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데케루 펭귄클래식 106
프랑수아 모리아크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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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프랑수와 모리악이 젊은 시절에 법정에서 목격했던 사건을 기초로 쓴것이라한다. 남편을 독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법정에 회부된 작고 갸냘픈 여인의 물증과 증언, 위조된 독극물 처방전 등은 실제의 사건에서 빌려온 것이라 한다.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모티브로 해서 세상을 바라보는 또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이 작품은 결혼이나 가정이라고 하는 우리가 가장 친밀함을 가지고 있는 제도에 대해서 반항하는 주인공 테레즈를 내세워 인간의 내적인 욕구는 제도 이전의 것인지 혹은 제도 이후의 것인지, 또는 그런 욕구가 범죄본능과 어떤 짜임새를 가지고 연결되어 결국은 어떻게 범죄로 형상화되는지 묘사하여 진실을 추구하고자하는 과정의 불안과 혼란을 그려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편을 밀어낼 수 있다면! 침대 밖으로 영원히 어둠속으로 그를 떨어뜨릴 수만 있다면!" (p. 74) 

 

이것이 테레즈가 남편 베르나르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어떻게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이 소설에서 대답을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테레즈가 느끼는 숨막히는 가족관계나 사회적 분위기를 느낄 수는 있다. 가족제도속에서 그녀의 내면적인 욕구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는 것일까? 

 

그녀가 베르나르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은 처음부터 호의롭지 못하다.

몇 주 전부터 매일 먹고 마시던 음식과 술없이 지내자 몸이 달았던 이 잘 생긴 시골청년, 테레즈는 그를 증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고통에 대해 생각하고 고통스러워할 장소를 찾고자 혼자가 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단지 그가 자리에 없다면, 먹으로, 웃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눈빛을 흐려야 할지 걱정을 안 해도 되며, 이 신비로운 절망에 자유롭게 생각을 집중할 수 있다면. 한 피조물이 이 황량한 섬 밖으로 도망간다. 죽을 때까지 네 곁에서 살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이 경계 밖으로. 그녀는 너와 다른 사람 사이에 떨어져 있는 심연을 건너 그들과 합류한다. 마침내 다른 행성으로 이동한다.....

 

어쩌면 베르나르에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하는 것은 테레즈가 살고 있는 그 시대 그 상황에 느끼는 테레즈의 반항을 전반적으로 투영한 것인듯하다. 우리는 때로 우리를 감싸고 있는 제도나 그 제도가 내뿜고 있는 영향을 느끼지 못한채 그것이 제도탓인지도 감지하지 못한채 길들여진 자아로 순응하며 살거나 고통을 받지만 이유를 모른채 우리 모두는 절망적인 반항으로 테레즈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병이야말로 그런 비밀스러운 병이 아닌가요? 가족들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않죠. 우리 가족들은 자기네 오점을 숨기고 묻어버리는 데 마음이 너무 잘 맞아요. 하인들이 없었다면 아무도 모르겠죠. 다행히도 하인들이 있기에..."

" 당신 말에 대답 안 하리다. 당신이 일단 말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최선이야 그나마 나와 함께 있으면 불행중에 다행인거지. 당신이 이걸 즐긴다는 걸 알아. 하지만 집에가서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은 당신도 알겠지. 우리 집안에서는 가족들을 소재로 농담하지는 않는다고."

   가족이라! 테레즈는 담뱃불을 꺼지게 내버려 두었다. 시선을 한곳에 고정한 채, 수많은 인간 철창이 쳐진 새장을 상상해 보았다. 눈과 귀로 둘러싸여있는 이 새장, 테레즈는 그곳에서 꼼짝 않고 웅크려 앉아 팔로 다리를 감싼 채 무릎을 턱까지 당기고 죽기만을 기다리게 될 것이다. (p.73)

 

 

테레즈에게 가족이란 그런 것이었다. 우리가 테레즈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테레즈가 살았던 1880년대의 프랑스에 잔재했던 봉건적 구조의 가족관계, 가족의 임무 등을 이해해야 한다.

가족관계를 중심으로 경제적 이해관계가 정교하게 사회구조를 이루고 있었고 거기에서 인간은 개인으로서 보다는 가족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외면적인 체면이 강조되었던 시대였던 것이다.

 

안이 드길렘과의 결혼을 놓친다면 큰일이라고 재차 말하는 베르나르에게 그녀도 동의했다. 드길렘 집안은 그들과는 다른 부류였다. 할아버지가 목동이었다지.... 그렇다. 하지만 이 고장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나무를 숲을 소유하고 있다. 무엇보다고 안은 그리 부자가 아니다. 안의 아버지에게 기대할 만한 것은 오직 랑공근처, 2년마다 강물이 범람하는 충저고 위에 있는 포도밭 뿐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길렘 집안과의 결혼을 놓쳐서는 안되었다. 

 

테레즈는 민주주의에 대해서 이미 혐오하고 있었고, 민주주의의 온갖 고상함을 대변했을 정치에 대해서 구역질을 느낀다.

 

그녀는 아버지가 '민주주의에 대한 한결같은 헌신'을 주장하면, 그녀는 "그러실 필요없어요. 우리밖에 없거든요." 라고 그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정치의 고상함에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가장 가난한 사람도 땅 주인이거나 주인이기를 바라는 이런 고장에서 테레즈는 계층 갈등의 비극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이곳 사람들은 땅, 사냥, 먹을 것과 마실 것에 대한 욕구를 공유해 부르주아나 농민 모두 긴밀한 형제애를 형성했다.

