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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글)에 관한 책이다. 각종 서평집이나 비평집을 비롯해 책 관련 인문서는 소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나 또한 소위 책을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라 이런 종류의 책이 궁금했다. 책에 관한 책이긴 한데 서평집이나 비평집이 아닌 소설집이라는 게 독특했다. 책을 소재로 10개의 단편이 모인 이 책은 왜 이런 소설을 썼는가에 대한 배경설명이 이어진다. 그래서 친절하면서도 독특한 책이 만들어졌다.
작가 소개를 읽으면서도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원까지 졸업하고 시간강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도서관에 책을 읽으러 다녔단다. 그러다가 출판사에서도 일하고 결국 그만둔 뒤, 도서관에서 도서관련 강좌와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작가의 최종 목표는 '글쓰기'다. 그의 최종 목표에 가장 근접한 것이 이 책이 아닌가 싶다.
책을 소재로 놀랍고 기발하며 때론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참혹하기까지 한 10가지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각 단편의 소재는 상상의 도서관, 소설, 분서, 제본과 인피 장정, 책 대여점, 말하는 책의 역사, 장서가와 도서관리법, 중세 유럽의 도서문화와 필경, 책 도둑, 책의 다양한 역사 등이다. 모두 책에 관한 이야기지만 조금은 모습을 달리해 다양한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다. 각 소설의 시대 배경도 다양하고 문체도 다르게 구사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10개의 단편이 실렸지만 분량 자체는 얇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읽는 데 소요한 시간보다 읽고 그 내용을 소화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소화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책 전반에 자주 등장하는 '애서가', '장서가'의 존재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나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책이 구겨질까 노심초사하는 애서가도 아니오, 그렇다고 책을 모으는 데 목적이 있는 장서가도 아니다. 그냥 순수하게 읽는 행위를 즐기는 사람 중 하나다. 이는 책 외에도 읽을 수 있는거라면 길에 뿌려진 전단지라도 주워서 읽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읽기 중 책을 읽는 게 가장 즐겁기에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애서가나 장서가는 '읽는다'는 행위보다 '책'자체에만 의미를 둔다. 이는 책이 읽고 기록하는 행위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로지 보여주고 수집하는 행위를 위한 도구로 여긴다는 점에서 불편한 마음이었다. 한편으로는 북카페 활동을 하면서 나 또한 책수집이 목적이 되버린 게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도 들었다.
어떤 사실에 대한 근거를 제시할 때 흔히 '책에서 봤어'라는 말을 한다. 이는 책에 쓰인 기록이 '절대 오류가 아니다'라는 전제하에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종종 책에선 오타나 탈자가 발견되고 심각한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책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소설집을 읽고 든 생각은 '책에 쓰인 모든 기록을 믿지 말자'이다. 황당한 결론이긴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이다.
책을 만들거나 쓰는 걸 업으로 삼지 않는 한 일반인에게 독서는 그냥 선택할 수 있는 취미 활동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거나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독서록을 작성하는 일이 폭력으로 느껴진다. 무언가를 알고 싶을 때 자연스럽게 책을 찾아 독서를 하는 것이지 누군가 강제적으로 읽으라고 강요한다면 그건 작용보다 반작용이 더 크게 일어날 소지가 있다. 아인슈타인의 작용, 반작용은 물리에서만 쓰이는 용어가 아닌 셈이다.
근래에 책, 독서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일반인이 늘어나고 있다. 아니 사회 전반적으로 그런 풍조가 너무 넓게 퍼져있다. 이렇게 책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책에 스스로를 옭아맨 그물이라 생각한다.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 굴레에서 벗어나기, <순례자의 책>을 읽고 내가 한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