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좌표 -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각의 주인으로 사는 법
홍세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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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똘레랑스'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건 홍세화의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나서다. 당시 난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는데, 10년도 넘게 훌쩍 지나고서야 그의 두번째 책을 만났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일어난 어떠한 일로 망명자가 되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빠리에서 택시운전사로 사는 일 그리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내부의 시선이 아닌 외부의 시선으로 볼 수 있도록 한 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홍세화'라는 이름과 책 제목을 기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02년 영구 귀국한 이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가 펴낸 책에 선뜻 손이 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생각의 좌표>라는 눈에 띄는 제목과 스르르 훑어본 본문을 읽으니 사지 않을 수 없었다. 2010년 1월의 이야기다.

 

눈사람이 녹아 형체를 잃고 푸른 잎이 퇴색하는 계절이 되어서야 책을 다시 들었다. 몇 장을 읽다보면 자꾸 울컥하는 마음에 책을 내려놓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만큼 느리게 읽어야 하는 책이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하는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어떠한가?', '그의 질문에 나는 당당할 수 있는가?', '그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생각이 생각으로 이어져 꼬리를 문다. 그래서 다시 책을 내려놓고 책장에 꽂아둔다. 몇 달만에 책을 들어도 여러 번의 망설임이 필요하다. 내게 <생각의 좌표>는 그처럼 괴로운 책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건 불편한 일이다. 길에서 노숙자와 거지를 보는 것 또한 불편하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고 보고 싶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에서 '내 생각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되묻는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그 외의 다른 의견은 불온한 생각이라고 밀어붙이는 정부와 대중매체에 동조하는 내 생각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질문한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 노동자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그런 생각은 대체 어디에서 왔나요?'라고 말이다.

 

내 생각의 주인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불편하고 귀찮은 일이지만 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보다 돈을 중요하게 여기는 세계에서 사람을 보기 위한 방편이다. 용산 참사에서 쌍용차 파업에서 천안함 사태에서 우린 무엇을 보고 듣고 느꼈는가. 그리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그 모든 것이 진실이고, 그에 대한 생각은 과연 내 생각이 맞는건가? 약자인 내가 약자의 편보다는 강자의 논리에 휩쓸려 떠다니는 건 아닌가 하고 돌아봐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내가 지금도 기억하는 훈화가 있다. 월요일 아침이면 지리하게 이어지는 교장의 훈화는 개그 소재로 종종 이용될만큼 그 말이 그 말처럼 특징이 없고 지루하기로 악명이 높다. 다른 초등학교에 무슨 일 때문인지 방문을 했는데 당시 교장이 아닌 교감이 교단에 섰다. 그러면서 했던 말이 '왜 공부를 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아이들은 여기저기에서 대답을 했는데 대부분이 '잘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이 이어졌다. '왜 잘 살고 싶은가요?'라고 말이다. 아이들이 대답이 없자 교감이 했던 말은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한다'면서 '그래서 잘 살기를 바라는 것 또한 행복해지고 싶어하는 마음이다'라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누구나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 이런 노력에 우선 순위는 돈보다는 '자아실현'에 두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돈을 쫓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같은 맥락에서 부의 재분배와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주의자의 과격한 발언이 아닌 내가 가진 것을 뺏기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막으로 작용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지난 지방 선거에서 교육감과 교육위원 선거가 처음 치뤄졌다. 당시 가장 많이 나왔던 말이 '무상급식'이었다. 학교에서 부모의 돈과 상관없이 굶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기에 수없이 회자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무언가를 제대로 알기 전에 외면하거나 다 아는 냥 비판해왔다. 기존의 체제를 비판하는 의견은 불온한 생각이라 매도해왔다. 과연 그것이 불온한 생각인가? 사람을 사람답게 여기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생각은 아닐런지 시선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 젊은 그대에게 저자가 말한다. 자신을 돌아보라고, 그리고 '나는 내 생각의 주인인가?' 고민하라고.

 

 

 

인간은 편함을 추구하는 동물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이나 특히 정의와 진실의 추구는 필연적으로 불편함을 요구한다. - 144p.

 

 

서민 대중의 무지와 무관심은 중립이 아니다. 오늘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유행처럼 자리 잡고 있다. 정치가 혐오스러우니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한다. 이런 태도에는 '백로야, 까마귀한테 가까이 가지 마라'는 식으로, 혐오스러움에 물들지도 않겠다는 뜻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정치 혐오는 실상 혐오스런 정치를 계속 혐오스런 상태로 있게 하는 강력한 정치적 힘이다. 젊은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혐오스러운 정치를 바꾸지 않는다면 누가 바꿀까.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남이 대신 만들어주지 않는다. 젊은이들의 정치 혐오나 탈정치는 간단명료한 명제조차 인식하지 못할 만큼 주체적 시민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 182p.

