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아무튼, 잡지 - 좀 더 제대로 살고 싶습니다 아무튼 시리즈 6
황효진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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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잡지(황효진, )


나는 '그게 꼭 있어야 돼?'라는 말이 인생에서 많은 부분을 망친다고 생각한다. 그게 없어도 살 수 있다. 그러나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무언가는 아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사는 데 지장이 없지만, 다만 있으면 더 좋은 것들, 더 알면 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그런데 왜 기본만 챙기면서 살아가야 할까. '가성비'의 세계에서 벗어나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 무언가를 보고, 사고, 해보며, 우리는 조금 더 제대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 이 많은 잡지는 누가 다 보나


알라딘 서점을 방랑하다 발견했다. '아무튼 시리즈'의 <아무튼, 잡지>. 낯선 작가라 작가 이력을 확인한다. 온라인 매거진 <텐아시아>와 <ize>에서 기자로 일하다 프리랜서가 된 황효진 기자. 둘 다 즐겨읽던 매체의 기자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시점이 과거형...).

매주 주간지를 사던 시절이 있었다. 3시간의 출퇴근 시간이 버거워 택한 게 영화 주간지다. 예나 지금이나 영화 보는 걸 즐기지도 않으면서, 글로 수백 편의 영화를 읽었다. 큰 아이 보라고 어린이 잡지를 5년간 구독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잡지보다 책을 즐겨 읽지만 잡지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도서관에 가면 어떤 잡지가 있는지 보고 읽는 사람이니까.

황효진 기자는 순정만화 잡지를 시작으로 하이틴 잡지, 일본 잡지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내보인다. 국내는 잡지 구독 인구가 절대적으로 적은 터라 잡지로 돈을 번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잡지가 가진 미덕도 변한 듯하다. 이전에는 잡지를 통해 트렌디하고 최신의 정보를 얻었다면, 이제 잡지는 '느림'에 속해있다. 잡지는 일주일이나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잡지의 속성도 변해버린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잡지를 계속 읽을 수 있기를 <아무튼, 잡지>를 보며 간절히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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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서 문득 대단한 교훈을 발견하고 단박에 인생이 바뀔 리는(적어도 내 경우라면) 없다고 생각한다. 노트 한 구석에 몰래 적어두고 싶을 만큼, 떠오를 때마다 펼쳐보며 감동할 만큼 마음을 때리는 글귀 역시 잡지보다는 책에서 찾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잡지의 훌륭한 점이다. 보는 이를 가르치려 하거나 거창한 이야기를 하려고 들지 않는다. 그야말로 실용적인 태도로 슬쩍 말을 건넬 뿐이다. '이거 어때?' - 취미는 잡지


나는 무언가로 인해 인간이 변한다거나 자란다거나 하는 말을 크게 믿지 않는다. 그런다고 한들 거기에서 좀처럼 감동받지도 않는 사람이다. 그런 나로서도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만화 잡지가 있어서, 순정만화가 있어서 고마웠다고. 여성들의 시선과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이야기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나오고, 훨씬 더 많이 조명 받기를 원한다고. 내가 그랬듯, 다른 소녀들도 그런 이야기를 넘치게 보고 읽으며 자랄 수 있다면 좋겠다고.  - <나나>와 <윙크>와 <언플러그드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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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릴러 - 스릴러는 풍토병과 닮았다 아무튼 시리즈 10
이다혜 지음 / 코난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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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스릴러(이다혜, ★★★★)

나는 겁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겁이 많은 게 아니라 책을 고를 때 겁이 많은 편이다. 이런 내용은 싫어, 저런 내용은 불쾌해 하며 따지고 고른다. 결국 말랑하고 달콤한 이야기인 로맨스 소설만 골라 읽는 이유가 그렇다. 현실에 없을 이야기니까, 잠시 소설 속에서 맛이라도 보자는 심정이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는 동안 몇 번의 꿈을 꿨다. 소설 내용이 꿈속에 나와 마음이 힘들었다. 나는 꿈에서 내내 울고 있었으니까. 다음에 이런 내용의 소설은 읽지 못하리라. 차라리 픽션보다 논픽션을 택하는 이유다. 소설은 거짓이라는 걸 알면서 감정을 잠식한다. 너무 빠져들 경우에 일상이 심란하다는 걸 매번 반복하니 말이다.

