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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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보통 서평을 쓸 때 신간을 무료로 제공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구절, 함께 나누고 싶은 부분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는 책 한 권을 통째로 인용하고 싶다. 몽둥이를 들고 휘두르며 "정신 차려!"하고 야단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난 그렇더라."하며 주머니에서 꺼낸 꾸깃꾸깃한 통찰이 마치 성덕대왕 신종의 울림처럼 깊고 오래 간다.

지난 주 내내 어딜 가도 들고 다니며 읽고, 밑줄 긋고, 하늘 한 번 보고, 땅도 보고, 새로 읽고, 다시 읽었다. 그러다 에코백에 책과 함께 넣어둔 텀블러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책이 젖어버렸다. 다행히 글씨가 없는 책의 아랫 부분에 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다. 며칠 만에 갑자기 치고 들어온 가을을 만나러 공원 의자 앉았다. 책 표지에 묻은 물방울을 슥 닦고 옆자리를 내어주었다.

화가 났다면 화가 났다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다만 그 화를 어디에 쓸 것인지, 그 사용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른의 분노다. 뜨겁게 느끼되 차갑게 쓰는 것. 감정의 온도와 행동의 온도를 분리하는 것. 이 분리를 해내는 사람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137쪽

화가 난다. 화가 난다. 화 가 난 다.

그 화를 참지 못하고 터트린 후, 도대체 난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돌아본다. 주로 두 아들과 시어머니의 아들이 촉매제다. 그들은 말이 너무 많다. 영화 <올드 보이>에서 오대수는 말이 너무 많아서 15년 간 감금돼 군만두만 먹으며 생명을 유지했는데, 삼시 세끼 된장국만 줘 볼까.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부하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대신 어딘가에 저장했다. 정확히 어디에 쓸지 정해질 때까지.

부하들의 참담한 죽음 이후 오디세우스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끼던 부하들의 비명이 귀에서 떠났을 리 없으니. 오디세우스는 그 밤들을 견뎠다. 포기와 체념이 아니었다. 올리브 나무 기둥을 뾰족하게 깎고, 불에 달군 뒤 거인이 취해 잠들기를 기다렸다. 한 순간의 실패도 용납될 수 없었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는 말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쓰임에 맞게 사용하는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라고. 그 훈련은 아주 작은 데서 시작된다고. 분노가 솟구칠 때 즉각적으로 칼을 뽑지 않는 것, 모욕을 마주했을 때 성급히 판을 엎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것, 억울함에 매몰되지 않고 하루만 그 감정을 유예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것. 이 작은 순간들이 쌓여서 언젠가 진짜 결정적 순간을 마주했을 때, 칼을 뽑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사람은 자기 삶을 자기가 살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운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매일 마음이 무거운 시기가 있다면, 그때 당신은 이미 오귀기아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32쪽

요정 칼립소의 섬 오귀기아.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친 오디세우스에게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하는 불멸의 삶.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매일 혼자 바닷가에서 울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 천국인데, 뭐가 문제야?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그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사실 소설 속 이모의 자살은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식들 다 출가했겠다, 돈 있겠다, 신랑은 일하느라 바빠. 얼마든지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는데, 왜 지금 그만두는 건지. 물론 소설에 다 담지 못한 속사정이 많겠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내 인생에 '나'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트로이로 떠나기 전, 오디세우스의 목표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내가 진짜 나다운 곳.

하지만 나답게 살기로 마음 먹는 일도, 실천에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오디세우스의 경우 파라다이스처럼 보이는 오귀기아를 떠나려면 뗏목이 필요했다. 요정인 칼립소가 손가락 한 번 튕겨서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오직 도끼와 자귀만을 건네줄 뿐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나무를 베고, 다듬고, 이어 붙이고, 돛을 세우고, 물과 식량을 실었다. 나흘 밤낮이 꼬박 걸린 고된 노동이었다. 또 바다로 나간 뒤에도 직접 노를 저어야 했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온전한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해내야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공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선선한 바람 덕분에 물에 젖었던 책이 다 말랐다. 물론 상처는 남았다. 하지만 괜찮다. 이 책이 나를 완전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지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곳, 이타카로 안내할 테니. 그 곳은 원래 거기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신대륙을 향했던 방향키를 돌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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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는 중학교에서 끝난다 - 일타맘 SKY 대입 성공 전략
오대교 지음, tvN STORY & LG 헬로비전 〈일타맘〉 제작팀 기획 / 타인의취향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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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필요 없다. 나의 40여 년 인생만 보더라도 억지로 시켜서 잘 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공부만 하라고 시키지 않는다. 마구 날뛰는 아이들을 온갖 회유와 협박을 동원해 겨우 의자에 앉혀 놓으면 '딩동'하고 들어와 우리집 '빌런'이 된 신랑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지만.

