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침대 위에서 이따금 우울해진다 - UNTRUE
웬즈데이 마틴 지음, 엄성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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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즈데이 마틴, <나는 침대 위에서 가끔 우울해진다>

이 책은 여성의 성(性)과 욕망에 대해서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솔직히 '성'을 주제로 한 책 치고 비교적 잘 읽히지 않는 책이었다. 끊임없이 반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성적 자주성을 이야기하기 위해 꼭 불륜이 긍정되어야 하는 걸까?

인간이 가진 많고 많은 욕망 중에 '성'이 그토록 절대적인 위치를 가지는 걸까?

평소 '폴리아모리(다자 연애) = 개소리'라고 생각해왔던 나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나는 너무나 보수적인 걸까?

여성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시점에 꽉 막힌 사람이 되는 걸까?

·여성들이 성적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서도 정말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성적 자주성을 갖지 못하고서도 진정한 자기결정권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여성들은 특정 이데올로기들을 지금처럼 계속 별생각 없이 '자연스럽고 옳은' 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우리가 한 번씩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우리 사회는 왜 불륜을 저지른 남자 보다 불륜을 저지른 여자에게 더 많은 비난을 쏟아내는가.

정말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성욕이 적고, 결혼생활이 불행할 때만 바람을 피우며, 불륜을 통해 성적인 만족보다 정서적 연결감을 추구하는가?

정말로 여성은 일부일처제를 선호하며, 결혼을 통해 남성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 하는가?

저자는 각종 인문학적 연구, 동물 연구, 실제 주변인들의 인터뷰 사례를 예시로 들며 여성의 성에 관해 다양한 의문들을 던지고 이야기해 나간다.

'그가 거절하면 어쩌지?', '나를 매춘부 같은 여자로 생각하면 어쩌지?', '내가 진짜 매춘부 같은 여자라면 어쩌지?' 우리는 지금 생태학적 해방 상태에서 살고 있지만, 이데올로기적 해방(비난과 판단과 자기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상태에서 산다는 건 보다 복잡하고 힘든 일이다. 여성과 남성의 성 문제에 대한 이중 잣대, 여성의 성욕에 대한 잘못된 인식 등이 팽배한 문화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여자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불편한 느낌을 가지는데, 우리가 진정한 '이데올로기적 해방 상태'에 도달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꼭 이렇게까지 예시를 들어야 하나? 인간이 욕망밖에 모르는 짐승인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저자가 왜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근래 들어 페미니즘에 대한 담론이 활성화되면서 급진적이고 과격한 페미니스트들의 언행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웬즈데이 마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그런 현상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당신을 자유롭게 해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당신을 화나게 할 것이다.

 

이 책의 표지에 쓰여있는 두 문장이 그녀의 글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녀의 모든 의견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조금은 불편할지라도, 조금은 어이가 없을지라도 우리는 계속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 해결점을 찾아나가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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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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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녹아버린 막대 아이스크림에서 헛헛한 마음이 느껴진다.

무슨 맛일지 상상도 잘되지 않는 새파란 아이스크림.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라는 제목과 참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걸음을 맞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이 소진되고 마음 한구석엔 구멍이 뻥 뚫려버립니다. 온전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누구의 위로를 받아도 위로가 되지 않죠.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외로움이 덮쳐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해주었죠.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좀 더 힘내. 너는 충분히 강하니까 해낼 수 있어."

분명히 위로를 건네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버겁기만 했습니다. 특별히 강해지고 싶다거나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이 더 필요했던 건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생각해보면 삶의 방향과 모양은 사람마다 다른데, 제가 나아갈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묻고, 비어 있는 부분을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조언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위로가 더 크게 와닿는다는 것, 그저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작가 전승환은 그래서 부러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가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문장들을 골라 소개해준다.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걸음 떨어져 그렇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도 이 책을 읽었는데. 심지어 내 책장에 고이고이 소장해두고 있는 책인데 이 문장이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읽을 적엔 분명 아, 하고 감탄했을 텐데.

작가 전승환이 소개하는 문장들 중엔 내가 좋아하는 문장도 있고, 처음 만나는 문장도 있고, 이렇듯 그저 스쳐 지나갔을 법한 문장들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내가 읽었던 책을 바라보게도 되고, 또 깊은 공감을 얻게도 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정호승 시인, <수선화에게> -

 

그렇게 내 마음과 비슷한 문장들과 자꾸만 마주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과거에 비해 상당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안이 점점 커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과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말라고, 미래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지요.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들을 보다 보면 인간에게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는 차가운 비난의 말들이,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추악한 말들이 가득해서다.

칭찬은 아끼고, 비난과 채찍질은 당연해진 사람들.

이런 환경 속에서 개개인은 점점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당신이 가진 외로움을

부디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기를.

