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렌식, 과학수사의 모든 것 - 지난 200년 법과학 발전의 놀라운 이야기
발 맥더미드 지음, 조진경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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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지문을 활용해 해결한 사건은 무엇일까?

너비 4mm, 길이 1cm의 작은 뼛조각으로 살인 사건의 유죄판결을 얻어낼 수 있을까?

 

<과학수사의 모든 것>이라고 제목 붙은 것처럼, 이 책은 과학수사에 대한 온갖 흥미로운 내용들을 다룬다. 법의곤충학, 법의병리학, 법의독물학 등 세부 분야별로 챕터를 구성하고 실제 사례를 곁들여서 마치 방대한 과학수사 백과사전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 인상 깊은 점은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법과학이 어떠한 계기로 발전해왔는지, 또 누구에 의해 발전하여 지금의 체계로 자리 잡았는지 등을 세세한 역사와 함께 풀어낸다. 단순한 흥미 위주의 서적이 아니라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는 면에서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가상 인물이든 실존 인물이든, 우리가 수사물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곁들여 흥미를 더한다. 셜록 홈즈, 잭 더 리퍼, FBI의 후버 국장 등이 대표적이다. 16년간 기자와 편집장으로 활동한 뒤 범죄 소설가로 전향한 작가의 이력이 작품 곳곳에 잘 녹아든 듯하다.

 

마치 영상으로만 접하던 CSI를 활자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픽션이 아닌 실제 사건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왔고, 그만큼 긴장감도 컸다. 덕분에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술술 읽혔다.

 

과학수사나 범죄 수사물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평소 교양서를 즐겨 읽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각 분야의 수사 기법이 발전하기까지 인간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료를 수집하고 탐구해왔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절로 경외심이 든다. 아마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범죄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이전과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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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책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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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글프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까지도 내 마음을 지배한 감정은 서글픔이었다.

 

자매의 책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나는 이 작품이 결국 부모와 자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부모는 자식의 우주다. 그러니 그 우주가 품어주지 않는 세상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트리스탄은 부모에게 방치되다시피 자란다. 그것은 분명한 학대다. 학대는 육체적인 폭력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이를 외면하고, 자존감을 뭉개버리는 것. 그 어떠한 방식으로도 사랑을 표현해주지 않는 것. 이것 모두 정서적인 학대다.

 

두 부부는 트리스탄의 삶을 망가뜨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둘째를 가진다. “너를 위해서라는 핑계로. 흔히 이런 이야기는 첫째가 동생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트리스탄은 레티시아에게 자신이 받아보지 못한 사랑을 쏟아붓는다. 고작 다섯 살짜리 아이가 동생에게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매일 밤 잠을 재운다.

 

현실적으로는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다섯 살 난 아이가 부모처럼 꾸준히 갓난아기를 돌볼 수는 없다. 장담한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트리스탄의 결핍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가 받고자 하는 애정의 형태를 보여줌으로써 부모의 부재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이다.

 

트리스탄은 매력적인 아이다. 처음엔 쉽게 다가가지 않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그 애를 좋아하게 된다. 트리스탄은 다정하고 영리한 아이니까. 트리스탄도 사회생활을 하며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배워간다. 그러나 부모가 던진 말 한마디가, 무정한 행동이 트리스탄의 안에 깊이 박혀 자존감을 갉아먹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트리스탄에게 상처를 입히는 엄마를 보며 나는 서글프다 못해 분노를 느꼈다. 어떻게 사람이 자기 자식한테 저렇게 악의적일 수 있을까. 당신이 그러고도 엄마냐고 묻고 싶었다.

 

이야기이 막바지에서 트리스탄은 엄마의 편지를 태워버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받은 상처는 가슴 저 밑바닥에 깊이 남는다. 그리고 다 잊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불쑥불쑥 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나는 트리스탄이 끝내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에겐 레티시아가 있으니까. 성인이 된 두 사람은 성향도 다르고 가야 할 길도 다르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서로에게 완벽한 보완이 되어줄 것이다만일 이 작품의 뒷이야기가 더 이어진다면, 두 자매가 오래도록 서로의 곁에서 연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기를 바란다.



*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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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소멸
한동일 지음 / 그린스트로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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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보통 약동하는 시기로 묘사된다. 청춘(靑春)이라는 단어 역시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을 뜻한다. 그렇다면 ‘청춘의 소멸’은 무엇을 의미할까. 단순히 꽃이 시드는 순간을 말하는 것일까.


도시에서의 생존은 매일 나를 조금씩 떼어 내 도시에게 주어야 하는 일과도 같았다. 


이 작품에서 ‘도시’는 청춘이 소멸하는 공간으로 그려진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사람들은 대개 청춘을 불태우기 위해 도시로 향한다. 더 좋은 직장, 더 넓은 세계, 더 화려한 삶을 꿈꾸면서. 그런데 어째서 도시는 젊음을 피워내는 공간이 아니라, 마모시키는 공간이 되어버렸을까.


