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접속사는 아프다 

 

 

 

                                                        카르마

 

 

 

만약에 그대는 텅빈 공간에 들어온 하나의 단문, 그렇게 부르자

홀연히 불러본 이름처럼 길게 그림자 드리운

쓸쓸한 것들마다 돌아보는 저녁 햇살, 그대를 그렇게 불러보자

보이는 것마다 이름이 있는데

부를 수 없는 것도 이름이 있는데 

 

숨구멍마다 들어오는 짧은 호흡 이승에서 밀려가듯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간절히 나부끼듯  

펼쳐진 나의 손은 너를 향한 접속사, 접속사라 부르자

비현실적인 만약에를 아프도록 뒤따르는

계절이 바뀌는 지점마다 펼쳐지는 손

 

만약에 세월이 흘러서 타고 남은 시간처럼 

짓다 만 꿈들이 상처마다 닿았던 흔적처럼

여기저기 꽃 손 삐져나오는 것들마다 접속사라 부르자

삐딱한 생의 열망이 한참동안 떨리다가

몸안에서 잠들지 못하고 씨앗처럼 움트는 것들을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너는 고요하다

 

 

                               카르마

 

 

 

하나를 밀어 닫으면 또 다른 하나가

빠끔이 눈을 뜨는 밤하늘

밤새도록 너을 바라본다.  

한쪽 눈으로 지켜보는 눈들이

멀리서 촛점을 맞추는 인기척이

고요하다

 

너는 수수만년을 달려와 꽂히는 예리한 빛

너는 참혹한 시간마저 한 방울로 떨어지는 눈물

그걸 다 받으려고 펄럭이는 심장이

창문을 두드리는 빗방울이 

숨넘어가듯 창턱을 넘는 바람이

고요하다.

 

네게로 길을 여는 눈맞춤이란

네게로 소멸하는 영혼의 입맞춤이란

네게로 뛰어드는 우연한 발맞춤이란

한치의 오차없는 각도의

예리한 칼날처럼

고요하다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별하는 얼굴

 

 

               카르마

 

 

그의 넘치는 얼굴,

내가 모르는 표정을 짓는다

 

얼굴 어딘가에 만지작거리다가 

찡그려진 눈속으로 빠져든 하루치의 시간

 

코에서 눈으로, 눈에서 이마로, 이마에서 머리카락으로

하루종일 따라가도 무표정한 세상이 귓속으로 입속으로

모르는 사람들의 얼굴처럼 다가와

물고기처럼 헤엄치는 것들

 

얼굴은 말이 없고, 커튼을 내리고, 돌아눕고

나는 어둠같은 사탕을 깨물어

무거운 어둠의 맛이 입안에 헝건할 때  

 

내가 들고 있을께

꽃이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바람이 나풀 나풀 사그라지고

나무도 별도 너도 사라지는 어둠속에서

내가 그 얼굴 들고 있을께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같은 종류의 영혼들

 

 

                                 카르마

 

 

짙푸른 산림이 사방으로 펼쳐진 이부자락처럼

모래알갱이 사막을 이루어 끝없는 경계처럼

끝없이 열려진 영혼의 막힘없으나 여유로운

짐승들은 어디 서로 어슬렁거리다가

어둠처럼 깃드는 고독한 정신

 

혹한의 계절마다 나는 너를 너는 나를 방목하고

유목민으로 살아가는 우리, 아득한 산맥으로

초원과 사막에, 호수와 강가에, 기억의 잔재들 그림자처럼

여기 저기 던져두고 떠나는 구름의, 그리고 너와 나의 생

몹쓸 질병에 걸린 얼굴마다 하나의 영혼으로 견디는

알타이 산맥과 시베리아의 빙한의 세계

사하라 사막과 카자흐스탄의 초원

바이칼 호수와 북방대륙을 떠돌다 건너온

차디찬 게니우스의

검은 얼굴을 던지는 태양 거기쯤

찡그리며 올려다볼 즈음

 

어디로든 가리라

맨발로 그리고 맨주먹으로

같은 종류의 영혼아, 심장, 핏줄기 순환처럼

 

2012.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서워 죽겠지, 내가 무슨 말을 폭로할지."

