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분 편의점 4호 - 식물원점 수상한 악취의 비밀 24분 편의점 4
김희남 지음, 이유진 그림 / 사파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번씩 큰 마음 먹고 책정리를 하는데도 여전히 집에 책이 많다. 그 중에는 언제 내 차례가 오나 한없이 기다리는 책들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읽히다 만 책도 꽤 있다. 또 <24분 편의점> 시리즈처럼 책장 한가운데 로열석을 차지하고 있는 책도 있다. 

 이 시리즈는 특히 둘째가 좋아한다. 1권을 읽고 또 읽으며 "엄마, 2권은 언제 나와요?", 2권 읽으면서는 3권을, 3권을 읽으면서 "엄마, 아직 4권 안 나왔어요?" 했다. 그것 말고도 집안 곳곳 어디를 봐도 다 책책책인데 굳이 없는 것을 찾는 심보는 뭘까. 





"자, 어서 와요. 하루에 딱! 24분만 문을 여는 편의점이라오."

24분 편의점 4, 9쪽

 아이들과 신문 기사를 모아놓은 책을 보면 빠지지 않는 기사가 있다. 바로 희소성에 관한 것이다.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가질 수 없어서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 말이다. 

 우리가 아는 보통의 편의점은 24시간 열려있다. 하지만 편 사장과 기냥이가 있는 <24분 편의점>은 하루 24시간 중 단 24분만 손님을 맞이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효율성이다. '딱! 24분 동안, 딱! 필요한 것만, 딱! 사 가면 되는'. 편 사장의 편의점이 24분만 장사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동성 때문이다. <24분 편의점>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사건도 해결하며 추억도 쌓고, 장사도 하는 이상한 편의점이다. 







"큭큭큭! 재미나네요. 우리가 먹는 당근은 뿌리잖아요. 흙 밑에 있으니 당연히 안 보이죠. 양분이 뿌리에 저장되어서 달고 맛있는 거예요."

24분 편의점, 23쪽

 나 때는 서울 애들은 쌀이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안다는 말을 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농촌 풍경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말도 안 된다며 콧방귀를 꼈지만 성인이 되고 다양한 성장 배경을 보고 듣고 난 뒤로는 그럴 수도 싶었다. 실제로든 책에서든 벼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도 분명 있을 테니까 말이다. 


 4호 편의점은 어느 식물원 앞에 차려졌다. 덕분에 편 사장과 기냥이는 다양한 식물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를 얻게 됐다. 첫 번째 손님은 토끼였다. 까만 비닐 봉지로 싼 무언가를 소중히 안고 편의점 안으로 들어선 토끼는 식물 영양제를 찾고 있었다. 토끼는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 외출 시 온 몸을 가리고 다녔다. 그래서 자신이 키우는 당근도 강한 햇빛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까만 비닐 봉지를 덮어둔 거였다. 


 안타깝게도 토끼는 식물이 성장하는 데 필요한 3요소를 모르고 있었다. 물과 토양, 그리고 햇빛.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식물은 제대로 자랄 수 없다. 그 중에 햇빛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스스로 양분을 만들어 내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사실 식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것은 토끼뿐만이 아니었다. 기냥이는 토끼의 화분을 요리조리 살펴 봤지만 당근이 보이지 않자 고개를 갸웃했다. 당근이 고추처럼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당근이 대표적인 뿌리 채소라는 것을 알고 너무 놀라 휘청 쓰러질 뻔하기까지 했다. 책에는 안 나왔지만 땅 속에서 캐내는 감자는 뿌리 식물이 아니라 줄기 식물이라는 것까지 알았으면 어땠을까? 





선인장 가시는 살아남기 위해 사막이라는 환경에 적응하려 했던 생존 전략이라고 할 수 있지.

24분 편의점, 43쪽

 아이들이 어릴 때 도감을 많이 봤었다. 어느 날 선인장 사진과 설명을 보던 첫째 아이가 "엄마, 선인장도 잎이 있어요. 뾰족뾰족한 가시가 잎이래요!" 하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 즈음에는 침엽수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때라 나뭇잎 하면 대표적으로 은행잎, 단풍잎을 떠올리던 때였다. 

