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해결사 깜냥 1 - 아파트의 평화를 지켜라!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홍민정 지음, 김재희 그림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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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파트 경비실에 깜찍한 고양이 해결사가 나타났다!

어쩌면 도도한 듯, 어쩌면 뻔뻔한 듯 보이지만 타고난 귀여움을 감출 수 없는 고양이 깜냥!

자그마한 고양이 한 마리가 두 발로 서서 할아버지를 빤히 올려다보았어. 점잖게 뒷짐까지 지고서.

고양이의 머리와 등은 까만색, 얼굴과 배, 발은 하얀색이야. 얼핏 보면 펭귄 같기도 해. 흔하지는 않지만 보기 드문 생김새도 아니지. 조금 특이한 점이라면 제 몸집만 한 여행 가방을 갖고 있다는 거야. 왜 있잖아. 손으로 끄는 바퀴 달린 가방 말이야.

"여기서 하룻밤 자도 될까요?"

고양이는 부탁하는 것치고는 꽤 당당했어.

 

처음 보는 경비원 할아버지께 당돌하게도 잠자리를 청하는 깜냥.

경비 할아버지는 주민들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거절하지만, 깜냥은 기죽지도 않고 "딱 하룻밤인걸요. 그럼 실례할게요."하며 위풍당당하게 경비실로 들어선다.

 

할아버지의 참치캔도 당당하게 얻어먹고, 잠을 청하려는 찰나.

경비실엔 끊임없이 인터폰이 울리고, 경비원 할아버지는 마음 편히 식사 한 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기에 바쁘시다.

 

할아버지가 부재한 사이, 얼떨결에 인터폰을 받고 출동하게 된 깜냥.

부모가 없이 아이들만 있는 가정을 보고 엄마가 올 때까지 자리를 함께 해주기도 하고

오디션을 앞두고 춤추는 연습을 하는 아이에게 댄스 지도를 해주기까지 한다.

 

마치 이 아파트의 해결사라도 된 듯 여기에서 짠! 저기에서 짠! 나타나는 깜냥.

캐리어를 끌고 다니며 천연덕스럽게 잠을 청하고 밥을 얻어먹는 걸 보면 이런 일을 한두 번 해본 건 아닌 모양이다.

과연 이 매력적인 고양이에겐 어떤 역사가 숨겨져 있는 걸까?

 

언뜻 귀여운 고양이의 모험사인 듯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 주위의 모습이 그대로 묘사되어 있다.

일은 고되고, 처우는 좋지 않은 경비원 할아버지와 택배 배달원의 근무 환경이라던가, 부모님의 부재로 방치되고 영상매체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다.

깜냥은 이른바 츤데레처럼 행동하며 이런 사회적 약자들을 따뜻하게 품어준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 내가 여기저기 다녀 보니까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참 많더라고. 어려운 사람을 돕고, 슬픈 사람을 위로할 줄 아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 말이야. 나는 너희들이 꼭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어.

한 가지 미리 말해 두겠는데 혹시라도 내 집사가 될 생각은 말아 줘. 나는 집사한테 사랑받는 것보다 지금처럼 세상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훨씬 좋거든. 언젠가는 네가 사는 동네에도 찾아갈게. 그때 나를 만나면 이렇게 인사해 줄래?

"안녕, 깜냥!"

                           - <고양이 해결사 깜냥 1> 작가의 말 중에서 -

 

글쓴이가 작가의 말에서 깜냥의 입으로 전하고 있듯, 깜냥은 이 팍팍한 세상에 따뜻한 위로를 던지고 싶어 나타난 게 아닌가 싶다.

언젠가는 내 주변에도 그런 존재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왜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는지 알만하다.

제목 옆에 숫자가 붙은 걸로 봐서는 시리즈 작품일 것 같은데 다음 작품도 무척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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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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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들이 꼭 우리 같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작중 인물인 홍주의 대사가 <알로하, 나의 엄마들> 속 인물들의 인생을 대변해 주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 집안 환경, 사회적 처지, 신분 등 각기 다른 사정으로 사진 신부가 되어 포와(하와이)로 떠나게 된 버들과 홍주, 송화.

