 이해한 후에 외우는 것은 천지차이다. 물론 이 과정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무언가를 이해하고 알아가기 위해 노력을 하면 우리 뇌는 '여기에 많은 시간을 쓰네, 중요하니까 잘 저장해둬야지.'라고 판단한다. 뇌는 아주 효율적으로 일을 하므로 기억할 필요가 있는 것만 따로 저장하는 것이다.

이해를 위한 좀 더 확실한 방법은 역시 '묻고 답하기'이다. 그 중 누군가의 질문에 답을 하는동안 우리는 오히려 많은 것을 얻게 된다. 가히 공부의 신비라 할 수 있는 이 과정은 배우는 사람과 가르치는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선순환인 것이다.

질문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질문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모르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질문으로 바꾸는 과정,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공부이다. 때로 이런 경우도 있다. 모르는 것을 질문하려고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다 보니 "아하!" 하며 세상이 밝아지기도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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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공부의 과정은 '아이의 뇌'의 몫이다. 그렇다면 부모인 우리는 그들의 뇌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적극 돕는 것이 최선이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체력 관리'다. 공부의 전제 조건은 성실함과 꾸준함인데 그러려면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 건강해야 이해도 하고, 질문도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너무도 잘 알고 있듯이,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기'이다. 특히 수험생이나 중요한 일을 앞둔 사람들은 부족한 시간을 자는 시간에서 떼어 와 쓰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미래를 갉아먹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저자의 비유에 따르면 낮에는 창고에 물건을 쌓듯 우리의 뇌에 수많은 정보를 입력하고, 밤에, 그러니까 자는 동안 엉망진창인 창고를 정리하듯 정보를 필요에 따라 선별하고 재배치한다는 것이다. 낮동안 아무리 좋은 정보를 많이 쌓아올려도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 정리가 잘 되지 않으면 정보의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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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사대천명'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하지만 적어도 공부한 만큼의 결과는 나오도록, 공부한 것보다 조금 더 나은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등급으로 가는 공부의 추월차선,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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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처럼 입시 결과만을 놓고 본다면 '실패'라고 할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아빠가 그렇게 극성이더니 별 거 없네.'라며 핀잔을 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흉년이 들까 걱정되어 논을 내버려 두는 농부는 없다. 가뭄으로 땅이 쩍쩍 갈라져도, 태풍으로 수확을 앞둔 농작물이 다 떨어져도, 다시 씨를 뿌리고 거둔다. 이래서 자식 농사라는 말이 있는 건가보다. 그렇다면 나의 농사는 대학 입시라는 결실만이 아닌 하루하루 영글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둬야겠다. 때로는 추월 차선에 들어섰다가 뒤쳐지기도 하며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으로 달리는 아이들을 응원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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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헌혈 ㅣ 이야기강 시리즈 12
정광민 지음, 도휘경 그림 / 북극곰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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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감정을 머리로 느끼는 줄 알지만, 감정은 온 몸을 돌며 피를 물들여요. 우리는 그 피가 필요해요. 예를 들면 슬픔의 피, 기쁨의 피를 채취하는 거죠.

