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자책] 미움받을 용기 ㅣ 미움받을 용기 1
기시미 이치로 외 지음, 전경아 옮김, 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주) / 2015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오늘은 어떤 테제로 삶을 발전기켜 나갈 것인가. 이 책은 공통된 판단력 (common sense) 또는 상식선에서 삶을 발전시키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너무나 상식적인 판단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선까지 아들러 심리학을 일반화했다는 점에서 이 책에 고마움이 생긴다.
과거의 원인에 주목해서 상황을 설명하려 든다면, 모든 이야기는 저절로 '결정론'에 도달하게 되네. 즉 우리의 현재, 그리고 미래는 전부 과거 사건에 의해 결정되고 움질일 수 없는 것이라고 말이지. (33 쪽)
과거의 나로 부터 오늘날까지 발전해온 결과물로 나, 오늘의 테제를 가진 '나'이면서도 현재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프로이드의 트라우마 이론은 과거의 상처가 현재를 방해하고 있다고 해석하지만, 아들러는 경험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현재의 나는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인간을 자극에 단순반응하는 기계적 존재로 바라보고 있는 프로이드의 원인론보다 훨씬 더 발전적이다.
아들러 심리학은 목적론에 입각하고 있다. 내 삶이 비록 우연에 의해서 생겨나게 되었고, 어쩌면 삶의 많은 것이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할지라도 목적론을 가짐으로서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매일, 매 순간, 새로운 삶의 방식을 선택할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 목적을 가진 인간으로 살자는 것이다. 지금의 삶의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 양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정도의 용기에서 어쩌면 더 큰 용기에 이르기까지. 이것은 지금까지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용기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건이 현재의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가 하는 '의미 부여 방식'이 나의 삶의 태도이고 생활양식이다. 삶의 태도, 인생을 사는 방식, 이 방식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고 아들러는 주장한다. 아마도 우리는 과거의 방식을 구태의연하게 유지하면서 삶의 태도, 인생을 사는 방식을 새로이 선택하지 않고 있다. 즉 다른 방식을 선택해서 좀 더 행복한 마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선택을 할 용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분노에 대한 설명도 전혀 다른 접근으로 설명하고 있다.
자네에게 큰소리를 내고자 하는 목적이 먼저였네. 즉 소리를 질러서 실수를 저지른 웨이터를 굴복시키고, 자신이 하는 말을 듣게 하고 싶었던 거지. 그 수단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꾸며낸 거야.
... 말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것이 귀찮아서 저항하지도 않는 상대를 더 값싼 수단으로 굴복시키려고 한 것일세. 그 도구로 분노라는 감정을 동원한 것이고. (42 쪽)
우리는 분노를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서 분출했다고 보기보다는 상대를 제압하려는 수단으로 쓰고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분노의 메카니즘에 인간 본능의 전략이 작동했을 것이라는 설명은 분명히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분노가 커뮤니케이션의 한 방식일 뿐이고 목적을 위한 수단이며 도구이므로 '욱' 해서가 아니라, 또는 참을 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비난함으로서 나자신이 우월함을 나타내고 상대를 제압하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적인 분노는 타인을 굴복시키려는 도구에 불과한 것이므로 공적인 분노와 달리 금세 식는다. 이겨서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은 것에 불과한 권력투쟁인 것이다. 인간관계에서의 권력투쟁이다.
아들러는 인간의 고민이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타인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때문이다 (82 쪽). 타인과의 관계에서 열등감이나 우월감이 생겨닌다. 열등감이란, '내것의 가치가 더 적은 느낌'(85 쪽)이다. 더 작다, 또는 더 크다라는 이 느낌 자체가 상대적이므로 열등감이란 철저히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우월감도 마찬가지로 주관적이라는 점에서 우월감은 열등감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무기력함을 통찰하게 한다.
