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 칼립소의 섬 오귀기아.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친 오디세우스에게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하는 불멸의 삶.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매일 혼자 바닷가에서 울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 천국인데, 뭐가 문제야?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그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사실 소설 속 이모의 자살은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식들 다 출가했겠다, 돈 있겠다, 신랑은 일하느라 바빠. 얼마든지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는데, 왜 지금 그만두는 건지. 물론 소설에 다 담지 못한 속사정이 많겠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내 인생에 '나'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트로이로 떠나기 전, 오디세우스의 목표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내가 진짜 나다운 곳.
하지만 나답게 살기로 마음 먹는 일도, 실천에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오디세우스의 경우 파라다이스처럼 보이는 오귀기아를 떠나려면 뗏목이 필요했다. 요정인 칼립소가 손가락 한 번 튕겨서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오직 도끼와 자귀만을 건네줄 뿐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나무를 베고, 다듬고, 이어 붙이고, 돛을 세우고, 물과 식량을 실었다. 나흘 밤낮이 꼬박 걸린 고된 노동이었다. 또 바다로 나간 뒤에도 직접 노를 저어야 했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온전한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해내야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
공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선선한 바람 덕분에 물에 젖었던 책이 다 말랐다. 물론 상처는 남았다. 하지만 괜찮다. 이 책이 나를 완전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지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곳, 이타카로 안내할 테니. 그 곳은 원래 거기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신대륙을 향했던 방향키를 돌릴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