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나 하라고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 - 청소년 독립 언론 <토끼풀> 기사 모음
토끼풀 지음, 방상호 그림 / 풀빛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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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과 책 소개를 본 후 음성 지원된다는 게 이런 말이구나 했다. 공부나 하라니, 세상이 이 모양인데.

 청소년 독립 언론 <토끼풀>은 그 시작부터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2024년 서울 은평구의 한 중학교에서 같은 반 친구 둘이 자율 동아리로 만든 신문부. 에? 중학생이 그렇게 할 일이 없다고? 도대체 얼마나 심심해야 중학생 둘이 신문을 만들 수 있는 건지 난 상상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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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시작된 신문은 몇 달 뒤 다른 학교 친구들을 통해 은평구 내 여러 중학교로 퍼졌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토끼풀>을 향한 탄압이 이어졌다. 중앙 현관에 포스터 형태로 붙어 있던 창간호 신문을 구석으로 옮기라는 것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학교를 비판하는 기사마다 트집을 잡고 수정을 요구했다. 2025년 8월에는 인근의 다른 학교에서 멀쩡히 발행된 신문을 압수 · 폐기하기까지 했다. <토끼풀>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독립 언론'이라는 타이틀은 애초에 그들이 지향하던 바가 아니었다. 학교에서 떠밀려 나와 저절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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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특성화고 학생이라고 밝힌 한 응답자는 "학생은 배울 학에 날 생 자를 쓴다. 배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살아 있는 사람이기도 한 것"이라며 후배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몰랐는데 서울시의회가 학원 운영 시간을 밤 12시로 연장하는 조례안을 냈었나 보다. 이에 2,513명, 무려 94.65%의 학생이 반대하고 나섰다. 아마 그들은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을지도 모르다. 이러다 학원에 뼈를 묻는 건 아닌가 하는. 

 반대의 이유는 확실했다. 안 그래도 과도한 경쟁 구도인 지금 학원 운영 시간이 늦어진다면 공교육의 붕괴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 밤 12시까지 학원에 있다 집에 돌아와 학원 숙제하다 늦게 잔다. 아침에 겨우 등교한 학교에서 엎드려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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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구간을 지나온 한 사람의 어른으로서 대한민국이 청소년 자살률 1위라는 데 큰 비애를 느낀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면서 한 '공부'가 그들을 좀 더 우위에 오를 수 있게 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적된 피로와 마음의 상처는 결국 그들을 자기만의 공간에 가두고, 타인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나만 잘 살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신념을 만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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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아이들이 산에 갈 때 정상을 바라보되 오르는 길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작은 꽃 한 송이와 낯선 새의 지저귐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쪼그려 앉아 살피거나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강도 높은 행복보다 작게 자주 웃을 수 있는, 나보다 현명한 사람이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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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도 아니다. 언제라도 나에게, 내 주변인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는 더욱 기억돼야 한다.