 정확히 말하면 선인장에는 잎이 있었다. 하지만 주로 뜨겁고 건조한 사막에서 살다 보니 수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잎이 가시로 변한 거다. 이는 동물이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주며, 가시에 맺힌 수분은 선인장의 생존에 큰 역할을 한다. 


 식물은 어디든 한 번 뿌리 내리면 생을 다할 때까지 한 발자국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곱씹어 생각할수록 두렵고 무서운 사실이다. 마치 나의 엄마 노릇에 끝이 없는 것처럼.

 '엄마'가 된 지 벌써 13년이 지났다. 한 번씩 이 큰 변화가 놀랍도록 낯설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아이들도 1학년이었다가 2학년이 되고, 3학년, 4학년이 되어 열심히 학교에 다니는 것처럼 나도 적응하며 살아가는 수밖에. 책 말미에서 작가가 추천한 관찰 기록문 쓰기는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거창할 필요 없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이름 모를 풀과 꽃을 살펴 본 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좋겠다.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 둘째는 5호 <24분 편의점>을 기다리고 있다. 아이들에게 "책 좀 읽어라" 하지 않아도 오며가며 이 시리즈를 찾아 읽는 이유는 간단하다.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는 게 최고다!





* 미자모 카페에서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로그인, 동생을 만나러 갑니다 동화 쫌 읽는 어린이
고수산나 지음, 해마 그림 / 풀빛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고 나면 할 말이 많아지는 책이 있는가 하면, 입을 꾹 닫게 되는 책도 있다. 온전히 형제간의 우애라는 목적을 가지고 선택했던 <로그인, 동생을 만나러 갑니다>는 후자다. '세월호'가 잊힐 수 없는, '세월호'를 잊으면 안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언제 어떻게 올지 알 수 없는 죽음. 





'다시는 하준이를 못 본다고? 진짜?'



 서준이와 하준이는 두 살 터울의 형제다. 동생 하준이는 형 서준이와 놀고 싶어 집 안에서도 졸졸 따라다닌다.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데 방까지 따라 들어와 이것저것 만지작거리고 서준의 옷을 걸쳐본다. 하다하다 안 되면 읽지도 않는 책을 꺼내 뒤적이기도 한다. 

 둘은 한 배에서 나왔지만 말과 행동이 참 다르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당당히 선언하는 하준이를 보며 모태 솔로인 서준이는 약이 오르지만 애써 태연한 척 맹물을 들이켠다. 가족 모임이라도 있는 날이면 하준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거나 태권도 품새 동작을 선보이기도 했다. 어른들은 박수를 보내며 지갑 열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준은 자기 감정을 쉽게 드러내고, 모르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며, 언제나 싱글벙글 웃는 하준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학원에서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관심을 한 몸에 받는 하준이 부러운 건 사실이지만 닭살 돋을 만큼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하다. 


 어느 날 아침, 등교 준비를 하던 서준은 하준과 말다툼을 벌인다. 그날따라 떼를 쓰는 하준이가 보기 싫어 엄마가 보지 않을 때 하준이에게 꽉 쥔 주먹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너 오늘까지 게임이 안 주면 죽을 줄 알아."

 그때까지만 해도 서준은 알지 못했다. 불에 그을린 것처럼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흉터를 남기게 되는 말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하준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도 있어. 하준이가 듣고 싶은 말, 하준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수가 있다고. 그게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가 있어."

로그인, 동생을 만나러 갑니다, 46쪽


 그날 오후, 하준이는 하교길에 교통 사고를 당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서준은 엄마 대신 자신을 돌보러 달려온 할머니에게 하준이의 상태에 대해 묻는다. 

 "많이 다쳤어요? 아프대요?"