<씨네 21>기자이자 작가인 이다혜의 <아무튼, 스릴러>. 다른 책에서 보았던 이다혜의 취향을 녹여낸 에세이다. 우리를 둘러싼 스릴러, 스릴러의 장르 구분과 결국 소설 뒤에 사람이 있음을, 안전한 세상에서 읽는 스릴러 소설에 대해 말한다.

스릴러는 블로그 이웃의 영향으로 제목은 익숙하다. 하지만 나는 읽지 않는 장르다. 국민학교 때 아무도 없는 서울 큰집 사촌 언니 책장에서 문고판 셜록 홈스 시리즈를 읽은 게 유일한 기억이다. 몇 권의 시드니 셀던과 존 그리샴을 중고등학교 때 읽었다. 이후로 영원히 안녕이다. 글로 토막 난 시체와 피 냄새를 읽고 싶지 않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 역시 보고 싶지 않다. 이건 순전히 내 취향이다. 세상에 공전의 히트를 친 책은 대부분 스릴러로 구별되는 글이다. 나는 평생 베스트셀러와는 친해지지 않을 운명인 듯.

스릴러 소설은 읽지 않지만 스릴러가 궁금하다면, 이다혜 작가의 글이니까 읽어보시길 바란다. 유쾌하고 직설적인 글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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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란 무엇인가는 스포츠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여기에는 특정한 룰이 있고, 그 룰에 맞춰 경기가 벌어진다. 장르에서는 창작자와 독자가 게임에 참전한다. 그런데 장르와 스포츠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장르에서는 변칙이 얼마든 허용된다는 사실이다. - 7p.


내게 판타지라는 장르의 벽은 늘 그 '끓는점'이 너무 높다는 데 있었다. 판타지라는 장르의 특성상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숙지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지금, 이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 너머'를 무대로 하고 있으니 일단 거대한 개념에서부터 꼼꼼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설정을 먼저 깔아야 한다. (중략)
책장을 열면 바로 끓기 시작하는 스릴러나(첫 장 혹은 첫 문장에서 이미 긴장이 시작된다), 남자 주인공이 나오면 끓기 시작하는 로맨스(1500페이지를 넘기는 경우가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30페이지 이내에 남자 주인공이 나온다), 첫 '밀실살인'이 벌어지면 냅다 부글거리는 본격 미스터리(현장에 탐정이 함께 있다면 금상첨화)에 비해 판타지의 진입 장벽은 너무 높아만 보이는 것이다. - 36~37p.


범죄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람이 죽기 때문이 아니라 크건 작건 어떤 사건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즐기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너무 길고 구차한데다 상대가 별 관심도 없는 경우가 많아 생략하기 일쑤다. 살인사건보다 살인을 저지른 인간의 심리가 궁금하잖아요, 하는 설명은 어디까지나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하고나 할 수 있는 얘기다. - 104p.


그래서 범죄물을 읽는다. 이해할 수 없는 악의의 정체가 궁금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범죄가 이루어지고 또 그것을 해결하는 천재적인 두뇌플레이를 보고 싶어서, 그 안에서는 언제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서사 안에서 안전한 쾌락을 느끼고 싶어서. 하지만 '내가 파는 장르'가 무엇을 소비하는지 알고는 있어야 한다.
부디 바라건대, 이 글을 쓰는 나나 읽는 여러분의 삶은 평온하기를. 그리고 이 세상도, 약간은 평온해지기를. - 11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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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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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삶과 죽음은 종이 한 장 차이라 말한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온기를 품었던 몸이 더 이상 따듯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어떠한 소리도 들려오지 않을 때야 비로소 '빈자리'를 느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어부인 시아버지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체육대회로 사방이 온통 소리가 가득했던 그 공간에서 친구의 자살 소식을 들었던 그때의 그 기분이 오소소 올라왔다. 평소에 존재조차 희미한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낀 그 순간의 기분. '웃는 남자'd는 여자친구인 dd의 사고 소식을 듣는다. 버스 안에서 하필이면 홀로 죽은 dd. 그렇게 죽음은 항상 곁에 있다. 우리 모두 하찮다 여기고 돌아보지 않는 찰나에.

