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헌혈 ㅣ 이야기강 시리즈 12
정광민 지음, 도휘경 그림 / 북극곰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흔히들 감정을 머리로 느끼는 줄 알지만, 감정은 온 몸을 돌며 피를 물들여요. 우리는 그 피가 필요해요. 예를 들면 슬픔의 피, 기쁨의 피를 채취하는 거죠.

이상한 헌혈, 32쪽

​

시작은 엄친아인 사촌형이 헌혈을 해서 받은 문화상품권이었다. 그 옛날 빵과 우유를 먹기 위해 헌혈을 했던 것처럼 주인공인 용기는 문화상품권으로 게임 아이템을 사기 위해 조금 특별한, 아니 많이 이상한 헌혈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붉은 피 대신 기쁨, 감동, 설렘, 분노, 긴장, 슬픔과 같은 감정을 헌혈하면 24시간 동안 그 감정을 느끼지 못하다가 서서히 회복된다고 했다. '마녀에게 빼앗겼던 인어 공주의 목소리도 하루 만에 돌아왔으면 왕자와 행복한 해피 엔딩을 맞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던 용기는 첫 번째 감정 헌혈의 대상을 '분노'로 정했다. 감정 헌혈은 약 10분 정도 소요됐다. 그동안 용기는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던 '시케이다 맨' 게임과 자홍이의 휴대폰 파손 등 친구들과의 한바탕 소동을 떠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박사님의 주문에 따라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게 집중하면서.

​

감정 헌혈이 끝난 뒤 용기는 오랜만에 뜻밖의 칭찬을 받았다. 첫 번째 감정 헌혈에서 다른 감정이 섞이지 않은 피를 뽑기란 쉽지 않다. 화난 일을 떠올려도 미안하거나 서운한 감정, 때로는 사랑하는 마음이 섞이기 마련인데 용기는 그 어렵다는 분노 함량 90%를 한 번에 해낸 것이다. 이게 다 그 완전 재수 없는 녀석, 이기준 덕분이다.

​

기준이는 용기네 학급의 반장이다. 5학년쯤 되면 지루한 수업 시간에 농담 한 마디로 교실을 뒤집어놓는 웃기는 아이보다 타의 모범이 되는 아이에게 표가 몰리기 마련이다. 그리하여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반장이 된 기준이가 가족 여행을 다녀온 뒤 이상해졌다. 5일 만에 학교에 와서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반장을 그만두겠다고 하질 않나, 아프다는 핑계로 교실 청소도 하지 않고 도망을 간다. 거기다 팔에는 용기의 것과 똑같은 주사 바늘 자국이 발견된다. 자신이 헌혈한 감정이 어디에 쓰이는지 몹시 궁금하고 의심스러웠던 용기는 자홍과 수아의 도움을 받아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려 한다. 만약 '시케이다 맨' 게임의 최강자인 'JUN'이 용기를 게임에 미친 사람 취급하던 기준이라면?

​

​

​

사람은 감정만으로도 과거로 돌아갈 수 있어요. 용기군이 감정 헌혈을 하면서 감정을 느낀 순간을 떠올린 것처럼요. 분노를 주입하는 순간 자신이 화가 났던 때로 되돌아 가는 거죠. 감정 치료는 그때로 돌아가 소화하지 못한 감정을 풀어 줘요.

이상한 헌혈, 93쪽

​

이후 진짜 악당을 찾으려던 용기는 기준이와 할머니의 속사정을 통해 슬픔을 극복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그것은 바로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용기의 할머니는 형의 사고로 괴로워하는 기준을 위로하며 갑자기 사별을 했던 자신의 아픔을 꺼내본다. 살다 보면 모든 게 다 내 탓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지만,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일일 뿐이라고. 차라리 없었던 일로 지워버리고 싶은 일도 소중한 기억의 하나라고. 그 힘든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누군가에게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용기. 그리고 두 번째는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들어줄 수 있는 좋은 친구. 비로소 모든 감정의 주인이 된 용기와 형의 사고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낸 기준이의 '감정통'을 응원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