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ㅣ 서양철학전집 하이엔드 고전 2
호메로스 지음 / 클래시카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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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

보통 서평을 쓸 때 신간을 무료로 제공 받은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인상 깊었던 구절, 함께 나누고 싶은 부분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는 책 한 권을 통째로 인용하고 싶다. 몽둥이를 들고 휘두르며 "정신 차려!"하고 야단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난 그렇더라."하며 주머니에서 꺼낸 꾸깃꾸깃한 통찰이 마치 성덕대왕 신종의 울림처럼 깊고 오래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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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내내 어딜 가도 들고 다니며 읽고, 밑줄 긋고, 하늘 한 번 보고, 땅도 보고, 새로 읽고, 다시 읽었다. 그러다 에코백에 책과 함께 넣어둔 텀블러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아 책이 젖어버렸다. 다행히 글씨가 없는 책의 아랫 부분에 내 손가락 한 마디 정도였다. 며칠 만에 갑자기 치고 들어온 가을을 만나러 공원 의자 앉았다. 책 표지에 묻은 물방울을 슥 닦고 옆자리를 내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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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다면 화가 났다고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한다. 다만 그 화를 어디에 쓸 것인지, 그 사용처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어른의 분노다. 뜨겁게 느끼되 차갑게 쓰는 것. 감정의 온도와 행동의 온도를 분리하는 것. 이 분리를 해내는 사람은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137쪽

화가 난다. 화가 난다. 화 가 난 다.

그 화를 참지 못하고 터트린 후, 도대체 난 왜 그렇게 화가 났던 걸까 돌아본다. 주로 두 아들과 시어머니의 아들이 촉매제다. 그들은 말이 너무 많다. 영화 <올드 보이>에서 오대수는 말이 너무 많아서 15년 간 감금돼 군만두만 먹으며 생명을 유지했는데, 삼시 세끼 된장국만 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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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동굴에서 부하를 잃었다. 하지만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폭발시키는 대신 어딘가에 저장했다. 정확히 어디에 쓸지 정해질 때까지.

부하들의 참담한 죽음 이후 오디세우스는 제대로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끼던 부하들의 비명이 귀에서 떠났을 리 없으니. 오디세우스는 그 밤들을 견뎠다. 포기와 체념이 아니었다. 올리브 나무 기둥을 뾰족하게 깎고, 불에 달군 뒤 거인이 취해 잠들기를 기다렸다. 한 순간의 실패도 용납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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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는 말한다. 감정을 조절하고 쓰임에 맞게 사용하는 감각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는 것이라고. 그 훈련은 아주 작은 데서 시작된다고. 분노가 솟구칠 때 즉각적으로 칼을 뽑지 않는 것, 모욕을 마주했을 때 성급히 판을 엎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것, 억울함에 매몰되지 않고 하루만 그 감정을 유예하여 자신을 다스리는 것. 이 작은 순간들이 쌓여서 언젠가 진짜 결정적 순간을 마주했을 때, 칼을 뽑는 자가 진정한 승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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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 삶을 자기가 살고 있지 않다고 느낄 때 운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매일 마음이 무거운 시기가 있다면, 그때 당신은 이미 오귀기아에 도착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각자의 오디세이아를 쓴다, 32쪽

요정 칼립소의 섬 오귀기아. 10년 간의 트로이 전쟁으로 지칠대로 지친 오디세우스에게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노래하는 불멸의 삶.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매일 혼자 바닷가에서 울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꿈에도 그리는 천국인데, 뭐가 문제야?

양귀자의 소설 <모순>이 그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사실 소설 속 이모의 자살은 쉬이 이해되지 않는다. 자식들 다 출가했겠다, 돈 있겠다, 신랑은 일하느라 바빠. 얼마든지 즐거운 인생을 살 수 있는데, 왜 지금 그만두는 건지. 물론 소설에 다 담지 못한 속사정이 많겠지만, 내가 이해한 바로는 내 인생에 '나'가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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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로 떠나기 전, 오디세우스의 목표는 다시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는, 내가 진짜 나다운 곳.

하지만 나답게 살기로 마음 먹는 일도, 실천에 옮기는 것도 만만치 않다. 오디세우스의 경우 파라다이스처럼 보이는 오귀기아를 떠나려면 뗏목이 필요했다. 요정인 칼립소가 손가락 한 번 튕겨서 크고 튼튼한 배를 만들어 줄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오직 도끼와 자귀만을 건네줄 뿐이었다.

오디세우스는 나무를 베고, 다듬고, 이어 붙이고, 돛을 세우고, 물과 식량을 실었다. 나흘 밤낮이 꼬박 걸린 고된 노동이었다. 또 바다로 나간 뒤에도 직접 노를 저어야 했다. 아무도 대신해 주지 않는 온전한 그의 몫이었다. 그리고 스스로 해내야만 의미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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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선선한 바람 덕분에 물에 젖었던 책이 다 말랐다. 물론 상처는 남았다. 하지만 괜찮다. 이 책이 나를 완전하지 않고, 영원하지도 않지만 진짜 나를 만날 수 있는 곳, 이타카로 안내할 테니. 그 곳은 원래 거기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신대륙을 향했던 방향키를 돌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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