 "아프, 아프진 않을 거야. 하, 하늘 나라로 갔거든."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서준 엄마는 죽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했다. 서준은 밀려드는 후회에 혼자 어쩔 줄을 몰랐다. 하준이가 내는 수수께끼에 답해줄 걸, 종이접기로 하준이가 좋아하는 공룡을 접어줄 걸, 같이 보드 게임할 때 애써 이기지 말고 한 번쯤은 져 줄 걸, 학교나 학원에 갈 때 혼자 쌩하니 먼저 가지 말고 발걸음을 맞춰 나란히 걸어 볼 걸.


 사고 이후 서준은 이름 대신 '동생 죽은 애'로 불렸다. 사고 보상금으로 맛있는 걸 사달라는 불량배들을 피해다니는 것도 고단했다. 그 즈음 서준의 부모님은 장례식에서 들었던 AI 추모 서비스를 신청한다. 지난 토요일 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갔던 엄마가 먼저 돌아가신 이모부가 마치 살아 있는 듯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을 보고 마음이 급해진 것이었다. 

 서준의 부모는 새끼 손톱보다 작은 칩 안에 하준이의 생전 모습을 입력했다. 하준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시작으로 하준이가 쓰고 그린 그림일기, 학교에서 쓰던 공책, 하준이의 방과 집의 모습 등. AI 안경을 쓰면 입력된 자료를 학습해 '진짜' 하준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 속 하준을 만날 수 있다. 


 학교에 다녀온 서준을 반긴 것은 AI 안경을 쓰고 허공을 쓰다듬고 있는 엄마였다. 하준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관심 밖인 것 같아 마음이 쓸쓸했지만 그저 울기만 하던 엄마가 살아난 것 같아 참을만 했다. 처음 AI 추모 서비스를 제안받았을 때 엄마는 가짜 하준이는 싫다고 했었다. 하지만 서비스가 시작되자 AI 안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하준이를 보느라 그 주위를 맴도는 서준을 잊은 듯 했다. 


 서준은 혼란스러웠다. 가짜 하준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두려움도 커져갔다. 아빠가 서준이의 운동화가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까 봐, 엄마가 서준이가 좋아하는 카레를 만드는 방법을 영영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죽어서도 엄마, 아빠를 빼앗아가는 동생이 미웠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만약 동생 대신 내가 죽었다면, 엄마와 아빠가 덜 슬퍼했을까.





서준이는 그 기억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도 하준이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몇 번이나 다짐했다.

로그인, 동생을 만나러 갑니다, 126쪽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몇 가지 소동을 거친 후에야 서준과 그의 부모는 하준을 제대로 추모하기 시작한다. 하준과 함께 갔던 쌀국수 집에서 하준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다. 그럴수록 서준은 믿음이 생겼다. 하준이도 틀림없이 우리와 함께 웃고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하준이가 떠난 뒤에야 하준이가 왜 그토록 자신의 방에 놀러오라고 했는지 알게 된 서준은 이제 슬픔에 잠겨 있지 않기로 했다. 분명 하준이는 하늘 나라에서도 여전히 수수께끼를 내며 좋아하고 있을 테니까. 하준이가 없는 하루가 더 지나가고, 서준이는 그렇게 자란다.


 사실 <로그인, 동생을 만나러 갑니다>는 제목 자체가 스포일러다. 어느 정도 슬플 거라 각오하고 읽기 시작했지만, 안타까운 상황과 서준이의 복잡한 심경에 감정 이입이 돼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루에도 수십 번 적이 되었다 소울 메이트가 되었다 하는 우리 집 두 아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쉬지 않고 떠들던 입을 꾹 닫았다. 책 속으로 빠져들었던 둘째 아이가 마지막 장의 마지막 글자까지 읽더니 아무 말없이 이 책을 꼭 끌어안았다.

 "내 독후감 공책의 베스트가 바뀌었어."