 

테레스는 마리(딸)을 임신을 했다고 해서 행복하지도 않으며 베르나르의 관심에 대해서도 끔찍해한다.

 

'그는 내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배속의 아이를 걱정하는 거야. 그 끔찍한 어조로 계속 말하지. 퓨레 좀 더 먹어.... 생선은 먹지마....당신 오늘은 충분히 걸었어....모유 때문에 고용한 외국인 유모야... 그런말에 감동할지 모르지만 난 전혀 감동스럽지 않아. 라 트라브 가족은 내 안의 신성한 꽃병에 경외심을 품은 거지. 난 그들의 자손받이야. 필요하다면 그들은 이 태아를 위해 기꺼이 나를 희생할 테지. 나라는 개인 감정은 뒷전이야. 가족들의 눈에는 나는 기껏해야 포도나무일뿐이야. 오로지 내 옆구리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열매만이 중요할 뿐....

 

테레즈는 남편이 정기적으로 먹는 심장약에 비소량을 조금씩 늘리기 시작한다. 이것을 알게 된 의사는 그녀를 고소하게되고, 집안의 체면을 생각한 남편 베르나르와 그녀의 아버지의 거짓 진술을 하고 그 소송은 기각되어 테레즈는 석방되게 되지만 집안에서 유페된다. 

 

'그래, 끔찍한 유혹에 사로잡혔다는 느낌은 없었다. 단순히 위험한 호기심 때문이었던거야 베르나르가 식당으로 들어오기전에 그가 마실잔에 파울러약을 타는거야, 이렇게 되뇌었던 것을 기억해. '딱 한번이면, 의심이 풀릴거야. 그러면 이 때문에 그가 아프게 되는지 그 결과를 알게 될거야. 딱 한 번이면 끝날거야.'

 

(프랑스어에서 번역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번역에 오류가 있는지 알 수 없지만......몰입하게 만드는 번역은 아니라 아쉽다.) 테레즈는 베르나르가 구급차에 실려나가고 난 후에 비로소 두려움에 쌓이게 된다. 테레즈의 반항하는 방법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었다.

 

포식자 무리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납작 웅크린 짐승처럼. 테레즈는 격렬한 경주 끝에 기진맥진해 눈앞의 결승선에 손만 뻗으면 되는데도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린 선수 같았다. 겨울이 다 간 어느 날 저녁 그녀의 아버지가 와서 스스로 변명을 하라고 그녀에게 간청했다. 아직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었다. 페드메는 고소를 취하하는데 동의했고, 그 처방전 중 하나는 자신이 직접 쓴것이 아닌지 확실치 않다고 헀다. 아코니틴, 클로로포름, 다리탈린에 관해서 그가 이렇게 과량을 처방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환자의 혈액에서 그 어떤 흔적도 찾아 볼 수 없었기에... 

 

반면에 테레즈가 바라는 것은 너무나 단순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단순한 것을 채울 수 없었던 것이다. 

 

과거 속에서 그녀는 이 이미지만을 찾아내어 기운 빠진 마음을 기댔다. 그녀는 달리는 말에 리듬을 맞춰 기계적으로 되풀이 했다. "쓸모없는 내 인생, 허무한 내 인생, 경계없는 고독, 출구없는 운명." 아! 정말 베르나르는 그 행동만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아무것도 묻지 않고 두 팔을 활짤 벌려준다면! 그녀가 인간의 가슴에 머리를 기댈 수 있다면, 살아 있는 사람에게 기대 울 수 있다면!

 

베르나르의 입장은 확고하다. 가족우선주의. 가족의 명예우선주의 등등.

 

" 이 문제에서 내 개인적 입장은 고려하지 않겠고. 이제부터 나는 중요하지 않고. 가족만이 가장 중요하지. 난 언제나 가족의 이익에 맞추어 모든 결정을 내려왔소. 가족의 명예를 위해 나는 내 나라의 정의를 속이기로 동의했던거요. 신께서 나를 판단하시겠지"

  이 점잔 빼는 말투에 테레즈는 구역질이 났다. 그녀는 정말 원하는 바를 단순하게 말해달라고 간청하고 싶었다.

" 가족을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화목하다고 믿고, 그들의 눈에 내가 당신의 무죄를 의심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야하오. 다른 앟녚으로 나는 나를 최선의 방법으로 보호하고 싶고...."

" 베르나르, 내가 당신을 두렵게하나요?"

"두렵다고? 아니 끔찍하지." 그가 중얼거렸다.  

 

베르나르는 마리를 데리고 그녀를 떠나고 그녀는 일요일 미사에 남편과 함께 나타나야하며 겉으로는 화목한 행세를 해야했다. 

