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쯤, 신랑이 갑자기 새끼 고양이를 데려왔다. 노란 커피 믹스 상자 안에 한껏 웅크리고 있던 고양이를 꺼냈는데 웬걸, 온통 새까맣다. 눈을 감으면 그저 시커먼 솜뭉치처럼 보일 정도였다. 로즈마리 화분 하나도 제대로 못 키우는 나였지만 그 녀석에게 첫눈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펫샵에 가서 아기 고양이를 위한 사료와 화장실, 모래, 그리고 낚시 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을 잔뜩 사들고 왔다. 처음 며칠 동안 고양이는 집안 곳곳의 틈이란 틈은 다 찾아다니며 숨기에 바빴다. 엄마와 일찍 헤어진 녀석이 안쓰러워 마음을 열 때까지 기다리며 사료통을 채우고, 화장실을 비우다 보니 어느새 내 주위를 맴돌며 그 까만 눈망울로 나를 바라봤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녀석과 나의 데이트가 시작되었다. 작은 주사위 하나만 던져줘도 어찌나 신나게 노는지. 한참을 우리집 애들처럼 뛰어놀던 고양이는 충전이 필요해졌는지 내 무릎 위에 와서 벌러덩 드러누웠다. 나는 아이들이 젖먹이 시절 그랬던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양이 몸의 곳곳을 정성껏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 내 손길이 멈춘 곳이 바로 고양이 수염이었다.
킥킥킥. 꼭 가짜 수염을 갖다 붙인 것처럼 귀여웠다. 그 당시에는 왕초보 집사여서 몰랐는데 <수상한 동물원에서 만난 과학>에서 고양이 수염에 관한 내용을 읽고 보니 신기한 부분이 많았다. 마치 낚시줄 끝의 찌가 물고기의 움직임을 감지하듯 고양이의 수염은 작은 환경 변화도 놓치지 않도록 돕는 중요한 감각 도구이다. 이 수염이 마치 '자'의 역할도 하는데 사냥을 하러 굴 속에 들어갈 때 그 공간에 자신이 드나들기에 적합한지를 판단한다.
또 고양이의 수염은 우리의 입꼬리처럼 희비를 나타내기도 한다. 수염이 아래쪽으로 축 늘어져 있다면 고양이가 많이 아프거나 피곤하다는 의미다. 그럴 때는 우리가 그러하듯 한숨 푹 자게 두면 좋다. 고양이의 수염이 움찔거리거나 바르르 떨린다면 아주 재미있는 것을 보아서 흥분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쥐를 보았거나 어항 속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하거나 혹은 높은 곳에 있는 컵을 밀어 버릴까 하는 고민을 할 수도 있다.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주변에 깨지기 쉽거나 소중한 물건은 얼른 치우는 것이 좋겠다. 고양이의 수염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는 것을 볼 때가 있는데 그건 고양이가 아주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때 고양이와 뒹굴면서 장난을 치며 놀아주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샘솟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