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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 때 영화 주간지를 모으던 시기가 있었다. 처음부터 모으려고 작정한 게 아니라 어쩌다보니 매주 샀고 그게 쌓이니 일 년치가 됐다. 한 주도 빠지지 않고 모으고 읽었다고 하니 영화 매니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일 년에 영화를 많이 봐야 10편이 넘지 않는 사람이다. 게다가 보는 영화도 헐리우드 영화만 보는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취향이다. 영화 주간지를 산 이유는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했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시사 주간지나 신문은 싫고 그렇다고 헐벗은 언니들이 나오는 잡지를 보자니 우습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영화 주간지다. 그렇게 열심히 사대던 영화 주간지를 삼천원에서 천원으로 가격이 내려가면서 사지 않게 됐다. 가격이 내렸으니 소비자 입장에서 좋아할 일이지만 천원짜리 잡지에는 천원짜리 내용만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다만 천원이라도 지불할 수가 없었다.
영화 주간지 이야기가 길었는데 열심히 한 이유가 있다. 지난 번에 읽은 <진심의 탐닉>과 이번에 읽은 <대책 없이 해피엔딩> 모두 [씨네21]이라는 영화 주간지에 실린 기사와 칼럼을 모은 책이라서 이야기가 길었다. (참고로 위에 말했던 영화 주간지는 [씨네21]이 아니다. [씨네21]은 아직도 삼천원이니까) <진심의 탐닉>의 김연수 작가 인터뷰에서 '나의 친구 그의 영화'라는 칼럼을 연재한다는 내용을 읽고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니 (정말) 운명처럼 (떡하니) 메인 화면에 <대책 없이 해피엔딩>이 걸려 있었다. '나의 친구 그의 영화'는 김연수와 김중혁이 서로 대꾸하며 영화와 일상을 이야기한 칼럼이다. 칼럼이라고 하니 각잡고 폼재고 하는 식이 아니라 실실거리며 말장난도 하고 가끔 정색하면서 심각하다가도 이내 어깨에서 힘을 빼는 40대 작가들의 '수다'라고 봐도 무방하겠다.
김연수라 하면 아시다시피 소설가다. 김중혁은 누구냐면 또 소설가다. 둘은 문학의 도시(?) 김천에서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 6학년 야구 기록지로 친구가 됐고 지금까지 친구로 지낸다고 한다. 1993년 등단한 김연수는 10여 편이 넘는 책을 낸 작가이고(워낙 많으니까), 이보다 늦은 2000년에 등단한 김중혁은 <펭귄뉴스>와 <악기들의 도서관>을 낸 작가다.(두 권이라 일부러 책제목을 다 썼다) 이런 인지도 때문인지 '김연수 지음'이라고 나오는 네이버 책 정보에 김중혁 작가는 분명 슬플거다. 그러니 혹시라도 이 글을 보는 네이버 관계자가 있다면, '김연수, 김중혁 지음'이라고 수정하길 바란다.
책 내용에 대해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2009년 1년 동안 김연수가 쓰면 김중혁이 대꾸하고 거기에 김연수가 발끈하면 김중혁이 타이르는 식으로 칼럼을 진행했다. 내 오랜 친구가 내게 "넌 나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어. 죽어줘야겠어"라고 말해도 전혀 무섭지 않듯이 김연수와 김중혁도 아웅다웅하면서도 전혀 살벌하지 않다는 게 특징이다. 김연수가 '이번 추석에는 (무려!) J군이 손수 운전하는 차의 뒷자석에서 회장님처럼 내려갔다며, J군에게 베푼 것이 얼마나 많던가'를 쓰면, 다음 편에 김중혁은 '연수군이 추석 귀성길에 내 차 뒷자리에 앉아 호사를 누린 것을 나에게 베풀었던 은혜를 돌려받은 것이라 하지만, 사실 나는 어릴 적 연수군의 빵집에서 노동착취를 당했다'라는 식으로 글을 연결한다. 불혹은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 일에 흔들리지 않을 나이'라는 공자의 말이 무색하게 한국에서 불혹에 접어든 두 김 작가(이렇게 퉁쳐서 불러보고 싶었다!)는 세상 일에 이리 저리 흔들린다. 중간에 무수히 많은 괄호는 하고 싶은 말이 얼마나 많았는 지를 대변한다. 심지어 (김중혁은)그래프도 그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휘리릭 책장을 넘겨도 좋다. 작가들이 쓴 글인지라 가슴에 콕 박히는 문장도 많다. 그런 문장이 있다면 연필로 꾹꾹 눌러 줄을 그어도 무방하다. 개인적으로 영화 <더 리더>와 케이트 윈슬렛에 대해 쓴 김연수의 글과 군대 의무병 시절을 떠올리며 영화 <닌자 어쌔신>을 풀어낸 김중혁의 글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영화 <아라한 장풍 대작전>의 명대사인 "방송실에 계세요?"에 또 한 번 쾌재를 불렀다.(이 대사는 <진심의 탐닉>에서 류승범과의 인터뷰에도 등장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영화를 많이 보고 좋아하는 사람처럼 느껴질 지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지극히 한국인스러운 영화 취향에 그나마도 영화 자체를 많이 보질 않는다. 이 책은 영화 이야기보다는 오랜 친구사이에 허물없이 오고가는 대화가 더 즐거운 책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즐거웠고, 읽은 후에도 즐거운 내용으로 기억되는 책이다. 책 제목대로 '대책없이 해피엔딩', 어쩜 이리 책 제목을 잘 지었을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