이 글의 화자인 '나' 역시 막연한 동경을 품고 도시로 향한다. 그러나 그는 변변한 생계조차 꾸리지 못해 부모에게 생활비를 의존한다. 보다 못한 부모의 도움으로 연구소에 들어간 뒤에야 비로소 자신의 몫을 감당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도시에서 살아남는 일은 녹록지 않다. 젊은이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서 모욕과 멸시를 감내해야 한다. 그렇게 모욕을 견뎌내고 끝없이 자신을 증명해야만 제 자리를 지켜낼 수 있다.


‘나’의 눈을 통해 묘사되는 청춘들은 단절되어있다. 사람들은 카페에 마주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는다.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머물고, 대화는 점점 사라진다. 함께 있지만 끝내 함께하지 못하는 사람들. 소통이 부재한 삶 속에서 고독은 더욱 선명해진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좋은 옷, 좋은 차를 갈망한다.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 되기를 꿈꾸며 도시에 왔지만, 어느 순간 자기 자신은 잃어버리고 맹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런 도시의 삶 속에서 '나'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후배마저 잃는다. 그리고 그렇게 상실을 겪은 뒤에야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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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책이지만 천천히 곱씹어 읽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책장을 덮은 뒤에는 나의 청춘은 어떠한가, 나는 내가 원했던 삶을 살고 있는가 돌아보게 됐다.


이 글의 막바지, ‘나’가 충동적으로 기차에 올라타는 장면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가 왜 그 순간 비로소 함박웃음을 지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아까운 우리의 청춘이 소멸해버리기 전에.



*본 리뷰는 헤스티아가 모집한 서평단에 선정되어 그린스트로우 (@greenstraw_book)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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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메모리엄 - 2024 올해의 영국 도서상 데뷔 소설 부문 수상
앨리스 윈 지음, 이나경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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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시를 더 쓰게 될 거야

네 시는 사라진 것이 아니야

네가 바로 시니까.


애틋한 사랑 이야기와 참혹한 전쟁 이야기가 공존 가능하냐고?!

그렇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인 메모리엄은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은 시를 사랑하는 사립학교 학생, 곤트와 엘우드다. 두 사람은 오랜 친구 사이로, 서로에게 이끌리지만 그 감정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특별한 감정은 타인의 눈에도 보일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전쟁이 벌어지고, 두 사람의 관계에도 변화가 찾아온다. 참전하지 않는 것이 불명예로 여겨지던 시대, 곤트는 가족에게 떠밀려 입대한다. 그리고 엘우드도 곧 그를 따라 전쟁터로 향한다. 그때 곤트의 나이가 열여덟, 엘우드의 나이가 열일곱이다.

 

이 시대의 청년들은 참전을 명예로이 여기고 동경한다. 그러나 전쟁의 실상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총탄에 전우의 뇌가 튀고 머리통이 굴러다니는 모습을, 수족을 잃고 고통에 신음하는 모습을 매일같이 보는 곳. 그리고 자신도 언제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가득한 곳이다.

 

그래서 조금 더 과감해질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은 여전히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육체적으로 조금 더 친밀해진다. 그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쯤, 또다시 시련을 맞이한다.

 

500 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다. 전쟁이라는 소재를 묵직하고 현실감 있게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녹여냈다. 이 작품이 저자의 데뷔작이라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진주만' 같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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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책
안나 마촐라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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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하지 않는 시신들. 마녀를 연상케 하는 주술 도구. 그리고 사건을 파헤치는 판사. 비밀의 책은 시작부터 음산한 분위기를 풍긴다.

 

그런데 사건을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잔악한 현실이 드러난다. 여성의 존엄이 땅에 처박힌 시대, 남성들은 교육을 핑계로, 혹은 그러한 핑계마저 필요 없다는 듯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다.

 

그런 상황에서 여성들이 살아남을 방법이 뭐가 있었을까? 매일같이 느끼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탈출구가 오로지 독약뿐이었다면, 과연 모르는 척할 수 있었을까?

 

이 작품은 수백 년 전 실제 로마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재구성한 소설이다. 그런데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지금도 여성들은 여전히 폭력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현실에 여성들의 복수극을 보며 통쾌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아닐까?

 

그러나 몇 가지 의문도 든다. 이유가 타당하다면 행동까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아쿠아로 사망한 남자들은 모두 타당하게 죽었나? 그 판단은 누가 내리는 걸까? 한 개인이 누군가를 죽일지 말지 결정해도 되는 걸까?

 

주인공 스테파노 역시 사건을 파헤칠수록 깊은 번민에 빠진다. 그는 학대받는 여성들을 보며 연민을 느끼다가도, 사회에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여성들을 고문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충돌하는 가치관 속에서 점차 무너지는 그의 모습을 보며 죄와 벌이라는 작품이 떠올랐다. 그만큼 스릴 있으면서도 심리적인 묘사가 탁월하다. 결말까지도 도덕적인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지만, 그 통쾌함만큼은 부정하지 못할 것 같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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