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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다 힘센 책
헬메 하이네 지음, 김영진 옮김 / 미디어창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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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관심 없는 아이들, 혹은 어른들에게 보여주고픈 그림책.

헬메 하이네, 「곰보다 힘센 책」

 

 

 

이번에 창비 서평단으로 선정이 되어 읽어본 도서, 「곰보다 힘센 책」

아들에게 이 그림책을 보여주니 소리친다.

"와!! 코끼리다!! 곰이가 코끼리를 들고 있어!!"

이 책의 주인공인 곰은 코끼리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무척 세다.

 

그런데 속표지에서 보이는 이 곰은 책을 읽고 있는 소녀와 무게가 같다.

과연 어떻게 된 걸까?

이 그림에는 「곰보다 힘센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그대로 드러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운동부터 하는 곰.

돌덩이를 등에 지고 코끼리를 들어 올리는 괴물 같은 체력의 소유자다. ㅎㅎ

 

 

그가 나타나면 숲속의 동물들은 모두 꽁꽁 숨어버린다.

나무 뒤에 숨어 빼꼼~히 곰을 훔쳐보는 동물들의 모습과 뿔을 채 가리지도 못하고 숨어있는 사슴의 모습이 웃음을 자아낸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예쁜 색감의 그림체다.

그러나 죠-기 곰이 나타나든 말든 골똘히 앉아 책만 보고 있는 소녀가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난디.

 

 

자기를 무서워하지 않고 책만 보는 소녀 앞에서 곰은 괜히 힘자랑도 해보고 위협도 해보지만, 난디는 "내 책에 나오는 곰이 더 세." 라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곰은 배가 고프다고, 널 잡아먹겠다고 난디를 위협하지만.

잡아먹을 생각이 있었다면 진즉에 잡아먹지 않았을까?

가만히 그 앞에 서서 괜한 힘자랑을 하는 곰은 어쩐지 외로워 보였다.

그에게는 어쩌면 맛나는 먹거리가 아닌 친구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들은, 몇 가지 사건들을 계기로 정말로 친구가 된다 :)

 

 

 

난디의 소개로 만나게 된 책에서 곰은 새로운 세상들을 만난다.

그 세상은 온갖 동물들과 괴물들, 신나는 모험과 신비로운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렇게 곰은 새로운 친구 난디와 책을 만나게 되고,

숲속 세상 역시 그로 인해 변화하게 된다.

곰돌이를 변화시킨 건 과연 난디였을까, 책이었을까?

책과 친구는 과연 다른 개념인 걸까?

집순이, 책 읽는 아주미에게 잔잔한 미소를 가져다준 그림책.

헬메 하이네, 「곰보다 힘센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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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닫힌 문 창비시선 429
박소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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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원래 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분류하자면 싫어하는 축에 속한다.

시 자체가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시의 애매모호한 속성에 글쓴이 당사자도 아닌 타인들이 이러쿵 저러쿵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에 어쩐지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내 평생 읽어본 시집이라고는 류시화 님의 시집 한권 밖에 없는데, 그마저도 그를 좋아하는 친구의 권유로 그냥 읽어본 거였다.

앞으로도 시집 볼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왔는데.. 얼마 전, 창비 블로그에서 우연히 박소란 님의 시를 한 편 보게 되었다.

 

 

모르는 사이

당신은 말이 없는 사람입니까

이어폰을 꽂은 채 줄곧 어슴프레한 창밖을 내다보고 있군요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를 태운 7019번 버스는 이제 막 시립은평병원을 지났습니다 광화문에서부터 우리는 나란히 앉아 왔지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눈을 준 이 저녁이 조금씩 조금씩 빛으로 물들어 간다고

건물마다 스민 그 빛을 덩달아 환해진 당신의 뒤통수를 몰래 훔쳐봅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입니까 당신은

오늘 낮에 혼자 밥을 먹었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이 가득한 광장을 혼자 걸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은 그곳에서 우연히 친구를 만난 적이 있지요 밥이나 한번 먹자 악수를 나누고 황급히 돌아선 적이 있지요

