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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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사회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요즘, 이 책은 또 한 번 내게 무모한 믿음이 사회에 얼마만큼 소름 끼치는 해악을 끼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국민을 고분고분하게 길들이고 싶어 하는 대통령과 모든 사람들이 성경의 교리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고 믿는 목사가 권력을 장악한다. 이들은 '순수운동'이라는 이름 아래, 여성이 과거처럼 순종적이고 소극적인 존재로 돌아가고, 남성이 사회의 중심이 되는 세상을 만들어 나간다.

여성이 하루에 단 100 단어만 말할 수 있도록 제한되는 시대.

손목엔 단어를 카운팅 하는 팔찌를 차고, 100단어가 넘어가면 전기 충격을 받는 여성들.

자신을 표현할 권리는커녕, 여권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어 다른 나라로 이주조차 할 수 없다.

 

 

설정만으로도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이야기가 너무나도 흥미진진하게 전개되어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는 책이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앞으로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가정이라니 말이 되나? 싶었던 처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어? 이거 까딱하면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는데? 싶으리만큼 끔찍한 상황이 너무나도 현실감 있게 그려진다.

 

 

이 와중에 여성이 임신을 하게 된다면? 그 아이가 혹시나 딸이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든다면?

그만큼 끔찍한 일이 또 있을까?

 

 

발상 자체로도 충분히 분노할만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던 부분을 꼽아본다.

스티븐이 우유 한 잔을 또 따르더니 꿀꺽꿀꺽 마셨다.

"내일 시리얼을 위해 좀 남겨둬."

내가 말했다.

"이 집에 너만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럼 나가서 우유 한 통 사 오시는 게 어때요? 그게 엄마 일이잖아요."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스티븐의 얼굴로 향했다. 스티븐의 오른쪽 뺨에 벌건 손바닥 자국이 피어올랐다.

스티븐은 움찔하지도, 손을 들지도,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좋아요, 엄마. 언젠가는 그게 범죄가 될 거예요."

"이 개자식."

.

.

(중략)

.

.

"자세한 것은 말할 수 없지만, 새로운 장치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아마 다음 장치는 장갑처럼 생겼을 거예요. 정말이에요. 제가 할 말은 그게 다예요."

스티븐이 미소를 지으며 몸을 곧추세웠다.

"제가 모의실험에 자원했다는 것도 알아두세요."

"뭐라고?"

"그런 게 바로 리더십이라는 거예요, 엄마. 그리고 순수한 남자들이 하는 일이고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닥치는 대로 먼저 떠오르는 말을 쏘아붙였다.

"이 빌어먹을 놈."

스티븐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러시든지요."

그러고는 부엌을 슬금슬금 걸어 나오며 빈 유리잔 옆에 '우유 살 것'이라고 적힌 쪽지를 남겨두었다.

샘과 레오가 부엌 문간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았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 그것도 내 무엇을 내줘도 아깝지 않을 자식이 이 끔찍한 믿음에 사로잡혀 여성의 순종과 침묵을 당연시 여긴다면? 엄마인 나조차 무시하고 깔보며 그들의 원리원칙에 따라 나를 재단한다면?

나는 그래도 여전히 그 아이를 사랑으로 품을 수 있을까?

 

주인공 매클렐런은 이런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저명한 언어학자였기에 이 뭣 같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잠시나마 갖게 된다지만, 그렇지 못한 무리들, 심지어 여성이면서도 '순수운동'에 세뇌되어 버린 사람들의 삶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여성이 입을 다물고, 집에 처박혀 내조나 잘 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희열을 느낄까?

어딘가에는 정말로 이런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는 걸까?

 

불쾌한 소재와 끔찍한 상상이 맞물려 머리가 지끈 지끈하면서도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음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반전시킬 것인가? 끝내 이 뭣 같은 세상이 승리하며 여성들이 침묵하는 시대가 도래하는 것인가?

결말이 궁금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만큼 흡인력 있는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이따위 세상이 절대로 도래하지 않기를.

아니, 그런 바람이라도 갖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존재하지 않기를.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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