공부는 인생의 한 부분일 뿐이다. 먹고 싶고 놀고 싶고 애벌레 놀이 하고 싶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 먼저 가족으로서, 학생으로서, 사회의 일원으로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나는 그들을 보호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그들의 도리에 대해 끊임없이 알려주고, 그를 실천할 수 있게 물심양면 도울 뿐이다.

그래서 <입시는 중학교에서 끝난다>는 제목을 보고 그들의 의도한 만큼 가슴이 덜컹 내려앉거나 당장 뭐라도 시작해야 할 것 같은 조급함은 덜했다. 하지만 첫째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마땅히 궁금해야 하고, 알아야 하기에 크게 심호흡을 하고 그 세계로 뛰어들기 전 준비 운동 삼아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이 책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였다.

같은 뉴스를 보고 다른 결과를 만드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닙니다. 해석의 방향입니다.

입시는 중학교에서 끝난다, 32쪽

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아이를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조건이라고 알려진 3요소다. 결혼하기 전, 아이를 낳기 전에는 그저 냉소 섞인 우스갯소리로 여겼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인 것 같다. 특히 엄마의 정보력.

여기서 말하는 정보란 물론 전국 대학의 입학 전형과 나는 아직 잘 모르는 수능, 학생부, 기타 등등을 말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정보 하나 더. 내 아이는 어떤 사람인가.

많은 사람들이 요즘 천만 관객 돌파를 향해 달려가는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인생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트로이로 떠나기 전, 오디세우스의 목표는 승리와 귀환이었다. 10년 간의 전쟁 중에도,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도 변함 없었다. 물론 그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늘 직선이었던 것은 아니다. 구불구불했고, 되돌아 가기도 했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멀리 보면 늘 한 곳을 향해 있었다.

<입시는 중학교에서 끝난다>는 바로 그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다.

오늘 아이에게 질문할 세 가지

첫 번째 질문

"요즘 학교 수업에서 어떤 과목이 제일 재미있어?"

두 번째 질문

"그 과목에서 배운 것 중에서 더 알고 싶은 게 있어?"

세 번째 질문

"나중에 커서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입시는 중학교에서 끝난다, 53쪽

아이의 관심은 항해하는 배에게 순풍이 될 수 있다. 아이가 흥미를 느끼는 과목은 고등학교 세특(세부 능력, 특기 사항)의 방향이 될 수 있다. 아이의 흥미가 탐구로 이어지고, 심화로 이어지면 면접관은 질문을 통해 아이의 방향을 내다 본다.

만일 의대를 희망하는 아이라면 의사가 되어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작가가 되고 싶다면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면접관들이 이를 확인할 수 있는 통로가 바로 학교생활기록부다.

학생부를 '만들어주는' 곳이 등장했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간절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학생부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다. 학생이 평소 학교 생활을 하며 보여준 탐구 정신과 풀리지 않는 의문을 파고 드는 끈기 등에 대한 기록이다. 면접관이 학생부에서 발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을 했느냐'가 아닌 '왜 궁금하게 됐는가'와 '어떻게 그 의문을 해소했는가'에 관한 치열함이다.

TV와 친하지 않아 <일타맘>이라는 프로그램에 대해 알지 못했고, 이 책의 저자가 얼마나 대단한 분인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책을 덮은 후 영상을 찾아 보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희망의 빛 한 줄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 '고 1이 늦었다는 말은 중학생일 때 시작하면 유리하다는 뜻입니다.'라는 한 문장의 힘일 것이다.

'이 책 안 읽었으면 어쩔 뻔 했나'로 일어나지도 않은 가정에 속 쓰리거나 안도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만나 정말 다행이다, 감사합니다'하며 엄마이자 멘토로서 웃으며 지내야겠다.

