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행복한 그림자의 춤

- 당신에 깊이 빠져서-

 

 

                         카르마

 

당신은 늘 평면의 일상에 서 있습니다.

본질적으로 삶이란

과장된 움직임

그저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 불과합니다.

 

누군가의 목표가 아닌 것이

제게 목표라면

서있는 두 사람으로 사랑한다는

한 때 지형지물로 우리 만나

서로를 그리워하는 산맥이었다면

방위를 염두에 두지 않고

서쪽으로 혹은 동쪽으로

하염없이 뻗어도 당신이라면

 

서로에게서 긍정의 기호가 사라지고

목표점을 가는 방향마저 모호해질 때조차

아니, 애초부터 그 방향도 누설되지 않은 기밀로

해독하지 못한 채

우리의 춤사위가 한낱 낙서처럼

저장되지 않는다 해도

 

해와 달이 지나고, 구름이 스치는 기억대로

각자 읽어내는 지형도에

등고선마다 오락 가락 누락되는 우리의 위치

당신에 깊이 이렇게 깊이 빠져서

가파른 절벽으로 떨어지는

삶의 나머지를 측량하며

집중해서 얻은 하루어치의 지식의 계곡에

강이 흐른다면

몇 개의 강을 흘려 보내는

제 이름은 "행복한 그림자의 춤을"

구름처럼 저렇게

바람에 흘러 저렇게

아무런 선택없이 저렇게

 

- 삶을 알 것 같을 때, 아니 다시 그것이 아닌 것 같을 때....

그래도 뚜벅 뚜벅 걸어가는 하루만큼의 세월은,..

천천히 읽어나가야하는 단편들-

 

2014. 07. 07.

앨리스 먼로, 행복한 그림자의 춤, 캐나다 여성 노벨수상작가, 작업실, 온카리오주, 나비의 나날, 역자 곽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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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먼로의 디어 라이프

 

-2013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82세의 캐나다 여성작가 앨리스 먼로를 기억하며 

 

 

 

                                                  카르마

 

 

 

 

그대여 나는 여러 해 동안

언젠가 그대와 마주 칠 것임을 예견했습니다.

 

생에 관해서 아무 것도 변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생에 관해서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작은 조각들이 

용오름처럼 솟구쳐오르듯 

생에 대한 온갖 치명적인 비밀을 알게 된

섬광같은 깨달음,

겉으로 온화하고 건조하지만

평범한 가운데 비범함이 있는,

평범한 일상속에 특별한 그대

익숙한 사물, 사람, 풍경이 있는 이 평범한 세상에

그대의 손짓이나 입김으로 혹은 그대의 목소리로  

바람이 일었다면

그대의 눈물에 그윽한

꽃이 피었다면

 

그대여 나는 여러 해 동안

언젠가 그대와 마주 칠 것임을 예견했습니다.

 

하루의 노동을 마무리하는 이 시간이면

분연이 일어나는 또다른 한 세상

순결한 모든 것들의 노래여

나의 눈빛이 또는 그대의 눈빛이

어떤 형상으로

다시 하나의 영혼으로 태어난다면

언젠가 한 번 꼭 태어난다면

다시 언젠가 한 번 더 죽음이 된다면

지상의 모든 별, 바람, 하늘, 우주만한 처절함, 아니 그만큼 간절해지는 생이여

 

2014. 06. 12.

 

각각의 모든 생의 소중함, 그 처절함, 그 간절함을 위해서...

 

 

 

디어 라이프, 앨리스 먼로, 2013년 노벨문학상, 캐나다 여성작가, 트릴리움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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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사로 잡힌 돌

 

 

                            카르마

 

 

나무에 사로 잡힌 돌처럼

그녀는 꼼짝없이 그의 것이다.

 

나무 뿌리가 구부러지고

저 아래까지 망각의 시간으로 그토록 뿌리내린

매일 새벽 실천하는 나무가 선택한

다정한 포물선

아래로 무너지는 것들 사로 잡는다.

 

다정한 음성을 문지르는 새부리로

둥지를 트는 것이나  

가라앉으면서 떠오르는 물체마다

선율처럼 움직여 잠을 지워버린

날개들이 있으리니

 

속삭여 말해주리

나무에 사로잡힌 돌이나

그런 나무를 뚫고 나오는 나뭇잎처럼

그녀는 꼼짝없이 그의 것임을

 

 

(새벽 산책에서 돌과 나무가 하나가 된 형상을 발견하고..)

 

2014.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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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넘기

 

 

 

                                   카르마

 

 

 

동트는 새벽

어둠의 줄을 넘은 태양이 

지평을 넘어서 하늘로 뛰오른다.

하늘로 날아오른다.