 

 

그들에게서 인간성을 느끼기 어렵다고 말할 젊은이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인간을 사랑하는 한, 인간의 삶을 사랑하는 한, 인간다움과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 2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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쩍 벌어지는 지진이야기 지식세포 시리즈 3
꿈비행 지음 / 반디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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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났지만 아이티에서 일어났던 지진은 말 그대로 '비극'이었다. 수십만명의 집이 사라졌고, 수십만명이 목숨을 잃었던 끔찍한 비극이었다. 이웃나라인 일본에서도 지진이 자주 일어나고, 작년에는 다른 이웃인 중국에서 큰 규모의 지진이 있었다. 이처럼 자주 접하는 지진 소식이지만 정작 지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이런 궁금증을 알기 쉽게 풀어놓은 책이 있다. 바로 지식 세포 시리즈 3편인 <쩍 벌어지는 지진이야기>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지식 세포 시리즈'는 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고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동물신문사의 남달라 기자(생쥐임!)는 지진을 주제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각 장은 지진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 지진에 무너진 문명과 이념, 지진으로 발전한 과학과 기술, 지진과 얽힌 우리 역사로 이뤄져있다. 그 중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지진과 관련된 신화와 전설과 지진과 얽힌 우리 역사 였다. 성경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에서 지진의 가능성을 유추하는 대목이나 조선의 건국과 연관된 지진 이야기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이라 더욱 흥미로웠다. 각 이야기의 끝에는 지진 관련 단체의 홈페이지를 소개하거나 지진 박물관을 안내하고 있어 지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은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은 7세 아이가 있어 이벤트 신청으로 받은 책이다. 한글을 다 깨우쳤다고는 하지만 아이 연령에 비해 글자 수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다. 하지만 그림과 사진이 적재적소에 배치해 있어 아이가 내용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100% 다 이해하기에는 아직 아이의 수준이 도달하지 못했다) 초등학생이 읽기에 적합한 책으로 보인다. 사회 과목을 배우는 학년이라면 신화, 문명, 우리 역사 이야기가 더욱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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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 걷기여행 -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
녹색연합 지음 / 터치아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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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영향을 미치지 않고 지속적인 생활이 가능할 지에 대한 논의가 각계에서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논의의 중심에는 '녹색', '환경'이 있다. 이는 대중에도 영향을 미쳐 제주 올레길을 비롯해 지리산 둘레길 등 '걷기를 위한 길'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걷기를 위한 길에는 한계점이 있다. 도심을 벗어나야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집중되어 있는 서울, 경기에는 이런 길이 드물 것이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존재를 느끼지 못했지만 자연과 더불어 걷을 수 있는 길이 서울에 존재해왔다. 굴곡진 한국 근현대를 감내하며 말없이 곁에 있었던 '서울성곽길'이 바로 그것이다.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한양으로 수도를 옮기면서 생긴 서울은 말 그대로 계획 도시이다. 4개의 큰 대문과 4개의 작은 대문을 잇는 성곽을 쌓았는데, 이것이 '서울성곽'이다. 4개의 큰 대문이라 하면 남대문, 동대문, 북대문, 서대문을 말하며 4개의 작은 대문은 남소문, 동소문, 북소문, 서소문을 칭한다. 그리고 성 안을 가로 질러 흐르는 물이 흐를 수 있도록 만든 물길과 원활한 소통을 위해 만들었던 암문들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서울성곽은 조선 600년동안 그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일제침략과 한국전쟁을 치르며 무너졌고, 가장 많이 파괴했던 시기는 바로 발전과 팽창이 화두인 현대에 이르러서다. 길을 내느라 문을 파괴하고 집을 짓느라 성곽을 무너뜨리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야 그 존재를 깨닫고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온전한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없을테지만 서울성곽이 품고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 것이다.

 

녹색연합에서 펴낸 <서울성곽 걷기여행>은 4코스로 나누어 아주 자세히 서울성곽길을 안내하는 책이다. 그림으로 그린 지도에서는 따듯함이 묻어나고 펴낸이의 상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내일 당장 성곽길을 따라 걸을 수 있을 정도다. 또한 성곽길 주변에 꼭 가볼 만한 곳을 따로 분류해 세심한 설명을 첨부했다. 이는 우리가 무심히 지나쳤던 이야기를 꼭 알았으면 하는 바람과도 같다. 특히 성곽길에는 일제침략과 근현대의 어두운 이야기가 가득해 외면하고픈 심정이 든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비통한 심정으로 서 있었을 앞선 이들을 떠올리며 그들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한 손에는 이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성곽길을 걸어보고 싶다. 그리고 책에 쓰여진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며 아이의 아이에게도 이야기가 전해지는 그런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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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한 다스 지식여행자 1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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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한 다스'라 하면 12개, 영어로는 dozen 이라는 게 일반 상식이다. 하지만 마녀에게 '한 다스'는 12가 아닌 13이란다. 13이라는 숫자를 보니 얼마 전 '13일의 금요일'이 어쩌구 저쩌구 하던 블로그씨의 질문이 생각난다. 기독교 문화에서 불길한 숫자로 여기는 숫자 13을 '한 다스'라 칭하며 일종의 완전수로 여기는 마녀는 기독교 문화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배척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면 책 제목인 '마녀의 한 다스'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요네하라 마리는 '대개의 사람은 자기와 자기 나라 혹은 자기 민족 중심으로 세계가 돌아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말하며 조금 다른 시선에서 자기와 자기 나라 혹은 자기 민족을 바라보기를 권한다. 내게 한 다스는 12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한 다스가 13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시선을 보여준다. 베를린의 조선인, 아프리카의 일본인, 시베리아의 프랑스인, 모스크바의 베트남인, 마닐라의 스위스인이 있는 낯설고 이질적인 모습을 통해서 말이다.