아이들아, 여전히 서툰 엄마를 용서하고, 너희를 위함이라는 변명도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래도 할 건 끝내고, 놀고 먹자.

제발.

스릉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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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배 - 바다 위를 달리는 기계의 구조와 원리 미래 공학자를 위한 비주얼 엔지니어링 1
톰 크레스터디나 지음, 장석봉 옮김 / 윌북주니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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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이들과 모터 보트를 운전해 볼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집 두 아들도 자동차 운전하는 것을 놀이공원의 범퍼카나 카트 라이더 게임처럼 흥미롭게 보고는 한다. 하지만 그 아이들 덕분에 벌써 두 번째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가 본 경험이 있기에 운전석에는 절대 못 앉게 한다.

그런데 수상 레저 스포츠 체험 행사에서 모터 보트에 탑승하는 것은 물론 아이들까지 핸들을 잡고 배를 운전해 보게 해 주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나는 깜짝 놀라 "아이들도요?"하고 물었고, 소년들은 "오예!"를 외쳤다.

1920년대 접어들며 북태평양에서 잡히는 가자미의 수가 크게 줄어들자, 미국과 캐나다의 어부들은 가자미를 지키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여기에서 탄생한 '국제태평양가자미위원회(IPHC)'는 가자미잡이 어선이 잡을 수 있는 수를 제한했다. 정해진 수만큼 가자미를 모두 잡은 어선은 대구, 범노래미, 볼락과 같은 다른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일하는 배, 25쪽

세계의 바다 위에는 다양한 종류의 배가 떠다닌다. 연어, 킹크랩, 가자미 등을 잡는 어선, 불을 끄거나 배를 다루기도 하는 소방선, 특수 훈련을 받은 대원들이 위급 상황 발생시 구조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해안 경비선, 승객들을 실어나르는 페리선, 각종 화물, 자동차, 음식 재료가 가득 실린 컨테이너 바지선을 옮기는 예인선 등 용도와 행선지에 알맞게 이용된다.

그중 우리의 식생활과 직접 관련이 있는 어선들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연어잡이 어선은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지면 어부들을 태우고 알래스카로 떠날 준비를 한다. 배를 깨끗이 청소하고 기기를 살핀 뒤, 필요한 곳에는 페인트칠을 한다. 그리고 여름이 되어 바다로 나갈 때 필요한 식량과 물건을 싣는다.

이제 연어잡이 어선에 탄 어부들은 한동안 파도가 넘실거리는 태평양 위를 일터이자 집 삼아 생활한다. 낚싯줄로 잡은 연어가 갑판 위에 가득 쌓이면 머리와 내장을 제거한 뒤 바로 급냉한다. 저장고는 속눈썹에 성에가 낄 정도로 추운 영하 40도로 맞추어 둔다. 연어가 단단하게 얼면, 물을 묻혀 겉에 얇은 얼음 막을 만드는데, 어느 정도 물기가 있어야 연어가 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의 저장고가 연어로 가득하면 어부들은 항구로 돌아가 책을 읽거나 편지를 쓰며 쉰다. 깨끗이 손질해 꽁꽁 얼린 연어들은 배가 육지로 돌아오면 고급 레스토랑이나 슈퍼마켓으로 보내진다.

어선들의 목적은 어류를 잡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잡아들이지는 않는다. 다른 어선들과 나눠 잡기 위해 한 곳에서 적당량만 잡고, 알을 낳는 암컷은 돌려 보낸다. 아직 덜 자란 새끼들도 놓아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꽃게나 주꾸미 등의 어업에 금어기가 있다. 주로 어류들이 알을 낳는 시기다.

메이데이! 메이데이! 메이데이!

무전기에서 이 외침이 들려오면, 주변의 배들은 모두 구조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다른 배들도 도움을 줄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상황이라면, 해안 경비선이 움직여야 한다.