나는 슬퍼집니다

그렇고 그런 약속처럼 당신은 벨로 누르고 버스는 곧 멈출테지요

나는 다만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늘의 변덕스러운 날씨와 이 도시와 도시를 둘러싼 휘휘한 공기에 대해 당신 무릎 위 귀퉁이가 해진 서류가방과 손끝에 묻은 검뿌연 볼펜 자국에 대해

당신은 이어폰을 재차 만집니다

어떤 노래를 듣고 있습니까 당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그 노래를 나도 좋아합니다

당신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문이 열립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당신이 유유히 문을 나섭니다 당신의 구부정한 등이 저녁의 미지 속으로 쓸려 갑니다

우리는 헤어집니다 단 한번 만난 적도 없이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박소란 시집, 「한 사람의 닫힌 문」 수록작 '모르는 사이'  

 

 

 

 

 

 

 

별 생각 없이 읽어내렸는데 어쩐지 코끝이 찡, 눈물이 핑,

 

어쩌면 시인듯, 아닌 듯한 구성이 마음에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 시에서 고스란히 전해지던 쓸쓸함이, 고독감이 내 마음에 닿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도 아니면 그냥,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나는 인사하고 싶습니다.

내 이름은 소란입니다.

하는 그 파동이 무척 깊은 여운을 남겼다.

그렇게, 이끌리 듯,

내 생전 처음으로 시집을 마음에 담았다.

 

 

 

 

 

 

 

이 싱거운 궁금증이 오래 가슴 가장자리를 맴돌았어요

.

모르겠어요

실은 우리가 국수를 좋아하기는 했는지

.

 

나는 고작 이런게 궁금합니다

 

 

 

화려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지 않은 그녀의 표현방식이 참 좋다.

담담한 말투에 담긴 진한 그리움 같은 것이 내 마음을 휘휘 저어놓는다.

 

 

 

 

 

 

그녀의 글에서 느껴지는 정서들이 좋다.

 

무언가 마음이 시린, 무언가 참 뜨끈한.

몇 번이고, 두고 두고,

자꾸만 다시 읽어 보게 될 것 같은 시집.

 

박소란, 「한 사람의 닫힌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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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가 늘 응원할 거야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김정화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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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엽고도 어리버리한 캐릭터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 보노보노 :)
어릴적 나는, TV에서 방영되는 보노보노를 챙겨보며 자랐다.
당황하면 머리 위로 식은땀을 흘려대는 보노보노를 보며 무척이나 재밌어했던 기억,
어리버리하고 어눌한 보노보노의 말투를 흉내내며 즐거워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가 좀 더 크고나서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샀던 보노보노 인형이 있다.
결혼을 하며 친정집에 그대로 둔 채 먼지만 쌓여가던 그 인형을 아들이 발견하고 너무 좋아해서 집으로 가져온게 얼마 전.

그로부터 며칠 뒤 운명처럼(?) [보노보노가 늘 응원할거야] 서평단을 모집하는걸 보게 되었다.
아들에게 보여주면 정말 좋아할 것 같아서 날름 신청하고는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며칠 전 깜짝 선물이 도착했다.

 

 

따뜻한 파스텔 톤의 그림으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이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여름이었어요.
아주 무더운 여름이었어요.

해달 보노보노와 친구 포로리 그리고 짓궂은 너부리가 바다에 돌을 던지며 놀고 있었어요.
바다 위에 하얀 물보라가 수없이 일었어요"

 

 

 

 

"보노보노가 돌 하나를 집었는데 그 돌은 뿌리가 박힌 듯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어리둥절했어요.

가만히 보니, 그건 돌이 아니었어요.
츠와이오라는 식물이었어요.
츠와이오는 짓시늉을 하는 희귀한 식물로 돌 시늉을 하고 있던 거예요.
짓시늉이란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자기 몸의 색과 모양을 바꾸는 걸 말해요."

 

'짓시늉'과 '츠와이오'라는 신선하고도 생소한 단어들을 보며 응?? 하며 읽어내려 가던 것도 잠시.

 

 

 

 

 

"혼자 우두커니 떨어져 있는 돌이 있다면 그게 츠와이오예요."