 어떻게 이 얇은 한 권의 책이 이토록 큰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놀라웠다. 아마 서준과 하준 또래의 형제를 키우고 있다는 게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타인의 죽음 뒤에 따라오는 다짐.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곧 짧은 여름 방학이 시작된다. 내일은 아이들과 시원한 수박을 먹으며 우리만의 여름방학 대작전을 짜봐야겠다. 제 1 순위는 서로 사랑하기. 늘 곁에 있다고 소중함을 잊지 않기. 그리고 수학, 영어, 한국사... 음, 일단 물놀이부터 고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 J Mystery 1
쓰치야 우사기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리 소설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다. 여기저기 복선과 단서를 보일 듯 말 듯하게 숨겨놓고 "그것 봐라, 못 찾았지?"하며 놀림 당하는 기분이랄까.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를 선택한 이유는 어떤 '수수께끼'냐 하는 것보다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가 '빵집'이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에게 읽으라고 압박하지 않아도 내가 먼저, 내가 먼저하며 읽을 게 뻔할 테니.




내가 좀 더 일찍 알아차렸으면 유키코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생각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맴돌았다.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 55쪽


 주인공 이치쿠라 고하루는 평범한 대학생이다. 빵을 좋아해서, 집에서 가까워서, 친구가 같이 가자고 해서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실 다른 곳이 아닌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팔고 남은 빵을 받아올 수 있다는 점이 혼자 사는 가난한 대학생인 고하루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책에는 다섯 개의 빵 이야기가 나온다. 탄 크루아상, 꿈꾸는 바게트, 사랑하는 시나몬롤, 안녕, 초코소라빵, 추억의 카레빵. 그 중 탄 크루아상과 사랑하는 시나몬롤은 청춘 만화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혹시나 싶어 저자 소개로 돌아가 보니 이 책은 1998년 생 만화가 작품이었다. 어쩐지. 

 책날개에 이어지는 책 소개처럼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는 작가의 오사카 생활과 빵집 아르바이트 경험, 만화가로서의 활동 등 살아 움직이는 삶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따뜻하고 무해한 생활 밀착형 미스터리. 인정.


 이 책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탄 크루아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여러 번 상상해봤을 법한 이야기가 나온다. 바로 유명인과의 연애. 물론 그건 철저히 비밀이어야 한다. 온 세상 사람 대 오직 두 사람. 이보다 더 특별할 수 있을까.

 고하루와 유키코는 고등학교 때부터 단짝 친구다. 대학 입시 날 당황해서 길을 잃어버린 고하루를 역에서 기다렸다가 시험장까지 데려다준 사람이 바로 유키코다. 둘은 대학 진학을 위해 같이 도쿄에서 오사카로 이사왔고, 얼마 후 먼저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유키코의 소개로 고하루도 빵집 '노스티모'에서 함께 일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유키코에게서 '수상함'이 감지된다. 두 사람이 한참 전에 약속했던 <상검연무>라는 공연의 라이브 뷰잉(해외나 먼 지역에서 하는 콘서트나 공연을 위성 생중계로 송출받아서 보는 것)에 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루 전에. 사실 유키코가 그 공연에 나오는 배우 하세피의 열렬한 팬이라서, 그녀의 뜨거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이 고하루도 완전히 빠져버렸다. 그런데 대체 어떤 사정이 있기에 이 중요한 약속을 깨트리려는 걸까. 그것도 레나 선배 대신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거짓 핑계까지 대가면서.


 알고 보니, 유키코는 오사카의 라이브 뷰잉이 아니라 도쿄 공연을 직접 관람했다. 그것도 하세피의 연인으로서.

 "미안해. 네 말이 맞아. 숨겨서 미안해."

 "왜 숨긴 거야? 솔직하게 말하면 되잖아."

 "너한테 말하려고 했지만, 혹시 그 사람에게 폐가 될까 봐."

