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당했다. '집착'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뭐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알아내면 된다는 것. 무엇보다 자녀의 성장을 제대로 지지하기 위해서는 어른인 우리 자신에 대한 깊고 정교한 성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또 다시 '나부터 잘하자'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초등학교 5학년, 3학년인 아이들에게 휴대폰을 사주지 않았다. 이 사정을 아는 옆집 엄마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그 집 딸 아이의 소식을 전해주었다. 사회 수행 평가 중 하나가 수업 시간에 휴대폰으로 관련된 영상을 보고 댓글을 쓰는 것이었다는.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는 아이들을 그들의 '사회 생활'에 끼지 못하게 만든 명분은 확실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내가 바로 스마트폰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휴대폰을 들여다 보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깝고, 매번 후회만 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밤 9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잠금 설정을 해 두었다. 아이들이 등교한 후에도 몇 번 딴 짓을 하느라 한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는 오전 9시부터 10시 30분까지 잠금 설정을 추가했다. 처음에는 나름 효과가 있었다. 나를 옥죄어 시간을 알차게 썼다고 느낀 날에는 나 스스로가 퍽 대견했다. 하지만 문제는 휴대폰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