 

 

"땅바닥에 한 곳만 볼록 솟아올라 있다면 그게 츠와이오예요."

 

길바닥에 우두커니 떨어져 있는 돌,
땅바닥에 한 곳만 볼록 솟아있는 흙.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이 사소한 것들을 볼 때마다 이 이야기가 떠오를 것 같은,
상상력을 마구마구 자극시켜주는 내용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츠와이오는 이제 무엇으로도 바뀌지 않았어요."

 

 

 

"츠와이오는 시늉을 한 게 아니에요.
츠와이오는 여러 가지가 되어 보고 싶었던 거예요.
그리고 마침내 츠와이오는 자기가 되고 싶은 것을 찾아냈지요."

 

 

그리고 그렇게 이야기의 끝을 따라가다보면 마음이 절로 따듯해진다.

길바닥의 돌로, 흙으로, 똥으로,
주변에 맞춰가며 자신의 모습을 바꿔가던 츠와이오는 결국 자신이 되고자 하는 것을 찾는다.

츠와이오가 자신의 모습을 찾기까지 그를 따스하게 돌봐주는 보노보노와 포로리가 있다.

"보노보노가 늘 응원할거야" 라는 제목이 주는 메시지처럼, 그렇게.
옆에서, 따듯하고 포근하게.

가슴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런 그림책.

아직 세 살된 아들이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내용이겠지만,
이 사랑스럽고 따듯한 그림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좋아한다.

앞으로 두고두고 같이 봐도 참 좋을,
아이가 좀 더 커서 이 이야기를 이해할 때 쯤이 되면 더더욱 좋을 것 같은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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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맑건만 소설의 첫 만남 11
현덕 지음, 이지연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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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창비 출판사에서 멋진 기획도서가 나왔다.
이른바 <소설의 첫 만남>이라 불리는 이 시리즈는 책과 멀어진 청소년들의 독서를 돕고자 기획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서평단에 선정되어 받아본 도서는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 중에서도 <공감력 시리즈>.
타인과 소통하고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일에 대한 생각들을 키워주는 책이라고 한다.

김애란의 [칼자국], 현덕의 [하늘은 맑건만], 스콧 니콜슨의 [뱀파이어 유격수] 총 3권으로 구성되는 시리즈 중 내가 받은건 현덕하늘은 맑건만.

 

책과 멀어진 아이들의 독서를 돕겠다는 기획의도와 맞게 이 책은 보통의 책보다 얇게 구성되어있다.
글자 크기도 크고, 등장인물들 간 대화는 다른 서체로 쓰여져 있어 가독성도 무척 좋다.
중간중간 그려진 삽화 또한 친근한 느낌이 들고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도를 높여준다.

 

 

이 책에 수록된 첫 번째 이야기 : [하늘은 맑건만]의 줄거리

삼촌 집에 얹혀 사는 문기는 어느 날 숙모의 심부름을 하다가 생각지 못한 많은 돈을 갖게 된다.
그 돈의 일부를 수만이와 함께 장난감을 사는데 써 버린 문기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뒤늦게 후회를 하고 상황을 되돌리고자 하지만 이를 반대하는 수만은 문기를 괴롭힌다.

 

줄거리 자체는 특별할 것도, 새로울 것도 없지만 현덕 작가는 문기의 죄책감을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까지 마음이 무거워져 문기가 안쓰럽다가도 또 수만이 미워 짜증이 나기도 하고. 마치 시대극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던 [하늘은 맑건만].

 

"설마 늬가 날 속이기야 하겠니." - 24p-

 

요즘 말로 "음성지원"이 된다고나 할까.
등장인물이 눈 앞에서 직접 이야기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생생한 표현들.

"네가"가 아니라 부러 "늬가"라고 표현한 작가의 의도가 마음에 든다.

너무 옛말이라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든가, 사투리라서 귀에 잘 익지 않은 표현들은 밑에 따로 주석을 달아 설명해주고 있다.

 

 

 문기의 무거운 마음이 잘 그려진 삽화.