일하는 배, 34쪽

<일하는 배>를 펼쳐 본 사람이면 누구나 제일 먼저 감탄사를 연발할 것이다. 그리고 책에 한껏 가까이 다가갈 것이다. 평소 우리는 볼 기회조차 없는 배의 내부 구조가 아주 세밀하고 친절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수 선박들은 아무리 들여다 봐도 신기하고 놀랍다. 소방선의 경우 바닥에 흡입구가 있는데, 힘이 강한 펌프가 이 흡입구로 바닷물을 끌어 올려 불을 끄는 데 사용한다. 해안 경비선에는 계급이 다른 대원 24명이 타고 있으며, 각자 다른 임무를 맡고 있다. 그들은 철저한 훈련을 받아 강한 용기와 뛰어난 기술을 갖췄으며 언제든 구조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앞뒤가 같은 페리선의 경우 한 쪽 방향에만 프로펠러가 있는 보통 배들과 달리 양쪽 모두 프로펠러가 달려 있어 앞뒤 구분 없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인류가 태어난 이래 바다는 생명의 터전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바다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바다를 연구하기 위해 항해하는 배도 있다. 작년에 읽은 남성현의 <바다 위 과학자>가 바로 그런 배에서 생활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였다. 대양에서 만난 풍랑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과학자들과 바다 수영을 즐기던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문득 처음으로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갈 생각을 했던 누군가를 떠올려 본다. 단순히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모아나'처럼 운명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 분들 덕분에 우리는 바다에서 나는 것을 먹고, 바다 안에서 놀고, 바다 근처에 살고 있다.

<일하는 배>를 읽고 나니 새삼 바다가 새롭고 놀랍게 느껴진다. 다음 세대들도 그 경이로움을 경험해 볼 수 있도록 바다를 아끼고 사랑해야겠다. 바다야,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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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의 감정 수업 - 세상이란 파도를 거침없이 타기 위한 자현 스님의 가르침
자현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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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엄마 수업>을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칠만큼 명쾌한 구절이 많다. 어쩔 때는 이 스님이 어디다 갱년기 아내와 사춘기 아들을 숨겨 놓은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결혼을 해 본 것도 아니고, 아이를 키워본 것도 아닌데 어떻게 엄마들 마음을 그리 잘 알 수 있을까.

<부처의 감정 수업>이라는 책을 통해 만난 자현 스님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자현 스님은 공식적으로 아는 것이 많다.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와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와 고려대학교 철학과, 동국대학교 미술사학과, 역사교육학과, 국어교육학과 미술학과, 부디스트비즈니스학과 및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과에서 총 8개의 학위를 취득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동국대학교 강의 교수와 능인대학교대학원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중앙승가대학교 불교학부 교수와 승가학부 학부장 및 동국대학교 객원교수 겸 교책 연구 기관에서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더불어 월정사 교무국장 및 수행 원장, 사단법인 인문학과명상연구소 이사장, 사단법인 한국불교학회 이사장 겸 회장, 한국명상심리상담학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진정 이 직함들이 한 사람의 몫이란 말인가.

세상이 인정하는 대한민국 대표 학승이지만 정작 스님 본인은 '일이 잘 안 풀려서' 그토록 많은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본래 율곡 이이 선생처럼 세상을 바꾸는 실천적인 일을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다산 정약용 선생과 닮은 시간을 보냈다는 것이다. 유배 아닌 유배를 간 처지가 되어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남아도는 시간에 공부를 하다 보니 박사 학위를 8개나 갖게 되었다지만 스님에게 공부는 거창한 구도의 길이 아니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TV를 보며 십자수를 놓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고. 그냥 하다 보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정도의 일이었고, 나름의 재미도 있었다니.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구나 싶어 멀어지려는데 스님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시작되자 의자를 당겨 앉게 되었다.

사람들이 감정 때문에 괴로운 진짜 이유는 감정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 감정에 매몰되어서입니다. 감정이 곧 '나'라고 착각하는 것이죠. 하지만 감정을 느끼는 것과 그 감정을 토대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감정을 온전히 느끼면서도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것, 즉 '나'와 '감정'의 분리는 분명히 가능합니다.

부처의 감정 수업, 34쪽

인용하고 싶은 구절이 너무 많아 고민스럽다. 보통 책을 읽다 보면 잘 알고 있지만 간과하거나 잊고 있던 부분을 되새기는 경우가 많은데, <부처의 감정 수업>은 '감정'에 대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본질에 대해 차분히 풀어나간다. 쉽게 말하면 '화가 나는 것과 화를 내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다. 감정은 우리의 일부분일 뿐이다. 때문에 순간 휘몰아치는 감정에 일희일비하기보다 얼굴을 살피듯 거울에 비춰보면 깨닫는 바가 있다.