                 

바닥 모를 수렁에 빠져 홀로 내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당신처럼 외로워하는 이가 있음을,

아니, 실은 세상 모든 이들이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언제나 잊지 않기를.

                   

그리하여 그 외로움을

함께 견뎌 나갈 수 있기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기에.

 

 그래서 그가 전하는 이 위로의 말들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어딘가에는 이렇게, 누군가의 안위를 생각하고 그것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따뜻한 위로가 된다.

모든 걸음에 반드시 목적지가 있어야 할까?

인생도 산책하듯 그냥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이애경,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

 

이 책은 나도 읽고 따로 리뷰도 했던 책인데, 나는 이 문장과 처음 만난 기분이다.

아마도 그때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이 문장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 이 문장은 참 뭉클하게 느껴진다.

은연중에 내 인생의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문장처럼 아마도 지금은 그냥, 산책을 하듯 걸어나가야 할 시간인지도.

이 밖에도 소개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이 참 많은데, 이러다가는 책 한 권을 다 옮길 기세라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다른 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위로를 옮겨본다.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사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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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 시절 소설Q
금희 지음 / 창비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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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진 시절>은 주인공 상아가 우연히 오래전 가깝게 지냈던 정숙을 만나면서 과거 천진(天津)에 살던 시절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녀가 회상하는 '천진 시절'은, 1998년 등소평 이래 개혁개방에 나섰던 중국이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던 시기로, 그 시기를 살아낸 20대 청춘들의 삶과 욕망을 대변한다. (금희는 중국 지린성 출신의 조선족 작가다.)

특히 주인공 상아와 정숙이 변화하는 모습을 통해 당대 여성들의 시대 변화에 따른 불안감과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정작 그 시절이 그물에 걸려 올라오는 정어리 떼처럼 반짝반짝 들뛰기 시작하자 나는 깜짝 놀랐다. 무의식이라는 창고 속에서 진작 한 줌의 재로 사그라졌을 거라 여겼던 기억이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가슴 뜨거웠던 시절이 있었고 나의 청춘이 꽤 드라마틱한 시대 속에서 연출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다. 정숙을 다시 만나기 전에는 전혀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마냥 반짝반짝 아름답게 빛나기만 하는 추억의 순간들이 아니다.

세속적인 욕망과 배신, 좌절도 함께 뒤따른다.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에덴에 남겨진 단 한명의 남자와 단 한명의 여자 같은 경우,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 없고 절대적 외로움과 고독 속에서 유일하게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낯익은 상대와 함께 함으로 그에게서 느끼는 안정감과 친밀감, 의지하고 싶은 감정...... 이런 것도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상아와 무군의 시작은 애초에 상아의 탈향과 취업에 대한 욕구로 시작되었기에, 그 끝이 이미 예견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 역시 "처음부터 내가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으니까"라고 되뇌며 끊임없이 마음의 거리를 두었으니까.

그렇기에 더더욱 춘란이나 미스신의 삶을 지켜보며 쉬이 흔들렸을 것이다.

나는 삶의 어떤 변화, 질적으로 더 나은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내 욕망이 정당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욕망이 꿈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그때는 두 가지가 결국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걸 위해서 사는 삶이라면 오히려 춘란이나 미스신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 그녀들은 욕망 앞에서 정직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그녀가 욕망을 좇아 새로이 시작한 삶이 그녀를 더 행복하게 이끌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녀가 다시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같은 선택을 했으리라는 말속에서 적어도 그녀 스스로 선택한 삶에 후회는 없어 보인다.

그녀는 약하게 떨고 있었다. 나도 그녀를 마주 안았다. 될수록 다정하고 친근하게. 그녀의 팔이 내 등에서 떨어져 나갈 때 가슴이 아려왔다. 우리는 왜 좀 더 일찍 이런 시간을 가지지 못했던 걸까.

 

그러나 천진에서 보낸 시절은 그녀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흔을 남겼던 것 같다.

그러니 부러 꺼내보지 않고 한켠에 묻어 두었던 것이 아닐까.

정숙을 만나기 전, 설레면서도 복잡했던 마음도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소설 <천진 시절>은 1998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지금 시대 상황과 비교해봐도 크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의 청춘들 역시 세속적인 욕망을 품고 있으며, 그것을 위해서 타인을 이용하기도 배신하기도 하니까.

상아나 정숙의 선택을 고운 시선으로 바라보지도 못하지만, 딱히 비난하기도 힘든 이유다.

그렇다고 그들의 선택이 딱히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지도 않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삶은 어쩌면 안쓰럽기도 하다.

모두들 자기 나름의 욕망을 좇아 살아가지만, 세상은 누구에게나 호락호락하지는 않으므로.

현실은 그저 버석버석할 뿐이다.

