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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역사가 - 주경철의 역사 산책
주경철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일요일 오후의 망중한, 누려본 지 오래다. 그런 시간이 있었던가 까마득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가만히 앉아 생각이라는 걸 할 시간은 '쪼개야만' 낼 수 있다. 한 호흡으로 쓰는 것처럼 보이는 책 서평도 사실은 2~3일에 걸쳐 쪼개서 쓰는 토막글이다. 서평을 올리고서도 틈틈이 수정을 하는 것 역시 나만 아는 일이다. 일요일에는 잠시 늘어져 있고 싶다. 아내이자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시간이 일요일 오후다.
제목에 '일요일'이 들어가는 <일요일의 역사가>. 역사가는 일요일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일요일에는 역사가도 고색창연한 사료나 메마른 논문 대신 풍요로운 문학과 예술의 세계를 기웃거려보고 싶다(6p)'고 밝힌다. '역사와 문학은 본래 같은 부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을 천착하여 인간과 사회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동시에 그 내밀한 속 사정을 읽으려 하는 점에서 분명 서로 상통한다. 히스토리history 역시 스토리story의 일종인 것이다.(6~7p)' 저자인 주경철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업이나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닌 역사와 문학의 콜라보로 가져온 열한 편의 이야기. 이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냈다. 커다란 흐름이 아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고 소소한 이야기. 이어 붙이니 생각보다 근사한 역사history가 되었다. 바로 당신과 나, 우리의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카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과 인간이 어울려 살던 시절, 디오니소스의 분노를 감내해야 했던 인간들의 이야기가 <바카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리스 문명에서 젠더의 모순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한 작가다.(29p) 그는 선배 작가에 비해 구조가 완전치 못하고 플롯이 너무 복잡하며 초점이 오락가락한다는 평가(34p)를 받는다. 이전 시기에는 주목받지 못한 그의 이야기가 현대에 와서는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고, 우리가 쌓아올린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본질에 대한 질문. 일요일에 하는 생각치고는 꽤 거창하다.(웃음)
저자는 이븐 바투타와 함께 '이슬람 초문명권'을 여행하고, 이반 뇌제로 러시아를 들여다본다. 아스테카 제의와 기독교의 만남을 통해 문명의 변화를, 근대 초 이탈리아의 산골 마을에서 엉뚱한 우주론을 설파하는 기인의 이야기를, 18세기 파리의 인쇄 골목에서 밤새 고양이 소리로 사장 내외를 괴롭히는 악동을 만나볼 수 있다. 가해자와 희생자로 나뉘는 이분법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보는 홀로코스트를, 카사노바가 꿈꾸던 계몽주의 시대를,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낸다.
그저 사라진 줄 알았던 아메리카 주민의 여러 문명은 유럽 문명과 섞여 새로운 멕시코를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신 희생 등의 인간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표현한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국내에서도 성벽 아래에 인간의 뼈가 발견되는 등 인신 공양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단순히 '야만'이라 치부하기에는 당시의 문화와 문명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끔찍한 건 끔찍한 거다.' 고양이를 죽이는 처형식을 통해 상징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간 본래의 잔인함과 추악함을 보여주는 바타비아호 좌초 사건. 인간은 선한 존재라는 허상을 마구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는 아니지만, <일요일의 역사가>를 통해 그동안 역사 책에서 보이지 않던 여성, 희생, 소수의 모습을 보았다. 때론 소소한 이야기가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일요일에 그저 누워서 한 편씩 읽으면 좋을 이야기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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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무스와 아가베는 서로를 포옹하며 위로한다. 자신을 위해 슬퍼하고, 서로를 위해 슬퍼하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슬퍼한다.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연민compassion을 느낀다. 그것은 함께com 고통passion을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고통을 통해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혜를 얻는다. 그럼으로써 돌연 인간은 고귀함을 획득한다. 이것은 동물이나 신은 가질 수 없는 덕성이다. - 31p.
이런 작품들을 통해 에우리피데스는 권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부딪히는 그 모든 권력이 과연 정당한가를 묻다 보면 결국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문명의 기반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밑에서 압박받는 주체들인 여성, 외국인, 노예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한편, 위에서 우리를 짓누르는 신에게도 도전한 인상을 준다. 분명 이 세계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며, 흔히 악몽으로 변모한다. 신들도 변덕스럽고 잔인하지 않은가. 종교는 독재 정치만큼이나 잔혹하고 억압적일 수 있다.
『바카이』는 그리스 세계의 위대성을 말하지 않는다. 이 복잡한 극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의 극에서는 신앙과 회의, 이성과 비합리성, 그리스와 외국, 남성과 여성, 문명과 야만 같은 대립적인 힘들이 명확하게 양분되지 않다가 어느새 합쳐져 카오스로 회귀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누구도 묻지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우리 내면의 어둠, 모순에 가득 찬 문명의 하층, 미분리未分離의 혼돈과 불확실성이 그득한 세계로 우리르 이끌고 가서 공포에 찬 체험을 하도록 만든다. - 35p.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선량하게 살아갔다면 이 세상은 벌써 지상천국이 되었을 테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생각을 바꿔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의 틀을 확 좁혀서 정밀하게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이의 수틀을 보듯 그렇게 앵글을 좁히고 보면 거기에 또 다른 종류의 미세한 우주가 나타난다. 이제 하나의 작은 사건, 괴팍한 한 인간, 조그마한 어느 마을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떠오를 것이다. - 141p.
근대 유럽에서 여성은 한마디로 '무질서한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은 믿음도, 법도, 두려움도, 참을성도 없는 '불완전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도 여자 때문이 아니었던가. - 238p.(저자의 의견이 아닌 근대 유럽에서 여성을 이렇게 인식했다는 글입니다. 오해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