거울은 자기 앞에 놓인 대상이 무엇이든 어떠하든 차별 없이 그 순간순간을 비춘다. 잘생겼다고 더 붙잡아두려 하지 않고, 못생겼다고 밀어내지 않는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비출 뿐이다. 우리의 감정도 이와 같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거울에 비치듯 잠시 나타난 것뿐이다. 그러니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하거나 통제하려 애쓰지 말자. 감정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사라지면 사라지는 대로 지켜 보자.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바다 전체로 보면 물의 총량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바람이 불어 쓰나미가 몰려오든 파도가 몰아치든, 결과적으로 바다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어요.

부자의 감정 수업, 41쪽

모두 다 나다. 가족을 위해 기본 욕구까지 내팽개쳐가며 희생하는 것도 나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며 악다구니를 쓰는 것도 나다. 자랑스러울 일도 창피할 일도 아니다. 그저 서퍼처럼 파도에 올라타 즐기는 자가 고수다.

이를 위해 스님은 '연기하듯 살라'고 말한다. 촬영장에서 슛이 들어가는 순간, 배우들은 배역에 완전히 빠져들어 궁극적인 진리인 전제의 몰입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다가도 감독의 "컷!" 소리에 다시 일상의 진리인 속제로 돌아간다. 이 동시성이 핵심이다. 두 마음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가 되어 나아가며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힘을 얻는다.

누구도 희극만, 비극만 선택할 수 없다. 인생의 파도를 즐기는 사람은 그 변화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뿐, 파도와 충돌하지도 계산하지도 않는다. 따라서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연기하듯 살아가는 동시에 자신을 돌이켜 살펴봄으로써 나를 지켜야 한다. 원인과 조건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에 몸을 맡기면서 한편으로는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끊임없이 되비추어 보자.

자현 스님의 감정 수업은 행복을 위해 고장난 수도꼭지를 고치는 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수도꼭지에서 찬물이 나오든 따뜻한 물이 나오든 아니면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든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행복을 유지할 것인가를 다룬다. 우리의 감각을 무디게 하는 편리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우리 안으로 돌려놓자. 우리는 애초에 불완전함 그 자체를 부여받았다. 그러니 감정을 부정하거나 억제하지 말자. 대신 억눌린 감정이 화산처럼 폭발하기 전에 압력밥솥의 코크를 통해 김을 빼주듯 적절히 분출하자. 감정은 오고가는 파도일 뿐, 우리는 그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바다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명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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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 김상근 교수가 전하는 인류의 위대한 유산
김상근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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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기준 영화 <오디세이>의 관객수는 847만명이다. n차 관람객이 늘어나며 천 만 관객 달성은 이미 예정된 미래나 다름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왜 3,000년 전 한 인간의 이야기에 이토록 열광하는 것일까.

그 시절 사람들이 겪었던 실패의 아픔, 이별의 고통, 배신의 상처, 저항할 수 없는 유혹, 죽음의 공포 등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이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피해갈 수 없는 과정이다. 이오니아 지방을 떠돌던 유랑 시인이었던 호메로스. 그는 비록 맹인이었지만 인간은 시련과 고통을 통해 단련되고, 그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지 발견할 수 있다는 진리를 내면의 눈으로 들여다 본 선구자였다.

인간은 언제나 본능에 충실합니다. 겉으로는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몰래 요령을 부리는 인간의 행동, 정의를 외치면서도 작은 부정에 기꺼이 손을 담그는 인간의 모습에 대해 호메로스는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말합니다.

오디세이, 94쪽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오디세우스는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게 된다. 그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옥, 칼립소의 동굴이 있는 섬에서 7년을 보내게 된다. 그 섬은 신들도 탐낼 만한 곳이었다. 섬 전체가 싱그러운 포도 넝쿨로 뒤덮였고, 네 갈래의 샘물이 사방으로 흘렀으며, 부드러운 풀밭에는 제비꽃과 파슬리가 가득했다. 한 마디로 지상 낙원이었다.