이상한 헌혈,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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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엄친아인 사촌형이 헌혈을 해서 받은 문화상품권이었다. 그 옛날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 헌혈을 했던 것처럼 주인공인 용기는 문화상품권으로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조금 특별한, 아니 많이 이상한 헌혈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붉은 피 대신 기쁨, 감동, 설렘, 분노, 긴장, 슬픔과 같은 감정을 헌혈하면 24시간 동안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가 서서히 회복된다고 했다. '마녀에게 빼앗겼던 인어 공주의 목소리도 하루 만에 돌아왔으면 왕자와 행복한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던 용기는 첫 번째 감정 헌혈의 대상을 '분노'로 정했다. 감정 헌혈은 약 10분 정도 소요됐다. 그동안 용기는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던 '시케이다 맨' 게임과 자홍이의 휴대폰 파손 등 친구들과의 한바탕 소동을 떠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박사님의 주문에 따라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게 집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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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헌혈이 끝난 뒤 용기는 오랜만에 뜻밖의 칭찬을 받았다. 첫 번째 감정 헌혈에서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피를 뽑기란 쉽지 않다. 화난 일을 떠올려도 미안하거나 서운한 감정, 때로는 사랑하는 마음이 섞이기 마련인데 용기는 그 어렵다는 분노 함량 90%를 한 번에 해낸 것이다. 이게 다 그 완전 재수 없는 녀석, 이기준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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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이는 용기네 학급의 반장이다. 5학년쯤 되면 지루한 수업 시간에 농담 한 마디로 교실을 뒤집어놓는 웃기는 아이보다 타의 모범이 되는 아이에게 표가 몰리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반장이 된 기준이가 가족 여행을 다녀온 뒤 이상해졌다. 5일 만에 학교에 와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반장을 그만두겠다고 하질 않나, 아프다는 핑계로 교실 청소도 하지 않고 도망을 간다. 거기다 팔에는 용기의 것과 똑같은 주사 바늘 자국이 발견된다. 자신이 헌혈한 감정이 어디에 쓰이는지 몹시 궁금하고 의심스러웠던 용기는 자홍과 수아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다. 만약 '시케이다 맨' 게임의 최강자인 'JUN'이 용기를 게임에 미친 사람 취급하던 기준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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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감정만으로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요. 용기군이 감정 헌혈을 하면서 감정을 느낀 순간을 떠올린 것처럼요. 분노를 주입하는 순간 자신이 화가 났던 때로 되돌아 가는 거죠. 감정 치료는 그때로 돌아가 소화하지 못한 감정을 풀어 줘요.

이상한 헌혈,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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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진짜 악당을 찾으려던 용기는 기준이와 할머니의 속사정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용기의 할머니는 형의 사고로 괴로워하는 기준을 위로하며 갑자기 사별을 했던 자신의 아픔을 꺼내본다. 살다 보면 모든 게 다 내 탓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만,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차라리 없었던 일로 지워버리고 싶은 일도 소중한 기억의 하나라고. 그 힘든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누군가에게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두 번째는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 비로소 모든 감정의 주인이 된 용기와 형의 사고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낸 기준이의 '감정통'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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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상점 1 - 귀하고 신기한 물건을 파는 지하 37층 ㅣ 귀신상점 1
임정순 지음, 다해빗 그림 / 열림원어린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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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37. 이 세상에 존재할까 의심스러운 지하 37층의 세계를 만나게 된 세 아이가 있다. 그 중 첫 번째는 '말발 별로, 인물 별로, 운동 별로, 머리 회전 별로'인 구단우다. 단우는 올해 반드시 학급 회장이 되어야 했다. 유치원 때부터 서로의 미래를 약속했던 공미미와 리더십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의 고등학교에서까지 한 번도 회장을 놓치지 않은 사촌 형에게서 얻어낸 특급 비밀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회장 선거 결과 단우의 표는 딱 한 표였던 걸 보면 말이다. 단우는 자신을 뽑았으니, 그러면 완전 빵 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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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찾는 물건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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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고 신기한 물건을 파는 지하 37층 귀신 상점. 그 곳의 주인은 여신처럼 아름다운 명진 아씨였다. 상대를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운 검푸른 눈동자는 마주치기만 해도 주눅이 들게 만들었다. 긴 머리는 반으로 묶고 옷은 천상의 천으로 만든 것처럼 하늘거리고 가벼워 보였다. 옷을 장식한 무늬는 은색 가위와 삼색 실, 꽃씨와 은 씨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삼색 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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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 느낌은!"

회색빛 같던 단우 마음이 무지개를 드리운 듯 환해졌다.

"안경, 완전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든다니 고맙네요. 물건을 소중히 다루고 안경의 경고를 무시하지 말아 주세요."

"안경이 경고한다고요? 킥킥킥,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귀신 상점 1,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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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홀린 듯 상점 한 쪽으로 이끌려 간 단우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안경이었다. 영롱한 빛을 내는 안경을 보는 순간 단우는 이것이 자신에게 필요한 물건임을 확신했다. 이름하여 '인싸 여우눈알안경'.