 

 

"무엇보다도 문기는 전일처럼 맑은 하늘 아래서 아무 거리낌 없이 즐길 수 있는 마음이 갖고 싶다. 떳떳이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이 남을 대할 수 있는 마음이 갖고 싶었다." -51p-

 

순간적인 친구의 유혹으로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지만 문기는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그 편하지 않음, 다시 떳떳해지고 싶은 마음을 갖는 다는 것 자체로 문기는 선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하는 그의 마음이 참 안쓰럽다.

문기는 결국 어떠한 행동을 하게 될까.
원하던 대로 다시 떳떳하게 하늘을 볼 수 있게 될까?

엄마의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었던 [하늘은 맑건만].

 

 

그리고 이 책에 수록된 두 번째 이야기: 고구마

어느 학교에서 농업실습용으로 심은 고구마밭에서 누군가 고구마를 캐내어 훔쳐갔다.
반 아이들은 별다른 증거 없이 가난다하는 이유 하나로 수만을 의심한다.

 

실제로도 주변에서 쉽게 벌어지는 일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쉽게 갖는 누군가에 대한 오해와 편견.
그리고 그러한 편견을 바탕으로 거리낌 없이 가해지는 괴롭힘들.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이지 않던가?

요즘 온라인 상에서 너무나도 쉽게, 너무나도 자주 행해지는 일들이 떠올라서 개인적으로는 읽는 내내 참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부터 일관적으로 수만을 옹호해주던 기수 역시 마음을 돌려 수만을 의심하기 시작하던 순간.
맥이 풀리는 느낌.

 

 

아이들이 더 잔인하다고 했던가.
그림으로 표현된걸 보니 더 생생하게 와닿아 마음이 언짢아졌다.

사람은 왜 이유없이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걸까.

짧은 이야기이지만 이런저런 원론적인 생각들마저 떠오르게 만들었던 [고구마]
부디 아이들이 읽고 느끼는 점이 많았으면 한다.(물론 어른들도!)

창비 출판사의 기획의도처럼 타인에 대해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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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경애라는 여자의 삶, 혹은 사랑 이야기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또 쓸쓸했던.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치유와 성장 이야기를 담은 작가 김금희의 장편소설이다.

 

작가 김금희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참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주인공 경애와 상수 뿐만 아니라 다른 주변인물들 조차도 주위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느낌이 든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들은 조금은 찌질하고 치사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가엽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유약하지는 않다.
상처받고, 속된 말로 "쩌리"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종내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스스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저변에 가지고 있다.

 

-

 

소설 「경애의 마음」은 이별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이별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일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가족 혹은 아끼던 친구와의 이별/상실 이기도 하다. 


이별과 상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속성이 그렇듯,
「경애의 마음」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분위기 역시 먹먹하고 애틋하다.

나 또한 살면서 한번쯤 느껴보았던 감정들을, 작가는 무척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

 

「경애의 마음」의 기본 줄기가 되는 1999년 동인천 화재사건은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인천의 한 술집에서 불법으로 학생들에게 술을 판매해오다가 어느날 화재가 발생했는데,
학생들이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갈 것을 우려한 사장은 "돈 내고 가라"며 문을 잠가버린다.
때문에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이 질식사 하며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화재(火災)라기 보다는 인재(人災)에 가깝기에 그 비극성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비극에서 살아남은, 또는 그 사건으로 인해 상실을 겪은 이들의 아픔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그려져있어 오히려 더 처연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인 경애나 상수는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격하게 울분을 토하거나 발광하지 않는다.
그저 그 상실들을 한켠에 묻어둔 채, 지금의 삶을 버티어 나간다.
그저 내버려둔다.

그리고 그 내버려둠의 상태는 어쩌면 방기였을 거라고 경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그녀는 결국 상처를 그저 덮어두는 것에서 벗어난다.

끊임없이 그것들을 돌아보고, 마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려 노력한다.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김금희, 경애의 마음 중에서-

 

 

그렇게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은" 모습으로.
잘 지내보고자 한다.

 

-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넘실넘실 차고 올라왔다 가라앉기를 몇 번,
그는 또 그녀는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몰입하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차분해져 있었다.

울적함과는 또 다른 차분함이었다.
따듯함이 몽실몽실.
내 마음도 위로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 김금희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지만 앞으로 더 자주 찾아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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