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 잃어버린 나를 찾는 인생의 문장들
전승환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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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게 녹아버린 막대 아이스크림에서 헛헛한 마음이 느껴진다.

무슨 맛일지 상상도 잘되지 않는 새파란 아이스크림.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라는 제목과 참 잘 어울리는 일러스트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의 속도에 걸음을 맞추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면이 소진되고 마음 한구석엔 구멍이 뻥 뚫려버립니다. 온전한 모습을 잃어버린 채 살게 되는 거죠. 그렇게 하루하루 떠밀리듯 살다 보면,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도 알 수 없게 됩니다. 무슨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누구의 위로를 받아도 위로가 되지 않죠.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외로움이 덮쳐옵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해주었죠.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좀 더 힘내. 너는 충분히 강하니까 해낼 수 있어."

분명히 위로를 건네는 말이지만, 그럼에도 삶은 여전히 버겁기만 했습니다. 특별히 강해지고 싶다거나 어려움을 헤쳐나갈 힘이 더 필요했던 건 아닙니다. 더 많이 노력하고 싶지도 않았고요. 생각해보면 삶의 방향과 모양은 사람마다 다른데, 제가 나아갈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묻고, 비어 있는 부분을 내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것으로 채우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이제서야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직접적인 조언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위로가 더 크게 와닿는다는 것, 그저 내 마음을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작가 전승환은 그래서 부러 힘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가 책 속에서 만난 문장들, 그에게 위로가 되었던 문장들을 골라 소개해준다.

세상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당신 혼자만은 아니라고.

그러니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걸음 떨어져 그렇게,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무사태평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속 깊은 곳을 두드려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 나쓰메 소세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

 

나도 이 책을 읽었는데. 심지어 내 책장에 고이고이 소장해두고 있는 책인데 이 문장이 기억나질 않는다.

아마도 읽을 적엔 분명 아, 하고 감탄했을 텐데.

작가 전승환이 소개하는 문장들 중엔 내가 좋아하는 문장도 있고, 처음 만나는 문장도 있고, 이렇듯 그저 스쳐 지나갔을 법한 문장들도 있다.

그래서 새로운 시각으로 내가 읽었던 책을 바라보게도 되고, 또 깊은 공감을 얻게도 된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 정호승 시인, <수선화에게> -

 

그렇게 내 마음과 비슷한 문장들과 자꾸만 마주하다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과거에 비해 상당히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데도 불안이 점점 커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금 가진 것과 현재의 나에 만족하지 말라고, 미래를 생각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라고, 사회 곳곳에서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상황이지요.

인터넷 기사의 댓글 창들을 보다 보면 인간에게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따뜻한 위로의 말보다는 차가운 비난의 말들이,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추악한 말들이 가득해서다.

칭찬은 아끼고, 비난과 채찍질은 당연해진 사람들.

이런 환경 속에서 개개인은 점점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당신이 가진 외로움을

부디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그 무게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기를.

                 

바닥 모를 수렁에 빠져 홀로 내버려진 듯한 기분이 들 때도,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당신처럼 외로워하는 이가 있음을,

아니, 실은 세상 모든 이들이 당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언제나 잊지 않기를.

                   

그리하여 그 외로움을

함께 견뎌 나갈 수 있기를.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위로이기에.

 

 그래서 그가 전하는 이 위로의 말들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어딘가에는 이렇게, 누군가의 안위를 생각하고 그것이 안녕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따뜻한 위로가 된다.

모든 걸음에 반드시 목적지가 있어야 할까?

인생도 산책하듯 그냥 걷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 이애경, <눈물을 그치는 타이밍> -

 

이 책은 나도 읽고 따로 리뷰도 했던 책인데, 나는 이 문장과 처음 만난 기분이다.

아마도 그때는 나름의 목표가 있었고, 그래서 이 문장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의 나에게 이 문장은 참 뭉클하게 느껴진다.

은연중에 내 인생의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문장처럼 아마도 지금은 그냥, 산책을 하듯 걸어나가야 할 시간인지도.

이 밖에도 소개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이 참 많은데, 이러다가는 책 한 권을 다 옮길 기세라 이쯤에서 마치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다른 이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위로를 옮겨본다.

 

 "힘내라. 열심히 살아라"라고 격려하는 소리만 넘치는 세상, 이제 사람들은 그런 말로는 참된 힘이 솟지 않아. 나는 도리어 이렇게 말하고 싶어.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너무 힘을 내려고 애쓰는 바람에 네가 엉뚱한 길 잘못된 세계로 빠져드는 것만 같아. 굳이 힘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잖니? 인간이란 사실은 그렇게 힘을 내서 살 이유는 없어. 그렇게 생각하면 이상하게 거꾸로 힘이 나지. 몹쓸 사람들은 우리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는 그런 사람들이야. 힘을 내지 않아도 좋아. 자기 속도에 맞춰 그저 한 발 한 발 나아가면 되는 거야.

 

- 츠지 히토나리, <사랑을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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