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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쓸모 - 평범한 대화를 더 근사하게 만드는 어휘의 힘
차민진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6월
평점 :

책을 볼 때 첫 부분의 서문과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기분이다. 단순히 말해 보자면 샌드위치 같다고 할까? 어떤 빵을 이용하느냐, 그 빵 사이에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다양한 샌드위치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서문, 본문, 작가의 말은 서로 잘 어우러져 세상에 하나뿐인 이야기가 된다.
<단어의 쓸모>는 샌드위치의 뚜껑을 담당하는 빵 부분, 이 책으로 보면 '들어가는 말' 부분에서 입맛이 확 돈다.
"그거 있잖아, 그거. 아, 뭐더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거나 입 안에서 맴돌 때, 우리는 흔히 '기억이 안 나네'라고 넘기려 한다. 됐다, 이제 인정하자. '그 뭐시기'가 끝내 떠오르지 않는 이유는 흐린 기억력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 말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라는 것을.
어휘는 요리의 재료와 같습니다. 재료가 풍성해야 다채로운 맛을 낼 수 있듯 구사할 수 있는 단어가 많아야 표현의 폭도 넓어집니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물과 돌만으로 만든 진짜 '돌멩이 수프'를 먹고 싶지 않다면 당근, 감자, 양파, 소뼈, 보리 등 갖가지 재료를 넣어야 한다. 우리의 말이 요리라면 재료는 단연 어휘다. 매일 같은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매일 먹으라고 하면 금세 흥미를 잃고 말 것이다.
말도 똑같다. 늘 비슷한 단어만 반복하다 보면 말이 점점 단순해지고, 생각도 그를 따라간다. 이에 대치동에서 고등 국어를 가르치고, 누적 조회수 총 4억 뷰를 자랑하는 차민진 선생님은 제안한다. '적당하고 모호한 단어' 댜신 '근사하고 정확하게 전달되는 단어'를 사용하자고.
'빡침'에 격 더하기
내 안의 '발작 버튼'이 눌릴 때
'피곤하다'는 말도 부족할 때
<단어의 쓸모>는 총 5단계로 구성돼 있다. 각 단계마다 소제목만 봐도 첫 눈에 반하는 것 같은 강력한 끌림을 느낄 수 있다. '빡침'에 격을 더한다니. 입만 살아있는 나쁜 남자에게 빠지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이 책의 29쪽을 가장 먼저 펼쳤다. 그리고 마주한 그 인용구.
"아, 개빡치네!"
평소 나는 '짜증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을 말할 때의 소리와 글자의 모양 때문이다. 짜증난다고 말하면 더 짜증나고, 듣기만 해도 짜증난다. 글씨를 보기만 해도 정말 짜증난다. 또 짜증난다는 말에는 그와 어울리는 몸짓과 표정이 있는데 곱지 않다. 같은 이유로 '빡친다'는 말도 내 사전에는 없다.
짜증나, 빡치네, 최근엔 또 뭐더라, 야르? 뭐만 하면 야르야르야르.
아니 짜증나서 짜증난다고 하고, 빡치니까 빡친다는데 뭐가 문제야? 라고 할 수 있다. 이에 저자는 어른의 분노에는 그 이유와 결이 있다고 말한다. 사탕을 뺏긴 아이처럼 1차원적인 비속어 사용을 멀리하자. 대신 <단어의 쓸모>는 세련된 표현으로 품격을 갖추는 데 좋은 우리말 세 가지를 소개한다.
억울한 마음을 삭이지 못해 속이 답답할 때는 '울화가 치민다'
분한 걸 넘어서 통증까지 느껴질 때는 '분통이 터진다'
비위에 거슬리거나 마음이 언짢아서 성이 날 때는 '골나다'.
어떤가? 분명 '빡치다'보다 격이 있지만 주체할 수 없는 그 화도 충분히 표현된다.
감정에 이름표를 붙여 객관화하는일은 현재의 고통을 비극이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동시에 다시 일어설 에너지를 비축하게 되는 성숙한 방어 기제로 작용하죠.
단순히 '졸려', '피곤해'라고 뭉뚱그리기엔 상황이 좋지 않다. 오늘은 기필코 일찍 자야지 했는데 또 이러고 있다. 정말 '휘진다'.
'휘지다'는 기운이 쏙 빠져서 팔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힘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내 몸의 심지가 툭 끊어진 듯한, 그래서 내 몸에 아무런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기분. 휘지다.
조금 더 삶의 무게가 묻어나는 표현으로는 '고단하다'가 있다. 고전적으로 간다면 '녹초가 되다'는 어떤가. 여기서 '녹초'는 '푸른 풀'이 아니라 '불을 켜서 녹아내린 초'를 뜻한다. 꼿꼿하게 서서 빛을 내던 초가 제 몸을 하얗게 불태우고 키가 작아진 모습. 지금 내 상태와 딱 맞는 말이다.
누군가 이름을 불러주면 꽃이 된다는 어느 시 구절처럼 우리의 힘든 상태를 적절한 단어로 명명해주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크게 완화된다고 한다. 나 오늘 왜 이러지? 하며 혼란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보다 "오늘 따라 유독 휘지네." 혹은 "참 고단한 하루였다." 하며 정확한 진단을 내려봐야겠다. 그 사이에 휴식이 함께하기를 바라면서.
정리하자면 <단어의 쓸모>는 실용서다. 배웠으니 써 먹어야 진짜 내 것이 된다. 당연히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한 번, 두 번 사용하다 보면 어느새 나의 일상어가 되어 있을 것이다.
'지친 동료를 단번에 일으키는 한 마디'를 연습하며 마무리 해야겠다.
고무적이다.
일상 : 이번 소개팅에서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는 건 연애 전선에 아주 고무적인 신호야.
직장 : 회사 측이 노조의 발언을 고무적으로 받아들여 협상이 원활해질 것 같습니다.
미디어 : 신약 개발의 초기 임상 결과가 매우 고무적으로 나타나면서 관련 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나의 예문 : 혼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하는 내가 미자모에서 종알종알 떠들다 보니 어느새 미자모통이 되었다. 이렇게 고무적일 수가!

* 미자모 카페를 통해 도서를 제공 받아 리뷰를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