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
벤자민 마이어스 지음, 최리외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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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책을 읽기 전 제목과 홍보 문구를 보며 기대하거나 예상하는 바가 있다. 이 책 <수평선 너머>는 "살아 왔던 대로가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에게 다가가고 있었다."라는 발췌문과 '대를 이어 광부가 될 운명이었던 한 소년의 삶을 바꾼 어느 찬란한 여름날의 기록'이라는 소개글을 보며 지금 읽기 딱 좋을 이야기라 생각했다. 나이가 들어가며 내가 선택하거나 내게 주어진 역할의 무게가 커지면서 과연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커지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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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한 길을 한참 걷다 어느 순간 방향 감각을 잃었다. 바다를 향한다고 상상했던 길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서 비틀거리다 돌담을 넘고 개울을 따라 펼쳐진 풀밭을 지났다. 물이 나의 안내자가 되어 내리막길로 이끌었다. 버틀러가 천천히 흐르는 개울물을 마시는 동안 잠시 기다렸다가 덤불을 헤치고 걸었다. 그러다 문득 휘청이며 도달한 곳은 놀랍게도 덜시의 집으로 돌아가는 숨겨진 길이었다.

수평선 너머, 1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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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순간이 있다.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자의에 의한 것이든 타인에 의한 것이든 때로 그 변곡점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탄광 마을에서 자란 열 여섯 소년 로버트에게도 그런 만남의 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그랬고,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듯 그는 땅 아래 어둠 속에서 평생을 보내게 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여름, 자신은 꿈꿔보지도 못한 세상을 살아온 노부인 덜시를 만나게 된다.

아직 운명에 맞서야 할 이유와 방법을 몰랐던 로버트는 두려웠을 것이다. 익숙한 흐름을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하지만 어렵게 만난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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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오두막 저 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덜시였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부츠를 신은 다음 환한 햇살 속으로 나아갔다. 망막에 뜨거운 형상을 새기는 햇빛이 너무도 환해 잠시 시야에 적응하며 서 있어야 했다.

수평선 너머,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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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다 보면 무언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인 벤자민 마이어스는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이며 시인이다. 덕분에 그의 작품은 풍경, 도덕성, 인간 관계 등의 주제를 아우른다. 그가 묘사하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그의 옆에 앉아 함께 그 풍경을 보고 있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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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 이야기의 도입부에 전쟁 후의 상황에 대해 길게 이야기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흔적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테니까.

로버트와 덜시의 만남은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 중 하나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는 길. 누군가는 처음 만나는 강렬한 빛에 눈이 감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빛은 내게 어울리지 않아, 익숙한 어둠이 나아. 하지만 로버트는 포기하지 않는다. 망막에 새겨지는 강렬한 빛 앞에 무모하게 맞서는 대신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린다. 낯설지만 설레는 앞날에 적응하기 위해. 그러려면 반드시 버텨야 하는 구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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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의 낯선 도전을 응원하며 읽다 보니 우리는 왜 이 바쁜 세상에 돈도 안 되는 문학을 읽는가로 생각이 미쳤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학은 결국 인생이고 사람이다. 문학을 통해 우리를 잃지 않고 서로를 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되 같은 방향을 보며 천천히 나아가는, 이런 세상도 있다 안내하며 함께 가주는 덜시 같은 어른이, 인생 선배가 가까이 있다면 우리는 문학의 힘을 믿고 장기 투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 미자모 카페에서 이 도서를 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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