문학상 수상작을 처음 읽었다. 평소 ''문학이나 '일반'문학이라 불리는 글을 자주 보는 편이 아니다. 필요에 의해 읽는 자료와 알고 싶어 보는 정보성 글, 아니면 재미로 책을 본다. <웃는 남자>는 평소 보는 책에 비해 가독성이 떨어진다. 특히 수상작인 '웃는 남자'는 뭔가 놓친 기분이 들어 읽는 내내 찜찜했다. 이 안에서 뭔가를 발견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스쳤다. d는 왜 이런 행동을 하지, 세운 상가는 왜 나오는 거야, LP는 왜?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둥둥 떠다녔다. 범상치 않은 죽음에 대한 표현, 누구는 어떻게 죽었고 어떻게 사라져갔는지 지루한 이야기가 이어지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글 중반부에 등장하는 세월호가 나오기 전까지는.

dd의 책을 돌려주려 친구를 만난 d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던 중에 세월호 1주기 추모 행렬을 만난다앞에서 d의 모호하고 희미한 의식 속에 자리 잡은 dd의 죽음으로 깨달은 부재의 의미.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이제야 들리기 시작했다.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서, 항상 곁에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결국 '하찮은' 것으로 치부되는 그런 나와 너,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그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리, 냄새, 남겨진 사물과 사람. 웃지 않는 남자 d, 마지막에 가서야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는 유쾌하게 시작한다. 작가 이기호는 중고 나라에서 자신의 책이 형편없는 대접을 받으며 팔린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집요함은 자신의 책을 직거래로 구매하게 만든다. 비록 전라도 광주와 경기도 고양이라는 물리적인 거리가 존재하지만, 그게 뭐 대수랴. 무려 작가 사인본을 '서비스'로 줄 수도 있다는 판매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모욕을 느껴 시작한 일이 생각지 못한 결과를 이끌었을 때, 누구나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가끔 누군가를 향한 적의인지 알 수 없을 때 이기호의 '최미진은 어디로'가 떠올릴 것 같다. 그리고 모욕과 목욕의 상관관계를 일깨워 준 이기호의 아내 덕분에 잊고 있던 친구 이름이 기억났다. 여고생인 우리는 '목욕'하지 않고 '목옥'을 했었더랬다. 친구 이름이 바로 '목옥'(웃음)

다른 느낌의 글을 한 권으로 만났다. 서로 다른 온도와 호흡을 지닌 글을 보며 오늘도 깨닫는다. 세상엔 읽어야 할 글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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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의 역사가 - 주경철의 역사 산책
주경철 지음 / 현대문학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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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후의 망중한, 누려본 지 오래다. 그런 시간이 있었던가 까마득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가만히 앉아 생각이라는 걸 할 시간은 '쪼개야만' 낼 수 있다. 한 호흡으로 쓰는 것처럼 보이는 책 서평도 사실은 2~3일에 걸쳐 쪼개서 쓰는 토막글이다. 서평을 올리고서도 틈틈이 수정을 하는 것 역시 나만 아는 일이다. 일요일에는 잠시 늘어져 있고 싶다. 아내이자 엄마가 아닌 나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고 싶은 시간이 일요일 오후다.