공부나 하라고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 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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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가 물에 잠기던 날, 내 뱃 속에는 첫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행여 아이에게 부정적인 감정이 전해질까 그 믿기 힘든 소식에서 눈을 돌리려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울고 울고 또 울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어른들의 말에 구명 조끼를 입고 선실에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견뎠던 아이들. 뒤늦게 마지막임을 깨닫고 엄마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메시지를 보낸 아이들. 곧 엄마가 될 나에게 '만약'이라는 말 뒤에 달라붙는 상상력은 떨쳐내기 힘든 고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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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년 4월 10일. <토끼풀>의 문성호 기자는 경기 안산의 단원 고등학교에 있는 '단원고 4.16 기억 교실'을 찾았다. 기자의 거주지에서 왕복 3시간 거리였지만 기사를 작성하기 전 희생자들이 생활하던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기억 교실 안에는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개개인의 책상과 물품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고 한다. 가수를 꿈꾸던 학생에서 역사학자를 꿈꾸던 학생까지. 그저 누군가의 아들이고 딸이었던 우리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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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는 세월호 참사가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만 소비되거나 특정 정치 세력의 전유물로 소비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안전 불감증과 관행적 부실이 여전히 우리 주위 곳곳에 만연한 현실 속에 제 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다. 다음 번에도 운 좋게 나를 비껴갈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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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자는 청소년 독립 언론 <토끼풀>의 활동이 정치로 뛰어들기 위한 것이라거나 좋은 대학 가기를 위한 징검 다리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히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일개 중학생이 봐도 개탄스럽고 한심하다는 12·3 비상 계엄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받고 싶다'는 일갈에 무슨 잔소리를 덧붙일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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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청소년들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대한민국 리틀야구 메이저(U-12) 대표팀은 대만을 꺾고 7년 만에 리틀리그 월드시리즈 진출권을 따냈다. 나이만 먹은 어른들을 향해 기후 위기에 맞서 싸우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똑부러지게 연설했던 스웨덴의 환경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올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우리집 아이들은 쾌적하고 조용한 도서관에서 만화책 <수학 도둑> 신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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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30일 <토끼풀> 창간 2주년을 기념한 칼럼에서 편집장 문성호 기자는 후원금이 없어 사비를 들이고, 단체 계좌 잔고가 6만원 밖에 되지 않아 진지하게 휴간 또는 폐간을 고려했던 지난 날을 회상했다. <토끼풀> 홈페이지를 둘러 본 뒤 뉴스 레터를 신청하고, 후원금도 보냈다. 내 아들은 아니지만 자랑스럽다. 내 아들은 이 책을 제대로 읽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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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자모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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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 대본집 - 어린이 역사 연극
한윤섭 원작.각색 / 푸른숲주니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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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두 장군 전봉준이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 붙잡혀 처형되었다.

만약, 전봉준이 김경천이 밀고할 것을 알고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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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교과서 속 한 줄의 역사에서 시작되었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목숨도 아까운 줄 모르고 발로 뛰어다니던 인물들 중 하나인 전봉준. 녹두처럼 작지만 단단했던 그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배신은 참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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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바로 세우겠다는 열망만큼 안타까운 그의 죽음을 다룬 이야기 <서찰을 전하는 아이>가 어린이 연극 공연을 위한 대본집으로 재탄생했다. 저자인 한윤섭은 동화 작가이자 극작가이며 연극 연출가이기도 하다. 앞서 발표한 작품을 새롭게 각색하며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덕분에 아이들과 하나의 이야기가 다양한 장르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과 여러 가지 예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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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은 인물의 대사와 행동으로만 채워진 글입니다.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을 보고 이야기를 파악한다는 점이 동화와 희곡의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 대본집,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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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는 어느 한 보부상의 회상으로 시작한다. 보부상에게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는 기억이 있었다. 바로 동학 농민 운동을 이끄는 녹두 장군 전봉준에게 서찰을 전한 일이었다. 사실 이는 보부상이 어린 아이였을 때 그의 아버지가 전봉준에게 전하려던 서찰이었다. 하지만 길을 나선 후 아버지는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했다. 아이는 슬퍼하기만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을, 나아가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서찰을 아버지 대신 전봉준에게 전하기로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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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험했다. 무엇보다 아이를 답답하고 힘들게 한 것은 서찰의 내용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전달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서찰은 한자로 쓰여져 있었지만 아이는 글을 읽을 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법.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 덕분에 아이는 서찰에 적힌 글이 '오호피노리경천매녹두' 이며 그 의미가 '피노리에 사는 경천이라는 자가 녹두 장군 전봉준이 있는 곳을 알리려 하니 슬프다'라는 것도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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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사가 등장한다. 그 중 방백이라는 것이 흥미롭다. 방백이란 등장 인물이 말을 하지만 무대 위에 함께 있는 다른 인물들에게는 들리지 않고 관객만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약속되어 있는 대사를 말한다. 이 대본집에도 그런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한다. 주로 아이가 서찰에 담긴 비밀을 지키려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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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혼잣말) 아니지. 이건 아주 중요한 서찰이야. 그 서찰에는 사람을 구하고, 때로는 세상을 구할 만큼 중요한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내용을 알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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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부터 등장 인물과 관객은 하나로 뭉쳐 함께 비밀을 지켜나가고, 서찰이 무사히 전봉준에게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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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스님, 저는 미륵산 스님의 말을 듣고 여기 주지 스님을 뵈러 왔습니다. 스님의 병세가 위도하시다는 말을 듣고 왔습

니다.