"어짜피, 미친 년 취급할텐데 무서워 할게 뭐 있어? 맘대로 해."

"정말 맘대로해? 정말이지? 난 숙이도 만날 수 있어 당신 와이프 말이야" 아델은 눈꼬리를 올렸다.

"그렇게 해라, 나는 네 남편을 만나주마, 롯데백화점으로 당장에 갈테니." 나는 될 수 있는 한 조용히 말했다.

아델을 이제 그만 만나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 만나자고 했던 것 뿐이었다.

아델은 나에 대해서 꽤 많이 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그렇지는 않다. 내 삶은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서로의 영역이상을 알지 못하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모른다. 나의 삶은 집단과의 만남으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개별과의 만남이었다. 따라서 나를 중심으로 각각의 점이 나라는 점과 만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점 사이에 선분이 있을리 없었고 그것은 굳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협박은 못견딜만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무모한 짓을 하는 것은 나도 별로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설혹 숙을 만난다고 해도 더 이상 멀어질 것도 없는 숙이었다.

우리는 서로가 이만큼만의 공간을 확보해주기로 무언의 약속을 하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사생활을 그녀는 나의 사생활을 모르는 척 넘어가 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것이 아내의 미덕이고, 남편의 관용이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고, 그녀는 조강지처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도 더이상 잃을 것도 없는 것이다. 그녀는 그자리를 충실히 지켜줄 것이고, 나는 나의 삶, 지금까지의 삶이 그대로 유지 될 것이다. 아델이든, 이사벨이든, 또는 아나스타샤든, 그리고 다른 누구이든. 모든 점은 그자리에서 그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아델, 바라건데 더이상 어리석게 굴지 말아요. 좀 더 현명했어야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에요, 자신을 배려하듯이 나의 상태도 배려해주길 바래요. 누가 이기적인지 누가 덜 배려하는지 자로 잴수도 없는 노릇이니, 현명이라는 것은 당신의 기준이겠군요."

 

충분히 상상 할 수 있지만, 그 사건이후 아델은 자신의 감수성을 겹겹의 방어막으로 덮었다. 그 결과 이제는 더이상 나의 무관심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또 그 연장선상에서, 모텔의 엘리베이터에서 서로를 어색하게 바라보았듯이, 서로 어색한 남남을 바라보듯이 무덤덤하게 나를 바라보곤 하거나 그렇지 않았다면 어쩌면 격렬한 말다툼을 벌일 수도 있다. 가장 부드러운 말로 그녀를 모욕했을 때 그녀는 내내 기분 상한 티를 내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상처받은 얼굴로 다른 먼 곳을 바라보았고 내 손길을 피하곤 했다. 이러한 모습은 멀리서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하찮은 것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죽고 싶을 정도로 심각한 것이다. 그녀나 나나 코끼리 가죽을 가진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나약하고 얇은 피부 속에 겨우 우리의 자의식을 감추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델은 나에게서 잠시 감사하는 마음도 느꼈겠지만, 우리가 나눈 시간에 대해서 과장하지도 않았다. 이제 그녀의 의지가 얼마나 강하든 간에 오만한 그녀의 말투와 악명높은 복수심으로 나에 대한 복수의 칼날을 갈 것이었다. 나의 선택은 그녀에게 베어지느냐 아니면 몇가지 그녀가 쥐고 있는 목록에서 심각한 것들을 빼내느냐하는 것이었다. 가령, 내가 아델을 만나면서 동시에 이사벨을 만나거나 아나스타샤를 만났다고 아델이 믿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아델은 식탁의 한쪽끝을 만지면서 나를 바라 보았다. 타협의 얼굴이다. 무서워 하지 않아도 되나. 기회주의적인 노선을 잠시 띠기로 했다.

 

" 내가 바란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을 뿐이야, 내 결정에 대해서 인정하고 받아들여주길 바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