중매쟁이를 통해 사진만 교환한 뒤 감행하는 결혼이기에, 순탄할 리 없었던 삶.

그녀들의 삶을 지켜보다가 난 '기구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게 되었다.

 

※ 기구하다: 세상살이가 순탄하지 못하고 가탈이 많다.

 

이 단어만큼 그들의 삶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가 또 있을까.

그러나 그들의 삶은 굽이굽이 굴곡은 지었을지언정 언제나 뜨겁고 열정적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엄마가 되어주고, 언니가 되어주고, 동생이 되어주며 버티었던 그녀들의 생은 찡하기도, 대견하기도, 존경스럽기도 했다.

남자라는 존재가 부재하는 상황에서도 그녀들은 꼿꼿하게 앞을 향해 나아갔다.

자신의 텃밭을 일구고, 자식을 키우고, 또 서로를 지켜나가기 위해서.

 

나였다면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끈덕지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도무지 자신이 없는 삶이었다.

 

이제 그녀의 고통도 끝이겠구나, 싶을 때마다 또다시 닥쳐오는 시련을 보며 인생이란 것이 참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끊임없이 몰아치는 파도에 맞부닥치는 그녀들을 보며 나는 두려워졌다.

나는 여태껏 살면서 그렇게 큰 파도를 만난 적이 있던가?

내 인생은 앞으로도 이렇게 순탄하기만 할 것인가?

나도 앞으로 이렇게 무수한 우여곡절들을 겪게 될까?

그때가 되면 나는 버들처럼, 또 홍주처럼, 단단하게 버티고 살아갈 수 있을까?

 

아스라이 펼쳐진 바다에서 파도가 달려오고 있었다. 해안에 부딪힌 파도는 사정없이 부서졌다. 파도는 그럴 걸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나도 그렇게 살 것이다. 파도처럼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살아갈 것이다. 할 수 있다. 내겐 언제나 반겨 줄 레이의 집이 있으니까.

 

그녀들이 그토록 끈덕지게 버티어 낼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로가 서로 곁에 없었더라도 그 모진 풍파들을 견디어 낼 수 있었을까?

나는 그런 존재가 하나라도 있는가?

무수한 생각들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었다.

 

이금이 작가의 글은 처음 만나봤는데 푹 빠져버렸다.

흡인력이 엄청난 글이었다.

앞으로도 그녀의 글을 쭉 지켜보아야지.

 

생생한 사투리 표현으로 인해 마치 시대극 드라마 한 편을 본 듯한 느낌도 들었다.

아이가 낮잠을 잘 때, 밤에 잠들었을 때, 틈만 나면 찾아들어 부지런히 읽었다.

그녀들의 삶이 비로소 순탄해지는 모습을 꼭 지켜보고 싶었다.

 

그러나 인생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인 모양이다.

그녀들의 인생이 앞으로도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녀들은 어떻게든 헤쳐나갈 것이란 것.

죽는 그 순간까지 뜨거울 것이란 것.

그저 그녀들의 삶 중간중간에 꿀맛 같은 단비가 그득히 내리기를.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이 쉬어갈 틈을 마련해 주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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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
임현정 지음 / 페이스메이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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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허영심에서 였을까.
예전부터 난 클래식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클래식 음악을 찾아 들어보면 뭔가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아 금세 꺼버리곤 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클래식에 접근해 본 경험이라면 영화 '샤인'을 보고 나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을 찾아 들어본 정도가 아닐까.
베토벤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가이지만 그에 대해서 별로 아는 건 없었다.
그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월광 소나타나 운명교향곡은 대중매체에서 많이 소비되다 보니 큰 감흥이 없는 편이기도 했다. (대체로 공포스럽거나 심각한 분위기에 인용되다 보니 더 무겁게만 느꼈던 것 같다.)
그러다 이 책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를 만났다.
클래식 관련 책은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과는 다르게 쉽게 읽히면서도 흥미로운 구성이었다.
베토벤의 음악은 웅장하고 거창한 느낌이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만난 '피아노 소나타 제4번 E플랫장조 Op.7'같은 곡에서는 또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발랄하고 경쾌하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이다.
음악적인 내용 외에도 베토벤의 성품이나 개인적인 인생사를 소개하고 있어 그가 더 친밀하게 다가온다.