주지승 어린 것이 아주 먼 걸음을 했구나.

아이 스님께 노래를 들려 드렸으면 합니다.

주지승 네가 나한테 노래를 들려준다고? 왜 내게 노래를 하느냐?

아이 장터에서 배운 게 제 노래에 약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지 스님께 불러 드리려 합니다.

서찰을 전하는 아이,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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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찰을 전하는 아이>를 읽으며 약이 되는 아이의 노래가 무척 궁금했다. 이 대본집에도 아이가 노래를 통해 사람을 살리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실제 연극 공연을 통해 그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졌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공연 일정을 찾아 봤는데 작년에 종료되어 많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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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들과 정읍으로 기차 여행을 갔었다. 떠나기 전 정읍하면 떠오르는 두 가지, 내장산과 녹두 장군 전봉준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러 가지 책을 펼쳐 놓고 읽던 중 마주한 그의 사진 앞에서 아이들은 잠시 얼어붙었다. 나 역시 이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당장이라도 사진을 뚫고 나와 달려들 것 같은 기세에 자꾸 눈을 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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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전봉준이 큰 뜻을 함께 품었던 동지를 믿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가 밀고하기 전 피신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김경천을 믿고 도망가지 않은 전봉준을 이해할 수 없다 했다. 물론 나도 그렇다. 그때 몸을 숨겼더라면 훗날 그가 원하는 동학 운동은 더 크게 뻗어나갔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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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종종 아이들과 가족 공연을 하곤 한다. 악기 연주나 아이들의 즉석 개그 공연이 주인데, 올해는 이 대본집을 가지고 멋진 연극을 만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또 모르지. 아이들에게 연기자의 피가 흐르고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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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탐정 딜리
데이비드 월리엄스 지음, 애덤 스토어 그림, 우주기획 옮김 / 크레용하우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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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를 낳던 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언제 이렇게 컸나 싶다. 뽀로로를 보다가 배경만 어두워져도 오들오들 떨며 두 눈을 가리던 꼬마들이었는데. 셜록 홈즈나 명탐정 코난도 밤에는 못 본다고 몸서리를 쳤었는데. 이제 말로는 좀비도 때려 눕힐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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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URDER MY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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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이 살해당하면 누가 미스터리를 해결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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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탐정 꿈나무 딜리와 그녀의 친구이자 동료인 강아지 왓슨이다. 딜리는 반려견의 이름을 탐정 셜록 홈즈의 충실한 파트너 이름에서 따올 정도로 탐정 이야기에 빠져 있다. 그 중 흥미진진한 살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아빠에게 물려받은 탐정 소설로는 모자라 도서관에 있는 관련 분야의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딜리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 연습해 왔던 탐정으로서의 임무를 실행에 옮겨볼 만한 진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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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호화 유람선 마스커레이드 호. 저마다의 사연과 함께 배에 오른 승객들을 태운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이 유람선은 3000마일을 단 일주일 만에 이동할 예정이다. 하지만 배가 출항하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던 승객들이 한 데 모여 저녁 만찬을 즐기던 중 뜻밖의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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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망제 속의 시체, 엉망진창인 주방 모습, 핏자국이 묻은 거품기, 버려진 요리사 유니폼, 수상한 모로조프, 갑판 위의 브랜디 방울까지. 딜리는 수첩을 꺼내 기억나는 모든 것을 적기 시작했다.