 

'이제부터는 이 강력한 '가족'이라는 기계가 나를 향해 돌진할거야. 그것을 없애거나 그 사이에서 제때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야. 다른 이유를 탓할 필요도 없어. 그들이었으니까, 나였으니까 이렇게 된거지. 2년이 채 안되는 동안 나를 감추고, 체면을 세우고, 남을 속이기 위해 내가 했던 이노력. 다른 사람들은 습관 때문에 익숙해지거나 무감각해져 따뜻하고 전지전능한 가족의 품안에서 포근하게 잠이 들어 죽을 때까지 그렇게 지내려고 해.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안과 드길렘가문의 아들이 약혼을 하게되자 법정소송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 가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궁금한 드길렘의 청년이 테레즈를 방문하게 된다. 베르나르는 테레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

드길렘청년은 특히 당신을 먼저 만나기를 원하오. 그는 예의 문제라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당신이 알고 있는 무언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듯하오. 당신은 똑똑하니까 이런 일쯤은 잘 넘기겠지. 당신은 아픈 환자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마지막으로 당신을 믿어보겠소. 안의 행복을 망치지 말고, 가문에 전적으로 도움이 되는 결혼 계획을 망치지 않아주면 고맙겠고. 당신이 방해한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요.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고 있소.

 

고등법원에서 집에서 구류되는 판정을 받고서 테레즈는 집에서만 있어야 했고 이런 방문자의 방문을 받았고, 베르나르의 요구가 있을 때 함께 일요 예배를 보는 것으로 베르나르의 가문에 아무런 이상이 없음을, 테레즈 개인 정신적인 문제임을 그 마을에 이런식으로 입증해야 했던것이다.

 

안은 내가 먼저 마리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다고 반감을 느끼는구나.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해서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걸 안은 이해하지 못할거야. 안은 가문의 다른 여자들처럼, 그리고 그 애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를 낳으면 아이에게 자신을 헌신하려고 하고 있지.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찾는 것이 필요한데, 진정한 나와 만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안은 저 난쟁이와의 사이에서 생긴 갓난아기의 첫 울음소리에 우리의 사춘기나 장 아제베도의 손길을 깡그리 잊어버릴거야. 가문의 여자들은 자신의 존재를 전부 버리려하지. 한 생명에게 자신을 전부 주즌 것은 아름다운거야. 그 사라짐, 헌신이란 아름다워. 하지만 나는, 하지만 나는....' 

 

테레즈는 자신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쓰고 있고 자신이 다른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테레즈의 이러한 심리에 대해서 베르나르는 관심이 없다. 다만 어떻게 테레즈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고심하다가 파리로 보내기로 작정하게 된다.

베르나르는 파리의 가장 깊숙한 곳에 테레즈를 묻어두고 도망갈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합의했다. 이혼도, 공식적인 별거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건강상의 이유라고 둘러댈것이다. (테레즈는 여행을 하면 좋아져서 말이죠.")

 

테레즈는 이 마을에서, 이가족에게서 떠나기를 바란다.

테레즈는 겨울의 끝자락에서 완전히 벌거벗은 메마른 대지를 좋아했다. 하지만 옷을 벗지 않으려는 듯 참나무에는 마른 잎새가 집요하게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아르즐루즈의 침묵이란 사실 없는 것임을 깨달았다. 가장 조용한 밤 시간에도 숲은 우리가 자기 자신을 늘 한탄하고 불평하듯이 몸을 흔들다 잠이 들었다. 밤새 무한한 속삭임이 계속 이어졌다. 그녀의 삶에는 미래가, 생각지도 못한 새벽이 올 것이다. 그 새벽은 사막처럼 고요해, 그녀는 수많은 수탉이 앙칼지게 울어대는 아르즐루즈의 기상 시간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테레즈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적인 자기 자신의 존재이며, 그것에서 사고가 출발하는 것에 대한 인정이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은 돌로 만들어진 도시가 아니야. 강연도, 박물관도 아니야. 내가 소중하게 생각했던 그것은 도시 속에서 동요하고 어떤 폭풍우보다도 더 강한 열정이 만들어내는 살아 있는 숲이야. 어둠 속에서 아르즐루즈의 소나무 숲이 내는 신음 소리 역시 인간적이기에 감동적이었던거야.'

 

프랑스와 모리악의 1952년 테레즈에 대한 회상에 따르면, "가족이라는 철책뒤에 갖혀있는 그녀의 모습은 청소년이었던 내게 매우 큰 충격을 줬었다. 나는 바로 여기서 <테레즈 데케루>가 탄생했었다고 생각한다. (열여덟번째 인터뷰, 되찾은 기억들에서)" 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 당시의 그 지역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여인이 테레즈라고 상상해 볼 수 있다. 

 

20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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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Paperback, 5)
H. Douglas Brown / Allyn & Bacon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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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tal commitment, total involvement, a total physical, intellectual, and emotional response are necessary to successfully send and receive messages in a second language. Few if any people achieve fluency in a foreign langauge sorely within the confines of the classroom. We probably have some questions about second languae acquisition.

1. What are learners' characteristics?

2. What are linguistic factors we have to teach?

3. What are the learning processes?

4. What is the relation between age and acquisition?

5. What are instructional variables?

6. What is context?

7. What is purpose of learning?

 

However, the quest for perfect methodology is already defeated games. The quest should be eclectic: no single theory or hypothesis will provide a magic formula for all learners in all contexts. And the quest is cautious: you will be urged to be as critical as you can in considering the merit of various models and theories and research findings. It should be "normal science" as a process of puzzle solving in which teachers are to discover the pieces and then to fit the pieces together.