 

베토벤은 인간 평등사상의 기치 아래 귀족의 특권 의식에 큰 반발심을 갖고 있었다. 눈앞에서 황족이 지나가도 모자를 벗지 않고 고개를 뻣뻣이 들어 함께 있던 괴테를 놀라게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특권층의 후원으로 먹고사는 음악가로서는 대단히 용기 있는 처세가 아닐 수 없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는 저주받은 천재의 고뇌를 보여주는 완벽한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절망을 극복한 베토벤은 결국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채 꿋꿋이 주어진 길을 걸어갔다. 그가 운명을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힘이 아닌 지혜에 있었을 것이다. 체념하거나 굴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애처로운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베토벤은 긴긴 내면의 투쟁을 종식시켰다. 고난에서 얻은 결실은 결국 제2의 천성이 되었고 심지어 자신의 장점이 되었다. 그 후 베토벤의 영성은 몰라보게 승화한다.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 청각을 잃어간다는 걸 알고 죽음을 결심했었다는 사실은 처음 접해보는 내용이었다.

그런 어려운 시절들을 뒤로하고, 심지어 청각을 잃고 나서도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갔던 그의 삶이 너무나도 존경스럽고 경이롭다.

그밖에 저자 임현정의 음악에 관한 고찰이라던가, 베토벤에 관한 평가도 무척 인상적이다.

 

 언어의 장벽이 없는 음악은 우리의 내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 어떤 단어와 문법도 필요 없이 곧바로 우리의 무의식으로 들어 오기 때문이다. 음악을 들으면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고, 일순간 기분과 감정이 바뀌기도 한다. 무슨 음악을 들을지 선택하는 찰나의 시간, 그 짧은 과정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고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

 

재미있는 점은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이 순간의 선택에 따라 경우의 수는 무궁무진해진다. 베토벤이 고결하고 완전무결한 성인(聖人) 이어서 우리에게 불멸의 영감으로 남은 것일까? 아니다. 그는 그저 고난 앞에 굴하지 않고 똑같이 주어진 선택의 순간에 충실했을 따름이다.

 

음악만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 인생 전반을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라 더 마음에 든다.

클래식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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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 삶이 흔들릴 때마다 꼭 한 번 듣고 싶었던 말
박애희 지음 / 수카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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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우리에게 위로가 되는 순간은 '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인 것 같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지만, 그 또한 내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니다.

저자 박애희는 13년간 방송계에서 일했던 경험들, 또 아이를 키우면서나 인간관계 속에서 느꼈던 일상의 소회들을 허심탄회하게 풀어 놓는다.

그녀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을 듣고 있자면, 사람이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고. 인생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곧 괜찮아질 것이라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다.

그 후로 너무 애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 앞에서 안달복달하며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인생의 그 어떤 것도 '살아있다'는 것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내 안의 에너지들을 함부로 소진하지 않고 아끼며 살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이 한 번뿐이라는 걸 절감했기에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고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나만의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그녀가 부모님을 잃고 느낀 감정들을 마주하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라는, 감당할 수 없는 일에 안달복달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이.

좀 더 자기 자신에 집중하라는 그녀의 말이 가슴으로 와닿았다.

늘 퍼주기만 하는 우리의 부모님들도, 살아남기 위해 버티느라 오늘도 신발끈을 조여 매는 당신도, 나도, 때로 혼자 행복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잠시 나를 바라보는 존재를 잊고 나 자신만을 사랑한 그 시간이 또 일상을 버티게 해줄 테니까. 그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이 그토록 바라는, 내가 행복해지는 길일테니까.

 

내가 조금은 더 행복해져도 된다고.

잠시 타인의 존재는 잊어도 되는 거라고.

그래야 우리도 살아나갈 수 있다고 건네는 말에도 무척이나 큰 위안을 받는다.