 누가 유키코의 순수한 마음에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과연 고하루는 어떻게 유키코가 전날 빵집에서 일한 게 아니라 도쿄에서 하세피의 공연을 직접 관람했을 거라 추리했을까. 먼저 유키코의 외적 변화였다. 공연 전날, 유키코가 평소와 다르게 네일을 붙이고 왔었다. 장갑을 끼고 벗고 하다 네일이 망가질 수도 있는데,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해가며 네일을 붙이고 왔다는 것은 멋을 부릴 만한 특별한 일이 있다는 증거였다. 또 빵집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신발까지 밀가루로 뒤덮이곤 하는데 그날 유키코는 예쁜 펌프스를 신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 다음날, 함께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둘은 유키코의 집에서 녹화 영상을 보기로 했다. 고하루가 보기에 보통 스마트폰 충전 케이블과 어댑터는 집의 콘센트에 계속 끼워두는데 그날 유키코의 집은 달랐다. 이 말인즉, 유키코는 어제 충전기를 들고 집을 떠났었다. 그리고 깜빡 잊고 충전기를 놓고 오는 바람에 집 콘센트가 비어 있었던 것이다. 

 결정적으로 크루아상. 공연이 있었던 날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던 유키코는 일을 마치고 탄 크루아상을 싸들고 갔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고하루가 유키코의 집을 찾은 그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만약 레나 선배가 아타미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사토미씨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레나 선배한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 70쪽


 빵집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고개를 갸웃할 때가 있다. 다소 억지스러운 상황에도 노스티모 빵집으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게 하는 것은 바로 고하루다. 그녀는 감사할 줄 알고, 미안해할 줄 안다. 마음만 한 가득으로 끝나지도 않고 진심을 전할 줄도 안다. 현실에서도 책 속에서도 '순수'와 어울리는 인물은 오랜만에 만나는 것 같다.  


 <빵집에서는 수수께끼의 향기가 난다>를 선택할 때 '빵집'이 원인이었다고 말했었다. 그 선택의 결과는 '향기'로 남았다. 갓 구운 빵 향기, 그리고 좋은 사람의 향기. 

 왠지 이런 마무리를 해야할 것 같다. 사랑스러운 빵 이야기, 잘 먹었습니다. 







* 미자모를 통해 도서를 증정 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어의 쓸모 - 평범한 대화를 더 근사하게 만드는 어휘의 힘
차민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볼 때 첫 부분의 서문과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기분이다. 단순히 말해 보자면 샌드위치 같다고 할까? 어떤 빵을 이용하느냐, 그 빵 사이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샌드위치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서문, 본문, 작가의 말은 서로 잘 어우러져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가 된다.


 <단어의 쓸모>는 샌드위치의 뚜껑을 담당하는 빵 부분, 이 책으로 보면 '들어가는 말' 부분에서 입맛이 확 돈다. 

  "그거 있잖아, 그거. 아, 뭐더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입 안에서 맴돌 때, 우리는 흔히 '기억이 안 나네'라고 넘기려 한다. 됐다, 이제 인정하자.  '그 뭐시기'가 끝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흐린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휘는 요리의 재료와 같습니다. 재료가 풍성해야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듯 구사할 수 있는 단어가 많아야 표현의 폭도 넓어집니다. 

단어의 쓸모, 4쪽


 너무 당연한 말이다. 물과 돌만으로 만든 진짜 '돌멩이 수프'를 먹고 싶지 않다면 당근, 감자, 양파, 소뼈, 보리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야 한다. 우리의 말이 요리라면 재료는 단연 어휘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라고 하면 금세 흥미를 잃고 말 것이다. 

 말도 똑같다. 늘 비슷한 단어만 반복하다 보면 말이 점점 단순해지고, 생각도 그를 따라간다. 이에 대치동에서 고등 국어를 가르치고, 누적 조회수 총 4억 뷰를 자랑하는 차민진 선생님은 제안한다. '적당하고 모호한 단어' 댜신 '근사하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단어'를 사용하자고. 




'빡침'에 격 더하기

내 안의 '발작 버튼'이 눌릴 때

'피곤하다'는 말도 부족할 때



<단어의 쓸모>는 총 5단계로 구성돼 있다. 각 단계마다 소제목만 봐도 첫 눈에 반하는 것 같은 강력한 끌림을 느낄 수 있다. '빡침'에 격을 더한다니. 입만 살아있는 나쁜 남자에게 빠지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이 책의 29쪽을 가장 먼저 펼쳤다. 그리고 마주한 그 인용구.

