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분들은 또 왜 이러시나. 야생동물 같은 아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오케이라니. 그러다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입학한 쉬나드는 또래보다 키가 작고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충격이 컸던 쉬나드는 며칠 만에 학교에서 뛰쳐나와 야생으로 숨어 버렸다. 곧 돌아오긴 했지만 이미 그의 인생의 방향은 정해졌다. 아웃사이더로.
부모님은 그를 가톨릭 교구의 부설 학교로 전학시켰지만 상황은 달라질 리 없었다. 하지만 교실 밖에서 쉬나드는 날아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몇 킬로미터씩 달리고, 사설 골프장에 몰래 들어가고, 톨루카 호수 버드나무 아래에서 직접 깎은 나무 미끼로 블루길과 배스를 잡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학교는 여전히 싫어했지만 영어 실력은 점점 늘었다. 여기서 또 한 번 그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전환점이 생기는데 그가 엄청난 독서광이 됐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모피 사냥꾼이 되기를 꿈꾸던 쉬나드는 도서관을 뒤져 덫을 놓는 법에 관한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었다.
쉬나드만 변한 게 아니었다. 세상은 점점 팽창해갔고, 냉전도 격해졌다. 학생들은 학교에 있는 동안 핵폭탄이 터질 경우를 대비해 책상 밑으로 숨는 훈련을 해야했다. 이 같은 혼돈 속에서도 그의 관심을 붙든 것은 최신 기술이 아닌 자연이었다.
이후 쉬나드는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승리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등반과 서핑도 그 일환이었다. 돈이 부족했던 젊은 시절 아무 것도 없이 버티는 법을 배우며 암벽을 오르던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취미에서 천직을 발견했다. 어디 하나 잡거나 발 디딜 곳이 없는 암벽을 오를 때 한 쪽 끝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피톤을 암벽 틈새에 박는다. 다른 쪽에 있는 고리에 로프를 고정하면 암벽 등반이 조금은 수월해진다. 문제는 거대한 암벽을 며칠씩 오르려면 내구성이 좋지 않아 자주 부러지는 피톤이 수십 개씩 필요하다는 거였다. 맨 몸으로도 힘든데 많은 장비를 짊어지고 암벽을 오르면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졌다.
쉬나드의 눈 앞에 있던 전구에 불이 팍 켜졌다. 목숨을 맡길 만큼 튼튼한 장비, 내가 직접 만들겠어!
포드 자동차를 수리한 경험 덕분에 공구를 다룰 줄은 알았지만 강철은 두드려 본 적이 없었던 쉬나드는 독서광의 레이더를 켰다. 매사냥을 위해 덫에 대한 책을 섭렵했던 것처럼 도서관에 가서 대장장이 기술에 관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쉬나드는 자신의 첫 피톤을 만들어 냈다.
서핑도 마찬가지였다. 쉬나드가 살던 당시에 서핑은 비주류 스포츠였다. 하지만 파도에 반해있던 그는 언제나 그랬듯 대세는 개의치 않았다. 숱하게 물속으로 처박히며 독학으로 파도 타는 법을 익히던 쉬나드는 로스엔젤레스의 바닥재 상점인 제너럴 베니어에서 발사나무 판자를 구해 서핑보드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후부터 그가 회사를 통째로 기부하기까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공헌, 파격적인 육아 복지 혜택, 창의적인 마케팅 등을 선보인 그는 기업이 선한 일을 행하면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희망의 등불로 자리잡았다. 모험가이자 사업가였으며 동시에 자선가였던 그가 돌아간 곳은 물론 자연이었다. 낚싯대를 손에 쥐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온전히 몰입하며 강가에 홀로 머무는 것이야말로 가장 쉬나드다웠다.
스스로 정상을 내려온 쉬나드가 인생의 황혼기를 즐기는 모습 아래 나는 이렇게 써봤다.
'잃을 것이, 지킬 것이 많지 않은 삶. 당장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삶. 가방 하나면 충분한 삶.'
당연하게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크기와 모양의 더트백을 가지고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더트백'의 이야기를 읽었으니 이제 나는 내 가방의 생김새와 값어치보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에 집중해 보겠다. 더 채우는 데 급급하기보다 덜어내는 데 힘을 쏟아보겠다. 가벼운 발걸음을 위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