 

Then what is language? The Merriam-Webster's Collegiate Dictionary (2003, p. 699) states that "a systematic means of communicating ideas or feelings by the use of conventionalized signs, sounds, gestures, or marks having understood meanings." Or we have Pinker's , (1994) definition such as

 

"Language is a complex, specialized skill, which develops in the child sponteneously, without conscious effort of formal instruction, is deployed without awareness of its underlying logic, is qualitatively the same in every individual, and is distinct from more general abilities to process information or behave intelligently (p. 18)."

 

From those well-known definitions, this book summarized the definition of language as follows.

 

1. Language is systematic.

2. Language is a set of arbitrary symbols. 

3. Those symbols are primarily vocal, but may also be visual.

4. The symbols have conventionalized meanings to which they refer.

5. Language is used for communication.

6. Language operates in a speech community or culture. 

7. Language is essentially human, although possibly not limited to humans.

8. Language is acquired by all people in much the same way; langauge and language learning both have universal chanracteristics.

 

Teachers' understanding of the components of langauge determines to a larger extent how they teach a langauge. If, for example, you believe that nonverbal communication is a key to successful second language learning, you will perceive some attention in your curriuclum to nonverbal systems and cues. If you perceive language as a phenomenon that can be dismantaled into thoughsands of discrete peices and those pieces programmatically taught one by one, you will attend carefully to an understadngin of the discrete forms of langauge. If you think language is essentially cultural and interactive, your classroom methodology will be imbued with sociolinguistic strategies and communicative tasks.

 

This will guide teachers or teachers-to-be to a path to consider all the varities in a very comprehensive profess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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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7시. 자명종이 촉각의 축제라도 하듯이 귀속의 소리 연결관들을 흔들었다. 눈을 뜨지도 않고 기다란 손을 뻗어 자명종을 건드린다. 건드리기만 하면 저절로 소리가 사라지는 기능이 달려 소리는 사라졌지만 그 소리는 온몸의 촉각을 이미 세워놓아 아침의 건강한 의식을 준비하고 있다. 누구에게나 아침의 이 짧은 순간들은 하루를 시작하는 간소한 의식이기 마련이다.

 

나는 숙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숙은, 나의 사랑하는 아내는 길게 누워 왼쪽 팔을 얼굴에 올려 창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막고 있었다. "일어나자, 우리 바닷가에 갈까?" 침대에서 일어나기 위해 모로누워 잠시 눈을 감고 있었다. 숙은 뒤에서 나의 어깨를 감싸안았고, 나는 앞으로 오는 그녀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손을 제자리로 돌려주며 일어났다. "나 샤워"

 

물은 늘 그정도의 온도로 맞추어져 있어서 여름날 소나기를 연상하게 한다. 지금이야 비를 맞으면 큰일이 날듯해서 우산이 없으면 비를 긋기를 기다리곤 하지만, 어린시절에는 휠씬 청년이 될 때까지 비를 맞는 일이 비가 내리면서 옷을 통해서 살에 닿는 것, 머리카락속으로 젖어들어 그것을 의식하게 되는 일에 대해서 감상적인 적이 있었다. 그 감상적인 느낌은 오래도록 아침 샤워에 남아 있었다. 소낙비를 맞는 대신 오랜동안 샤워실에 서있곤 한다. 내가 샤워를 마칠 때까지 숙은 그대로 창쪽으로 누워 기다란 씰루엣으로 잠든 짐승처럼 조용했다. "커피? 아님 티?" "티..." "어.." 커피를 내리고 물을 올려놓고 토스터에 빵을 넣고나서야 슬리퍼를 끄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딸기를 씻으면서 진한 녹색 꼭지를 따내고는 다시 플라스틱 팩에 담았다. 바닷가에 가면서 먹을 요량이었다.  우유를 데우고, 치즈를 꺼내고, 딸기잼의 뚜껑을 열고.....

 