제목에 '일요일'이 들어가는 <일요일의 역사가>. 역사가는 일요일에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걸까?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일요일에는 역사가도 고색창연한 사료나 메마른 논문 대신 풍요로운 문학과 예술의 세계를 기웃거려보고 싶다(6p)'고 밝힌다. '역사와 문학은 본래 같은 부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흔적들을 천착하여 인간과 사회의 큰 흐름을 짚어보는 동시에 그 내밀한 속 사정을 읽으려 하는 점에서 분명 서로 상통한다. 히스토리history 역시 스토리story 일종인 것이다.(6~7p)' 저자인 주경철 교수는 현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수업이나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닌 역사와 문학의 콜라보로 가져온 열한 편의 이야기. 이를 묶어 한 권의 책으로 냈다. 커다란 흐름이 아닌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세밀하고 소소한 이야기이어 붙이니 생각보다 근사한 역사history가 되었다바로 당신과 나, 우리의 이야기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바카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신과 인간이 어울려 살던 시절, 디오니소스의 분노를 감내해야 했던 인간들의 이야기가 <바카이>다. 에우리피데스는 그리스 문명에서 젠더의 모순과 갈등이 있다는 것을 예리하게 지적한 작가다.(29p) 그는 선배 작가에 비해 구조가 완전치 못하고 플롯이 너무 복잡하며 초점이 오락가락한다는 평가(34p)를 받는다. 이전 시기에는 주목받지 못한 그의 이야기가 현대에 와서는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고, 우리가 쌓아올린 그것은 어디에서 왔는가에 대한 본질에 대한 질문. 일요일에 하는 생각치고는 꽤 거창하다.(웃음)

저자는 이븐 바투타와 함께 '이슬람 초문명권'을 여행하고, 이반 뇌제로 러시아를 들여다본다. 아스테카 제의와 기독교의 만남을 통해 문명의 변화를, 근대 초 이탈리아의 산골 마을에서 엉뚱한 우주론을 설파하는 기인의 이야기를, 18세기 파리의 인쇄 골목에서 밤새 고양이 소리로 사장 내외를 괴롭히는 악동을 만나볼 수 있다. 가해자와 희생자로 나뉘는 이분법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보는 홀로코스트를, 카사노바가 꿈꾸던 계몽주의 시대를,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보며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들춰낸다.

그저 사라진 줄 알았던 아메리카 주민의 여러 문명은 유럽 문명과 섞여 새로운 멕시코를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인신 희생 등의 인간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표현한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다. 국내에서도 성벽 아래에 인간의 뼈가 발견되는 등 인신 공양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단순히 '야만'이라 치부하기에는 당시의 문화와 문명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끔찍한 건 끔찍한 거다.' 고양이를 죽이는 처형식을 통해 상징의 의미를 되새기고, 인간 본래의 잔인함과 추악함을 보여주는 바타비아호 좌초 사건. 인간은 선한 존재라는 허상을 마구 무너뜨리는 이야기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는 아니지만, <일요일의 역사가>를 통해 그동안 역사 책에서 보이지 않던 여성, 희생, 소수의 모습을 보았다. 때론 소소한 이야기가 큰 감동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일요일에 그저 누워서 한 편씩 읽으면 좋을 이야기다. 과거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의 우리를 돌아보는 그런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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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무스와 아가베는 서로를 포옹하며 위로한다. 자신을 위해 슬퍼하고, 서로를 위해 슬퍼하고,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해 슬퍼한다. 그 순간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연민compassion을 느낀다. 그것은 함께com 고통passion을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미덕이다. 고통을 통해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지혜를 얻는다. 그럼으로써 돌연 인간은 고귀함을 획득한다. 이것은 동물이나 신은 가질 수 없는 덕성이다. - 31p.