 "아, 개빡치네!"


 평소 나는 '짜증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할 때의 소리와 글자의 모양 때문이다. 짜증난다고 말하면 더 짜증나고, 듣기만 해도 짜증난다. 글씨를 보기만 해도 정말 짜증난다. 또 짜증난다는 말에는 그와 어울리는 몸짓과 표정이 있는데 곱지 않다. 같은 이유로 '빡친다'는 말도 내 사전에는 없다. 


 짜증나, 빡치네, 최근엔 또 뭐더라, 야르? 뭐만 하면 야르야르야르.

 아니 짜증나서 짜증난다고 하고, 빡치니까 빡친다는데 뭐가 문제야? 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어른의 분노에는 그 이유와 결이 있다고 말한다.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1차원적인 비속어 사용을 멀리하자. 대신 <단어의 쓸모>는 세련된 표현으로 품격을 갖추는 데 좋은 우리말 세 가지를 소개한다.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속이 답답할 때는 '울화가 치민다'

 분한 걸 넘어서 통증까지 느껴질 때는 '분통이 터진다'

 비위에 거슬리거나 마음이 언짢아서 성이 날 때는 '골나다'. 


 어떤가? 분명 '빡치다'보다 격이 있지만 주체할 수 없는 그 화도 충분히 표현된다.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 객관화하는일은 현재의 고통을 비극이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동시에 다시 일어설 에너지를 비축하게 되는 성숙한 방어 기제로 작용하죠.

단어의 쓸모, 59쪽


 단순히 '졸려', '피곤해'라고 뭉뚱그리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오늘은 기필코 일찍 자야지 했는데 또 이러고 있다. 정말 '휘진다'. 


 '휘지다'는 기운이 쏙 빠져서 팔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힘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내 몸의 심지가 툭 끊어진 듯한, 그래서 내 몸에 아무런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 휘지다.

 조금 더 삶의 무게가 묻어나는 표현으로는 '고단하다'가 있다. 고전적으로 간다면 '녹초가 되다'는 어떤가. 여기서 '녹초'는 '푸른 풀'이 아니라 '불을 켜서 녹아내린 초'를 뜻한다. 꼿꼿하게 서서 빛을 내던 초가 제 몸을 하얗게 불태우고 키가 작아진 모습. 지금 내 상태와 딱 맞는 말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는 어느 시 구절처럼 우리의 힘든 상태를 적절한 단어로 명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크게 완화된다고 한다. 나 오늘 왜 이러지? 하며 혼란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보다 "오늘 따라 유독 휘지네." 혹은 "참 고단한 하루였다." 하며 정확한 진단을 내려봐야겠다. 그 사이에 휴식이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정리하자면 <단어의 쓸모>는 실용서다. 배웠으니 써 먹어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당연히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한 번, 두 번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일상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친 동료를 단번에 일으키는 한 마디'를 연습하며 마무리 해야겠다.


 고무적이다.


 일상 : 이번 소개팅에서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는 건 연애 전선에 아주 고무적인 신호야.

 직장 : 회사 측이 노조의 발언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여 협상이 원활해질 것 같습니다.

 미디어 : 신약 개발의 초기 임상 결과가 매우 고무적으로 나타나면서 관련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나의 예문 :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 내가 미자모에서 종알종알 떠들다 보니 어느새 미자모통이 되었다. 이렇게                  고무적일 수가! 






 * 미자모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래의 포트폴리오 - 폭발적 우상향을 이끌 주식투자 넥스트 텐배거 TOP7
정주용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주식에서 ‘고래’는 막대한 자금을 보유한 대형 투자자를 비유하여 부르는 말로, 이들의 매매가 시장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맥락에서 쓰인다. 그들의 반대편에는 무수한 '개미들'이 있다. 