도로에는 차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순조롭게 강릉까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갔으니까. "아..난 강릉에 가는 것이 좋아, 서해안가는 것보다, 동해안이 좋아. 풍광도 좋고, 도로도 좋고, 시간도 세시간정도 당신과 갖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 도착해서 점심도 좋고, 그리고 저녁은 회를 먹고, 돌아오는 시간도 부담스럽지 않고 말이야, 그렇지?" 그녀는 혼자서 한참동안 쫑알거린다. "사랑해"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등에 키스를 했다. "많이 사랑해, 알지?" 숙은 아무말도 않고 고개를 푹숙인다. 그녀가 찻창으로 고개를 돌릴 때 들판에서는 몇마리의 새들이 하늘로 날아 올랐다. 통통한 몸둥어리가 밑으로 처지는 것으로 보아 오리과인듯했다. 도로에 차들이 정지한듯이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나는 그중에 한 대를 무작위로 뒤쫒고 있는 것처럼 뒤따라 붙기 시작했다. 어느듯 강릉이었다. "오색약수터로 간다" 우리가 자주 가던 식당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도로 한면으로 주차를 했을 때 오른쪽 계곡으로는 겨우내 내린 눈이 아직도 하얗게 쌓여있었지만 날이 따스해서 그런지 물흐르는 소리도 들렸고, 눈 밑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약수 마실까?" 숙은 기다란 부츠를 또각거리며 팔짱을 꼈다. "응" 그녀가 올려다보는 눈동자에는 어린 양의 두려움이 있었다. 주인을 바라보는 눈동자, 주인의 처분을 기다리는 눈동자, 털을 다 깍일 때의 가느다란 속눈섭과 겁에 질린 동공. 약수터 입구에는 할머니가 앉아 직접 농사를 지었다며 무우말랭이 말린 것과 겁질을 벗겨 하얗게 된 옥수수, 녹두 엿과 들기름을 팔고 있었다. "이거 다 내가 농사를 지은거야, 순전히 우리 밭에서 난거지, 약수마시고 가면서 사가, 이 바가지를 써 그리고 오면서 돌려주면 되" 할머니는 느리고 낮지만 친절한 목소리로 숙의 눈길을 잡아 끌고 있었다. 숙은 "물 떠다줘 응?" 나 부츠 신어서..." 나는 천천히 할머니의 바가지를 집어들고 약수터로 내려갔다. 계단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닳아서 반들 반들했고, 그곳 몇계의 계단에는 누군가 천을 넓게 깔아 놓아 미끄러지지 않도록 해 놓았다.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물은 퐁퐁 조금씩 솟아나고 있었고 온갖 종류의 희망이나 꿈이 그러하듯이 서서히 목마른 자들의 잔을 채우고 있었다. 여러종류의 잔과 바가지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도 그틈에 끼어 한잔을 마시고 또 한잔을 채웠다. 희망의 잔도, 꿈의 잔도 이렇게 기다리면 채울 수 있다면 좋겠구나. 기다리면 말이지. 절망적인 순간에 조차, 기다리면 말이지. 그러나 절망은 가차없이 그 가지를 꺽어 그 방향으로 다시는 피어오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내가 바가지를 채워 그녀쪽을 바라보았을 때 그녀는 그 자리에 없었고 계단을 좀 오르자 그녀가 할머니가 펼쳐놓은 허름한 상점에서 뭔가를 선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알 수 있는데, 서 있는 모습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숙은 하얗게 깐 옥수수를 집어들며 할머니가 펼쳐놓은 모든 물건들의 가격을 물었다. 내가 다가가자 손을 내밀어 바가지를 받았다. 쇠맛이 나서인지 미간을 찌푸리는 숙의 얼굴에 햇살이 와서 바스라지듯 미끄러지며 하얗게 빛나곤 했다. 하얀 얼굴, 하얀 얼굴, 두려워하는 얼굴. 마치 '메에에'라고 소리라도 낼듯한 얼굴 표정이었다. 나는 괜찮아, 괜찮아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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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먼저 떠나는 사람들, 그들은 늘 멋대로 떠난다. 32살의 여인이 있다. 7년 전에 남편과 사별했고 3년 전에 재혼했다. “다미오씨는 차분하고 부드러운 성격의 사람이고,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도모코도 저를 잘 따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저는 아내와 젖먹이를 버리고 멋대로 죽어버린 당신에게 이렇게 아무도 모르게 말을 걸고는 합니다.” 그녀가 ‘멋대로 죽어버린 당신’이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제는 슬픔이 맑게 가라앉아 있어 그것을 가벼운 힐난에 실어 말할 수도 있게 된 사람이구나, 그러니 그와 다다미방에 마주 앉아 이야기를 들어도 이쪽이 힘들어질 일은 없겠구나, 하고. 미야모토 테루의 소설 <환상의 빛>(서커스, 2010)의 도입부다.

내용은 이렇다. 그와 그녀는 꼬맹이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 가난해서 둘 다 중학교까지만 다녀야 했다. 그런 일에서조차도 “둘이서 작은 방에 들어간 것 같은” 설렘을 느낄 정도로 둘은 정겨웠다.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첫아이를 낳은 지 세 달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어쩌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해도 좋을 때의 어느 날에, 남편은 전차의 선로를 걷다가 달려오는 열차를 피하지 않고 죽어버린다. 그녀는 그 이후 껍데기처럼 살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는 왜 갑자기 죽어버린 것일까. 그 생각에 지칠 대로 지친 어느 날, 그녀는 아들을 데리고 작은 바닷가 마을로 시집을 간다. 그곳에서 어느 날 한 남자가 그날 밤의 남편이 그랬을 법한 뒷모습을 한 채로 걷는 것을 무작정 따라가다가 그녀는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그것은 아무리 힘껏 껴안아도 돌아다봐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뭘 물어도 무슨 말을 해도 절대 돌아보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 피를 나눈 자의 애원하는 소리에도 절대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뒷모습이었습니다.”(59쪽) 그녀가 무엇을 깨달았는지는 옮기지 말자. 그저 이 뒷모습에 도달하기 위해 출발한 소설이라는 것만 말하자. 이 소설에 몇 개의 뒷모습들이 차례로 등장하는 건 그 때문일 것이다. 말하자면 뒷모습이 주인공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 알게 된다. 인간의 뒷모습이 곧 인생의 앞모습이라는 것을.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는 인간은 그래서 타인의 뒷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얼굴을 보려고 허둥대는 것이다. 사람의 뒷모습이 대개는 쓸쓸하다면 그건 인생이 늘 얼굴을 찌푸려서인 거겠지.

