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경애라는 여자의 삶, 혹은 사랑 이야기일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읽는 내내 마음이 먹먹하고 또 쓸쓸했던.
상실을 겪은 사람들의 치유와 성장 이야기를 담은 작가 김금희의 장편소설이다.
작가 김금희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참 현실감있게 느껴진다.
주인공 경애와 상수 뿐만 아니라 다른 주변인물들 조차도 주위에 하나쯤은 있을 법한 느낌이 든다.
그녀가 그려내는 인간 군상들은 조금은 찌질하고 치사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가엽고 안쓰럽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가 그려내는 인물들은 유약하지는 않다.
상처받고, 속된 말로 "쩌리"같은 삶을 살고 있다 할지라도.
종내에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스스로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저변에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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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경애의 마음」은 이별과 상실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이별은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일수도 있으며,
사랑하는 가족 혹은 아끼던 친구와의 이별/상실 이기도 하다.
이별과 상실이라는 단어가 주는 속성이 그렇듯,
「경애의 마음」을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분위기 역시 먹먹하고 애틋하다.
나 또한 살면서 한번쯤 느껴보았던 감정들을, 작가는 무척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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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의 기본 줄기가 되는 1999년 동인천 화재사건은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모티브로 한다.
인천의 한 술집에서 불법으로 학생들에게 술을 판매해오다가 어느날 화재가 발생했는데,
학생들이 돈을 내지 않고 도망갈 것을 우려한 사장은 "돈 내고 가라"며 문을 잠가버린다.
때문에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학생들이 질식사 하며 대형참사가 벌어졌다.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건이다.
화재(火災)라기 보다는 인재(人災)에 가깝기에 그 비극성은 더 크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비극에서 살아남은, 또는 그 사건으로 인해 상실을 겪은 이들의 아픔은 생각보다 담담하게 그려져있어 오히려 더 처연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인 경애나 상수는 TV 드라마 주인공처럼 격하게 울분을 토하거나 발광하지 않는다.
그저 그 상실들을 한켠에 묻어둔 채, 지금의 삶을 버티어 나간다.
그저 내버려둔다.
그리고 그 내버려둠의 상태는 어쩌면 방기였을 거라고 경애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그녀는 결국 상처를 그저 덮어두는 것에서 벗어난다.
끊임없이 그것들을 돌아보고, 마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나가려 노력한다.
"언니, 폐기 안해도 돼요.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야채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김금희, 경애의 마음 중에서-
그렇게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은" 모습으로.
잘 지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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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내내 눈물이 넘실넘실 차고 올라왔다 가라앉기를 몇 번,
그는 또 그녀는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몰입하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내 마음도 차분해져 있었다.
울적함과는 또 다른 차분함이었다.
따듯함이 몽실몽실.
내 마음도 위로받은 듯한 느낌이 든다.
작가 김금희는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지만 앞으로 더 자주 찾아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