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동물원에서 만난 과학 ㅣ 수상한 동물원에서 만난 과학 1
이광렬 지음, 유혜리 그림 / 빅피시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어릴 때 우리 집은 먹고 살기에 바빴다. 애완 동물 같은 것은 꿈도 못 꿨다. 어쩌다 친구네 집에 놀러갔는데 새하얗고 뽀글뽀글한 털을 가진 강아지가 처음 보는 나에게 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인형같은 강아지를 안고 보니 그 무게감과 따뜻함에 잠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강아지에 대한 그보다 앞선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할머니 댁에 잠깐 살았을 때가 있었는데, 마당 한 켠에 소 두어머리와 개가 있었다. 어린 나에게 소는 그저 거대해 보였고, 늘 묶인 채로 꼬리를 흔드는 개는 그저 마당을 뒹구는 빨간 다라이같은 사물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오니 글쎄 그 개가 새끼를 낳았다. 한 다섯 마리쯤이었나. 갓 태어나 눈도 못 뜬 그 강아지들의 꼬물거림은 어딘가 간지러운 느낌이었다.

​

이후 서울 살이를 하면서 나에게 동물은 세 종류쯤으로 나뉘었다. 동물원에서 보는 관람용 동물, <동물의 왕국>에서 보는 관찰용 동물, 길에서 보는 무서운 길고양이.

​

​

​

​

​

수염은 고양이의 기분을 잘 보여 주니, 만약 집사로 임명이 됐다면 수염 모양을 잘 살펴 보세요. 만약 수염이 옆으로 빳빳하게 서 있다거나, 얼굴 쪽으로 당겨져 있다면 고양이는 지금 심기가 아주 불편한 상태입니다. 이때 잘못 접근하면 빨간 줄들이 생길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해요.

수상한 동물원에서 만난 과학, 빅피시

재작년쯤, 신랑이 갑자기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다. 노란 커피 믹스 상자 안에 한껏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를 꺼냈는데 웬걸, 온통 새까맣다. 눈을 감으면 그저 시커먼 솜뭉치처럼 보일 정도였다. 로즈마리 화분 하나도 제대로 못 키우는 나였지만 그 녀석에게 첫눈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펫샵에 가서 아기 고양이를 위한 사료와 화장실, 모래, 그리고 낚시 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을 잔뜩 사들고 왔다. 처음 며칠 동안 고양이는 집안 곳곳의 틈이란 틈은 다 찾아다니며 숨기에 바빴다. 엄마와 일찍 헤어진 녀석이 안쓰러워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며 사료통을 채우고, 화장실을 비우다 보니 어느새 내 주위를 맴돌며 그 까만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다.

​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녀석과 나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작은 주사위 하나만 던져줘도 어찌나 신나게 노는지. 한참을 우리집 애들처럼 뛰어놀던 고양이는 충전이 필요해졌는지 내 무릎 위에 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나는 아이들이 젖먹이 시절 그랬던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양이 몸의 곳곳을 정성껏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내 손길이 멈춘 곳이 바로 고양이 수염이었다.

킥킥킥. 꼭 가짜 수염을 갖다 붙인 것처럼 귀여웠다. 그 당시에는 왕초보 집사여서 몰랐는데 <수상한 동물원에서 만난 과학>에서 고양이 수염에 관한 내용을 읽고 보니 신기한 부분이 많았다. 마치 낚시줄 끝의 찌가 물고기의 움직임을 감지하듯 고양이의 수염은 작은 환경 변화도 놓치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감각 도구이다. 이 수염이 마치 '자'의 역할도 하는데 사냥을 하러 굴 속에 들어갈 때 그 공간에 자신이 드나들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또 고양이의 수염은 우리의 입꼬리처럼 희비를 나타내기도 한다. 수염이 아래쪽으로 축 늘어져 있다면 고양이가 많이 아프거나 피곤하다는 의미다. 그럴 때는 우리가 그러하듯 한숨 푹 자게 두면 좋다. 고양이의 수염이 움찔거리거나 바르르 떨린다면 아주 재미있는 것을 보아서 흥분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쥐를 보았거나 어항 속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하거나 혹은 높은 곳에 있는 컵을 밀어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할 수도 있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주변에 깨지기 쉽거나 소중한 물건은 얼른 치우는 것이 좋겠다. 고양이의 수염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그건 고양이가 아주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때 고양이와 뒹굴면서 장난을 치며 놀아주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샘솟을 것이다.