효과는 빠르고 확실했다. 친구들은 단우와 함께 놀고 싶어했다. 박치에다 음치인 단우는 코인노래방에서 박자와 음정 모두 엉망진창인 채 노래를 불러도 같이 춤을 추고 요란하게 박수를 쳐 주었다. 다음 날부터는 단우가 교실에 들어서기만 해도 앞다투어 단우를 반기고 인사하기에 바빴다. 심지어 체육 시간에는 피구를 못해서 팀에 끼워주지도 않았던 단우를 서로 자기 편으로 데려가려고 난리였다. 그때였다. 처음 느껴보는 인기에 취해 친구들에게 막말을 하던 단우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뭔가 뾰족한 것에 찔린 것처럼 얼굴이 따끔했다. 안경이 의심스러워 벗어서 살펴 봤지만 아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친구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단우에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코가 간질간질했다. 뭔가 싶어 만져 보니 까끌까끌했다. 화들짝 놀라 거울을 보니 세상에, 얼굴 곳곳에 털이 숭숭 올라오고, 콧잔등이 까맣게 변하더니 뾰족하게 솟아나는 게 아닌가. 게다가 눈꼬리가 올라가고 입도 옆으로 쭉 벌어지더니 뾰족한 어금니까지 솟아나려 했다. 영락없는 여우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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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안경의 경고를 깨달은 단우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제껏 했던 나쁜 말들을 모두 주워 담고 싶었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 동글동글 흘러내린 단우의 눈물이 바닥에 떨어지자 방울방울 뭉쳐 푸른 구슬로 변했다. 그때 목요가 나타났다. 눈이 하나인데 말과 고양이를 합쳐 놓은 듯하고 몸에 털이 없어 매끈한 목요는 푸른 구슬 하나를 입에 물고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단우를 가엾게 바라봤다. 처음 누려보는 인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단우를 보니, 인어 아가씨에게 고백했다 차이고 속상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오른다. 목요는 그 슬픔을 지나치지 못하고 주머니 속에 있는 사탕 하나를 슬쩍 단우의 손바닥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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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에게서 단우의 눈물로 만들어진 푸른 구슬을 건네 받은 명진 아씨는 가게 뒷문으로 나가 드넓은 꽃밭으로 갔다. 거기에 축 늘어져 있던 푸른 꽃 아래 고이 들고 온 푸른 구슬을 거름으로 주고 정성스럽게 꾹꾹 눌렀다. 그러자 푸른 꽃이 다시 싱싱하게 자라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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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때가 되면 직원이 받으러 갈 겁니다."

귀신 상점 1,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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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 춤추는 것과 먹는 것 빼면 세상에 재미있는 일이 하나도 없는 고동찬에게는 귀신 상점의 '춤추는 빨간 양말'이 쥐어진다. 바지 고무줄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뱃살, 손으로 움켜쥐면 한 덩어리가 되는 살이 창피해서 춤추는 것도 그만 두고, 먹는 것도 그만두려 했던 동찬. 하지만 목요와 명진 아씨를 만나고, 춤추는 빨간 양말을 신는 순간 갑자기 다리가 흔들흔들 어깨가 들썩들썩 온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몸의 움직임에 자신을 맡기고 신나게 춤을 추다 보니 배짱도 두둑해지고 자신감도 솟구쳤다. 춤을 출수록 동찬이의 가슴 속에 박혔던 악성 댓글들이 하나씩 빠져나갔다. 마치 춤 속으로 빠져들어간 듯 보이는 동찬이를 보던 목요마저 팔다리가 엇박이 되어도 뻣뻣한 온 몸을 마구 흔들었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춤을 추던 동찬이에게서 받은 노란 구슬은 또 한 송이의 꽃을 싱그럽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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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귀신 상점에 들른 아이는 피오였다.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던 피오는 귀신 상점에서 받아온 '용비닐 파우치 필통'을 통해 돈 많은 백수가 아닌 '화가'라는 꿈의 싹을 틔운다. 그 싹은 연두색 구슬이 되어 시들어가던 꽃의 거름으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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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떠난 귀신 상점의 이른 아침.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꽃밭의 침입자'가 나타난다. 목요가 뒤쫓다가 놓친 침입자가 '미스터햄'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명진 아씨의 얼굴에는 어둠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지하 37층에 있는 아름다운 꽃을 찾으러 왔다는 이 꽃미남 침입자의 정체는 귀신 상점 2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니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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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 사과와 장미부터 크리스마스트리까지 인류와 역사를 함께 만든 식물 이야기 ㅣ 테마로 읽는 역사 8
사이먼 반즈 지음, 이선주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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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 책의 마지막 장에 적혀 있는 숫자이다. 그야말로 벽돌 책이다. 이 두꺼운 책을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큰 결심을 하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겨보니 걱정이 앞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제목처럼 진짜 100가지의 식물에 대한 이야기이긴 한데, 처음부터 읽어야 할 필요가 없다. 손 끝과 눈으로 차례를 따라 가다 멈춰서는 바로 거기서 시작하면 된다. 나는 100가지의 식물 중 5번째인 '버드나무'에서 시작했다. 초록초록한 것은 워낙 좋아하는 데다 이른 봄부터 제 몸을 불려가며 기다린 가지를 물가에 드리우는 버드나무에겐 특별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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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