슈퍼 탐정 딜리, 113쪽

피해자는 유명한 오페라 가수이자 최고의 탐정인 마에스트로였다. 마에스트로란 이탈리어오로 '거장'이라는 뜻이다. 마에스트로가 해결한 살인 사건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그의 베스트셀러인 <탐정 일기>에 모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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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의 시체

미트볼 살인 사건

실제로 기울어져서 누군가 위로 떨어진 피사의 사탑

조용하지만 치명적인

살라미 살인 사건

맘마미아 살인 사건

젤라토 암살자

교황의 밧줄

콘트리트 곤돌라

파인애플에 중독된 피자의 기이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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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는 마이커레이드 호처럼 큰 배를 멈출 수 있을 만큼 영향력이 강한 인물이었다. 그와 한 배를 타고 저 바다를 향해 나아가다니. 딜리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살인이 일어났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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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탐정 딜리>의 저자는 <할머니는 도둑>, <할아버지의 위대한 탈출>, <무시무시한 고모> 등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데이비드 윌리엄스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의 동화는 48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수백만 권이 판매되었다. 팔짱을 끼고 멀찍이 떨어져 살피는 무리인 비평가들은 마에스트로에게 전례 없는 찬사를 보냈고, 많은 독자들은 그를 가리켜 제 2의 로얄드 달이라 평가했다.

한 우물만 파도 평생이 걸릴 지도 모르는데, 데이비드는 참 열정적이고 부지런하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배우이며, 코미디언으로 활동했고, TV 방송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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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부지런함과 호기심을 <슈퍼 탐정 딜리>의 주인공인 딜리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덕분에 딜리는 뿌연 안개속에 갇힌 것 같은 상황에도 자기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면서까지 살인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구체적인 과정을 언급하는 일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참겠다. 한 가지만 붙이자면 끝날 때까지 끝이 아니다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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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서는 그런 것이다. 총알일 수도 있고, 과자 부스러기일 수도 있고, 머리카락 한 올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단서를 찾았다는 것이다.

슈퍼 탐정 딜리, 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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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무기력한 아이들이 많은 시대에 딜리는 목적과 수단을 가지고 움직이는 캐릭터다. <슈퍼 탐정 딜리>를 읽는 동안 누가 범인인지만 알면 된다는 단순함보다는 '왜' 그런 일을 저질렀는지 골똘히 생각해 보는 복잡한 시간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머리도 자꾸 써야 좋아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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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팝 데몬 헌터스 공식 액티비티북 ㅣ 케이팝 데몬 헌터스 공식 시리즈
서울문화사 편집부 엮음 / 서울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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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re goin' up, up, up, it's our moment

You know together we're glowing

Gonna be, gonna be gol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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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좀 망설였다. 하교 후 돌아온 아이들에게 이 책을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제야 겨우 '케데헌' 노래를 부르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괜히 꺼져가는 불씨를 살리는 것이 아닌가 심히 걱정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한 발 늦었다. 책꽂이에 삐죽 튀어나와 있던 <케이팝 데몬 헌터스 공식 액티비티북>은 이미 그들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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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류의 책은 애들이 한참 '헬로 카봇'에 빠져 있을 때 몇 번 사 본 적이 있다. 콩순이 퍼즐과 함께. 그래서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동생들한테 양보했어야 했네.'하며 안타까웠다. 하지만 '케데헌'은 초 6, 초4에게 여전히 유효했다. 

  진우에서 출발해서 루미에게 도착하는 미로 찾기, '케데헌'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을 뽐낼 수 있는 가로세로 퍼즐 맞추기,  '케데헌'표 주사위를 만들어 즐기는 보드 게임, 더피 종이 접기, 초성 힌트 보고 캐릭터 이름 맞추기, '케데헌' 캐릭터 카드로 함께 하는 메모리 카드 게임. 그야말로 종합 선물 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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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중 예비 중학생과 두 살 어린 그의 동생이 무한 가위바위보를 하게 만든 것은 50여 개의 스티커였다. 'huntrix, Golden, Saja Boys'라고 새겨진 것들부터 루미, 미라, 조이, 그리고 진우를 비롯한 사자 보이즈 멤버들의 모습이 담긴 스티커까지 다양했다. 다들 하나같이 어찌나 길쭉한지 머리 길이와 전체 키 비율을 확인해 보니 정확히 8등신들이었다. 관리하느라 힘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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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케데헌 2는 언제 나와요?"