우리가 흔히 삶의 진실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순간의 표정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 표정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나. 행복한 가족의 어느 가장이 아내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문득 자살을 감행할 수도 있는 게 삶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나. 그냥 보여줄 수밖에, 그 남자의 뒷모습만을 하염없이 보여줄 수밖에. 비트겐슈타인은 말했지. “세계가 어떻게 있느냐가 신비스러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6.44) <논리-철학 논고>의 후반부다.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들은 스스로를 드러낸다.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6.522) 이 철학자가 반대할지도 모르겠지만, 문학의 언어만큼은 그 ‘스스로 드러남’의 통로가 된다고 할 수 없을까.

그런 소설을 좋아한다. 해석되지 않는 뒷모습을 품고 있는 소설, 인생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들 중 하나를 고요하게 보여주는 소설. 한 사람의 표정들을 모두 모은다고 그 사람의 얼굴이 되지는 않는다. 한 소설이 건드리는 ‘작은 진실’은 독자적인 것이고, 과학이나 철학이 제시하는 ‘큰 진실’(진리)의 한낱 부분들이 아닐 것이다. 전체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들의 세계이니까 소설이란 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소설을 읽으면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진다. 삶의 진실이라는 게 이렇게 미세한 것이구나 싶어 겸손해지고, 내가 아는 건 그 진실의 극히 일부일 뿐이구나 싶어 또 쓸쓸해지는 것이다. 미야모토 테루의 이 아름다운 소설 앞에서 나는 겸손해지고 또 쓸쓸해졌다. ‘순수문학’이라는 이상한 명칭이 이런 소설 앞에서는 조금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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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형철에게 가능한 것들
  •  

     나에게 비평은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아름답게 말하는 일이다.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할 때 나는 절박하다.

    나는 부조리하고 이기적이며 무책임한 사람이다. 많은 상처를 주었고 적은 상처를 받았다.

    이 불균형 덕분에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오로지 나의 삶을 나의 글로 덮어버리기 위해 썼다. 문학이 아니었으면 정처 없었을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이것이다.

    나는 문학을 사랑한다. 문학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어쩔 수가 없다. (‘몰락의 에티카’)  

 

신형철은 단정하고 다정한 문학평론가다. 그가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칭찬의 용법은 과장도 상투도 없이 읽는 이를 열락으로 이끄는, 이를테면, ‘죽고 싶다는 욕망과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욕망이 내전을 벌이는 시를 쓰는 사람에게 이름이야 별 무소용일 것이다. 그는 그저 끊임없이 흩어졌다 모이는 몸, 부단히 죽었다가 살아나는 혼의 이름 없는 주인 같다(‘강정’, 2007)’같은 것이다. 나는, 그가 김민정 시인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쓴 ‘삶의 어느 법정에서건 나는 그녀를 위해 증언할 것이다’같은 선언들 앞에서 들뜬다.  신형철은 예리하며 유려하다. ‘기소와 선고를 위한 문장을 쓰고 나면 나는 거의 고통스럽다. 나는 여전히 한 문장도 두려움 없이 쓰지 못한다’고 말하는 그가 써내는 언어는 불가피하다. 끊임없이 그는 혹독하게 맑은 눈으로 작품의 결을 열고 포착한다. 그의 안내로 한국 문학의 크고 작은 산맥을 등정한 이가 적지 않다. 그가 꿰뚫는 작품의 내면은 정확하고, 이를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참신한 묘사는 적확하다. 작품을 읽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하는 권능이, 그에게는 있다. 권혁웅 평론가는 그를 “지식이 해박하면 문장이 거칠고, 문장이 유려하면 논리가 성글고, 논리가 치밀하면 애정이 결여된 저 비평과 비판의 악무한 속에서 신형철의 글은 단연 빛난다”고 평한다.

그는 서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2005년 봄부터 문학평론을 쓰기 시작해 2007년에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이 되었고 ‘제2의 김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8년에는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를  출간, 8쇄를 찍었다. 평론집으로는 이례적인 기록이다. 현재 그는 세 군데의 대학에서 한국 문학을 강의하며 여전히 평론과 칼럼을 쓰고 있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라고 말하는 이의 이력이다. 

최근 그는 여기에 첫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 출간을 추가했다. 이 책은 그가 2006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쓴 글을 추린 것이다. ‘몰락의 에티카’ 출간 즈음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나온 책을 핑계 삼아 전화를 걸었다. 그는 얼마간 머뭇거리다 다소의 체념을 섞은 목소리로, 그러나 공손하게 “지난번에 못해드렸으니까요… 이번에는 해드려야겠지요?”라고 대답했다. 그의 신중한 글을 오랫동안 읽어온 나는 그러한 망설임마저 어쩐지 그답다고 생각했다. 

 

정문정 기자 tiger@naeil.com 사진 임민철 STUDIO ZIP

  • 하나밖에 없는 것을 만드는 야망

     

    첫 산문집 ‘느낌의 공동체’가 출간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신가요.

    저의 일상은 읽고 쓰는 것이어서, 그걸 어느 정도 정리할 때가 되면 책을 내는 거예요. 감회가 새롭다기보다는 마무리를 잘 했다는 느낌이에요. 앞으로도 계속 두 번째, 세 번째 책을 낼 거라서 일부러 이번 책에 원고를 쓴 연도를 적었어요. 이번 책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쓴 원고를 묶은 것이니 다음에는 또 2010년부터 쓴 원고를 모아야죠.