오디세우스에게 반한 아름다운 요정 칼립소는 그를 자신의 동굴 안에 숨겼다. 그리고 인간이 꿈꿀 수 있는 모든 것을 약속하며 그를 붙잡아 두려 한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 영원한 생명, 지상 천국에서 보내는 고통 없는 나날. 누가 이 평화와 행복을 단칼에 마다할 수 있을까.

매일 밤, 오디세우스는 제 발로 칼립소의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매일 아침, 그 동굴에서 나와 혼자 해변가를 걸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 위에 앉아 그가 한 일은 사랑하는 아내 페넬로페를 그리워하며 우는 것이었다. 낮의 눈물과 밤의 동침의 상대가 달랐고, 7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그 시간동안 오디세우스의 마음은 모순으로 뒤범벅돼 있었다. 결혼한 아내에 대한 의무와 요정과의 안락한 삶을 동시에 갈구했던 것이다. 호메로스는 이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저 나와 너, 우리 모두가 가진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었을 뿐.

인상 깊었던 것은 오디세우스가 칼립소를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신들의 명령이 내려진 이후였다.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인간은 신이 개입하지 않으면 본능적 모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설렘은 처음에 찾아왔다가 시간과 함께 옅어지지만, 둘만의 비밀은 세월이 흐를수록 오히려 튼튼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올리브 나무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디세이, 280쪽

흔히들 결혼을 가리켜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일이라 한다. 적극 동의한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결혼이 이 모양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하는 쪽을 선택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오디세우스가 그 험난한 과정을 뚫고 고향으로 돌아간 가장 큰 이유는 아내인 페넬로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 장장 20년동안 전쟁터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며 108명의 구혼자와 사기꾼들에게 시달렸던 페넬로페. 늙은 유모에게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녀는 감정보다 이성적 판단을 앞세웠다.

"오디세우스의 침대를 신방 밖으로 옮겨놓아라. 그 분이 직접 만든 그 튼튼한 침대를."

그것은 일종의 시험이었다. 진짜 남편만이 알 수 있는 둘만의 비밀을 품고 있는 침대를 이용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에게 그 침대는 단순한 가구가 아니었다. 오디세우스가 직접 살아 있는 올리브 나무 기둥으로 삼은 침대, 뿌리가 땅속에 박혀 있는 침대, 따라서 어떤 힘으로도 옮길 수 없는 두 사람의 흔들리지 않는 관계를 나타내는 징표였다.

누구에게나 연애의 시작은 설렘이다. 결혼을 통해 그 설렘은 조용히 소멸하고 그 자리에 책임과 의무라는 생소한 얼굴이 찾아온다. 두근거림은 익숙함으로, 나아가 무감각으로 굳어지기도 한다. 때문에 결혼은 서로를 향한 열정을 신뢰로 전환하고도, 남아 있는 긴 세월을 함께 살아낼 수 있는지 냉정하게 판단하고 선택해야 한다.

호메로스는 말한다. 오디세우스가 젊음과 미모, 영원의 상징 칼립소를 뒤로 하고, 늙고 불완전하고 유한한 페넬로페에게 돌아간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20년이 걸렸고, 멀리 돌아왔지만 남는 것은 사랑이라고.

이 책의 저자인 김상근은 연세대학교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며 학회장, 학장, 대학원장을 역임했다. 인문학 지원 재단인 플라톤 아카데미를 창립하는 일을 도왔고, 인문학 공부 모임인 루첼라이 정원에서 그리스, 로마, 독일, 인도,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고전, 유대 문학과 셰익스피어의 명작 등을 주제로 8년 간 강의했다.

피렌체의 문화와 예술을 소개한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는 SBS 특집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EBS 인문학 특강과 세계테마기행, JTBC 차이나는 클라스 등에 출연하여 인문학의 대중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 책을 위해 저자가 선별한<오디세이> 18개의 주요 장면은 오늘날 청년들이 맞닥뜨리는 시련과 정확히 겹친다. 이것은 예언이나 우연이 아니다. 영웅 오디세우스는 우리처럼 흔들리고 무너진다.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도 홀린 듯 어둠의 굴로 들어가고 다시 후회한다. 하지만 기억하자. 오디세우스의 20년 귀환기 역시 인생의 일부분일 뿐, 마지막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의 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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