딸의 웃음을 듣고 있자면, 아무런 성취 없이 지나간 하루도 용서할만한 것이 된다는. 그 말을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하루에 한 끼를 제대로 차려내는 것도 그토록 고단해했으면서 나는 왜 매일매일 인생의 진수성찬을 차려야 한다고 안달했던 것일까. 이것도 해야해, 이것도 이것도. 삶에 늘 부대끼는 기분이 들었던 건 그런 마음 때문은 아니었을까. 소박하고 부담없는 한 끼로도 일상은 얼마든지 충만해질 수 있을텐데.

 

조금 더 내려놓을 것.

욕심부리지 말 것.

눈 앞에 펼쳐진 사소한 일상에 기뻐할 것.

그토록 사소한 지혜를 우리는 왜 자꾸만 잊는 것일까.

어쩌면 그것들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일텐데 말이다.

차근차근 그녀의 글을 읽어내려가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조금은 어긋나도 괜찮은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너무 오랜시간 아파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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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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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사회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요즘, 이 책은 또 한 번 내게 무모한 믿음이 사회에 얼마만큼 소름 끼치는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국민을 고분고분하게 길들이고 싶어 하는 대통령과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교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목사가 권력을 장악한다. 이들은 '순수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이 과거처럼 순종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로 돌아가고, 남성이 사회의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여성이 하루에 단 100 단어만 말할 수 있도록 제한되는 시대.

손목엔 단어를 카운팅 하는 팔찌를 차고, 100단어가 넘어가면 전기 충격을 받는 여성들.

자신을 표현할 권리는커녕, 여권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어 다른 나라로 이주조차 할 수 없다.

 

 

설정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는 책이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이라니 말이 되나? 싶었던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 이거 까딱하면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는데? 싶으리만큼 끔찍한 상황이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이 와중에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된다면? 그 아이가 혹시나 딸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발상 자체로도 충분히 분노할만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부분을 꼽아본다.

스티븐이 우유 한 잔을 또 따르더니 꿀꺽꿀꺽 마셨다.

"내일 시리얼을 위해 좀 남겨둬."

내가 말했다.

"이 집에 너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럼 나가서 우유 한 통 사 오시는 게 어때요? 그게 엄마 일이잖아요."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스티븐의 얼굴로 향했다. 스티븐의 오른쪽 뺨에 벌건 손바닥 자국이 피어올랐다.

스티븐은 움찔하지도, 손을 들지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좋아요, 엄마. 언젠가는 그게 범죄가 될 거예요."

"이 개자식."

.

.

(중략)

.

.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새로운 장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 다음 장치는 장갑처럼 생겼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제가 할 말은 그게 다예요."

스티븐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곧추세웠다.

"제가 모의실험에 자원했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뭐라고?"

"그런 게 바로 리더십이라는 거예요, 엄마. 그리고 순수한 남자들이 하는 일이고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먼저 떠오르는 말을 쏘아붙였다.

"이 빌어먹을 놈."

스티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시든지요."

그러고는 부엌을 슬금슬금 걸어 나오며 빈 유리잔 옆에 '우유 살 것'이라고 적힌 쪽지를 남겨두었다.

샘과 레오가 부엌 문간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았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그것도 내 무엇을 내줘도 아깝지 않을 자식이 이 끔찍한 믿음에 사로잡혀 여성의 순종과 침묵을 당연시 여긴다면? 엄마인 나조차 무시하고 깔보며 그들의 원리원칙에 따라 나를 재단한다면?

나는 그래도 여전히 그 아이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까?

 

주인공 매클렐런은 이런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저명한 언어학자였기에 이 뭣 같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잠시나마 갖게 된다지만, 그렇지 못한 무리들, 심지어 여성이면서도 '순수운동'에 세뇌되어 버린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여성이 입을 다물고, 집에 처박혀 내조나 잘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희열을 느낄까?

어딘가에는 정말로 이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걸까?

 

불쾌한 소재와 끔찍한 상상이 맞물려 머리가 지끈 지끈하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 끝내 이 뭣 같은 세상이 승리하며 여성들이 침묵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인가?

결말이 궁금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만큼 흡인력 있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이따위 세상이 절대로 도래하지 않기를.

아니, 그런 바람이라도 갖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지 않기를.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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