 

 

이단은 완결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에 바람구멍을 내어준다. 늘 보아온 풍경을 달리 보게 하고, 신선한 측면을 보게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의 혹은 상식으로 여겨져온 것을 뒤집는 위협도 숨기고 있다. - 22p

 

 

나와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이해한다는 개념을 머리로 이해한다는 의미와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머리에서는 세계는 하나고 인간은 모두 평등하며 같은 존재라는 걸 알지만, 오늘도 무심코 지나친 노숙자, 거지를 대할 때면 생각만으로 행동할 수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요네하라 마리는 동시통역사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을 한껏 활용한다. 세계 곳곳을 다니며 보았던 풍경과 사람들을 책 속에 불러와 미처 깨닫지 못한 개념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그녀의 전매특허인 유머 또한 빠지지 않는다. 표어로 그치는 일면이 아니라 생활 속에 담겨있는 세계와 세계인을 알고 싶다면 요네하라 마리, 그녀의 책을 꼭 한 번 읽어보길 바란다.

 

 

가까운 자들을 멀리 하고 가변적인 것을 고정적인 것으로 만들려는 픽션에 의한 관념 조작, 그것도 국가적 규모의 관념 조작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 23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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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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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글)에 관한 책이다. 각종 서평집이나 비평집을 비롯해 책 관련 인문서는 소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나 또한 소위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라 이런 종류의 책이 궁금했다. 책에 관한 책이긴 한데 서평집이나 비평집이 아닌 소설집이라는 게 독특했다. 책을 소재로 10개의 단편이 모인 이 책은 왜 이런 소설을 썼는가에 대한 배경설명이 이어진다. 그래서 친절하면서도 독특한 책이 만들어졌다.

 

작가 소개를 읽으면서도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시간강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다녔단다. 그러다가 출판사에서도 일하고 결국 그만둔 뒤, 도서관에서 도서관련 강좌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최종 목표는 '글쓰기'다. 그의 최종 목표에 가장 근접한 것이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소재로 놀랍고 기발하며 때론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참혹하기까지 한 10가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각 단편의 소재는 상상의 도서관, 소설, 분서, 제본과 인피 장정, 책 대여점, 말하는 책의 역사, 장서가와 도서관리법, 중세 유럽의 도서문화와 필경, 책 도둑, 책의 다양한 역사 등이다. 모두 책에 관한 이야기지만 조금은 모습을 달리해 다양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각 소설의 시대 배경도 다양하고 문체도 다르게 구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10개의 단편이 실렸지만 분량 자체는 얇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읽는 데 소요한 시간보다 읽고 그 내용을 소화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책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애서가', '장서가'의 존재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나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이 구겨질까 노심초사하는 애서가도 아니오, 그렇다고 책을 모으는 데 목적이 있는 장서가도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읽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 중 하나다. 이는 책 외에도 읽을 수 있는거라면 길에 뿌려진 전단지라도 주워서 읽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읽기 중 책을 읽는 게 가장 즐겁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애서가나 장서가는 '읽는다'는 행위보다 '책'자체에만 의미를 둔다. 이는 책이 읽고 기록하는 행위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보여주고 수집하는 행위를 위한 도구로 여긴다는 점에서 불편한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북카페 활동을 하면서 나 또한 책수집이 목적이 되버린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실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 흔히 '책에서 봤어'라는 말을 한다. 이는 책에 쓰인 기록이 '절대 오류가 아니다'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종종 책에선 오타나 탈자가 발견되고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책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소설집을 읽고 든 생각은 '책에 쓰인 모든 기록을 믿지 말자'이다. 황당한 결론이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책을 만들거나 쓰는 걸 업으로 삼지 않는 한 일반인에게 독서는 그냥 선택할 수 있는 취미 활동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거나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독서록을 작성하는 일이 폭력으로 느껴진다. 무언가를 알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책을 찾아 독서를 하는 것이지 누군가 강제적으로 읽으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작용보다 반작용이 더 크게 일어날 소지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작용, 반작용은 물리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아닌 셈이다.

 

근래에 책, 독서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반인이 늘어나고 있다. 아니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풍조가 너무 넓게 퍼져있다. 이렇게 책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책에 스스로를 옭아맨 그물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 굴레에서 벗어나기, <순례자의 책>을 읽고 내가 한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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