 1번은 하늘색, 2번은 남색, 3번 주황색, 4번 노란색, 그리고 5번은 분홍색. 더피 그림 곳곳에 쓰여 있는 숫자에 맞는 색연필을 펼쳐 놓고 정성을 다해 색칠 놀이를 하던 둘째 아이가 물었다. 찾아 보니 2029년을 목표로 제작중이라고 한다. 3년 뒤면 첫째는 16살, 둘째는 14살. 나는..나는.. 내 나이가 어때서~하는 노래가 생각나는 걸 보니 나도 늙긴 늙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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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우, 루미. 그리고 우리 모두. 3년 후에 건강한 모습으로 극장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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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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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읽기 전 제목과 홍보 문구를 보며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바가 있다. 이 책 <수평선 너머>는 "살아 왔던 대로가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라는 발췌문과 '대를 이어 광부가 될 운명이었던 한 소년의 삶을 바꾼 어느 찬란한 여름날의 기록'이라는 소개글을 보며 지금 읽기 딱 좋을 이야기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선택하거나 내게 주어진 역할의 무게가 커지면서 과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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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길을 한참 걷다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을 잃었다. 바다를 향한다고 상상했던 길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서 비틀거리다 돌담을 넘고 개울을 따라 펼쳐진 풀밭을 지났다. 물이 나의 안내자가 되어 내리막길로 이끌었다. 버틀러가 천천히 흐르는 개울물을 마시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가 덤불을 헤치고 걸었다. 그러다 문득 휘청이며 도달한 곳은 놀랍게도 덜시의 집으로 돌아가는 숨겨진 길이었다.

수평선 너머,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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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간이 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인에 의한 것이든 때로 그 변곡점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탄광 마을에서 자란 열 여섯 소년 로버트에게도 그런 만남의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듯 그는 땅 아래 어둠 속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여름, 자신은 꿈꿔보지도 못한 세상을 살아온 노부인 덜시를 만나게 된다.

아직 운명에 맞서야 할 이유와 방법을 몰랐던 로버트는 두려웠을 것이다. 익숙한 흐름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만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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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오두막 저 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덜시였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부츠를 신은 다음 환한 햇살 속으로 나아갔다. 망막에 뜨거운 형상을 새기는 햇빛이 너무도 환해 잠시 시야에 적응하며 서 있어야 했다.

수평선 너머,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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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다 보면 무언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인 벤자민 마이어스는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시인이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풍경, 도덕성, 인간 관계 등의 주제를 아우른다. 그가 묘사하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옆에 앉아 함께 그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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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이야기의 도입부에 전쟁 후의 상황에 대해 길게 이야기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흔적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테니까.

로버트와 덜시의 만남은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 중 하나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 누군가는 처음 만나는 강렬한 빛에 눈이 감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빛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익숙한 어둠이 나아. 하지만 로버트는 포기하지 않는다. 망막에 새겨지는 강렬한 빛 앞에 무모하게 맞서는 대신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린다. 낯설지만 설레는 앞날에 적응하기 위해. 그러려면 반드시 버텨야 하는 구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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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의 낯선 도전을 응원하며 읽다 보니 우리는 왜 이 바쁜 세상에 돈도 안 되는 문학을 읽는가로 생각이 미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학은 결국 인생이고 사람이다. 문학을 통해 우리를 잃지 않고 서로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같은 방향을 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이런 세상도 있다 안내하며 함께 가주는 덜시 같은 어른이, 인생 선배가 가까이 있다면 우리는 문학의 힘을 믿고 장기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미자모 카페에서 이 도서를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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