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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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찌니주의보 #창비교환독서



평균 연령 78세의 산골 마을에 성진과 혜진이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주민들은 두 사람 이름의 끝 글자를 따 ‘찌니들’이라 부른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한바탕 소란이 인다. 레즈비언이라는 단어조차 익숙하지 않은 주민들은 그들을 ‘레지’라 칭하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사실 나는 두 사람이 마을에 녹아드는 과정이 따뜻하게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내 예상과 달리 거침없이 전개된다. 주민들은 두 사람에게 무례한 질문을 던지기 일쑤고, 가깝게 지냈던 할머니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찌니들을 외면한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받는 상처가 고스란히 전해져 마음이 무거워진다.

 

찌니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은 쑤언이다. 베트남에서 시집을 온 그녀 역시 한때 이곳에서 이방인이었기에 아마도 찌니들의 입장에 설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서로 다른 이유로 이방인이 되었지만, 그 경험이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손을 내밀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초반에는 성소수자들이 으레 겪을 법한 상황들이 날것 그대로 전해져 꽤 불편함을 느꼈다. 그런데도 책장을 계속 넘길 수 있었던 건 그 상황들이 무겁게만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물 개개인의 녹록지 않은 삶이 하나씩 드러나며 처음에는 그저 무례하게만 보였던 사람들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찌니주의보』가 인상적인 이유는 이 과정을 미화하지 않는 데에 있다. 인물들은 꼭 우리 주변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미운 구석을 하나씩 가지고 있고, 주민들이 찌니들에게 마음을 여는 과정 역시 순수한 이해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서로 도움을 주고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관계에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그렇게 그들은 서로의 다름을 품은 채 공존하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찌니주의보』는 그 과정을 몹시 유쾌하게 그려낸다. 전라도 사투리가 생생한 입말로 표현되어 읽는 재미 또한 있다. 불편하고 씁쓸한 순간들이 분명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 피식 웃게 되는 장면들도 있다.

 

삶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정지아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는 또 어떤 이들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 궁금해진다.



*본 서평은 창비 교환독서 이벤트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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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청
차일린 지음 / 아작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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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서평단 모집 때부터 워낙 강렬한 경고 문구를 내걸었던 터라, 사실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쳤다. 실제로 첫 번째 단편인 <손>을 읽을 때는 다소 거부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조금 더 집중하게 됐다. 소재가 자극적일 뿐,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가 자극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인간의 다양한 욕망을 다룬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상대방에게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이었다. 이 욕망이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난 작품이 <손>이다. 상대를 남김없이 먹어 치움으로써 온전히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욕망과 그 윤리적인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욕망은 표제작 <환상청>에서도 드러난다. 이 작품에서는 상대와 온전히 공명하고 싶은 욕망이 피학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물감을 먹는 화가>의 주인공 역시 상대의 “폐허를 발굴해 캐내기보다는 그 위에 나무를 심어 숲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캐낼 수 없도록.”

 

유일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나 갖고 있는 것 아닐까. 다만 그것을 어디까지 드러내고,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낯설다고 느끼는 것은 욕망 그 자체보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자신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거센 비난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자연스러운 욕망이고, 어디서부터가 비뚤어진 욕망일까. 그 경계 역시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구태여 이런 식으로 표현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작가가 담아내고자 한 이야기에 비해 소재의 자극성이 도드라져 작품의 본질을 가리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이해하지만, 그것을 전달하기 위한 방식에는 분명히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이 궁금해진다. 자극적인 소재에 가려졌던 작가의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만나보고 싶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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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공원, 농구하는 소녀 ㅣ 여행그림책
천선란 지음, 이주향 그림 / 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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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제공



『빵, 공원, 농구하는 소녀』는 천선란 작가가 한 달간 독일에 머물며 쓴 에세이다.

 

새벽 네 시, 저자는 어둠 속에서 눈을 떠 온전히 나로서만 존재하는 시간에 직면한다. 직업인으로의 삶, 딸로서의 삶을 최우선으로 두느라 작가가 “삭제”해버린 시간이다. 작가는 그 시간을 ‘고독한 적막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어느 날, 그 시간에 갇혀있다 결단을 내린다. 독일 뮌헨으로 떠나겠다고.

 

그녀에게는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간병을 하다 보면 우선순위가 환자에게 맞춰지고, 내 삶은 뒤로 밀려난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우울감과 불안감도 찾아온다. 가족을 두고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사실만으로 죄책감이 뒤따르기도 한다. 그 무거운 마음을 늘 안고 산다는 것은 아마도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그러니 작가가 가족에게서 떨어져 독일에 머문 한 달은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오래도록 씹어야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빵,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만큼 이리저리 뻗어있는 공원. 그곳에서의 일상에 가슴이 벅찬 이유는 모처럼 마음에 찾아든 여유로움 덕분이었으리라.

 

나는 그런 작가의 마음에 공감되어 몇 번이고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주향 일러스트레이터가 그린 따스한 삽화까지 더해져 읽는 내내 위로받는 기분도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바쁘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고.

그러니 당신 마음 누일 곳 한 군데쯤 만들어 놓으라고.