     

    지금까지 내신 책들의 제목이 굉장히 개성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지으세요? 제목은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걸 짓겠다는 마음으로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는 사람에게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것을 만든다는 야망이 필요한 것이죠. 저는 정말로 제목에 신경을 많이 써요. 제목은 첫 문장이기도 하지만 글을 끝까지 읽고 한 번 더 보게 되니까 마지막 문장이기도 한 거예요. 처음이자 마지막 문장을 무성의하게 쓴다는 건, 글쟁이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라 생각해요.

     

    이 책을 읽고 독자들이 어떤 느낌을 공유하면 좋겠다, 생각하신 것이 있을 텐데요. ‘느낌의 공동체’라는 제목은 이상이고 희망이에요. 책을 통해 제가 느낌의 공동체를 이루었다는 생각은 없어요. 바라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제가 언급했던 책을 손에 쥐신다면 좋겠다는 거고요. 욕심을 더 부리자면, 이 책을 쓰는 중에 제가 가장 솔직해졌을 때 전하고 싶었던 감정이 슬픔인데요. 슬픔은 인간의 근원적 감정인 것 같고, 슬픔처럼 솔직하기 어려운 감정도 없는 것 같고, 슬픔처럼 공감하기 어려운 감정도 없는 것 같고요. 가장 나누기 힘든 이 감정이 조금이라도 전달된다면 제일 어려운 걸 한 거니까 보람 있을 것 같아요. 

     

    글마다 문체가 다 달라요. 평하시는 작품마다 푹 빠졌다 나와서 글을 쓴다는 느낌을 받는데요.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요. 좋아하면 그렇게 돼요. 문장 스타일이 좋으면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되고요. 문태준 시인에 대해 쓸 때도 그 시인의 말투를 기분 좋게 따라가며 썼어요. 평론은 논리적으로 쓰기 위해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게 되지만 산문은 그때그때 받은 느낌을 받아 그대로 쓰는 거니까요. 그런 글은 설득력은 다소 약하더라도 작품을 읽으며 제가 느낀 감정은 독자에게 전달이 더 잘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면 분명히 과장하는 수사가 아니고 담백한데도 읽다가 몸이 달아오를 정도로 뜨겁고 아름다운 칭찬이 많아요. 칭찬을 어떻게 그렇게 기발하게 하세요? 저는 잊을 수 없는 방식으로 칭찬하고 싶어요. 저는 그런 방식으로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흠을 잡을 땐 특별한 능력이 필요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한 사람의 허물을 보고 한 목소리로 비난하기도 할 만큼 단점은 바로 눈에 보이니까요. 그런데 좋은 칭찬은 상대를 깊고 정확히 알지 않으면 하기 힘들어요. 설득력이 없으면 과장으로 보이고 호들갑을 떠는 것 같죠. 뛰어난 비평가들은 정확해요. 벤야민이 보들레르를 칭찬하거나 김현이 이청준을 칭찬하는 문장은 정확하지요. 저는 이것이 뛰어난 능력이라 생각해요. 제가 누구를 칭찬한 문장이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고 공유되면 좋겠어요. 가장 정확하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방식으로 칭찬을 함으로써 한 작품을 그 비평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할 수 없게 하고 싶어요.

     

    비판을 하실 때는 굉장히 조심스러워 보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내가 아는 바와 믿는 바를 쓰겠다’는 전제를 시작하고 이야기를 하시곤 합니다. 그런 모습이 과도한 자기 검열로 보일 때도 있습니다.  자기 검열해요. 기본적으로, 저는 비판하고 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비판하는 데 쓸 시간이 없어요. 제가 쓸 글은 한정되어 있어요. 비판해야 할 때는 나는 과연 이 비판에서 자유로운가, 라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남에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누구나 시행착오를 겪고 결함이 있잖아요. 비판하는 문장을 쓰는 순간 그 말이 제게 돌아오는 것 같아서 힘들어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는 나는 올바르고 정의로워서 이런 문장을 쓰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죠.

     

    하지만 평론가의 주요한 업 중 하나가 비판이기도 한데요. 비판적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존중해요. 저도 전혀 안 하는 건 아니고요. 신인 작가에게는 잘 안 하지만 고은, 신경림 같은 어른께는 가끔 해요. 그분들은 제가 비판해도 별로 상처 받으실 것 같지 않아서요. 어쨌든 저는 무엇보다 제가 괴로운 글을 쓰고 싶지 않아요. 저는 사명감이나, 옳고 정의로운 자리에 서서 평가를 하기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실

     

    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강의하고 계신데요.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강조하는 선생님인지 궁금합니다. 학생을 가르치고 있지만,‘멘토’ 같은 역할을 하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저도 아직 시행착오를 하며 살고 있어서요.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문학을 통해 배우라는 것이죠. 저는 가르칠 자격이 없지만, 좋은 책은 해줄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해요. 예를 들어, 저는 ‘무엇은 무엇이다’같이 용감하게 정의하거나 ‘무엇 해라’하고 명령하는 제목 좋아하지 않고요. 한 단어로 된 제목 좋아하지 않아요. 더 잘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성의 없게 보여요. 두 어절이나 세 어절로 된 제목을 좋아하는데 두 어절의 제목은 두 단어만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해놓은 것과 하고 싶었던 것의 간격을 보여 줄 수 있어서 화두를 던지기 좋은 것 같고, 세 어절은 한국어의 리듬이 가장 잘 살 수 있는 것 같이 느껴져요.