누구나 벌거벗고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로 태어났으므로, 그 상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보편적 욕구, 즉 '우월성 추구'의 길에 서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우월감이나 열등감이 하찮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우월성을 느끼는 누군가를 보면, 음..인간 존재가 무기력해서 우월성을 추구하다보니 저러는군..혹은 자신의 열등감에 대해서, 아, 내가 '무늬만 인과법칙 (95 쪽)'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은 나자신을 변명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인간은 열등감을 오랜동안 참아낼 수 없으므로, 자신에 대한 '권위부여'라고 하는 '거짓 우월성'에 쉽게 의존한다. 예를 들어서 자랑하기 좋아하는 사람의 경우도 권위부여의 한 예시이다. 심지어 '불행 자랑'조차도 우월감에 대한 추구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들지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
...
오늘날, 누가 가장 강한지 자문해보라. 갓난아기가 논리적인 답이 될 것이다. 갓난아기는 지배하지만 지배받지 않는다. 갓난아기는 연약한 존재라서 어른들을 지배할 수 있네. 그리고 연약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지배받지 않지 (103 쪽).
우월감의 추구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경쟁이다. 하지만 경쟁은 부정적인 인간구도이다. 친구와 '선의의' 경쟁을 하겠지만,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경쟁으로 친구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없는 삶은 인간을 무한의 고독감으로 내몬다.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 책에서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한다. 너무 좋은 말이다. 어짜피, 오늘 만든 친구, 오래동안 친구, 가까이 있는 친구, 친구의 종류는 다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내 친구다 라고 느낄 수 있다면 세계를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질 걸세. 더는 세계를 위험한 장소로 보지도 않고, 불필요한 시기심이나 의심에 눈이 멀지도 않을 걸세. 대신에 세계가 안전하고 쾌적한 장소로 보이게 되겠지. 인간관계에 관한 고민도 눈에 띄게 줄어들 걸세 (114 쪽).
주변사람들과 쓸데없는 권력투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방 비난은 무엇보다도 커다란 함정이다. 비난은 내가 옳다 라는 전제에서 권력투쟁의 장에 들어서게 하기 때문이다. 내가 틀리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 내가 부족하다. 내가 모자라다. 라는 자각이 승패를 다루는 경쟁, 권력투쟁에서 원천적으로 피하게 한다고 한다. 내가 옳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상대를 비난하게 되고, 나의 옳은 것이 상대방의 틀린 것, 그른 것을 이기고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는 헛된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이다.
새로운 성찰*
1. 아이의 곤경을 지켜봐주는 물끄러미 - 아이가 신발 끈을 잘 묶지 못하면 바쁜 엄마가 보기에 아이기 묶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는 자신이 묶어주는 편이 훨씬 빠르다. 그러나 그것은 아이의 과제를 빼앗는 것이다. 완전 개입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개입이 되풀이되면 아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고 인생의 과제를 직시할 용기를 잃게 된다. 곤경에 직면해보지 못한 아이들은 곤경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 (아들러).
2. 인정욕구 - 타인에게 칭찬받고 싶은 심정, 열등감을 없애고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평가에 신경을 쓰면서 산다면, 결국 우리는 우리의 삶이 아니라 타인의 인생을 살게되는 것이다. 상담을 받으로 오는 내담자중에 성격이 제멋대로인 사람은 별로없다. 오히려 타인의 기대, 부모와 선생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괴로워하던 중 내담을 온다. 쉽게 말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3. 상벌교육의 단점- 적절한 행동을 하면 칭찬받는다. 부적절한 행동은 벌을 받는다. 상벌교육의 결과로 생기는 것은 칭찬하는 사람이 없으면 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벌주는 사람이 없으면 부적절한 행동을 할 수도 있다는 잘못된 생활양식이다. 신이 보고 있으므로 선행을 쌓는다. 신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든 악행은 허용된다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신의 인정을 받지 못하더라도 삶을 살아야한다.
4. 화폐란 주조된 자유이다. 도스토예프스키 - 우리가 일해야하는 이유, 자유를 얻기위해서 자유를 억압한다? 아이러니하다.
5. 사랑이란- 이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때,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우월함을 과시할 필요도없는, 평온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
6. NEET (not in de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 욕망이나 충동에 이끌여 사는 상태. 게으름의 욕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돌멩이처럼 사는 것. 진정한 자유란 욕망이나 충동에 이끌려 굴러가는 자신을 아래서 밀어 올려주는 태도는 아닐까? 인간은 관성의 법칙, 자연법칙, 중력을 거슬러 저항할 수 있는 존재이다.