 

작중 등장하는 소녀처럼 골대에 골을 넣지 못하면 어떤가. 삶이란 게 늘 정확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러니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공을 던질 수 있다면 그뿐이다. 그 정도 여유는 있어야 우리는 또 살아갈 힘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 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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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26.가을호 - 91호
나가시마 슌이치로 외 지음 / 나비클럽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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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미스터리 가을호는 고(故)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님 특집으로 문을 열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기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 여전히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작가님은 1985년 등단한 이래 2026년까지 106권의 작품을 발표했다고 한다. 연평균 약 2.4권의 책을 발표한 셈이다. 그런 그에게도 약 10여 년의 무명 기간이 있었다고 하니, 얼마나 끈기 있게 작품을 써오신 건지 짐작이 간다. 거의 반평생 동안 글을 써오신 만큼 추리소설에 대한 그의 애정은 얼마나 깊었을까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 특집에 이어서는 신인상을 수상한 두 작품이 소개되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작가의 이야기를 지나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번 신인상 수상작은 서로 결이 달라서 더욱 눈길이 갔다. 본격미스터리를 표방하는 김지훈 작가와 사회미스터리를 표방하는 류지원 작가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나는 미스터리 장르에 대해 잘 모른다. 하지만 두 작품을 연달아 읽고 나니 같은 미스터리 장르 안에서도 어디에 초점을 두느냐에 따라 꽤 다른 분위기의 글이 탄생한다는 것이 몹시 흥미로웠다.

 

두 작품 모두 재미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김지훈 작가의 『마치 현실의 특수설정과도 같은』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은 추리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주어진 사건을 추리하는 이야기로, 곳곳에 복선이 치밀하게 깔려있다. 처음에는 그저 아무렇게나 산재해 있는 것처럼 보이던 단서들이 후반부에서 차곡차곡 회수되는 지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아무래도 난 본격미스터리 취향인가 보다)

 

김지훈 작가는 ‘추리소설의 낭만은 나날의 평범한 오브제들을 기발한 논리로 재발견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데 있다’고 했는데, 그 말에 공감이 됐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이나 말 한마디가 사건을 풀어내는 중요한 단서였다는 걸 깨닫는 순간, 추리소설의 쾌감은 배가되는 것 같다.

 

이번 계간미스터리 가을호를 읽으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대해 조금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특히 후반부에 무경 작가님이 연재하신 <추리소설은 기억한다-추리소설 속의 기억과 현실의 기억>은 나 역시 한 번쯤 의문을 가졌던 부분을 다루고 있어 몹시 공감하며 읽었다.

 

계간미스터리 서평단 활동도 이제 겨울호만을 남겨두고 있다. 한 권 한 권 읽어가며 이제야 조금씩 이 장르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을 앞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겨울호에서는 또 어떤 작품을 만나게 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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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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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는 프랑스혁명 직후 프랑스 서부의 방데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방데 전쟁은 프랑스 혁명 정부와 반혁명 세력 사이에 벌어진 내전으로, 종교 정책과 징병 등 혁명정부의 강압적인 조치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어 대규모 학살로 이어졌다.

 

주인공 시몽 델모트는 공화군 병사로 전쟁에 참전했다가 낭트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가 전쟁에 나가 있는 사이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감옥에 갇힌다. 시몽은 그 배후에 낭트의 혁명정부를 대표하는 카리에르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에게 복수하려 한다. 그러나 샤를로트의 설득으로 카리에르를 직접 죽이는 대신 그의 밑으로 들어가 무너뜨릴 계획을 세운다.

 

그들의 계획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시몽은 그 과정에서 온갖 끔찍한 일들을 목격하고, 자신 역시 그 폭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에 괴로워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시작한 행동이 어느 순간 또 다른 폭력이 되어버린다는 점이 몹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렇기에 그 과정에서 고통받는 시몽의 모습이 오히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배경이 낯설지 않다.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벌어진 참혹한 폭력, 이념과 명분을 내세우며 그 폭력을 정당화하고 권력을 좇는 사람들. 무엇보다 그러한 사건이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실제 역사에 허구를 섞어 이 작품을 썼다. 그리고 그 허구적 장치의 의미가 마지막에 가서야 비로소 드러나며 긴장감을 팽팽하게 끌고 간다. 덕분에 단순한 역사소설에 머물지 않고, 첩보물을 보는 듯한 스릴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단두대와 욕조』는 혁명이라는 명분 하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신념을 방패로 내세워 폭력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신념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

 

시몽 역시 처음부터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아니다. 그도 완전무결하지 않으며, 때로는 분노와 복수심에 흔들리고 때로는 두려움에 움츠러든다. 그럼에도 결국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러한 그의 변화가 오히려 현실적으로 다가와 마음에 들었다.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작품 초반에 시몽의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자기가 믿는 것을 위해 싸워야 해.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내가 공화국을 믿는지는 모르겠다만, 이 도시 와 내 작업장을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너도 그것들을 사랑한다는 건 알아. 우리는 우리가 아끼는 것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워야 해. ❞

 

신념이라는 것은 어쩌면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힘. 어쩌면 그것이 신념에 가깝지 않을까.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도 책장이 술술 넘어갈 만큼 몰입해서 읽었다. 실제 역사에 허구를 절묘하게 섞어 긴장감과 재미를 놓치지 않은 작가의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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