​

​

​

읽고 나면 동물들의 초능력을 알게 될 거야.

​

<수상한 동물원에서 만난 과학>에는 고양이와 강아지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많지만, 사막의 안개를 모아 물방울을 만드는 기발한 등껍질을 가진 나미브사막거저리, 천적을 피하기 위해 몸에 쓴맛이 나는 카민을 저장하는 연지벌레, 나뭇잎을 모아다 버섯 농사를 짓는 잎꾼개미, 사람 26명을 1분 안에 죽일 만큼 강력한 독을 지닌 파란 고리문어 등 미스터리하고 무시무시한 동물들의 특징도 가득하다.

​

​

얼마 전 아이들과 '다양성'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갸우뚱하는 둘째에게 음식에 비유했더니 쉽게 이해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아침밥을 먹으며 점심, 저녁 그리고 다음 날 무얼 먹을지 고민하기도 하잖아. 그런데 우리에게 먹을 음식이 단 한 종류밖에 없다면 어떨까? 갑자기 그 음식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구할 수 없다면?"

따로 먹어도 되는 나물들을 모아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면 왠지 보기도 좋고 더 맛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그 안에 들어 있는 음식과 그 음식에 들인 사람의 정성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아이들과 <수상한 동물원에서 만난 과학>을 읽으며 자칫하면 동물을 인간을 위한 존재로 생각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 들은 누군가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우리는 아이들을 예뻐하기 위해 낳았다는. 반성한다. 언제부턴가 아이들이 진짜 예쁜 짓을 했을 때만 예뻐했던 못난 엄마인 나를. 이렇게 또 아이들에게 선물했던 책이 나를 깨우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변호사 어벤저스 8 - 사이버 범죄, 숨은 범인을 찾아라! ㅣ 어린이 법학 동화 8
고희정 지음, 최미란 그림, 신주영 감수 / 가나출판사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

언제였던가. 처음 '사이버'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사이버틱한 느낌이 굉장히 이질적이었던 것은 선명히 기억난다. 그것은 분명 현실과 구분되는 다른 세상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사이버는 현실과 긴밀히 연관되어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다. 세상 대부분의 것이 그러하듯 좋은 점도 있고, 덜 좋은 점도 있다. 그리고 심각하며 위험한 부분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옛날 못 먹던 시절에는 암이란 병이 없었다고 한다. 스마트폰이 생기고, 인간의 삶은 화성으로의 이주를 꿈꿀만큼 미래재향적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뿌리를 내린 사이버 범죄는 이제는 거대한 숲을 이뤄 점차 많은 사람들을 어둠 속에 가두고 있다.

​

​

​

​

사이버 폭력이란, 사이버 공간에서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며 괴롭히는 따돌림, 언어 폭력, 명예 훼손, 스토킹, 갈취, 강요 등의 행위를 말한다. 요즘에는 어린아이들도 대부분 휴대 전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서도 사이버 폭력이 많이 발생한다.

변호사 어벤저스 8, 19쪽

<변호사 어벤저스 8>에서는 현재 문제되고 있는 사이버 범죄를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자행되고 있는 사이버 불링이 대표적이다. 가상 공간을 뜻하는 '사이버(Cyber)'와 약자를 괴롭힌다는 뜻의 '불링(Bullying)'을 합성한 말로, 말 그대로 이메일, 휴대전화, SNS 등 사이버상에서 특정인을 집단적으로 따돌리거나 집요하게 괴롭히는 행위를 말한다. 단체 채팅방에서 이뤄지는 언어 폭력과 딥페이크와 해킹을 통한 명예 훼손과 모욕를 견디기란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큰 고통이다.

