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미처 몰랐다. 결혼 전에 한 번 지나가 보지도 않았던 이 도시에서 아이를 둘이나 낳고 농부의 아내로 살게 될 줄은 상상도 안 해 봤다. 또 이렇게 살아 보니 알겠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거.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거.
하나 더 하자면. 그때 그 일은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
가진 게 없던 젊은 시절엔 마른 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에도 종종 내 탓을 했다.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 의사를 좀 더 분명히 전달했어야 했는데, 그 사람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누군가 말했다.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다고.
이만큼 살아 보니 알겠다. 그 자리에 서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는 것. 막연히 '이해'한다고 했던 일들이 얼마나 가벼운 것이었는지. 어느 날 늘 그 자리에 있던 달을 올려다 보며 느낀 시인의 설움을 나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써 본다.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눈으로 지나칠 때와는 사뭇 다르게 무언가 머무는 느낌이다. 윤동주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을 쓸 때는 국룰인 듯 비장해진다. 손 끝에 남겨진 그 기운은 곧 나의 다짐이 된다. 이것이 필사의 힘이리라.
처음 필사 책을 접했을 때는 정한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심정이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예쁜 글씨가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의 머리말 말미에 있는 문장으로 이 밤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