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오후, 하준이는 하교길에 교통 사고를 당했다. 소식을 듣고 놀란 서준은 엄마 대신 자신을 돌보러 달려온 할머니에게 하준이의 상태에 대해 묻는다.
"많이 다쳤어요? 아프대요?"
"아프, 아프진 않을 거야. 하, 하늘 나라로 갔거든."
장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서준 엄마는 죽 한 숟가락도 넘기지 못했다. 서준은 밀려드는 후회에 혼자 어쩔 줄을 몰랐다. 하준이가 내는 수수께끼에 답해줄 걸, 종이접기로 하준이가 좋아하는 공룡을 접어줄 걸, 같이 보드 게임할 때 애써 이기지 말고 한 번쯤은 져 줄 걸, 학교나 학원에 갈 때 혼자 쌩하니 먼저 가지 말고 발걸음을 맞춰 나란히 걸어 볼 걸.
사고 이후 서준은 이름 대신 '동생 죽은 애'로 불렸다. 사고 보상금으로 맛있는 걸 사달라는 불량배들을 피해다니는 것도 고단했다. 그 즈음 서준의 부모님은 장례식에서 들었던 AI 추모 서비스를 신청한다. 지난 토요일 사촌 동생의 결혼식에 갔던 엄마가 먼저 돌아가신 이모부가 마치 살아 있는 듯 아들의 생일을 축하하는 영상을 보고 마음이 급해진 것이었다.
서준의 부모는 새끼 손톱보다 작은 칩 안에 하준이의 생전 모습을 입력했다. 하준이의 사진과 동영상을 시작으로 하준이가 쓰고 그린 그림일기, 학교에서 쓰던 공책, 하준이의 방과 집의 모습 등. AI 안경을 쓰면 입력된 자료를 학습해 '진짜' 하준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기계 속 하준을 만날 수 있다.
학교에 다녀온 서준을 반긴 것은 AI 안경을 쓰고 허공을 쓰다듬고 있는 엄마였다. 하준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관심 밖인 것 같아 마음이 쓸쓸했지만 그저 울기만 하던 엄마가 살아난 것 같아 참을만 했다. 처음 AI 추모 서비스를 제안받았을 때 엄마는 가짜 하준이는 싫다고 했었다. 하지만 서비스가 시작되자 AI 안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하준이를 보느라 그 주위를 맴도는 서준을 잊은 듯 했다.
서준은 혼란스러웠다. 가짜 하준에게 질투를 느끼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두려움도 커져갔다. 아빠가 서준이의 운동화가 작아지고 있다는 것을 모를까 봐, 엄마가 서준이가 좋아하는 카레를 만드는 방법을 영영 잊어버리지는 않을까, 죽어서도 엄마, 아빠를 빼앗아가는 동생이 미웠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만약 동생 대신 내가 죽었다면, 엄마와 아빠가 덜 슬퍼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