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는 중앙시장의 명물 '4대 기름집'이 있다. 시장 안 모든 사람들은 4대 기름집이 5대, 6대를 넘어 계속되기를 바란다. 그 집 손자인 명한이만 빼고.
명한이는 '오대야.'라고 불리는 것이 싫다. 그렇다고 이름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다. "명한아."하고 이름만 부를 때는 괜찮다. 하필이면 성이 '현'인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명한의 이름은 낚시 미끼처럼 아이들의 비웃음을 낚았다. 뿐만 아니라 선생님도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거나 시험 점수가 나쁘면 슬쩍 고개를 저으며 이름을 중얼거렸다.
"으음- 현명한."
어느 날, 명한은 중앙시장 역사 지도책 만들기 숙제를 하기 위해 종종 드나들던 '구두끈 우동집'으로 향했다. 3년 전 문을 연 구두끈 우동집은 중앙 시장 사람들에게 미운 털이 되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일단 먹는 음식에 구두끈을 갖다 붙인 것과 알록달록 고운 색 대신 흑백으로 된 간판이 마음에 안 들었다. 수타면을 만들면서 호텔 셰프처럼 흰색 긴 모자를 쓰는 것도 흉거리였다. 뭐니뭐니해도 이마의 흉터가 강력한 증거인 사장님 전직 깡패설이 그 중심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동집은 문전성시였다. 점심 때나 장날이면 사람들이 버글버글하고 밖으로는 줄이 길게 늘어서곤 했다. 남다른 우동 가락이 눈길을 끌었고 수타라서 우동 발이 쫀득쫀득 맛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징어 먹물을 넣어 반죽한 까만 우동의 인기는 대단했다.
우동집 아저씨에게 구두끈 우동집은 아버지를 잊지 않으려는 고집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했던 아저씨의 아버지는 앉아서 일을 할 수 있는 구두 수선공이 되었다. 현재 우동집이 있는 건물 지하에서 구두 수선을 하던 아저씨의 아버지는 부끄러움과 불편함을 잊은 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다리를 절뚝거리는 아버지 흉내를 내며 놀리는 아이들 앞에서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불만으로 똘똘 뭉쳐 있던 아저씨는 어느 날 버릇없는 아들을 매로 다스리는 엄마에게 서운하여 집을 뛰쳐나갔다. 그 후 몇 십년 동안 세상을 떠돌며 인생공부를 했고, 그 사이 아저씨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병세가 깊어 위독한 상태가 됐다. 그제야 집으로 돌아온 아저씨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저씨의 아버지가 평생 지하실에서 구두를 고쳐 모은 돈으로 산 지금의 우동집이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다. 기름집을 이어받을 마음이 하나도 없는 명한은 돌아올 때를 놓치고 후회하는 아저씨의 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휘영청 달 밝은 밤이었다. 모두 잠든 밤 쿵쿵 소리에 이끌려 가게에 가 보니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웬 근육질의 할아버지가 디딜방아에 올라 깨를 찧고 있는 게 아닌가. 오대, 아니 명한이는 오래지 않아 그 분이 흑백 사진으로 보던 고조할아버지임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