     

    선생님이 대학 때는 어떤 학생이셨어요? 노래패 활동한 것밖엔 없어요. 아마추어 수준으로 작사랑 작곡, 노래하면서 1학년 때부터 대학원 때까지 살다시피 했어요. 문학이야 평생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책 읽는 것이 생활이었고요. 문학을 평생 하겠다고 확신한 이유는, 제일 좋아하고 제일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였어요. 잘할 자신 없이 좋아만 했다면 안 했을 거예요. 짝사랑은 슬픈 거잖아요. 조금씩 깊이 바꿀 수 있는 일이 보람 있고 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했고, 제 자신의 한계와 역량에 비춰봤을 때 이 일이나마 제일 잘할 수 있을 것 같으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선생님 삶에 비추어봤을 때, 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해주세요. 문학 작품을 읽어낼 수 있는 깊이가 있어야 할 텐데, 저는 그 깊이는 살아온 체험에서 나오는 것이 제일 크다고 생각해요. 너무나 평탄하게 자기 삶을 꾸려온 사람이라면 문학 작품을 읽을 때 등장인물의 상황에 공감할 수 있는 여지가 적어지겠죠. 그런 사람일수록 이론에 과도하게 의존할 것이고요. 저도 제가 살아온 한계 안에서밖에 못 봐요. 문학의 한 측면만 간신히 잡고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평론가는 많을수록 좋은 거예요. 그런데 저는 대학생에게 어떻게 살지 조언하라면 해줄 말이 없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의 문제에 대해서는, 누구나 시행착오를 거치고 상처를 주고 또 받고 실수를 하면서 밖에 배울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그나마 시행착오를 덜 해보자고 책을 읽어서 누군가 상처받은 기록을 보고 인생에 대해 느끼겠지만 그건 직접 경험한 것과 다르잖아요.

     

    그렇다면 선생님은 인생에서 난관을 겪을 때 상처에 열려 있으려 노력하는 편이신가요? 첫 책 머리말에 ‘내가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으면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은 내가 문학을 사랑한다는 것’이라 썼어요. ‘이건 정말 제 진심이에요’, 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이 많지가 않아요. 저는 ‘여러분,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없어요. ‘여러분 뜻대로 안 될 겁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저는 비관적이에요. 아무리 노력해도 분명히 상처를 받을 거고, 그때 그 난관을 아주 이기적인 방식으로 돌파하려고 할 거예요. 그리고 결국 돌파하겠죠. 인간이니까. 나중에 아프게 그때를 돌아보게 될 것인데 그때, 뭔가를 배울 거예요. 그 순간에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한 단계 올라가는 거죠.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아주 조금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내가 이렇게 졸렬한 사람이구나 깨달으면서 점점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생기는 거죠. 그때가 되면 아름답고 정의로운 문장은 쓸 수 없고 내가 겪었던 것들을 돌아볼 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장이 나올 테지요. 그런 경험 거치면서 쓸 수 있는 문장들이 쌓여서 글쟁이가 되겠고요. 저도 아직 멀었어요. 4,50대가 되면 더 많이 보이겠죠.

     

    지금 가장 집중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미약하나마 독자와 작가를 계속 연결해주고 싶어요. 작가에게 힘을 주는 좋은 글을 쓰고, 제가 가진 생각을 탐구하면서 밀고 나가는 것을 우선으로 하면서요. 다음에 나올 책의 가제도 정했는데요, ‘가능한 불가능’이에요. 3,4년 뒤에 2번째 평론집을 낼 텐데, 문학이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믿고 밀어붙이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첫 평론집의 주제와 이어지는 말인데 이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것이 좋을지 생각 중이에요.  또 앞으로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연작 비평을 해보려 해요. 주제가 ‘항의’거든요. 좋은 문학 작품들은 다 세계질서에 저항하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내용으로 비평을 쓰려고 준비 중이에요.

     

    글을 쓸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쓸 수 있는 단어는 줄어들고 할 수 없는 말은 많아지잖아요. 그럼에도 계속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글을 쓰는 존재들은, 글에 대해 가장 많이 회의하지만 가장 많이 의존하고 위안받는 사람들이에요. 저도 마찬가지고요. 글만큼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게 없거든요. 체험이 있으니까 계속하는 거죠. 인간은 내버려두면 알아서 행복하게 살아가요. 행복한 길을 찾아가는 게 인간 같아요. 지금 저는 행복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런 거죠… 그렇지 않을까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 말은 동의를 구하는 것 같기도 했고 확신하는 것 같기도 했고 의심하거나 다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단정하는 말마다 조심스러워 하며 ‘나도 아직 멀었다’’나는 할 수 없다’같이 전반적으로나 부분적으로 한계를 규정하는 문장을 사용하는 것이 습관인 것 같은 이 평론가는 불가능의 가능성만을 신뢰한다. 신형철에게 가능한 것은 이토록 도저한 언어들에 대해 말하는 일이다.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다

    Shin Hyung Cheol

     

     

    사랑할수록 문학과 더 많이 싸우게 된다.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진다.

    나는 계속 질 것이다. (‘느낌의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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