​

올해 초 아빠가 회사를 옮기면서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 아린이 역시 그 중 하나다. 처음에는 전학생인 아린이를 걱정하듯 챙겨주는 척하던 몇몇의 아이들이 본색을 드러냈다. 상대방은 줄 마음도 없는데 억지로 이모티콘을 사달라고 하거나 기프트콘을 보내라고 하는 등 사이버 갈취와 강요를 이어갔다. 가해자와 그 부모들의 안하무인 태도에 화가난 아린이의 엄마는 아이들을 고소하기로 마음 먹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해자들이 촉법 소년에 해당하기 때문에 아린 엄마가 원하는 강력한 처벌이 내려지기는 쉽지 않았다.

아린이의 고통과 아린 엄마의 타는 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해자들은 사이버 폭력을 이어간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과 받는 사람 외에는 누구도 볼 수 없게 만든 메신저인 토크그램을 통해 몰래 찍은 아린이의 얼굴에 돼지와 말을 사진을 합성해 유포한 것이다. 이 메신저는 해외에 서버가 있어 추적이 어렵고, 협조도 잘 안 되기로 유명하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우리의 변호사 어벤저스는 바로 이런 때를 위해 존재한다. 특히 권리아와 양미수는 이범을 두고 어긋나는 사랑의 작대기 덕분에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대의를 위해 똘똘 뭉쳤다. 아린이의 교실에 찾아가 몰래 아린이의 사진을 찍은 것이 가해자 중 한 명인 허인수라는 것을 알아낸 우리의 영웅들은 아린이의 담임 선생님께 그 사실을 알린다. 피해자와 가해자가자 자신이 가르치는 아이들이라 속상하면서도 책임감을 느낀 선생님이 가해자들의 자백하도록 도왔고, 가해자와 그의 부모들도 아린이에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진심으로 잘못을 빌었다.

하지만 아린이와 아린이 엄마의 상처는 깊을대로 깊었다. 아린 엄마는 아이들이라도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며 합의를 거부했고, 가해자들은 소년 보호 재판에 넘겨졌다. 그 결과 2호 처분을 받아 보호 관찰소에서 40시간 동안 교정을 위한 일정한 강의나 교육을 받게 됐다.

​

​

이후에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의지하며 살던 최유진의 안타까운 사연이 이어진다. 유진은 관절염이 심해져 고통스러워하는 할아버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고, '대성 무역'이라는 유령 회사를 차려놓고 보이스 피싱을 하던 범죄자들이 그 고운 효심을 이용했다. 꿈에도 모르고 보이스 피싱 현금 인출책 노릇을 하다 현행범으로 잡혀간 손자를 보며 할아버지는 다리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이에 강력계 형사인 권리아의 아빠와 변호사 어벤저스가 힘을 합해 마침내 최유진의 무죄를 증명해 보였다. 은혜를 갚을 길이 없어 음료수와 빵이라도 잔뜩 사들고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두 사람. 다시 둘이 된 그들을 지켜보며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하며 훈훈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트라우마로 인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그것이 힘들어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거나, 심지어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도 발생한다.