 주식에 있어 포트폴리오란 한 마디로 '분산 투자'라 할 수 있다. 우주, AI, 반도체, 에너지, 자율주행, 로보틱스, 방산 등의 섹터 중 자신의 투자 철학과 방법에 따라 자금을 나누는 것이다. 돈을 더 벌거나 덜 잃기 위해서.




워런 버핏이 지금 40대라면?


 워런 버핏이 40대이고 국내 주식 시장에 투자중이라면 요즘 죽을 맛일 것이다. 시가 총액 1,809조인 삼성 전자 주식이 하루에 10% 이상 고공 행진하거나 수직 낙하하는 것은 분명 건강한 시장이 아니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 손발을 털고 나갈 것이 아니라면 버텨야 한다. 그리고 고래의 자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파악하고 기다려야 한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 기다림이 늘 달콤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역사는 이미 같은 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다. 1849년, 금광이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금을 캐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러나 진짜 돈은 어디서 만들어졌는가? 바로 철도였다.

고래의 포트폴리오, 84쪽


 현재 대한민국 주식 시장은 '삼성 전자'로 대변된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작년 이 맘 때 삼성 전자 주식은 주당 7만원 초반이었다. 그런데 1년 사이에 이런 롤러코스터 장이 펼쳐질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신기하게도 역사는 반복된다. 현재 AI 산업은 과거의 금광이고, 데이터센터는 철도다. 지능을 채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프라가 필요하다. 그래, 여기까지는 알겠다. 지금 우리를 불안에 떨게 하는 것은 삼성전자의 주식이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올랐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오를 것인가 꺾일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이에 대한 답변을 하기 위해서는 버블이 언제 발생하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공급이 수요를 초과할 때, 그리고 그 공급이 사용되지 않을 때 발생한다. 철도가 깔렸지만 기차가 다니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인가. 

 다행히 현 시점 데이터센터는 부족하다.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듯 삼성전자의 1분기 실적은 역대 최고치였다. 곧 있을 2분기 실적은 1분기 대비 60% 이상 증가할 것이라는 관점이 지배적이다. 자랑스럽다 대한민국!





팔아야 할 이유가 있을 때만 판다.

매도의 타이밍은 주가가 아니라 '이유'로 결정해야 합니다.


처음에 산 이유가 사라졌을 때 팔기

수익의 절반을 먼저 실현하는 분할 매도 연습하기

팔지 않으면 그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하기

고래의 포트폴리오, 304


 발목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

 주식 시장의 여러 진리 중 하나다. 발바닥이 아닌 발목에서 사고, 머리가 아닌 어깨에서 팔라고 하는 이유는 누구도 최고점과 최저점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리는 말에 뛰어 들어 어깨에서 사고, 내리막에서 제 때 내리지 못해 발목에서 팔곤 한다. 팔면 더 오를 것 같고 안 팔면 언제 떨어질 지 몰라 불안하고. 무주식이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다시 말하지만 주식 시장을 떠나지 않을 거라면 사는 데도 이유가 있어야 하고 파는 데도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한 가지 더, 그 이유가 주가의 상승이나 하락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시작되자 방산주를 샀다고 가정해 보자. 전쟁이 파국으로 치달을수록 방산주의 주가를 점점 오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주식은 언제 팔면 좋을까? 정답은 이 사이클이 끝날 때, 즉 전쟁이 끝났을 때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주가가 오르면 사고, 떨어지면 판다. 그래서 막 주식을 시작한 사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 파느라 증권사의 배만 불려준다. 이 때 '분할 매도'를 시도해 보자. 처음 설정한만큼의 이익이 나면 일단 반만 매도하는 거다. 그 후에 더 오르면 '불타기'를 통해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떨어지면 '물타기'를 통해 손실을 줄일 수 있다. 


 계좌에 찍히는 빨간 숫자와 파란 숫자는 사이버 머니다. 수익 실현을 하지 않으면 얻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돈이다. 탐욕과 공포를 양 손에 들고 공포에 떨기보다 욕심을 조금 덜어내보는 건 어떨까. 






* 미자모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