7. wrist-cut syndrome - 부모에 대한 복수, 비행을 저지르고 등교를 거부하고 스스로 손목을 그으면 부모가 고통스러워하고, 곤혹스러워하게 만들고 싶어하는 심정. 세상 부모들은 흔히 '너를 위해서야'라고 말하지. 하지만 부모들은 명백히 자신의 목적, 세상의 이목이나 체면, 지배욕같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행동하는 부모도 있다. 즉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이고 그 기만을 알아차렸기에 아이가 반발하는 것이다.
8.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문제를 뜻하는 말.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국왕인 알렉산드르 대왕이 프리지아로 원정 갔을 때 신전 기둥에 묶여 있던 전차 한대. 프리지아의 국왕인 고르디우스가 매듭을 묶어 두었고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의 국왕이 되리라는 유언, 알렉산드르 대왕은 이 매듭을 칼로 끊어버림. '운명이란 전설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개척하는 것이다.'
9.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 받는것- 누군가의 미움을 받는 것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이다. 자유를 행사하려면 타인의 미움을 사는 댓가가 따른다. 남이 나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리던, 나를 싨어하던 인정받지 못하는 댓가, 미움을 받는 댓가를 치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뜻대로 자유롭게 살 수 없다.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며 자유롭게 살면된다.
10. 개인 (individual) -어원이 '분할할 수 없다' 이다.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최소의 단위. 우리의 감정이라는 분할된 한쪽에 자극을 받아 행동하지 말아야한다. 인간은 통일된 전체이기 때문이다. 전체로서의 나를 생각하는 것을 전체론이라고 한다.
11.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이다.
12. 수직관계의 위험성 - 열등감. 모든 사람은 같지는 않지만 대등하다는 수평관계를 추구해야함. 공부해라고 명령하는 선생과 부모. 본인은 선의라고 한다해도 결국 양해도 구하지 않고 남의 일에 개입하고 간섭하고 자신의 의도하는 방향으로 조종하려는 것이다. 수직관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고맙다,' '기쁘다,' '도움이 됐다'라고 솔직한 심정을 전하거나 수평관계에 근거하여 말을 전해야 한다. 상대를 평가하지 말아야한다. 순수한 감사, 순수한 감탄을 표해야한다.
13. 우리 인생에도 길잡이 별이 필요하다. 그 별은 이 방향으로 쭉 가다보면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는 절대적인 이상향이다.
14. 신뢰 - 다른 사람을 믿을 때 조건을 일절 달지 않는 것. 비록 신용할 수 있을 만큼의 객관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믿는 것. 담보가 있든 말든 개의치 않고 무조건 믿는 것, 그것이 신뢰이다.
15. 행복이란 - 타자 공헌감이다.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즉 공헌감이 있으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
16.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다. 인간은 '지금' '여기' 이 찰나안에서만 존재한다. 가령 춤을 출 때는 춤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고, 춤을 추면서 어디론가 가야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느다.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17. 키네시스(Kinesis)적 삶 -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운동 산정상에 꼭 도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그 과정보다 목적을 중시하는 삶
에네르게이아(Energeia)적인 인생- 현실태, 실현해가는 활동, 과정에 초점. 샐행하는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고 그 자체로 완전한 가치를 지닌다. '지금 하고 있는' 지금 여기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해나가는 것을 뜻한다. 에네르게이아적 관점에서 보면 인생은 언제나 완결되어 있다. 지금 여기에서 생을 마친다고해도 불행하다고 할것이 없다. 에네르게이아적 인생을 산다는 스무 살에 마친 삶도 아흔 살에 마친 삶도 모두 완결된 삶이며 행복한 삶이다.
18. 인생의 의미는 없다. 그러므로 내가 나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마치 이름과 같은 것이다. 내가 내 인생에 의미를 주는 것이다. 내 인생의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19. 나의 힘은 크다. 헤아릴 수 없이 크다. 내가 바뀌면 나의 세계가 바뀐다. 나의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
20. 무심코 집어든 책이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어주기도 한다. 철학의 본래 의미는 지(知)가 아니라 '지(知)를 사랑하는 것' 이고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과 지(知)에 이르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결국 지에 도달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