아이들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아린이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곳이 더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 어벤저스 8, 79쪽

​

​

일련의 사건을 거치며 지친 아린이와 아린이의 엄마는 다시 예전 학교로의 전학을 결심했다. 가해자를 벌하기는 했지만, 아린이가 가해자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는 것에 부담을 느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속상하고 화나게도 사이버 범죄의 피해자 대부분이 미성년자다. 아직 스스로를 보호할 힘과 이성이 없는 아이들을 향한 어른들의 욕심이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런 어른들의 언행을 아이들이 그대로 보고 따라한다는 점이다. 귀를 의심할 정도로 무자비한 학교 폭력 사례를 접할 때마다 나는 직장 내 괴롭힘과 너무도 닮아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어떻게 애들이 저런 말을, 그런 행동을 할 수가 있을까. 누군가의 말을 들었고, 어디선가 본 것임이 틀림없다. 미성숙한 어른들의 모습을 잘잘못을 가리지 못한 채 여과없이 받아들인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변호사 어벤저스 시리즈는 아이들만 읽고 말기에는 아깝다. 꼭 부모님들도, 어른들도 함께 읽고 생각하고 행동했으면 좋겠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하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숲속의 담 1 : 자라지 않는 소년 ㅣ 동화로 읽는 웹툰
김영리 글, 다홍 원작 / 다산어린이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동명의 웹툰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만난 <숲속의 담>. 표지만 보고 숲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동화쯤으로 생각했다. 초등학교 3학년인 둘째 역시 같은 마음으로 나보다 먼저 책을 집어들었으나 진도가 나가지 않는 듯 보였다. 두 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끄덕끄덕, '네가 이 책을 읽으려면 너만의 인생을 좀 더 살아야겠구나.' 하고 마음의 소리만 냈다.

​

​

​

​

'담'은 불로불사, 불로장생의 신이다. 그가 열네 살 되던 해, 자신의 손길이 닿으면 식물의 푸른 줄기가 쑥쑥 뻗어 나가고, 죽어가던 식물도 되살아나게 하는 엄청난 재능을 발견했다. 심지어 그 능력은 사람에게도 효과가 있었다. 자신을 향한 시선이 두려워 집안에 틀어박힌 담은 꽃에 물을 주고, 책을 읽으며 지냈다. 담의 방은 초록의 식물로 터져버릴 듯했고, 얼마 후 정신을 차려보니 부모님은 나이들어 돌아가셨고, 동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동생이 죽고, 세월이 흘러 죽은 동생의 아이마저 죽어 있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담은 여전히 열네 살 때 모습 그대로였다.

​

​

​

"우리는 담과 꽤 긴 세월을 함께했어요. 담이 평범한 아이가 아닌 건 맞아요. 처음엔 저도 담과 함께 지내기가 꺼려졌어요. 두려웠으니까. 하지만 그냥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일 뿐이에요. 담은, 만나 본 누구보다도 서툴고 다정한 인간이에요. 우리가 같이 지내는 동안 담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는 사람은 없었어요. 담의 능력을 이용하려 하거나 담을 두려워할 뿐이었죠. 담은 항상 누군가를 위해 능력을 썼어요. 아마 이번에는 이곳 3구역 모두를 위해 능력을 썼을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이 자신을 두려워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거예요. 항상 그렇게 지내 왔으니까 , 그러니 담을 그대로 받아들여 주실 수 없나요?"

숲속의 담 1, 159쪽

​

​

우리는 여전히 '다름'과 '틀림'을 혼동한다. 내 다름은 결코 틀림이 아니라 목소리 높이지만, 타인의 다름은 종종 틀림으로 치부한다. 그들을 구석으로 내몰며 내 다름을 숨기려 한다. 하지만 누구도 안도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제각각 다르게 시작했기 때문이다.

​

담에게 '코나'로 대변되는 과거와 '미쉬'로 나타내는 현재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담은 마침내 자신의 다름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다. 아무리 과거에 잠기려 애써도, 그 추억을 되살리려 모든 걸 바쳐도 살아 있는 사람에 비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도.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다. 과거를 붙들고, 과거에 붙잡혀 현재를 매몰시키는.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 어두운 시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한 것은 '사람'이었다.