이런 작품들을 통해 에우리피데스는 권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가 부딪히는 그 모든 권력이 과연 정당한가를 묻다 보면 결국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문명의 기반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밑에서 압박받는 주체들인 여성, 외국인, 노예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한편, 위에서 우리를 짓누르는 신에게도 도전한 인상을 준다. 분명 이 세계는 정의와는 거리가 멀며, 흔히 악몽으로 변모한다. 신들도 변덕스럽고 잔인하지 않은가. 종교는 독재 정치만큼이나 잔혹하고 억압적일 수 있다.
『바카이』는 그리스 세계의 위대성을 말하지 않는다. 이 복잡한 극은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그의 극에서는 신앙과 회의, 이성과 비합리성, 그리스와 외국, 남성과 여성, 문명과 야만 같은 대립적인 힘들이 명확하게 양분되지 않다가 어느새 합쳐져 카오스로 회귀한다. 에우리피데스는 누구도 묻지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우리 내면의 어둠, 모순에 가득 찬 문명의 하층, 미분리未分離의 혼돈과 불확실성이 그득한 세계로 우리르 이끌고 가서 공포에 찬 체험을 하도록 만든다.
- 35p.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선량하게 살아갔다면 이 세상은 벌써 지상천국이 되었을 테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차라리 생각을 바꿔 우리가 바라보는 역사의 틀을 확 좁혀서 정밀하게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누이의 수틀을 보듯 그렇게 앵글을 좁히고 보면 거기에 또 다른 종류의 미세한 우주가 나타난다. 이제 하나의 작은 사건, 괴팍한 한 인간, 조그마한 어느 마을처럼 복합적이고 다면적이고도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떠오를 것이다. - 141p.

근대 유럽에서 여성은 한마디로 '무질서한 존재'로 여겨졌다. 여성은 믿음도, 법도, 두려움도, 참을성도 없는 '불완전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인류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도 여자 때문이 아니었던가. - 238p.(저자의 의견이 아닌 근대 유럽에서 여성을 이렇게 인식했다는 글입니다. 오해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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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 소설의 첫 만남 2
성석제 지음, 교은 그림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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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 백선규.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지녔으나 펼쳐보지 못한 농부 아버지를 둔 인물. 재능이 있는 화가임에도 어린 시절 그 순간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하고 자신을 의심한다.

1 :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여성. 무언가를 이루려고 노력하거나 상에 연연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피아노를 비롯해 글쓰기, 미술 과외까지 받았다. 미술에 재능이 있으나 현재는 미술을 보고 즐기는 데 만족한다.

0과 1의 시점이 교차하며 어린 시절 한 공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다. 같은 사건에 대해 약간 다른 기억. 그리고 같은 숫자로 인해 벌어진 일. 서로 같은 비밀을 알고 있으나 0은 두려워서, 1은 개의치 않았기에 밝히지 않는다. 후에 0은 한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성장했고, 1은 미술을 즐기는 여성으로 만족 중이다. 선택에 따른 결과, 그리고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모습을 엿본 기분이 드는 글이다.

기존 소설집이나 작품집에 실린 청소년 소설 중에 부담 없이 읽을 분량과 내용을 골라 일러스트와 함께 꾸민 창비의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다. 창비 서평단으로 만난 성석제 작가의 <내가 그린 히말라야시다 그림>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선택의 연속이자 과정이다. 이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다면 삶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글을 보며 누구나 한 번은 던지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0과 1의 과거의 선택이, 현재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결국 선택보다는 삶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자세, 지금의 나를 만든 바탕이리라.

읽으면서 '히말라야시다'가 뭔지 궁금했는데, 조경용 정원수란다. 한 방송에서 김영하 작가가 말한 '작가는 이름을 아는 사람이다'에 공감하는 순간이다. 일러스트는 극 중 화가인 0의 화풍으로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우러진 느낌이다.






* 중학교 '문학'에 들어간 소설인지 제목으로 검색하면 깔끔하게 정리한 지식백과를 확인할 수 있다. 100페이지 남짓한 소설을 읽고 이렇게 정리하는 게 국내 국어 교육의 현실이구나 싶다. 나 역시 이런 식으로 국어와 문학을 습득한 터라 여전한 모습에 씁쓸한 기분이다.

 

 

* 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한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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