정숙의 현재 모습과 과거의 시절이 교차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방식이 무척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어느 한 시절을 통해 그려낸 삶의 모습도 무척 생생하게 다가왔다.

20대 청춘의 모습을 마냥 뜨겁고, 힘차게, 행복하게만 그려내지 않았다는 점도 마음에 든다.

어쩌면 이게 더 현실적인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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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똥
유은실 지음, 박세영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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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똥.

제목을 듣자마자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이 떠올랐다.

아니나 다를까. <송아지똥>은 저자 유은실이 권정생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는 해를 맞아 강아지똥을 오마주 하여 쓴 이야기라고 한다.

그렇다면 강아지똥과 송아지똥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저자 유은실은 강아지똥을 읽어 주던 부모가 아이에게 '똥도 이렇게 쓸모가 있는데 너는 공부를 못하니 똥보다 못하다'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이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모두가 쓸모 있는 존재이니 하나같이 소중하다는 권정생 선생님의 메시지는 시간이 흐르며 쓸모가 없는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뜻으로 변질되어 왔나 보다.

강아지똥이 나온 지 50년이 지난 지금, 유은실은 권정생 선생님의 본 뜻을 다시 이어받아 비슷한 듯, 또 다른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느덧 하루를 보냈다.
세상은 멋졌다.
노을, 밤, 별, 달, 아침, 구름.......
놀라운 걸로 가득했다.
제일 좋은 건 친구다. 내 친구 평이와 리듬감.

 

그런데 말이야, 기적은 아니지만 말이야. 나는 봄비가 마음에 들어.
빗소리, 비 냄새,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빗물의 감촉....... 멋져.
처음으로 하늘과 땅을 봤을 때처럼."

 

'똥또로동'이 바라보는 생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길어야 한 계절'을 살 수밖에 없는 똥생이기에 그럴 수도 있겠다.

"똥또로동, 송아지는 싸고 갔을지 몰라도 말이야. 너는 귀하게 태어난 거야. 마당법 제1조에도 나와 있는걸.
'이 마당에서 태어난 모든 존재는 귀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이렇게."

 

'똥또로동'은 전설의 강아지똥처럼 귀하게 쓰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멘트에서 태어난 똥은 땅으로 스며들 수가 없다.

그의 바람은 과연 이루어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의 생은 귀하지 않은 것일까?

곱씹어 읽을수록 마음이 찡해졌다.

무언가를 이루어내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괜찮다고.

어딘가에 쓰이지 않아도 귀한 존재라고.

너는 존재 그 자체로도 참 소중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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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와 오토바이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1
케이트 호플러 지음, 사라 저코비 그림, 이순영 옮김 / 북극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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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토는 조용한 밀밭에 살고 있으며, 한 번도 어디론가 떠나본 적이 없다.

 

그러나 토토에겐 친구 슈슈 할아버지가 있다.

멋진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모험가이자 이야기꾼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늘 토토에게 그가 만났던 세상에 대해 들려준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토토도 그곳에 함께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용기만 있다면 정말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단다.

 낯선 곳도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지."

 

그렇게 할아버를 통해 세상과 마주하던 토토에게 어느 날 슬픈 소식이 전해진다.

 

토토의 밀밭은 다시 조용해졌지요.

이제 아무 이야기도 들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토토는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물려 받게 된다.

 

 

 

여름이 왔어요. 모든 것이 자라고 꽃을 피웠어요. 길가에도 꽃들이 활짝 피었지요.

하지만 토토와 오토바이는 현관에 그대로 가만히 있었어요.

 

토토는 과연 오토바이를 타고 떠날 수 있을까?

할아버지는 왜 토토에게 오토바이를 준 걸까?

이 책의 줄거리를 보고 아들이 떠올랐었다.

겁도 많고 조심성도 많은 아들.

그래서 또래 친구들에 비해 그네를 혼자 탄 시기도, 미끄럼틀을 혼자 탄 시기도 늦었더랬다.

그래도 계속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부딪히다 보니 지금은 많이 성장했다.

무엇이든 자꾸만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또 일어선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용기를 낸다는 것은 언제나 처음이 어려운 법.

그래서 이 책을 꼭 아들과 함께 읽고 싶었다.

토토가 과연 어떻게 변화해 나갈지.

용기가 갖는 힘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토토와 오토바이」에는 참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 용기, 성장, 그리움.

그리고 밝고 따뜻한 색채가 아름답게 펼쳐지며 그 모든 것들을 정말 당연한 것으로 만들어준다.

너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세상은 이토록 아름답다고.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그림 속에 펼쳐진 무지개를 보며 아들은 몇번이고 감탄을 했다.

"와아!! 예쁘다!!"

"엄마엄마!! 색깔 봐!!"

아들의 눈에 비친 세상이 그렇게 아름다웠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마음 속에 이미 용기가 잔뜩 부풀어 오르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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