담에게도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담이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가까이할 수 없었던 미쉬, 아픈 상처를 나눠 가졌지만 차마 쉽게 꺼내 보이지 못하는 플로리안과 레나, 그 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율리, 담을 닮아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기꺼이 미쉬의 곁에 있기를 약속하는 진.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의 상처를 마주할수록 그들을 하나로 묶는 것은 어쩌면 그들에게 가장 필요했던 '가족'이라는 이름이었다.

​

​

​

​

"나는 한 사람에게 미움받는 것조차 두려워서 나를 남에게 맞추려고 했는데, 너는 누가 뭐라하든 눈치 보지 않고 마을에 너를 맞추려 하지도 않았잖아. 너무 대단해 보였어. 그래서 나도 그때 처음 용기를 내 본 거야."

숲속의 담 1, 156쪽

​

​

두 권의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가 만약 담이었다면, 나에게 남과는 다른 능력이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 수많은 고뇌와 두려움을 견디느니 '평범'이 낫겠다면 너무 현실적일까. 뒤이어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사실 이 세상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남다른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굴러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

​

​

"엄마, 불로초는 진짜 있지?"

<숲속의 담>을 먼저 읽기 시작했던 둘째가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나 역시 한껏 진지하게 되물었다.

"불로초가 진짜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음..."

아이는 대답을 잊은 채 자신만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

확실히 이 책은 겁없는 야생동물처럼 날뛰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꽤나 심오하다. 어쩌면 이제는 그저 되는대로, 쉽게 쉽게 넘어가자고 타협하는 나같은 '어른'에게도.

<숲속의 담>은 한동안 책장 한 켠을 지키게 될 것 같다. 그 언젠가 아이들이 이 책의 표지에 홀려 책장을 넘기게 될 때, 그때 나도 다시 한 번 담과 그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때까지 모두 안녕.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어린이를 위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김지연 지음, 유영근 그림 / 제제의숲 / 202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분명 '철학'이라는 말에서는 어느 만큼의 무게가 느껴진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굉장히 어려운 분야라고 단정 짓고 담을 쌓는 선입견도 한몫한다. 특히 비관론자로 대표되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접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약간의 희망은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절망에 가까워진다.

​

​

​

​

살다 보면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많아요. 어떤 학원을 다닐지, 숙제를 언제 할지, 친구와 싸웠을 때 어떻게 말할지... 그런 순간에 필요한 게 바로 '철학'이에요.

어린이를 위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10쪽

​

김치찌개를 먹을지, 된장찌개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도 철학이라고?

사실 철학자라는 말은 철학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본래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인간을 인간이 아닌 것과 구분하는 가장 명확한 요소가 '사유'이듯, 쉽게 말해 넓고 깊게 생각하는 일인 철학이야말로 인간이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이고, 진정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

​

<어린이를 위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은 쇼펜하우어가 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소품과 부록>에 담긴 그의 사상 중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자세와 관련된 내용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게 각색한 책이다.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인생을 위한 세 가지 기본 기술,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위한 일곱 가지 방법, 발전과 성공을 부르는 여섯 가지 방법에 대한 쇼펜하우어의 조언이 이어진다. 그 사이사이 남녀노소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만화가 이해를 돕는다. 내 생각에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구구절절 길게 말하지 않아 '철학책'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얘들아, 이리 와 봐. 그러니까 철학이란 말이지." 하며 저 옛날 이야기부터 시작한다면 나조차도 철학 쪽으로는 고개도 돌리기 싫어질 것이다.

​

​

​

​

​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 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무의식에 휘둘리는 비합리적 존재'라고 말했어요. 프로이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의지를 갖고 행동한다기보다 몸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셈이지요. 단순히 의지를 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의지를 바꾸기는 어려워요. 무의식적으로 행동하는 습관이 바뀌도록 꾸준히 노력해야 의지를 바꿀 수 있이죠. 결국 습관을 바꿔야만 자신이 처한 환경을 통제하고 일상을 바꿀 수 있답니다.

