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는 필연에 의해 언젠가부터 황정은은 사회 속의 개인에 대해 쓰기 시작했고, 이제는 역사를 관통하는 개인에 대해 쓰기 시작했다.누군가는 그가 거장의 길을 가고 있다고 평가할 지 모르겠다. 그만큼의 요건을 충분히 갖추었음을 이 책이 입증하고 있으니까...그러나 나는 예전의 황정은에게 더 많은 애착을 갖는다. 황정은풍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던 시기가 있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의 내면을 변화시켰고 그 단어를 앗아갔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황정은의 세계는 아직 조금은 남아있다. 그건 황정은만의 고유한 것이라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때때로 나는 그 세계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이 세계 보다 그 세계가 더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늘 그렇지만 이번 책도 아껴 읽었음에도 너무 빨리 끝났다. 늘 그렇듯이 저녁 나절, 하릴없이 하늘을 바라보다 황정은, 기다림에 지쳐...라고 혼자 중얼거리는 밑도 끝도 없는 그리움의 시간이 다시 시작된다.
심시선이 떨군 나뭇가지에서 뻗어나 굵직한 기둥을 이룬 이 믿음직한 나무를 자꾸 뒤돌아보게 된다.처음에는 그다지 친하지도 감정 이입되지도 않았는데 헤어지려고 하니 아쉬운 친구 같은 느낌이다. 유쾌하기도 마음 아프기도 했다. 다행히 재능 넘치는 작가하고는 나혼서만 다음 기약을 해두었다. 보건교사 안은영에서 만나요.
대하 장편 소설을 읽는 느낌..복잡한 신들의 계보가 조각 퍼즐처럼 맞춰지며 조금씩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다. 미로같던 신화의 세계로의 진입이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이윤기라는 믿음직한 짐받이꾼이 뒤에서 든든하게 밀어주었기 때문이다.˝독자는 지금 신화라는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라. 처음에는 필자가 짐받이를 잡고 따라갔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그냥 달리기 바란다. 필자는 짐받이를 놓은 지 오래다. 독자는 혼자서 이미 먼 길을 달려온 것이다. ˝
이 위대한 건축가의 생애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의미에서 매우 유의미한 독서경험이었지만 아르떼 출판사의 이 시리즈를 즐겨읽는 독자로서 2가지의 의문 때문에 읽고 나서도 썩 개운치 않다. 첫째 이 시리즈는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이라는 모토를 달고 있다. 당연히 예술가의 생애와 업적의 기술과 함께 기행문 형식의 과정이 담기고 그 과정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적지 않다. 그런데 이번 책에서는 도대체 프롤로그에서 르코르뷔지에 무덤을 찾는 여정 빼면 본문에서는 전혀 여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문체만 나열되어 있어 작가가 실제로 어디를 다녀왔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둘째 건축가를 다룬 책임에도 그 건축가의 대표적 건축물에 대한 사진이 없다. 빌라 사보아나 롱샹 성당에 대한 설명만 난무하고 실제 사진은 빌라 사보아가 있는 거리 모습, 롱샹 마을 풍경이나 우표에 그려진 롱샹 성당 그림만 보여준다. 이해할 수 없다. 그나마 유현준의 책에서 본 작품들을 떠올리며 인터넷을 찾아 작품을 봐야했다.이 시리즈의 모든 책들이 독자를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지키면서 출간되길 바란다. 알라딘에서 매 신간을 알리는 광고가 뜰 때마다 두근거리며 확인하는 독자로서의 작은 바람이다.