 

발아래 쿵쿵 심장이 뛰고

붉은 동공은 빛으로 팽창하여

이파리 마다 깊어지는

거짓말같은 사랑 부드럽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꼼꼼하게 들러붙든 손가락으로

한 줄 한 줄 차근히 뛰어 넘어

하나 둘 셋, 심장을 후려치는 소리

 

동트는 새벽, 아름다운 선율로

귀속으로 들어오는 자는 누구인가

다시 줄 속으로 뛰어 들어가

새로운 빛의 지평을 여는자 누구인가

 

 

2014. 5. 6.

 

(새로이 발견하는 빛이여,

어둠은 빛으로 몰아낼 수 있을 뿐

어둠을 어둠으로 몰아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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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메
오스카 와일드 지음, 오브리 비어즐리 그림, 권오숙 옮김 / 기린원 / 2008년 10월
평점 :
품절


사람을 감옥으로 보내 요한의 목을 벤 후, 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처녀[살로메]에게 주니, 그녀가 제 어미[헤로디아]에게 가져가니라.” <마태복음 14 10-11절>

 

 

 

 

 

예술가 오스카와일드가 전달하는 <살로메>의 이미지는 그 자극적이고 퇴폐적인 내용으로 영국에서 출판되지 못하고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되고 공연될 정도로 잔인하고 소름끼치는 잔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16세기의 명화들, 잠피에트리노, 루카스 크라나흐, 티치아노, 구스타브 모로의 <살로메>에서 재현된 세례자 요한의 목을 받쳐든 살로메는 무표정과 비탄함을 동시에 나타내지만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 Strauss, 1864~1950)의 오페라에서 살로메는 한층 더 갈등하는 인물이다. 2014년 5월 2일 부터 4일까지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된 <살로메>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를 2114년 미래도시를 배경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특별히 마우리지오 꼴라산티가 서울 필하모니 지휘를 맡았고 베로나의 로마극장 연출가인 마우리지오 디마띠아가 연출을 맡았고, 모던 오페라의 소프라노 카티아 비어가 원정 출현하여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살로메를 사랑하는 위병대장 나라보트(Narraboth)가 자살을 무릅쓰고 말리지만, 살로메는 세례자 요한의 힘찬 목소리와 성스러운 꾸짖음에 매혹되어 버린다. 악은 선을 선은 악을 구축하는 양상처럼 살로메가 음탕하게 성스러운 세례자요한을 유혹하자 이에 절망하여 자살하는 인물 나라보트의 혼란과 갈등은 오히려 희극적일만큼 단순하다. 그래서 더욱 절망스럽다. 살로메는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대인 세례자요한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증오한다. 찬미하며 저주한다. 왜냐하면 악과 선은 양극단의 지점에서 서로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갈망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서로를 포용할 수도 서로를 받아들일 수도 없는 존재이다. 헤로데왕은 살로메에게 몸이 달아 살로메가 원하는 것은 어떤 것이라도, 심지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한다. 이에 살로메는 "일곱개의 베일의 춤"을 춘다. 베일을 하나씩 벗어던지며 헤로데의 왕의 발밑에 엎드려 그녀가 원하는 것이 "세례자요한"의 머리라고 한다. 헤로데는 세례자요한에 여론 때문에 처형하기를 대한 꺼리지만, 마침내 처형을 결정하게 된다. 은쟁반에 담겨오는 "세례자 요한"의 머리에 살로메는 열정적인 키스를 퍼붓는다. 헤로데는 살로메의 광란에 참지못할 지경이 되어 살로메의 처형을 명한다.   

 

2014년 5월 4일에 예술의 전당에 올려진 <살로메>에서도 바그너의 음악적 기법인 Leitmotif가 사용되어 눈에 보이지 않아도 성스러운 음악으로만, 등장인물이 굳이 재현하지 않아도 퇘폐적이고 음탕한 음악만으로도 상상력을 충동질하고, 음악적 전조로 전달되는 이상한 분위기에 휩싸여 살로메의 갈등과 복잡한 내면을 음악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하게 하고자 시도하였다. 이로서 끈질긴 살로메의 유혹에, 인간적인 애욕에 휘둘리며 괴로와하는 세례자요한의 모습에서 연민이 느껴지게 했다. 

 

살로메의 모습에 몸이 달은 헤로데를 지켜보면서 다른 종류의 고통과 형벌을 받아야하는 사람은 바로 간음녀인 헤로디아스이다. 남편이 자신의 딸을 유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저지른 죄업이 딸에게 이어지는 모습에 괴로와한다. 죄의 댓가는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는 것일까.

 

고전적 사고도 원죄처럼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일까. 모든 예술이 표방하고 있는 선과 악, 고통과 행복, 환희와 갈등의 그 각각의 정점을 넘어야 예술이 보이는 듯하다. 우리가 한낱 보잘것없는 존재일지라도 현재의 불행이나 고통이 그 일부가 아니라고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예술이 그러하듯이 우리가 삶속에서 영원을 추구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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