어린이를 위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 23쪽

​

​

그 어떤 청산유수의 진리라도 실천이 없으면 속 빈 강정이다. <어린이를 위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가 내세우는 또 하나의 강점은 도전 의식을 불태우는 '이렇게 해 봐요!'라는 부분이다.

의지를 다지려면 구체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목표는 어떻게 할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고, 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진행 상황을 측정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물론, 여기까지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목표를 정하는 방법으로 널리 알려진 'SMART 목표 설정법'을 살펴본 후 내가 느낀 점은 '빠져나갈 구멍을 차단한다' 였다.

올해도 작년처럼 '체중 감량'을 새해 목표로 삼았다면 구체적으로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설정한다. 매일 줄넘기 30분 하기 혹은 매일 줄넘기 200개 하기처럼. 또 한 달 안에 몸무게 10킬로그램 빼기처럼 극단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라 일주일에 200그램 감량하기처럼 '해 볼 만한데?' 하고 덤빌 수 있는. 사실 우리가 체중 감량을 하려는 궁극적인 목표는 건강한 심신을 위함이다. 매일 줄넘기를 하는 습관이 어느 정도 몸에 익었다면 근력 운동도 추가해 보는 거다. 그렇게 하나둘 가지를 뻗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달라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이때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항은 명확한 시간 제한이나 목표 달성 기한을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은 빠질 것이다. 언젠가는. 성적도 오를 것이다. 언젠가는. 하지만 그 언젠가는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개학 전까지 3킬로그램 감량하기, 2학기에 수학 점수 10점 올리기와 같이 약간의 긴장을 유도하는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

​

​

​

​

아이들의 짧은 여름방학이 끝났다. 어제 아이들은 방학 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과 통화하며 "학교 가기 싫다. 너도 그렇구나." 하면서도 어쩐지 싱글벙글했다. 너희들은 모르지. 사실 가장 신나는 건 나다.

오늘 아침 나는 마치 새로 태어난 듯 방학 동안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아침을 맞이했다. 어젯밤 나와의 싸움에서 이겨 일찍 잠든 덕분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을 떴다. 등교 전 아이들의 아침 공부를 두고 실랑이하는 대신 운동화를 신고 실내 자전거로 올라갔다. 두 아이들이 내 주위를 오가며 말싸움을 하고, 몸싸움을 해도 눈을 질끈 감고 나에게 집중하려 깊은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아침 공부를 하는 이유는 오후에 더 많이 놀기 위해서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아이들이니 하교 후에 숙제와 과제에 쫓기다 보면, 분명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그때 우선 <어린이를 위한 쇼펜하우어의 인생 수업>을 내밀고, 함께 고민해봐야지.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피할 수 없는 고통으로 가득한 이 삶을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어 성장할지에 대해. 물론 철학하자는 말은 쏙 빼놓고.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엄마의 과학 - 우리 아이를 위한 최소한의 지식
이연주 지음 / 북스힐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마 노릇이 힘든 이유의 6할은 이 고된 시간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모나 사촌 언니였을 때 우리는 이렇지 않았다. 천진난만한 그 아이들은 천사임이 틀림없다 믿었고, 세 어떤 향수보다 사람을 매혹시키는 그들의 체취에 모든 것을 빼앗기는 듯했다. 그러나 막상 내가 아이를 낳고, 엄마가 돼 보니 이건 전혀 다른 세계였다. '엄마'는 그저 '엄마'였다.

​

대체 왜 옆집 아이에게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는 걸까. 친자식임을 확인하는 방법 중에 공부를 가르쳐 보라는 말이 있다. 열성을 다해 설명을 해줬음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옆집 아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가 되는데, 내 아이면 드라마에서나 보던 말이 튀어나온다. 이를 악물며 참아보려 하면 몸에서 사리가 나올 지경이다.