상서로운 모습만큼 이로운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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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나무의 길고 유연한 가지는 선사시대부터 인류를 이롭게 했다. 쉽게 휘어져서 어망이나 바구니처럼 다양한 모양의 생필품을 만들어 사용했다. 가축을 가두는 울타리와 인간이 살 집도 지었고, 크리켓 경기에서 사용되는 배트를 만들기도 했다. 뭐니뭐니해도 버드나무의 가장 혁신적인 활용은 수액에서 발견한 성분을 합성해서 만든 아스피린이다. 나무로 약을 만들었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버드나무 껍질에서는 씁쓸한 수액이 잔뜩 나온다고 한다. 이 수액에는 통증을 줄이고 열을 내리는 살리신산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프랑스의 앙리 르루는 살리신을 결정체 형태로 분리한 뒤 1874년 헤르만 콜베가 살리신 합성에 성공했다. 하지만 살리신을 과다 복용하면 구토와 혼수 상태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걸림돌이었다. 다행히 얼마 후 펠릭스 호프만이 소화 장애를 덜 일으키면서 류머티즘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합성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이 아세틸살리실산이라는 성분을 이용해 염료 회사이자 제약 회사인 바이엘이 아스피린이라는 약을 만들어 판매했다. 파라세타몰, 이부프로펜이 나오기 전까지 아스피린은 세계 최고의 진통제였다. 오늘날에는 심장 마비와 뇌졸중 예방에도 활용되며, 아스피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낸 연구자들은 1982년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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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느 여름날 두 세명이 손을 이어잡아야만 껴안을 수 있을만큼 커다란 버드나무를 보며 아스피린을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호불호가 없을 것 같은 이 나무는 2세기부터 18세기까지 실크로드를 통해 다른 여러 교역품들과 함께 유럽으로 전해졌고, 곧 유럽에서 중요한 나무가 되었다. 18세기의 시인 알렉산더 포프는 지금의 튀르키예를 여행하던 중, 수양버들의 매력에 빠져 서펄 부인에게 무화과를 담은 바구니를 보내며 살아 있는 수양 버들 나뭇가지를 달라고 애걸했다고 전해진다. 어렵게 얻어낸 나뭇가지를 런던 남서부 트위크넘의 템스강 변에 있는 자신의 집에 심었다. 그렇다면 현재 유럽에 있는 수많은 수양 버들은 알렉산더가 고이 모셔온 나뭇가지의 후손이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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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긴 이파리들이 물에 잠겨 있곤 하는 수양 버들에 대해 오래전부터 순전히 미적인 환상을 품어왔다.

100가지 식물로 읽는 세계사, 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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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리 포터>의 한 장면에서 해리와 친구들을 후려치는 것이 바로 버드나무이다. <반지의 제왕>에서 호빗족 메리와 피핀은 버드나무 뿌리에 영감을 갇힌다. 중국에서 버드나무로 조상의 무덤을 쓸어내리고, 일본에서는 버드나무가 귀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영국의 민담에도 불길한 버드나무가 등장하는 걸 보면 역시 사물은 보는 이의 시선에 따라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깊은 밤, 물가에 선 버드나무의 모습은 어찌 보면 흡사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귀신처럼 보이기도 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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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깊고 넓은 지식을 따라 가다 보면 그가 꽤 수다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며,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그의 이력을 보면 수긍이 가기도 한다. 여느 학자 못지 않은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관찰력, 베티랑 기자 출신다운 생생한 현장감과 재치 있는 위트가 그를 뒷받침한다. 그의 전작인 <100가지 동물로 읽는 세계사>에도 마음이 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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