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트백 억만장자 - 성공의 방식을 바꾼 파타고니아 창업자의 삶과 경영
데이비드 겔러스 지음, 고현석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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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트백.

사회적 지위나 물질적 소유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흙바닥에서 잠을 자도 마냥 행복해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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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를 세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충격적이었다. 어떻게,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든 회사를 통째로 기부하다니 말이 되냐고. 누구도 두 번 다시 자신을 억만장자라 부르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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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의문인 것이 사람은 그렇게 태어나는 것일까, 길러지는 것일까.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의 경우는 반반인 것 같다.

쉬나드의 친할아버지 자크는 농부이자 캐나다 모피 사냥꾼의 후손이었다. 20세기 초 자크와 그의 아내 셀라니르는 누구나 그렇듯 더 나은 삶을 찾아 캐나다 퀘백주 팅윅에서 미국 메인주 리즈번으로 이주했다. 11명의 자녀와 함께.

당시 메인주 루이스턴 외곽의 숲은 아직 문명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었다. 야생 블루베리와 인동넝굴이 무성했고, 발삼전나무와 화이트 오크가 빽빽했다. 덤불 사이로 스컹크와 호저가 먹이를 찾아다녔고, 사향쥐와 말코손바닥사슴이 숲을 누볐다. 북아메리카의 그 평범한 시골에서 자연은 수천 년 전과 다르지 않았고, 동식물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제 삶을 살았다.

쉬나드 가족은 프랑스어를 쓰는 캐나다 이민자 공동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자리를 잡았다. 쉬나드의 자녀 중 한 명이었던 제라드 쉬나드는 스물세 살에 이본 리조트와 결혼했고, 아들 하나와 딸 둘을 낳은 뒤 막내 아들을 더 낳았다. 그 막내가 바로 더트백 이본 쉬나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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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의 아버지와 친할아버지, 어쩌면 그 윗 세대의 남자들도 재주가 좋았다. 특히 이본의 할아버지인 자크는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 같은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아들인 제라드에게 소젖을 짜고, 낫을 갈고, 마구간을 청소하는 법을 가르쳤다. 이후 방직 공장의 직조기 수리법, 막힌 배관 뚫기, 환풍기 수리하기, 한겨울에도 용광로의 열기 유지하기 등 돈 되는 모든 비법을 전수했다. 훗날 그렇게 현장에서 쌓인 지혜는 이본 쉬나드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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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짓 같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처음부터 그를 지지했어요. 아들이 뭘 하는지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만두기를 바라는 기색은 전혀 없었죠."

더트백 억만장자, 45쪽

아니, 이분들은 또 왜 이러시나. 야생동물 같은 아들이 뭘 하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오케이라니. 그러다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르는데.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 입학한 쉬나드는 또래보다 키가 작고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따돌림을 당했다. 충격이 컸던 쉬나드는 며칠 만에 학교에서 뛰쳐나와 야생으로 숨어 버렸다. 곧 돌아오긴 했지만 이미 그의 인생의 방향은 정해졌다. 아웃사이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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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은 그를 가톨릭 교구의 부설 학교로 전학시켰지만 상황은 달라질 리 없었다. 하지만 교실 밖에서 쉬나드는 날아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몇 킬로미터씩 달리고, 사설 골프장에 몰래 들어가고, 톨루카 호수 버드나무 아래에서 직접 깎은 나무 미끼로 블루길과 배스를 잡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학교는 여전히 싫어했지만 영어 실력은 점점 늘었다. 여기서 또 한 번 그의 인생에 빼놓을 수 없는 전환점이 생기는데 그가 엄청난 독서광이 됐다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대를 이어 모피 사냥꾼이 되기를 꿈꾸던 쉬나드는 도서관을 뒤져 덫을 놓는 법에 관한 책이란 책은 모조리 읽었다.

쉬나드만 변한 게 아니었다. 세상은 점점 팽창해갔고, 냉전도 격해졌다. 학생들은 학교에 있는 동안 핵폭탄이 터질 경우를 대비해 책상 밑으로 숨는 훈련을 해야했다. 이 같은 혼돈 속에서도 그의 관심을 붙든 것은 최신 기술이 아닌 자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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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쉬나드는 스스로 정한 규칙에 따라 승리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등반과 서핑도 그 일환이었다. 돈이 부족했던 젊은 시절 아무 것도 없이 버티는 법을 배우며 암벽을 오르던 그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던 취미에서 천직을 발견했다. 어디 하나 잡거나 발 디딜 곳이 없는 암벽을 오를 때 한 쪽 끝이 칼날처럼 날카로운 피톤을 암벽 틈새에 박는다. 다른 쪽에 있는 고리에 로프를 고정하면 암벽 등반이 조금은 수월해진다. 문제는 거대한 암벽을 며칠씩 오르려면 내구성이 좋지 않아 자주 부러지는 피톤이 수십 개씩 필요하다는 거였다. 맨 몸으로도 힘든데 많은 장비를 짊어지고 암벽을 오르면 그만큼 위험 부담이 커졌다.

쉬나드의 눈 앞에 있던 전구에 불이 팍 켜졌다. 목숨을 맡길 만큼 튼튼한 장비, 내가 직접 만들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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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자동차를 수리한 경험 덕분에 공구를 다룰 줄은 알았지만 강철은 두드려 본 적이 없었던 쉬나드는 독서광의 레이더를 켰다. 매사냥을 위해 덫에 대한 책을 섭렵했던 것처럼 도서관에 가서 대장장이 기술에 관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쉬나드는 자신의 첫 피톤을 만들어 냈다.

서핑도 마찬가지였다. 쉬나드가 살던 당시에 서핑은 비주류 스포츠였다. 하지만 파도에 반해있던 그는 언제나 그랬듯 대세는 개의치 않았다. 숱하게 물속으로 처박히며 독학으로 파도 타는 법을 익히던 쉬나드는 로스엔젤레스의 바닥재 상점인 제너럴 베니어에서 발사나무 판자를 구해 서핑보드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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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부터 그가 회사를 통째로 기부하기까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계속 일어났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공헌, 파격적인 육아 복지 혜택, 창의적인 마케팅 등을 선보인 그는 기업이 선한 일을 행하면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희망의 등불로 자리잡았다. 모험가이자 사업가였으며 동시에 자선가였던 그가 돌아간 곳은 물론 자연이었다. 낚싯대를 손에 쥐고 자연의 아름다움에 온전히 몰입하며 강가에 홀로 머무는 것이야말로 가장 쉬나드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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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정상을 내려온 쉬나드가 인생의 황혼기를 즐기는 모습 아래 나는 이렇게 써봤다.

'잃을 것이, 지킬 것이 많지 않은 삶. 당장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삶. 가방 하나면 충분한 삶.'

당연하게도 우리는 저마다 다른 크기와 모양의 더트백을 가지고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더트백'의 이야기를 읽었으니 이제 나는 내 가방의 생김새와 값어치보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무언가에 집중해 보겠다. 더 채우는 데 급급하기보다 덜어내는 데 힘을 쏟아보겠다. 가벼운 발걸음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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