​

​

​

​

​

​

제가 과학 전공자이긴 하지만 나이대에 맞지 않은 설명은 오히려 아이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고, 아이의 나이대에 맞추어 설명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엄마인 제가 힘들어서 지속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설명해 주지 않아서 아이들은 더 궁금한 것이 많아지고 학교 수업에 대한 기대도 커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엄마의 과학, 8쪽

​

"미르야, 붕어빵 뜨거우니 조심해서 먹어."

"이미 다 식었는데..."

"겉은 식었어도 속에 든 달달한 팥소는 엄청 뜨거워."

"와, 진짜 뜨겁네. 엄마, 왜 그런 거야?"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자. 욕심을 내려놓기 쉽지 않겠지만 과학 공부보다 '대화'에 초점을 맞추자.

아이가 유아나 초등 저학년이라면 호떡이나 붕어빵을 먹을 때 겉보다 속이 더 뜨겁다는 정도만 알려줘도 충분하다. 초등 고학년쯤 되었다면 "비열이라는 게 있는데, 1g의 물질을 1도 올리는데 필요한 열량이야, 그걸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어."까지만 하는 걸로 하자. 중학생이라면 비슷한 양일 경우 비열을 통해 잘 식는 정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열용량을 비교해 보는 것도 좋겠다. 제발 부디 아이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진지해지지 말자.

​

​

어렸을 때 나에게 '야구=길다'였다. 주말 오후 아버지가 티비 앞을 지키고 야구 중계를 보기 시작하면 그렇게 시간이 안 갔다. 책도 보고, 놀고, 낮잠까지 잤는데도 야구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성인이 된 후, '야구=지루함'이었던 나는 누군가의 손에 끌려 야구장으로 향했다. 그날 나는 첫눈에 '야구장'과 사랑에 빠졌다. 그곳에 가본 사람이라면 고개를 끄덕끄덕하리라 믿는다. 이후 친구의 친구와 함께 어울리듯 야구를 좋아하게 됐고, 9회말 2아웃의 역전극까지 경험하고 나서는 '야구=신나!'가 되었다. 특히 타자가 친 공이 쭉 뻗어나가 담장을 넘기는 홈런의 순간은 그야말로 스트레스 제로였다.

​

​

​

​

모양에 따라 힘이 전달되지 않는 위치는 달라집니다. 이승엽 선수는 자신의 타격 습관에 따라 스위트 스폿에 공이 맞도록 방망이를 개인적으로 주문 제작해서 사용했다고 합니다. 박병호 선수는 스위트 스폿에 공을 맞히기 위해 스위트 스폿이 그려진 종이를 방망이에 붙이고 연습하는 장면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엄마의 과학, 96쪽

'스위트 스폿'. 이름도 달콤한 이 스포츠 용어는 손에 충격을 주지 않고 공이 멀리 날아갈 때, 채나 방망이에 맞는 공의 위치를 말한다. 무조건 세게 휘두르는 것보다 스위트 스폿에 잘 맞추면 공이 더 멀리 잘 날아간다. 저자는 대학 물리학을 공부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스위트 스폿의 이론을 간단한 실험을 통해 소개한다. 준비물은 펜 하나와 종이. <야구왕 허슬기>라는 만화를 통해 야구에 흥미를 가지게 된 아이들과 함께해 봤는데, 당장 운동장에 나가서 직접 해보자는 걸 말리느라 혼났다.

과학자들은 과학이야말로 우리 생활에 밀접하다고 하지만 사실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는 매일 과학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초등학교에서는 수학과 영어 덕분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난 게 사실이지만 중학교에 가면 보다 넓고 깊은 과학을 만나게 된다. 관심이 없으면 아주 어렵다. '수포자' 만 무서운 게 아니다. '제물포'도 있다. 나 역시 '쟤 때문에 물리 포기' 한 수많은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런데 물리를 전공한 엄마가 쓴 과학 교육책이라니. 이것저것 말할 필요 없다. <엄마의 과학>은 구원이다. 그냥 따르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